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조회 수 2179 추천 수 83 2008.12.05 23:23:44
사형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질문]


최근,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대장을 역임한 박효진 장로님의 책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를 읽고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들이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한 뒤 믿음 안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가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하여 사형집행을 당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죄보다 훨씬 더럽고 사악한 죄를 마음에 품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우리가 과연 사형수보다 의롭다고 할 수 있나 라는 반성을 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사형수에게도 예수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줘야한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에 인간이 생명을 손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고 종신제로 바꿔야 한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권세 잡은 자와 국가에 충성하라고 했는데 저의 생각과 충돌하는 것인가요?

책의 저자 박효진 장로님은 사형집행 당일 사형집행 임무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효진 장로님은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형수의 목에 올가미를 씌우거나 교수대 스위치를 작동하는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시신수습(교도관들이 매우 꺼리는 일이라 함)을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직접 사형 집행하는 것은 피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정당한 법의 명령이라도 되도록이면 사람의 생명을 직접 끊는 일은 피하는 것이 옳겠죠?

[답변]

질문하신 내용 가운데 이미 정답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말씀하신대로 사형제도 대신에 종신제로 바꾸는 것이 성경적으로는 옳으며, 신자가 정당한 법의 명령이라고 해도 사람의 생명을 직접 끊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또 현재 한국이 사형 제도를 존속하고 있지만 종신제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아가 그런 운동을 벌리는 것은 성경에서 국가에 충성하라는 명령과 전혀 상충되지 않습니다.

절대적 진리인 하나님의 법과는 달리 세상의 법은 헌법을 포함해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그에 맞추어 바뀔 수 있고 또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사형 제도를 당장 없애지 않는다고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 탈법적 개정운동을 벌이는 것은 사회개혁가 내지 혁명가들에게만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아는 신자는 반드시 정해진 법절차에 위배되지 않는 개정 운동을 벌려야 합니다. 신자가 생명을 걸고 그 자리에서 거부할 수 있는 국가의 명령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는 것과 독재 권력이 무단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때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정답은 사실 다 나왔지만 사형제도에 관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과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사형 제도를 자꾸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으로만 판단하려 드는 것입니다. 죄와 사형 제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넓은 포용심을 갖고 정죄해야 할 범위를 대폭 좁혀야 한다든지 죄와 타협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신구약이 일관되게 말하는 죄와 그 처리에 대한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 해석의 원리  

먼저 사형제도 자체가 절대적 죄거나 옳지 않은 제도이므로 없애야만 할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생명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에 인간이 감히 타인의 생명을 끊을 수는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사형제도란 말 그대로 중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사회가 가장 엄격하게 벌을 주는 방식일 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낙태는 분명 무고한 어린 생명을 죽이는 것이기에 성경으로도, 법으로도 금지되어야 마땅합니다. 마찬가지로 살인죄도 법으로나 성경으로나 엄격히 금지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살인죄를 저지른 자를 사형시키는 제도 자체는 살인죄와 그 성격을 달리해서 취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사형 제도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구약시대에는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회를 거룩하게 다스리는 규정으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사형 제도가 명백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에는 그런 구체적이고 명료한 성경 규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뜻 안에서도 사회를 다스리는 제도는 시대, 장소, 환경, 인종, 문화, 종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법이 시대 장소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하나님도 인정했다면 신약시대에 걸 맞는 구체적인 율법도 함께 주셔야 함이 마땅한데도 성경은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물론 성경은 원칙적으로 인간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밝혀 놓은 책이지 사회를 다스리는 규정을 기록한 법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세상은 시대가 흐를수록 더 복잡해져 온갖 새로운 문제들이 양산될 것임을 하나님은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동성애, 안락사, 낙태, 마약중독, 사형제도, 핵전쟁,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기아, 같은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일일이 대응책을 밝혀 놓으려면 성경이 별도 몇 권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나아가 앞으로도 계속 전혀 생소한 문제들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성경은 어느 세대에나 변함없이 적용될 수 있는 죄의 본질과 그 처리법에 관한 원리를, 다시 말하지만 모든 케이스별로 적용 가능한 처리법이 아님, 이미 다 확실히 밝혀놓았습니다. 구약에 규정되어 있는 구체적 죄와 그 대처법을 신약이 말하는 죄의 본질에 비춰보면 아무리 새로운 윤리적 문제라도 성경적 원리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구약에서 유사한 경우의 계명을 찾아 그 옮고 그름을 신약의 원리에 비추어 판정하고 동시에 신약의 원리를 구약의 그 구체적 계명과 비교 검토해서 적용하면 됩니다.  

