목사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하나요?

조회 수 3794 추천 수 118 2004.10.14 05:11:49
목사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하나요?

[질문]

목사님에 대한 순종에 대해서, 혹자는 목사님도 인간이니 불완전하며, 순종의 대상은 하나님이므로 목사님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는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한편, 혹자는 목사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권위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답변]

같은 목사 입장에서 답변하기가 난처하지만 제 생각을 물었으니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목사라고 해서 무조건 순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질문자님이 지적하신 그대로 신자가 끝까지 변함 없이 순종해야 할 분은 오직 성삼위 일체의 하나님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목사가 전혀 목사답지 않을 때는 순종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목사가 어째서 목사답지 않은지 그 구분을 쉽게 못하는 데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의도가 담임 목사의 경우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부목사나 전도사가 잘못하는 경우는 대체적으로 교회의 헌법이나 규정에 따라 별 문제 없이 처리되지만 담임 목사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가 질문자와 동일한 궁금증을 가질 것입니다.  

모세를 거역한 미리암

흔히들 목사님들이 주의 종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권면하면서 그 근거 구절로 가장 잘 인용하는 것은 민수기 12장의 사건일 것입니다. [참고로 신약의 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그들이 베드로 사도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거역한 것(행5:3)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고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바로 문둥병의 징계를 내립니다. 그래서 비록 모세가 잘못을 범했지만 하나님의 종이니까 하나님의 처분에 맡겨야지 그 잘못에 대해 성도가 함부로 정죄하면 오히려 하나님께 벌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흔히 생각하듯 모세가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단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비방한 자들만 벌했다면 하나님의 공평성은 상실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자신의 종의 권위를 세워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절대 죄악이나 사기나 모순이나 공평하지 않은 것들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로 모세는 아마도 본처 십보라가 죽은 이후에 재혼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만약 모세가 첩을 얻었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미리암에게 바로 분노를 발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또 설령 구스 여인이 첩이었다 치더라도 당시의 사회 문화적 관습상 첩을 얻는 것이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부다처제를 인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도덕성과 영성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까지 아직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바른 가르침을 주시고 오순절날 성령을 부어 주셔서 당신의 계시가 완성 될 때까지는 일부 잘못된 제도도 묵인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 종과 노예제도가 허용된 것이나 사울을 이방과 같은 왕으로 세운 것이 같은 맥락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모세가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이 죄가 되느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시적인 뜻은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 여인 룻이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 선언(룻1:16,17) 한 후에 보아스와 결혼하여 예수님의 선조의 반열에 올랐고, 요셉과 애굽 여인 사이에 낳은 자식 둘이 이스라엘 지파의 선조가 되었습니다.(창48:5) 아마 구스 여자도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했기에 모세가 아내로 취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세가 구스 여자를 후처든 첩이든 취한 것이 하나님의 벌을 받을 만한 범죄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 기사를 자세히 보면 미리암과 아론이 하나님의 벌을 받은 이유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민12: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으며(출15:20,21), 아론은 대제사장으로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역자였습니다.(출4:16, 32:22) 그러나 모세가 갖는 그런 신적 권위가 자기들에게는 모자라 항상 질투심으로 갈등하든 차에 구스 여자 사건을 핑계 삼은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론에게는 노만 발하고 미리암에게는 직접 벌을 내린 이유도 아무래도 여자인지라 질투에 더 약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앞뒤 문맥을 가지고 사건의 경위를 추측 해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면서 이 여자가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했으니 내가 재취(혹은 후처)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하자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올케가 될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누이 미리암이 평소 때에 갖고 있던 불만을 터트린 것이라고 보입니다. 미리암은 모세에겐 아주 각별한 애정을 가진 누이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출2:4-8) 미리암이 하나님의 벌을 받은 것은 모세의 잘못을 지적한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분명한 잘못을 한 주의 종에게까지 순종할 의무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야단친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23:13)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면서도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잘못과는 절대로 타협하거나 묵인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종에게 분명한 잘못이 있다면?

