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6:1-4) 부모가 자녀에게 복종하라.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초현대적인 자녀 양육

 

바울은 신자답게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피차 사랑으로 복종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피차 복종해야 할 인간관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의 사이, 상전과 종의 사이 셋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그 두 번째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언뜻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아비에게만 맡기고 엄마는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는 전혀 없으며 하나님이 창조 시에 부여하신 결혼의 의미에(5:31)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가정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울 일차적인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 당시 신자의 자녀 교육에는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했는데 아버지가 주로 맡아야 했습니다.

 

거기다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시대를 아주 앞서가는 가르침입니다. 아비더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4절) 일상적으로는, 특별히 자녀 교육에선 자녀가 아비를 노엽게 하지 아비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아비가 아무리 공부 열심히 하라,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라,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라, 친구를 골라서 교제하라, 인생에 대한 큰 포부를 가져라, 미리부터 장기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 실현하라 등등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가르쳐도 자녀들이 잘 따르지 않습니다. 부모에겐 자식만큼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심지어 종종 원수보다 미울 때마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거꾸로 부모더러 자식을 화내게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자식의 감정까지 세심히 배려해 주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클 때는 자녀의 성적을 올려서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지능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자녀의 머리를 좋게 만들 수만 있다면 부모들이 무엇이든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인식이 들면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여서 지도자적인 위치에 오르려면 본인과 서로 간의 감성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영국인 키스 비즐리(Keith Beasley)가 1987년 처음 사용한 감성지수(EQ, emotional quotient)의 중요성이 오히려 지능지수보다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구체적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무려 이천여 년 전에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감성지수도 적용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영민했던 바울인지라 어쩌면 성장기에 너무 완고하고 독재적인 아버지에게서 교육받는 동안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화가 났던 경험이 많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으로 이 서신을 읽을 독자들이 이런 권면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도 성경으로 기록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다 못해 그 실존조차 아예 부인하는 현세대에는 절대적 진리가 없어졌습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창3:22)라고 하나님이 염려했던 그대로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만이 선악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신이 바로 완전한 선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가 자신이 좋게 여기는 것을 선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더 나아가 본인이 바로 선이 되었습니다. 최근 20-30년 사이에 세상의 영적 실태는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그분의 자리를 인간이 온전히 대신 차지하는 모습으로 흘러갑니다. 

 

바꿔 말해서 인간 사회는 모든 차원에서 개체별로 하나씩 다 분리되고 해체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차 복종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끄집어냈다가는 완전히 외계인 취급받습니다. 전통적 개념의 부모 자식 관계는 완전히 퇴색되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훈육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따지게 되었고, 사사건건 자식이 부모에게 덤벼들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합니다. 부부끼리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데, 죄송하지만 한국에서 상당수의 부부가 각자 애인들을 따로 두고 있고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여성의 권리를 너무 장려 신장시키다 보니까 거꾸로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역 페미니즘 논란도 분분합니다. 현세대의 해체와 파괴의 바람이 젠더(gender) 갈등으로 비화되어서, 한국에선 젊은 남녀가 각기 ‘이대남’과 ‘개딸’이라는 정치공동체를 결성해 서로 원수처럼 대적하고 있습니다. 유명 정치인들이 그 갈등에 편승해 자신의 정파적 이익을 챙기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부부 사이와 자녀 교육에서 남성이 더 많은 짐을 져야 한다는 본문의 가르침을 두고도 현세대의 젊은이들이 성별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심히 좋아했던 하나님이 젠더 갈등을 부추길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능적 분리만 하였을 뿐 그 신분, 위치, 특권에서 단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바울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쪽이 주로 아비이니까 그것을 금하면서 대신에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아비에 대해서만 가르친 것이지, 의도적으로 엄마를 자녀 양육에서 제외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보다 이천 년 전의 사람인 야곱의 경우 아비 이삭보다 주로 어미 리브가의 양육을 받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전혀 의도치 않은 젠더 갈등이 일어나는 이런 세대일수록 성경이 말하는 근본적인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자 아버지는 가정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려는 한가지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향으로만 가족 모두를 이끌어야 합니다. 특별히 아무리 바빠도 가능한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서 감성적으로도 아주 친밀하게 지내야 합니다. 

 

세 관계의 공통점

 

본문에서 성적 구별보다 정작 주목해야 할 요소가 따로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전제는 세 관계 즉, 모든 인간관계에 다 적용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 상전과 종이라는 위치는 각자 달라도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동기, 목적, 수준, 세기 등에서 차이가 있어선 안 됩니다. 

