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 관한 질문 셋

조회 수 1100 추천 수 27 2012.05.02 14:15:05
아브라함에 관한 질문 셋


[질문]


1)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람이 사래의 권면으로 인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부분을 묵상하다 생각이 났습니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죄였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브람의 행동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갔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자손(무슬람)들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과 서로 싸우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살펴보면 15장 4절에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자식이 꼭 사래로 인해 난다고 이전까지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주석을 보면 사래가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이유는 당시 시대에 아내로써 자식을 낳지 못했을 경우 남편이 이혼을 하거나 새 아내를 취할 수 있는 풍습이 있었기에, 사래 자신도 이런 불행을 겪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사래로 인해서 아브람이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아브람과 사래가 취한 행동은 꼭 죄라고는 할수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10년 동안 기다렸고, 또한 사래는 이미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함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당시 풍습이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할 때 여종을 취해 대신 자식을 낳는 것이 용납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래와 아브람이 하갈로 인해 자식을 얻은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약속을 얻으려는 능동적인 순종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2) 동일한 시각으로 12:2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첫 약속에 "큰 민족을 이루고"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의 의미가 아브람에게 자식을 준다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참고로 하나님께서는 17장 전에는 아브람에게 주는 약속에 사래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더욱더 아브람이 불확신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 마지막 질문으로는 당시 시대에는 아버지가 유산을 딸에게도 넘겨주었습니까?

[답변]

흔히 생각지 못하는 측면을 예리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첫째와 둘째 질문은 괄호 안 참고사항에서 질문자께서도 이미 인정했듯이 상호 연결됩니다. 구체적으로는 2번 질문에 대한 답변이 1번 질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 힌트가 됩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어서 2번을 먼저 답한 후에 1번과 3번에 대해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창 12:2의 “큰 민족을 이루고”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가 후손에 대한 약속인가?

그렇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려면 당연히 후손이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과 사래 부부만 불러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식 된 도리로서 연로한 아비 데라를 버려둘 수 없었기에 함께 여행을 출발했었지만 가나안으로 오는 도중 하란에서 아비가 죽었습니다. 자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나안으로 출발시킨 하나님의 뜻이 1번 질문과 연결해서 보면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조카 롯이 동행한 것은 그 아비인 아브람의 형제 하란이 죽었기 때문입니다.(창11:28) 성경은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창11:3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아가 된 롯을 할아버지 데라가 동행 시켰던 것입니다. 하란에 머문 것도 데라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람이 하나님의 첫 명령부터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은 여러 정황상 어쩔 수 없었으며 또 아직은 그의 믿음이 온전히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비록 그가 여러 번 실수 했어도 단순히 당시의 여건과 관습에 쉽게 타협해버리는 자라고 오해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아비와 조카와 어쩔 수 없이 동행했어도 결국은 하나님이 역사하여 그와 헤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이 온전히 지키지 못해도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반드시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이 또한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1번 질문과 연계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한다는 뜻은 그를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될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민족을 통해 당신의 인류 구원 계획을 계시했고 또 계시한 그대로 메시아 예수님을 그 민족의 후예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람은 신약 시대 이후의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조상도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2,3)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과 후손에 대한 언약을 재확인하고 내년 이맘때 쯤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시면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고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비)로 바꿔주었습니다(창17: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 족속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알고 믿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거나, 복의 근원이 되어 열국의 아비라는 창대한 이름을 가지려면 당연히 후손이 있어야만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13:1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등등, 여러 번 직접적인 약속을 하셨습니다.