그렇다고 해서 주의 종이 잘못을 범할 때마다 무조건 지적하고 반대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한 것 자체에 이미 오류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도 인간인지라 완벽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혹시 잘못을 저질렀어도 회개하고 돌아올 여유를 주셔야 합니다. 주의 종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워 주시기에 당신의 종이 잘못을 범하면 하나님이 먼저 벌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속 기도하면서 두고 보시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어느 누구도 죄인이 아닌 자 없고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의 구원 받을 자 아무도 없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인간끼리는 서로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 질서 유지 차원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만 교회란 세상의 어떤 집단과도 다른 곳입니다. 예수님의  자비로 서로 치유되고 영적으로 자라야 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일반적인 세상 윤리가 적용되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긍휼만이 그 통치 원리가 되는 곳입니다. 죄는 끝까지 미워하되 그 죄인은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곳입니다.

문제는 주의 종이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전혀 반성이나 회개의 기미가 안 보일 때입니다. 그럴 때도 신자가 주의 종의 잘못을 고치려 들어선 안 됩니다. 누가 맞니 그르니 따지고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신자가 조용히 그 목사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기면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을 바로 잡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간혹 그래도 잘못된 쪽이 교회를 나가야 하고 바른 쪽이 교회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뜻은 믿는 자들의 모임이지 건물을 포함한 가시적인 조직체로서의 교회는 그 다음입니다. 교회를 지킨다고 했을 때 교회의 법통이나, 건물 같은 재산권이나, 신자 명부로 싸우는데 그것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누가 차지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누가 받아내느냐의 싸움일 뿐입니다. 개별 교회는 언제든지 세워졌다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세상 끝 날까지 지켜내며 땅끝까지 빛과 소금으로 굳건하게 서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잘못 했을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가장 큰 벌이 개인적으로 갑자기 죽을 병에 걸리거나 사례비를 못 받게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는 너무 커서 어지간한 잘못도 계속해서 참아 주시지만 죄가 차서 도저히 용서 못할 때는 그 잘못한 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나 그 죄를 깨달을 수 있는 죄의 열매로 징계하십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사이에 난 불륜의 자식이 죽는 벌을 받은 이치와 같습니다.

목사가 가장 소중히 여기거나 잘못한 것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성도들입니다. 목사의 잘못이 분명한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조용히 성도들이 떠나면 그것만큼 큰 벌이 없으며 또 그것만큼 그 목사가 회개하고 되돌아 오게 하는 지름길 또한 없습니다. 그 동안 이루고 쌓아 놓은 성전 건물, 자동차, 집기, 헌금 등 재산권이 상당한데 교회의 주인이 성도이지 왜 목사인가 그럴수록 목사를 내 보내야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반대로 하셔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성도가 분명히 맞습니다만 조직체 교회가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또 그런 재산은 성도들의 손에서 떠날 때에 하나님께 이미 바쳐진 것이기에 성도들의 소유가 아니며 남아 있는 목사의 것도 아닙니다.  

목사나 신자나 하나님 안에서는 다 같은 성도입니다. 성도가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몇 가지 기준을 갖고 해야 합니다. 성도라면 자신들이 천국 가는 것에는 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영적 성장 즉 성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와 또 우주적인 교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방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기준으로 모든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회개하지 않는 목사라면 이미 그 품성으로 봐서 조직체 교회를 쉽게 포기할 리가 없고 그러면 당연히 교회 안에 분쟁이 생기게 됩니다. 바로 이럴 때 서로 옳으냐 그르냐로 싸우면 각각의 영적 성장에도 도움이 안 될 뿐더러 하나님 나라는 오히려 갈라지고 축소됩니다. 그런데도 대개의 경우에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오직 누가 옳으냐로 박 터지게 그것도 세상의 법정에까지 가서 싸웁니다. 믿음은 절대 인간끼리 누가 옳으냐를 증명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며 그에 반해 모든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증명하는 싸움입니다.  