 

바울은 그 기본 전제 위에 아주 중요한 사항을 하나씩 더 보태었는데,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권면입니다. 자세히 살피면 아내, 자식, 종들은 순종만 하면 되므로 순종에 대해서 조금 더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반면에 세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남편, 아비, 상전에게는 피차 복종 외에 하나씩 더 요구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5:25) 하고, 아비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하고(6:4), 상전은 종에게 공갈을 그치라고(6:9)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루어서 이미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한국 사회는 최근에서야 상급자의 갑질에 대해 사회적인 경각심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선 최근 일부 시시비비가 있지만 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어떤 편견이나 차별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사회적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감성지수처럼 정치적 올바름도 이미 2천 년 전에 성경이 먼저 제시한 셈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고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가르침 대로 도덕적 종교적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자기를 높이지만 않으면 누구나 참사랑으로 대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 불치병자, 불구자, 귀신 들린 자, 과부, 창녀, 세리, 이방인 등 참사랑에 갈급한 자들이 자진해서 먼저 주님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천국의 표상으로 세워졌습니다. 

 

바리새인처럼 높아지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낮춰선 안 되지만, 주님처럼 높은 자가 기꺼이 자진해서 먼저 낮추면 자연히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의 대우를 받게 됩니다. 최고로 높으신 하나님이신 주님이 손수 최고로 낮은 위치로 내려가는 본을 보이셨기에, 그분을 따라가는 신자도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그런 마음을 품고서 서로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명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 신자들이 단기 선교 같은 봉사활동에서 체험하듯이 자기를 낮추어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면 오히려 자기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모든 이가 피차 그러면 자연히 미움과 분쟁이 사라지는 공동체가 세워질 것입니다. 굳이 서로 사랑할 것까지 없이 실제로 모든 계층에서 갑질 하나만 하지 않아도 사회 전체가 천국으로 바뀌지 않겠습니까?

 

갑질이란 높은 위치에 있어서 굳이 자기를 내세울 필요가 없는데도 더욱 그런다는 뜻입니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 자존심을 더 높이려는 욕심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존심의 화신이라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어떻게든 자기 위치에 걸맞은 갑질을 합니다. 아주 치사하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훼방이나 복수를 하다가 혹시라도 위치가 역전되면 갑질을 더 많이 합니다.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모셨던 며느리가 나중에 더 독한 시어머니가 되듯이 말입니다. 

 

인간끼리 어떤 형태로든 서로 갑질을 하니까 바울은 피차 복종만이 해결책이라고 미리 전제한 것입니다. 모두가 갑질하기에 신자는 주님처럼 먼저 복종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신자는 만나는 모든 이와 사회적인 위치 신분 재력 지성 권력 등의 우열에 절대로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어가야 합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

 

효도에도 다른 사람을 돌볼 때 자기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약속이 실현됩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장수와 형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2,3절) 자칫 효도 잘하면 복 받는다는 기복주의로 오해해선 안 되며, 하나님이 그 계명을 주신 목적과 정신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수여할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명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수평적 인간관계에 관한 후반 여섯 계명 중의 첫째입니다.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이 따르나, 그 이후의 다섯 계명에는 아무 보상이 없습니다.

 

나머지 계명들은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탐심으로 전부 부정적 내용이라 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절대로 범해선 안 되는 죄라는 뜻입니다. 만약 그런 죄를 저지르면 자신은 짐승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비하하는 셈입니다. 반면에 효도는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긍정적인 계명이라, 신자는 죄를 안 지으려 노력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선부터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선행 중에 하나님이 효도라는 하나의 선만 명령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몇 번 강조한 대로 하나님은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는 가정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려는 것이 창조의 경륜입니다. 모든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인 역할을 맡은 아비가 자식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면(4절) 그 자식들이 나머지 죄들을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선 굳이 다른 선들을 행하라고 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효도를 잘하면 자식의 일이 잘 풀리고 장수한다는 약속도 실제로 성취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많은 실패를 겪은 후에 한결같이 어떤 후회를 합니까? “어려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잘 따랐더라면 내 인생이 이처럼 꼬이지 않고 잘 풀렸을 텐데” 아닙니까? 부모로선 인생을 먼저 살았던 체험과 지혜를 통해서 또 자식의 기질과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 터라 가장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 오직 잘되라는 소망과 방향으로만 훈계합니다. 지혜가 조금 모자라는 부모라도 공부하고 운동하라는 최소한 두 가지는 훈계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어도 훨씬 좋은 위치에 있었을 것이며, 운동을 꾸준히 하고 술 담배에 손을 대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장수했을 것 아닙니까?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부모 공양하지 않은 자가 잘 되는 일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효도는 천륜이라고, 즉 하늘이 명하는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죽을 때 모든 자식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일도 부모에게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약속은 모든 이가 인정하는 진리인지라 기복주의라고 시비할 거리가 전혀 안 됩니다. 