또 고대 사회에선 자식들, 특별히 전쟁을 치르고 가문의 기업을 이어받아 관리 증식시킬 수 있는 아들이 많으면 그 이름이 널리 창대케 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나하리로다.”(시127:3-6)  

1.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왜 죄인가?(창16장)

1.1 놀랍도록 정미한 성경의 기록


모든 정황을 보면 아브람이 첫 명령을 어설프게(?) 지킨 것처럼,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죄가 되는지 사실은 조금 의아합니다. 주석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당시 관습으로는 전혀 문제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또 하나님도 그의 어미 하갈과 후손들에게 일반적 은총은 몰라도 구원의 은혜는 베풀지 않았습니다. 또 그로 인해 아랍과 이스라엘의 해묵은 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분명히 아브람의 불순종이라는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이 아브람의 나이 몇 살 때입니까? 75세입니다. 이미 그가 상당히 늙은 축에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비록 175세에 죽었지만 상당한 장수를 누렸던 인류 초기의 조상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인간의 죄악이 관영하여 노아 홍수로 심판 받은 후에는 인간의 수명은 백이십 년으로 대폭 줄었기 때문입니다.(창6:3)
    
그래서 창 11장의 아브람의 선조 셈의 족보에 의하면 셈을 제외하고는 전부 삼십세 전후에 후손을 낳았습니다. 12-25절까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습니다. 그러다 특이하게도 아브람의 아비 데라만 칠십 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26절)

그럼 어떤 유추가 가능합니까? 당시에 나이 75세에 아이를 갖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아주 힘든,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아브람의 나이 삼십 전후에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권능 있는 약속이 안 됩니다. 그 나이에 아이 낳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 75세에 아기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바로 자기 아버지 데라가 나이 칠십에 시작하여 아들 셋을 낳은 선례를 보여준 후에 말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너무나 정미하지 않습니까? 다른 이는 몰라도 아브람에게만은 당신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근거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사래의 경수가 끊기고 아브람의 기력이 쇠했다는 성경기록(창18:11)은 한참 후(최초 약속 24년 후)에 나오니까 더더욱 확실히 믿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약속도 당사자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주시는 것입니다. 약속을 하시는 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입니다. 그분의 어떤 약속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상식과 반대되는 일을 믿을 때에 은혜와 능력이 더 크게 드러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75 세 노인에게 아이를 주겠다고 했으면 더더욱 빈말이 아니라고 믿었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믿는데 실패했듯이, 우리 또한 너무나 단순하고 빤한 약속만 믿으려 듭니다. 조금만 수고와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약속 혹은 명령은 제대로 붙들지, 아니 믿지도 못합니다. 당장 바로 눈앞에서 기적처럼 벌어지는 대박 같은 은혜만 요구합니다.  

물론 아브람이 연약한 인간인데다 상식적으로 무리해 보이는 약속을 받은 지라 강한 확신을 갖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으로 인내한 한계가 겨우 10여년 밖에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충직한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으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 요청을 곧바로 거절하고 네 몸에서 난 자가 후사가 된다는 언질을 새롭게 주었습니다.(창15:4) 그런 얼마 후에 아내 사래가 여종 하갈과의 동침을 권하자 그 말에 덜컥 넘어갔습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낳아야, 실제로도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 다 생리적으로 불임상태가 된 후에 갖게 되지만, 하나님의 권능 있는 약속이 됩니다. 또 그래서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제 겨우 십년이 지났습니다. 75세나 85세나 생리적으로 자식을 갖기가 어렵긴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했다면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취소하지 않는 한에는 그 약속은 계속 유효한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당신 입으로 한 번 약속한 것은 절대 변개, 가감, 취소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종을 후사로 삼으려 할 때는 먼저 그래도 될지 여호와께 기도로 물었으며 그 요청을 거절하는 확답까지 들었습니다.(창15;1-4) 그러나 이번에는 사래의 말만 듣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사래도 자신의 불임이나 하갈을 첩으로 삼는 일에 대해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습니다. 후에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러 간 종 엘리에셀이, 아브람의 후사가 될 뻔했던, 간절히 기도하여 리브가를 만난 사건과 대비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신앙적인 행위입니까?

사래는 단지 하갈에게 당하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기에 인간적 묘책을 강구했고, 아브람 또한 그런 본처가 측은했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잠시 잊었던 것입니다. 집에서 길리운 자가 아니라 몸에서 난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들었기에, 아마도 자신의 정자로 후손이 생기면 자기 몸에서 난 자라고 스스로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종을 후손으로 삼고자 했던 아브람의 요구가 거절된 후에 즉, 하갈을 첩으로 삼기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브람이 짐승을 잡아 반으로 쪼개어 양편으로 나눠 놓자, 타는 횃불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이 그 사이를 지나갔습니다.(창15:8-21) 아브람과의 언약을 재확인하고 하나님 당신께서 반드시 지키겠다고 일방적으로 맹세한 것입니다.