아무리 성경이 현대와는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 제도적 차이가 멀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 땅과 인간을 다스리는 원칙이 온전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스스로 이미 확정된 66 권 말고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에도 성경의 원리로 비춰보면 죄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윤리적 문제들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인간적 시각으로 이해하거나, 상대주의 혹은 다원주의에 타협하거나, 심지어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어불성설입니다. 성경이 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 배워야 하는 책입니다. 다른 말로 모든 죄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형제도의 경우도 그 제도 자체의 옳고 그름이나 장단점을 따지기 이전에 사형을 당해야만 하는 죄에 대해서 신구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추론한 어떤 원리나 구체적 사안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반드시 예수님이 어떻게 가르치고 실천하였는지 여부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로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보이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죄와 구원에 관한 특별한 계시는 성경과 예수님에 의해 밝혀졌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에 의해 계시는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구약에 걸쳐서 사형 제도를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특별히 예수님이 어떻게 이해하셨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예수님의 사형제도에 대한 해석

다시 말하지만 사형제도 자체는 선하고 악하다는 도덕적 판정을 받을 일차적 대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형을 시켜야만 할 죄의 성격이 무엇이며 그 죄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죄로 성립되고 꼭 사형으로 벌을 주어야 하는지 여부를 따져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사형으로 다스렸던 죄는 대별하여 살인죄, 성적인 범죄, 우상숭배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거나 안식일을 위반하는 것도 죽임으로 다스렸지만 여호와를 국가적으로 섬긴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과 현대 사회와는 그 사정이 다르기에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합니다. 또 우상숭배와 종교적 죄라는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세 가지 죄에 대한 구약의 규정과 예수님의 해석을 함께 살펴봅시다.

- 살인죄

생명은 피에 있고 살인하여 피를 흘리면 여호와의 땅을 더럽히게 됩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너희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민35:33,34)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 연장이나 돌이나 나무 연장으로 고의로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죽였습니다. 그것도 죽은 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피의 보수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 순전히 우발적 실수로 죽인 경우는 공정한 재판을 받으며 속죄할 기회를 주기 위해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대피할 수 있게 했습니다. (민35장)

살인죄의 재판은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세우게 했고 혹시라도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에서 나가면 피살자의 형제가 보수해도 되도록 했습니다. 나아가 아무리 고의적 살인이 아니라고 판명이 났어도 돈으로 속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직 생명은 생명만으로 보상이 되며, 고의적 살인이 아니라도, 특별히 대제사장의 생명이 바쳐져야만 온전한 회개와 속죄가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구약 도피성과 살인자에 대한 처리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습니다.  

살인죄에 대한 신약 특별히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떠했습니까?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구약성경의 율법을 통해 살인치 말라는 계명과 살인자는 보수자에게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규정을 배워온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말씀하시겠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형제에게 노하고, 라가(바보) 또는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도 살인죄와 동일하게 취급했습니다. 구약에선 살인죄를 육신의 생명을 앗는 것에 한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타인의, 여기서는 이스라엘 사람 전부를 형제로 보니까, 정서와 영혼에 모욕과 상처를 안기는 것에까지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로마 통치를 위협하는 종교사상 및 정치범이 되어 사형제도의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열두 영도 더 되는 천군천사를 동원해 로마나 유대 당국의 잘못을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랬습니다. 로마 총독마저 예수님에게서 죽일만한 죄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실토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죽음이자 가장 굽은 판결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무죄인데도 당신 말씀대로 가이사도 하늘이 준 권세인지라 순종한 것입니까? 또 사형제도 자체를 찬성한 것입니까?

예수님의 뜻은 사형제도의 찬성여부와는 별개였습니다. 형제를 말로 살인한 자는 지옥 불에 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법으로 사형을 당하든 말든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도 아마 살인죄 혹은 그 이상의 죄를 지어 사형 당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며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자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허락했습니다.  

당신은 사형을 당하면서까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성부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들이 사형제도가 잘못인줄 모르는 죄를 저질렀다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혀 무고한 당신을 십자가에 사형시킨 즉, 살인한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도 예수님이 누구인줄 몰라 주로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조차 영원한 구원을 염려해주었지, 사형 제도가 잘못이라든지 심지어 그들이 죄를 범했다는 사실조차 당신의 일차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성적 범죄    

율법에 따르면 남의 아내와 간음하면 간부와 음부 둘 다 반드시 돌로 쳐서 사형시켰습니다. 그 외에 계모, 장모, 자부, 자매, 이모, 고모, 백숙모, 형제의 아내를 비롯해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물론 동성애자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경도를 하는 여자와 동참해도 남녀 둘 다 사형을 당했습니다.(민20:10-21)