 

가장 성공한 인생 

 

바울이 이미 2천 년 전에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은 인간의 실체를 존재론적으로 고찰한 결과입니다. 아무리 어려도 자식도 인간인지라 자존심 덩어리라는 사실이 전제가 된 것입니다. 원죄 하의 태어난 인간은 모두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한 것입니다. 부모도 아무리 자식보다 경험과 지혜가 많아도 여전히 어리석고 부족한 죄인입니다. 부부 사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선 부모나 자식이나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부모가 영적으로 아직 미숙한 자녀에게 오직 사랑으로 대해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외부 상황이나 다른 사람과 가장 먼저 감각기관을 통해서 접촉하기 때문에 누구나 지정의(知情意) 중 감정이 가장 먼저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감정이 상하면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지고 그러면 상대가 부부나 부모라도 당장 반감부터 생깁니다. 아비가 아무리 율법의 계명대로 훈계해도 그 방식이나 어투가 기분에 거슬리면 오히려 자녀의 화를 돋우게 되고 다음부터는 어떤 말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녀의 기분에 맞춰서 살살 잘 타이르면 훨씬 더 효과적인 훈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 자식 사이에 쉽게 피차 복종할 수 있고 그 관계가 친구 이상으로 친밀하게 됩니다. 자식이 무슨 문제든 먼저 부모에게 털어놓고 의논할 것입니다. 최소한 부모가 물으면 솔직히 모든 사정을 털어놓을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롤모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녀를 두었다면 그 사람은 최고로 성공한 인생을 산 셈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노엽게만 하지 않아도 자식은 정서적 안정을 얻으며 건전하게 성숙하여서 성인이 되어선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피차 복종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고 신자 아비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부터 온전히 가르치면서 부모도 예수님처럼 가르친 대로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가 성령의 간섭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복음의 은혜와 권능을 누리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신자 아비는 가장 먼저 자녀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주님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는 참신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요컨대 자식을 자기 이상의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쉐마(신6:5)에서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자손에게 물려주라고 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약 부모는 자녀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게끔 양육해야 합니다. 

 

불신자 부모 중에도 자식과 친구 이상으로 친하게 지냄으로써 가업을 물려받은 자녀가 더 번창시키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식에게 절대로 물려주지 못하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입니다. 

 

성경에도 아비와 아들이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졌으나 믿음이 온전히 이어지지 못한 생생한 예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과 솔로몬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을 매우 사랑해서 막내아들인데도,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지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솔로몬도 아버지를 존경해 롤모델로 삼고 그 믿음을 따르려 노력했습니다. 아비 다윗의 분부대로 성전을 하나님의 뜻에 흡족하게 지어서 경건하게 봉헌했습니다. 하나님도 아비에게 효도하는 그에게 앞으로 율법대로 따르면 네 후손의 왕위를 영원토록 보존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왕상9:3-5) 

 

불행하게도 솔로몬의 믿음은 아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약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속적인 정치력에 의존했고 자기 지혜를 너무 과신하면서 율법에서 금지한 일들을 예사로 저질렀고 우상 숭배의 길을 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네 아버지 다윗을 봐서 당장 심판하지는 않겠지만 한 지파만 네 아들의 백성으로 주겠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왕상11:11-13) 솔로몬이 다윗에게 효도하여서 장수의 복은 누렸으나, 주의 훈계대로 따르지 않아서 일대 만에 이스라엘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다윗 본인은 믿음이 좋았으나 평생 전쟁을 치르느라 바빴고 늦둥이 솔로몬에게 신앙 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솔로몬도 국사에 바빠서 그 아들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지 못해 곧바로 나라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신자 아비가 아무리 자식에게 경제적 형통, 육체적 건강, 사회적 출세 등을 물려준들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감성지수를 높이고 정치적 옳음도 실천하면서 인격적으로 자녀를 대우해도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자녀 교육이 아닙니다. 십자가 은혜가 자녀 교육에서 빠지면 그 자식과 후손에게 영적인 사망이 임하고 하나님의 족보에서 가문의 이름이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양육

 

주의 교훈과 훈계로 키워야 한다니까 교회에만 맡기려는 부모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의 구원 진리를 배우고 성경의 계명대로 따라 살게 하려는 뜻은 좋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 부모가 오히려 바로 그 교회 교육 때문에 자녀를 노엽게 만들어서 교회 출석을 멀리하게 하고 심하면 안티 크리스천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를 종교적으로만 적용한 것입니다. 

 

부모부터 믿음이 교회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전부라고 알기에 자식더러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입니다. 주일 성수 잘 지키고, 최선을 다해서 헌금 교회 봉사하고, 또 가능한 죄를 짓지 않고 선행을 하면 복을 받고,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해서 응답받는 것이 부모가 가진 믿음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교회 생활이 바로 그렇게 하는 일의 전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똑같이 그렇게 하라고 어려서부터 교회 출석만 독려합니다. 자녀로선 성경 이야기가 흥미롭고, 친구들 만나는 재미가 있고, 부모 말이면 들어야 하니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행합니다. 