바울 사도가 교회 안에서 서로 옳다고 싸우는 문제를 두고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선언해 놓았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2,3,6-9)

성도가 목사와 분쟁을 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성도측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 나라는 만신창이가 다 된 후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쟁의 와중에 피투성이가 된 목사가 일반 성도들에게 영적인 피해를 끼쳐 하나님 나라가 넘어지게 하는 영향력이 성도가 그러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알기 쉽게 말해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떠나 목사나 성도가 서로 창피당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목사가 그러는 것이 성도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성도 측에 진리가 있고 억울한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목사와의 싸움만은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분명한 잘못이 있는 목사에게도 순종해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원으로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그 목사의 영적인 지도를 받기를 거절하고 소속 교회를 떠나 바로 된 목사를 찾아 가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것으로 사실은 순종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가 충분히 된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을 때에만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위에 말씀 드린 맥락에서 차라리 입을 봉하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싸우는 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비록 떠난 측에서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교회를 떠난 후에 마침 그 목사가 회개하고 다시 바로 선다면 성도들이 떠난 것이 그 회개의 계기가 되게 해 주었기 때문에 선한 일입니다. 그 반대로 계속해서 잘못을 고집한다면 자꾸 성도들이 떠나게 되고 그것만으로 이미 그 목사가 받을 벌은 다 받은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를 떠나야 할 목사의 잘못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 드린 대로 성도로선 과연 목사가 어떠할 때에 분명한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하여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 그 분별이 잘 되지 않습니다. 목사로서 그 자질에 의심이 되는 결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신학적인 이단성

간혹 목사가 이단 교단이 아니면서도 신학적으로 이단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로선 제대로 판단할 기준이 없어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계속 머무르게 되면 설교에 은혜도 되지 않고 영적 성장이 멈춥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에 대해 너무 도덕적 종교적 죄책감을 갖는데 성도 개인의 영적 성장이 도저히 정체 된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는 교회로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한 성도가 특정 목사와 교회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영적으로 자라지 않고 있는 것과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성숙해지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좋아 하시겠습니까? 너무나 간단한 논리입니다. 이단성을 판별하는 기준을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삼위 일체 되심을 전부 혹은 일부 부인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인류 구원의 길임을 부인하는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것을 부인하고 다른 조건들을 대체하거나 추가하는 것
-자기 교파나 교회에만 구원이 있고 기성 교회들을 부인하며 불신자를 전도하지 않고 기성 교인을 포섭하려 드는 것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고 덧붙이거나 제하는 것, 성경의 무오성 을 부인하는 것
-이상한 체험이나 지도자의 가르침 혹은 하나님의 직접계시 등을 성경과 동일시하거나 우위에 두는 것
-성경에 없는 것을 주장하거나 혹은 한 부분만을 절대화된 교리로 확장 시켜 성경 전체의 일관된 교훈을 부정하는 것
-기적을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반대로 기적만 전적으로 강조하는 것
-지도자가 마치 하나님처럼 신격화되었거나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
-시한부 예수 재림을 예언 혹은 주장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도 다른 해석을 추가하는 것
-교회를 부인하거나 정치운동이나 다른 사상 활동이 실제적인 목적이면서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

이상의 기준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 이에 위배되는가를 잘 판별하셔야 합니다. 이런 본질과 상관 없는 지엽적인 부분에서는 성경 말씀의 해석이 교단마다 목사마다 조금 씩 다를 수 있습니다. 또 교회를 치리하는 방식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만으로는 구태여 이단성을 논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에 의한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 되는 본질입니다. 이 부분에 하자가 있다면 조용히 교회를 떠나셔야 합니다. 또 이미 이단으로 판명 난 교회로 찾아갈 리도 없지만 혹시라도 이런 내용을 모르고 그런 교회에 붙들려 속고 있다면 목사를 순종하는 것과 아무 상관 없이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합니다.