나아가 청년이 유부녀와 통간하면 또 약혼한 처녀가 다른 남자와 통간하면 청년과 처녀를 돌로 쳐서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한 여자를 강간하면 강간한 남자만 사형을 당했고 심지어 여자가 처녀성을 잃고도 속여서 결혼하면 마찬가지 벌을 받았습니다.(신22:13-29) 한 마디로 약혼과 결혼 관계를 벗어난 비정상적 성관계는 전부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선 주로 행동으로 지은 잘못들만 죄로 규정했지만 예수님은 형제에게 말로 상처 주는 것도 살인죄의 범위에 포함시켰습니다. 이제는 생각으로 짓는 간음도 똑 같이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간음한 자를 사형을 시키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우선 간음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했기에(마5:32), 역으로 따지면 간음해도 사형 시키는 대신에 이혼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끌고 오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는 한마디 말씀으로 군중들로 다 물러가게 했고 그 자리에서 음부를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죄인을 구원해주는 데에 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본체이신지라 인간의 체질이 너무나 진토 같아서 벌 받는다고 쉽게 의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22,13) 다섯 남자와 살았고 현재도 젊은 남자와 살고 있는 사마리아의 한 여인마저 꾸짖기 보다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영원한 생수를 주셨던 까닭입니다.
    
비록 마음으로 간음한 자에게도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고 엄격한 형벌을 강조한 것 같지만, 이어서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30)라고 말씀하셨기에 당신의 초점은 여전히 죄인의 구원에만 두었습니다. 또 눈을 빼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형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제삼자가 알 수 없고 자기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떤 죄라도 오직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우상 숭배의 죄  

십계명의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사실상 우상숭배의 죄를 금하는 계명입니다. 또 당신께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요 소멸하는 불이라고 강조하시면서, (인자는 천대까지 베풀지만)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겠다는 언약의 직접적인 대상도 바로 우상숭배의 죄였습니다. 한 마디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여인들과 절대 혼인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 그들 모두를 진멸하라는 명령도 오로지 우상숭배를 근절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당연히 율법은 박수, 무당, 신접자, 초혼자, 점쟁이, 점성술사 등 우상숭배로 유도하는 자들은 전부 돌로 쳐 죽이도록 규정했습니다. 실제로 광야를 방황할 때에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이나, 발람의 유혹에 넘어간 사건 때나 하나님의 형벌은 가혹하리만큼 엄중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멸하고 모세의 후손으로 다시 당신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선언할 정도였습니다.(출32:10)

예수님도 이 죄에 대해서만은 아주 엄중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성령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는 말로만 그래도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구체적인 뜻은 본 성경문답 사이트의 # 106 글,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참조 바람) 그러나 사형을 시키라는 뜻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니까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말씀 바로 전에 예수님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30절) 말씀하셨듯이 당신을 믿지 않으면 자연히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죄를 씻어주었고 또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둘은 따지고 보면 우상 숭배자였음에도 사형이라는 형벌 대신에 구원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또 공생애 기간 내내 우상 숭배자들은 직접 상대하지 않았고 로마의 지배에도 순순히 따랐습니다. 제자들에게 승천하시기 직전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 모든 족속에게 구원을 베풀라고 마지막으로 당부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에게는 환상으로 이방족속을 은혜 가운데 품으라고 명했으며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라는 소명을 직접 부여했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서기관, 제사장 족속 등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저주하면서까지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마23:13)자들이라고 하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절)라고 정죄했습니다. 물론 그들 또한 당신의 권능으로 죽이지는 않고 대신에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은 절대 면하지 못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 저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율법의 요구를 잘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형식적, 의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되 자신들의 종교 행위는 전부 자기들 의를 자랑하며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 심령 속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배와 올바른 지식이 없었기에 구세주로서 하나님 당신께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상숭배의 죄를 단순히 외적으로 영호와를 섬기는 여부보다는 심령으로 온전히 사랑하는지, 특별히 당신의 십자가 구속을 받아들이는지 여부로 판단했습니다.

서두에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과 안식일을 위반하는 죄는 우상숭배와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에서 같은 성격의 죄입니다. 예수님의 경우 당신께서 하나님 본체인지라 아무리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정죄했어도 성경적으로 따지면 그분에게는 전혀 해당되는 죄가 아닙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 문제는 따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또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형식적, 인간적 계명은 지키지 않은 대신에 오직 하나님과의 순전한 관계에서 안식일에도 신과 의를 실현하는 올바른 안식일 준수의 본을 보였습니다. 나아가 당신께서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지 않으면 진정한 안식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우상숭배의 죄도 영적으로 더 넓고 깊게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범했다고 해서 당장 사형의 형벌을 가하지 않고 오직 죄에 빠진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당신의 십자가로만 초대하셨습니다.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형벌보다 구원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죄는 더 엄격하고도 철두철미하게 저주했습니다.