 

그러다 스스로 사리 판단이 되고 인생과 믿음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게 되면 부모의 모습에서 점점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많아집니다. 장로 권사 직분을 맡은 부모님이 주일 예배를 마치자마자 교회 주차장에서 싸웁니다. 어떤 고난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기에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라고 계속 강조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적 어려움이 닥쳐 돈이 떨어지면 부모는 불안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교회에선 아주 거룩한 모습으로 지내도 집에서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나 주변 사람들에게 갑질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 부모지만 너무 위선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교회에서 존경받는데 자세히 보면 다른 교회 어른들도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기 싫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야단만 치고, 어쩌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 교회 청년이 사탄의 종이 되었다고 정죄합니다.

 

청년기가 되면 자식은 부모의 앞뒤가 안 맞는 훈육에 너무 화가 나고 저런 식으로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면 차라지 믿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믿고 있는 하나님마저 싫어지고 부모를 떠나 독립하게 되면 교회와 담을 쌓아 버립니다. 지금 한국에선 거꾸로 자식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대학 입시 준비하라고 장로 권사 부모들이 나서서 교회 출석을 금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솔로몬처럼 세상에서 출세 형통한 자들만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으니까, 기독교는 물론 예수님마저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자기 자식만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까지 노엽게 만들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되면 어차피 더 이상 간섭할 수 없고 독립시켜야 합니다. 한 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자식이 부모를 떠나 독립할 때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는 몇 초 만에 정답이 나옵니다. 인간이 세상만사를 다스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언제든 죽음까지 주관하는 하나님을 떠나선 절대로 온전히 살 수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일류 대학, 최고의 직장, 부자끼리 사돈 맺는 것, 고급 차, 수십 평 대의 아파트 등을 마련해주는 것은 절대로 인생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로 인생에 처절하게 실패한 가장 좋은 예가 솔로몬이지 않습니까? 

 

믿음의 본질

 

믿음은 하나님이 자기를 떠나는 것, 외면하는 것, 침묵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도 옆에 함께는 계시지만, 그 인생을 거룩하게 인도해 주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평생토록 신자가 행할 일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울 때만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이 풍성히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현대의 해체적인 사조가 궁극적으로 도착하는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의 쾌락과 죄악은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이 육체적으로도 빨리 죽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장수를 보장하는 하나님의 첫째 약속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원죄 하에 죄로 타락한 인간들이 죽음을 퍼트리고 있으니까 사회 전체도 멸망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 가정과 직장에, 나아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런 현대의 해체주의 바람이 절대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피차 복종하는 아름다운 질서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쾌락과 더러운 죄악을 탐하고 즐기는 세상 사람들로선 신자가 거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합니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훼방하고 핍박합니다. 신자가 세상의 핍박을 받아서 세상에서 아무리 뒤처져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하고 있으면 주님이 기어이 천국의 영광스러운 구원으로 완성해 주십니다. 신자가 자식에게 매일 가르치고 남겨줄 유산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살고 죽는 믿음입니다. 나에게 알파요 오메가가 되어 있는 예수님을 자식에게도 시작과 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회와 이웃에 죄를 범하기는커녕 어떤 항거도 하지 않고서 단지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려다 순교까지 감당했습니다. 종교적 핍박이 없는 자유로운 나라에 사는 현대의 부모들에게 돈이 조금 부족한 고난쯤은 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 따르면서 얼마든지 세상 앞에 소금과 빛으로 서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어야 하며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식이 순종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요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것이며, 또 부모가 말려야 할 정도로 교회에도 충성할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성공적 사례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데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젊은 디모데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거짓 없는 믿음을 물려받았다고 칭찬해 주고선 이어서 강력하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은 자식이라고도 칭했습니다.(고전4;15) 부모 입장에서 자식처럼 양육한 디모데에게 복음으로 살고 복음 때문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라고 권합니다. 본문에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신자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간단한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 없는 대기업 회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과, 예수님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나 가게 주인이 되는 것 중에 솔직하게 어느 쪽을 원하십니까? 이왕이면 예수 잘 믿고 대기업 회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두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 축복은 기독교에선 절대로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네 복음서 중에 한 권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그런 말은 부끄러워서 아예 꺼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의 신앙 교육에는 실패했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신의 믿음은 명확하게 선포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지금 정말로 솔직히 자문해 보십시오. 자식이 예수 없는 회사 사장보다는 예수 있는 회사 수위가 되어도 좋습니까? 

 

(10/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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