2. 분명한 범죄

간혹 목사가 간음이나 금전적 부정 같은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드러났다면 이때도 성도는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서로 반성하고 기도하여 회개할 시간과 여유는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아주 비밀스럽게 중직을 맡은 교회 어른 두 세분이(너무 많아도 안 됨) 조용히 목사를 찾아가 진심으로 서로 터 놓고 그 문제에 대해 의논하셔야 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證參)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5-17)

예수님이 범죄한 사실을 교회에 말하라고 했지만 성도의 경우와 담임 목사의 경우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문제는 대부분의 담임 목사가 자신과 교회를 동일시하며 성도들도 잘 구분해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개별 교회의 헌법이 없는 경우가 많고 또 있다 할지라도 그 법대로 처리하는 양식과 조정능력이 부족하기에 결국에는 분쟁으로 치닫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 나라 확장과 목사가 받는 벌은 성도가 떠나는 것이라는 맥락에서 분명한 범죄가 있어도 성도측에서 조용히 떠나는 것이 백번 낫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어로도 번역된 좋은 책들을 지은 고든 맥도날드라는 유명한 미국 목사가 있습니다. 성적인 부정을 오랫동안 비밀리에 저지르고 있다가 자신의 양심에 꺼려 신자들에게 참회의 고백을 하고 스스로 사직했습니다. 물론 그 부정한 관계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그 후 수년간 완전히 칩거하며 회개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기간으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본 교회에서 그를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고  다시 담임 목사로 청빙했고 이전 보다 더 활발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나 교회가 영적으로 더 성숙해진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분명한 죄를 범하고 있는 상태에선 목사가 아무리 성경적인 설교와 가르침을 준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본인도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서 그 직분을 제대로 잘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자기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성도들과 싸우기를 불사한다면 그 목사를 순종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럴 때도 조용히 교회를 떠나셔야 합니다. 언젠가 그 목사님도 회개하고 돌아오거나 하나님이 다시 쓰실 뜻이 있다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되돌려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를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3. 성격적 결함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목사의 인격이나 성격적 결함입니다. 죄라고까지 분류할 것은 없습니다만 간혹 그 결함의 정도가 지나쳐 죄 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기 2의 경우와 구분 짓기 아주 난처한 경우도 가끔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누구나 몇 개씩 갖고 있는 결함을 목사라고 갖지 말라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성격이 급하다든지, 말을 조금 쉽게 한다든지, 신경이 너무 예민하다든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결점들이 목사에게 유독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모든 성도들에게 영적 지도자로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성도들이 자기 담임 목사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커서이기도 합니다. 또 목사로선 구태여 깊은 속 사정을 일일이 변명하지 못하다 보니 전혀 엉뚱한 오해도 받게 됩니다. 나아가 목사가 받는 심적, 영적인 스트레스는 일반 성도가 받는 것과 그 정도와 크기가 엄청 다릅니다. 그래서 목사는 자기 결함이 더 쉽게 드러나거나 몇 가지 결점들이 복합적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성도들도 이해하고 참아 주셔야 합니다.  

목사의 영적 가르침에 하자가 없고 결정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몇 가지 인격적 결함이 있다고  순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따질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으로 이해하고 감싸 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치리 방침이 몇 가지 마음에 안 들어도 담임 목사의 방침에 따라 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영적으로 지도할 분은 목사이지 성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목사는 장기적인 사역 목표를 가지고 아무래도 성도보다는 몇 배로 더 성경에 비추어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모든 일들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목사의 성격적 결함은 영적 성숙의 본질에 관한 문제도 아닙니다. 목사도 성도와 이런 저런 일로 부딪혀 가면서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집니다. 반대로 성도도 목사의 결점을 비방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성장에 도움 되도록 적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셔야 합니다. 교회의 모퉁이 돌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목사나 성도가 함께 그 분을 닮아 지어져 가기 위해 교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목사님이 설교한 내용과 실제 사는 모습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부부간에 서로 순복하고 사랑하라고 설교 했는데 부부싸움은 목사님 부부가 가장 많이 한다면 정말 은혜가 안 됩니다. 이럴 때도 성도가 목사를 가르치고 고치려 하지 말고 성도 자신의 영적 성장이라는 관점으로 그 문제를 다루셔야 합니다. 목사를 슈퍼맨, 하나님, 완전한 성자 수준으로 놓고 보지 마시고 자신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인도자로만 보시라는 것입니다.