즉, 구약에서 사형으로 규정한 죄 모두가 예수님에게도 여전히 사형으로 다스려야 할 죄였습니다. 아니 아담의 원죄 하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유대종교 지도자만 아니라,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당신께서 다 감당하셨습니다. 오직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을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에게 구약의 사형제도는 안중에 없었고 죄와 사단과 죽음에 묶여 있는 인류의 영혼을 끌어안고 통분해 하며 우셨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정치적 세력화 시키지 말라.

사형을 당할 서너 가지 죄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의 공통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죄는 더 철저하게 규명하되 그 처리는 당신의 긍휼에 의존케 했습니다. 죄는 그대로 두고 아니 더 확실하게 밝히면서 그 처리법만 구약시대의 행위 율법에서 신약 시대의 은혜 구원으로 이행시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형 제도에 대한 성경적 원리는 확실해졌습니다. 구약시대에 엄격히 율법으로 규정되어 있던 사형 제도를 예수님은 그 가르침이나 실천으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한 마디로 구약시대는 사형제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행되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 당신이신 예수님에 의해 부인된 셈입니다.

그럼에도 본인은 그 제도에 순응하여, 그것도 자기 민족을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법에 따라, 사형 당했습니다. 바꿔 말해 성경이나 예수님은 사형제도 자체의 선악 간을 명료하게 구별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시대, 장소, 문화, 관습, 민족, 종교 등에 따라 사형 제도가 시행될 수도 아니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회가 질서유지를 위해 특정한 죄를 사형으로 다스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틀렸다고 정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인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엄격한 사형 제도를 시행한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율법을 통한 행위언약관계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백성일수록 죄에 대해 더 온전해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몽학선생인 율법으로 인해 죄의 저주를 올바르게 깨달아 십자가 은혜의 구원으로 인도케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언약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당신의 택한 백성이나 이방 족속들에게나, 돌에 쓴 행동 계명에는 확실히 나타나 있지 않았습니다. 돌비에 적힌 율법은 단지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는 표상이었습니다. 대신에 당신의 긍휼을 베푸신 죄인의 심령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새 언약을 아로새겨지게 했습니다. 요컨대 구약의 사형제도 자체도 십자가로 이끄는 당신의 놀라운 섭리이자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인간을 향한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당신의 진정한 백성으로 이뤄진 거룩한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형제도가 없이 어떤 죄라도 오직 긍휼과 자비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예수님 다시 오시기 전에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에게 조종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한시적으로 맡겨 놓았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 둘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나라도, 아무리 미국과 한국처럼 기독교가 큰 세력을 이루어도, 온전한 기독교 신정국가는 될 수 없습니다. 사형 제도를 시행하든 폐지하든 나라마다 다른 사정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또 신자는 그 나라 국민으로서 어떤 제도이든 순복해야 합니다.

물론 신자로서 사형 제도를 폐지하려고 정해진 법절차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치 사형제도 자체를 죄악시해서 당장 없애는 것만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거나, 그 반대로 살인죄나 테러 같은 경우는 반드시 사형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사형제도 자체의 선악을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여 제도를 존속 혹은 폐지시키려 정치적인 활동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요컨대 기독교 좌파니 우파니 세력화 하여 정치적인 입장이 나뉜다고 해서 성경의 진리나, 예수님의 가르침마저 나눠질 수는 결코 없습니다. 기독교인들 스스로 마치 성경이 사형 제도에 대해서 두 가지 의견이 있는 양 세상 사람들과 아니 신자들에게조차 혼동을 주어선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절대적 진리는 오직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죄는 철두철미하게 저주하되 죄인은 끝까지 신자가 생명을 바쳐가며 사랑하여 구원으로 이끌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먼저 할 일은 예수님 말씀 그대로 형제를 바보라고 욕하여 그 마음에라도 상처주지 말아야 하며, 혹시라도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거든 예배드리러 오다가도 가서 화해부터 해야 합니다. 예쁜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지 말고 혹시라도 그런 잘못을 저질렀으면 눈을 빼버리는 한 있더라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죄는 평생을 두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반면에 세상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선 자기부터 썩는 밀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그들 앞에 드러내어야 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감옥 안에 있는 살인죄인과 간음죄인보다 오히려 감옥 밖에 있는 신자 자신이 비록 행동으로는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말로서 마음으로서 살인과 간음을 더 많이 저지른 죄인임을 실토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자신의 심령의 더러운 실체를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넘치는 긍휼의 은혜를 다시 받아 새로이 깨끗케 되어서 주위 모든 사람을 주께 사랑하듯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사형 제도를 없애느냐 순복하느냐 이전에 신자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자신은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던 사형수, 죄인, 세리, 창녀, 과부, 고아, 병자들을 진정으로 용서하며 사랑할 때에 세상은 자연히 사형제도 자체가 아예 필요 없는 사회로 바뀔 것입니다.    

12/5/2008

Joseph

2008.12.06 13:57:27
*.192.30.133

아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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