어떤 언약입니까? 그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후손을 주고 또 그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언약입니다.(15:5)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습니다.(15:6), 또 그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징표가 무엇인지 보여 달라고 해서(15:8) 하나님이 횃불로 나타나 맹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 년도 채 안되어 하갈과 동침한 것입니다. 이 어찌 아브람의 불신앙의 죄가 아닙니까? 반면에 하나님의 신실성은 너무나 당연하고 성경의 정밀성까지 극명하게 대조되지 않습니까?  

1. 2. 네 몸에서 날 자란?  

한마디로 아브람의 죄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지 못한 것입니다. 거기다 그 약속을 인간적 사고에 따라 스스로 지레 짐작했던 것입니다. 하갈과 동침하기 전에 하나님께 전혀 물어보지 않고 아내의 말에 그대로 따른 것도 큰 잘못입니다.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더라는 이브의 말만 듣고는 아담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거짓말 했나보다 여기고 함께 따먹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 일을 두고 원죄이자 모든 죄의 시초가 되는 엄청난 잘못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까?

사단은 이처럼 인간더러 감정과 환경에 집착토록 하여서 하나님의 권능어린 약속을 잊게 만드는 술수를 가장 자주 동원합니다. 또 아무래도 여성이 그런 쪽이 약하니까 하갈을 통해 사래를 번뇌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자(無子)한 것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당시의 일반적  통념과 또 그래서 아들을 갖기 위해 첩을 두었던 당시의 보편화된 관습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거의 항상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단이 사래나 아브람에게도 첩을 통한 생산이 의로운 일인 것처럼, 최소한 나쁜 일은 아닌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떤 측면에선 아브람이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너무 믿었기에, 나이가 더 먹기 전에 후손을 빨리 많이 보려고 첩을 통해서라도 생산을 하려 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뭇별 같은 후손이란 당대뿐 아니라 오랜 세월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큰 민족이라는 뜻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그것도 그분께서 직접 언약준수의 의식을 행했음에도 온전히 믿지 않은 것은 큰 죄입니다.  

요컨대 당시의 관습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제도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제정한 제도나, 약속한 말씀은 신자가 끝까지 따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브람과 시공간적, 특별히 문화적으로 아주 큰 격차를 두고 성경기록을 접하는 현대 독자로선 그 해석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합니다.

성경 기록은 크게 두 개로 대별됩니다. 사실적(Descriptive) 설명과 규정적(Prescriptive)  진술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 제도, 관습을 있는 그대로 설명한 것입니다. 후자는 하나님의 뜻이 명확히 드러나는 직접적인 말씀, 계명, 계시, 사건 등을 뜻합니다. 전자는 신자가 따르고 본받을 이유가 없는 반면에 후자는 그 반대입니다.

예컨대 구약에 나오는 노예 제도, 첩을 두는 것, 3번 답변에서 설명하겠지만 여성 차별 같은 기록들은 전부 전자에 해당됩니다. 아무리 당시의 관습이 인간사회에서 죄는커녕 오히려 의로운 일로 치부되었고 또 그로 인해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결과를 낳았다 해도 하나님의 규정적 뜻에 위배 되면 죄가 됩니다.

아브람을 비롯해 모세, 다윗 등등 구약인물들 거의 다 일부일처제를 어겼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일부다처제는 친동생 아벨을 살인한 가인의 후손으로서 가인보다 더 큰 죄인이었던 라멕이 시작했다고 성경(창4:219-24)이 규정적으로(특별히 4:24절 참조)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첩을 둔 것은 성경의 규정적 의미로 두말할 것없이 분명한 죄입니다.  