또 목사가 몇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분 특유의 다른 장점을 통해 성도들에게 더 큰 영적 유익을 끼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분명히 목사님이 잘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면 관용으로 기다려 주며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결국 성도가 얼마나 잘 참아내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도저히 목사님의 어떤 문제가 자꾸 마음에 걸려 솔직히 얼굴을 처다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이 용납이 안 되면 빨리 다른 교회로 옮기시면 됩니다.

결론

저로선 질문자님께서 어떤 구체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갈등을 가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말씀을 드렸습니다. 결론적으로 담임 목사에게 문제가 있으면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로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자신에게 용납이 안 되면 교회를 떠날 것인가 아닌가로 판단하시라는 말입니다. 순종이란 교회 안에 남아 있을 때에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교회에 계속 남아 있기로 했다면 반드시 순종하셔야 합니다. 남아 있기로 했다는 뜻은 목사에게 문제가 있어도 참아 주고 회개의 기회를 주기로 했으며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목사를 뜯어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즉시로 교회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분쟁은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며 믿음이란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는 정의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십자가의 사랑과 자비로 다 같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기를 기다려 주고 함께 힘을 합하는 싸움을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비록 그 상대가 십자가에 달린 흉악한 강도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몇 가지 결점을 가진 목사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 성도 혼자만의 영적인 성숙을 고려한 이기적인 판단이라고 오해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그 이상 다른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남아 있는 동안에는 결정적인 범죄나 이단 성향이 나타나지 않는 한 목사님 방침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따르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모든 일을 목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인도해 달라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영적으로 바른 지도자가 되는 길은 목사 본인의 노력보다 성도들이 얼마나 따라주고 기도해 주느냐에 더 좌우 됩니다.

그렇다고 교회 운영의 여러 문제들에 목사와 다른 의견조차 내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직 전체 교인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하면 더 확장 되는가 하는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서로 반대 의견을 내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기도하는 절차를 가져야 합니다. 담임 목사 의견에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복종하는 교회도 사실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교회의 방침으로 정해지면 무조건 순종하셔야 합니다. 자기 의견과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고 방임하거나 뒤에서 꼬투리 잡을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협조하여야 합니다.

목사를 자기의 영적인 지도자로 모실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결정된 자신의 영적 지도자에게는 어떤 하자가 있어도 그 교회에 남아 있는 한 순종하십시오. 혹시라도 여러 결점과 결정적 범죄 사항을 알아도 끝까지 참고 기도만 하십시오. 도저히 사태가 가만 놓아 두어선 더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두세 중직이 찾아가 증참하십시오. 그래도 고쳐지지 않고 목사님이 계속 자기 잘못을 고집한다면 조용히 교회를 떠나십시오.

교회를 혼자 조용히 떠나는 것이 절대 비겁한 행동이 아닙니다.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어찌 비겁한 행동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성도가 영적으로 바로 성장하여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쓰이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떠날 때까지도 어느 누구에게도 그 잘못을 비방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떠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교회에 남아 있는 한 목사에게 순종하십시오. 자기의 담임 목사로 모셨다면 순종해야 하고 도저히 담임 목사로 모실 수 없겠다 싶으면 당연히 교회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순복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이 자기의 영적 지도자를 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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