나아가 아브람에게 네 집에서 길리운 충성된 종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손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규정적으로 해석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2:24)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일부일처제도를 확립했고, 나아가 부부는 영육 간에 완전한 한 몸이라고 결혼의 의미를 밝혀 놓았습니다. 추측컨대 아브람으로선 첩과 관계를 맺어도 내 몸에서 날 자라고 오해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사래와 아브람은 부부로서 이미 한 몸을 이루었기에, 네 몸에서 날 자란 바로 사래가 잉태하는 아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1.3 성경의 기록 목적

물론 아브람이 그 당시에 이렇게까지 깊이 하나님의 뜻을 몰랐을 수 있습니다. 인간적 여러 약점과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은 아브람보다는, 아니 당시에 아예 성경이 없었음, 후대의 독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당시의 관습과 인간적 한계로 행한 것이라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살펴본 대로 여러 가지 타당하고도 엄정한 이유들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분명한 죄라는 것을 가르치고 그대로 따르면 안 된다는 것을 후대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선(善)이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위에서 설명 드린 내용을 다 제쳐두더라도, 아브람이 하갈 사이에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이 낳은 결과를 보면 그 일이 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 같이 부정적 결과만 생겼지 않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죄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결과나 열매로 따져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인지라 “(당신께서)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롬8:28) 그러나 이는 신자가 이미 범한 여러 허물과 죄를 나중에라도 올바르게 고쳐주신다는 뜻입니다. 서두에 살펴본 대로 친척과 아비 집을 완전히 떠나지 못했던 아브라함의 잘못을 하나님이 역사해서 바로 잡았듯이 말입니다. 이미 행한 잘못마저 죄가 아니거나 죄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선한 열매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아브람으로선 확실하게 아름다운 결과가 드러날 때까지 그분이 어떻게 하실지 기다렸어야만 했습니다. 의심과 초조와 염려가 생겼다면 무릎 꿇고 엎드렸어야만 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어도 최소한 그 의심 초조 염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도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가 약속을 끝까지 믿지 못한 것은 물론, 중도에 기도하지 않았던 것도 엄밀히 따져 죄입니다.

어쨌든 잘 알다시피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에게도 인간적 한계, 약점, 허물, 죄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달리 성경은 그 모든 허물과 죄를 있었던 그대로 설명(descriptive)합니다. 바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죄 사함이 필요치 않는 이가 믿음의 조상을 포함해서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구약 전체에도 이미 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십자가 복음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그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논쟁하는 중에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6&58)

아브람이 당시 관습으로 아무 문제없는 일을 행했어도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으로 볼 때에 죄라는 것입니다. 또 그 죄를 해결할 길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용서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 한계와 약점으로 죄를 짓게 되었다고 해서 인간적 정으로 그 전후사정을 이해는 해주어도 죄라고 아니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에게 그런 한계와 약점과 죄의 본성이 있기에 더더욱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소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원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방식을 통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발단과 진행과 완성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기록해 놓았다고 보는 구속사적(Redemptive History) 관점에서만 성경의 모든 기록은 해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성경을 앞뒤로 잘 연결해서 일관적인 의미를 추적하는 통전적(通典的)  해석이 필수적입니다.  
    
3. 당시에 아버지가 유산을 딸에게도 넘겨주었습니까?

고대사회에선. 사실은 아주 최근까지도 여인은 온전한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자의 소유물, 재산, 심지어 몸종으로 취급당했습니다. 모든 문화, 사회, 세대가 그랬습니다. 그러니 딸에게 유산을 넘겨줄 리는 없습니다. 심지어 족보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아들만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습니다. 형수계대결혼(Levirate Marriage)법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규정이지 않습니까? 모세보다 500여 년 전인 아브람 시대에는 더더욱 여자에게 상속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자를 남자보다 비천하게 보거나 열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같은 신분, 자격, 위치로 보았으나 단지 당신께서 맡긴 역할만 달랐을 뿐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로다.”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시 봅시다. 남자와 여자는 연합하였습니다. 동등한 자격과 신분이라야 연합이 가능합니다. 만약 그 신분과 자격에 우열이 있다면 자연히 상하 복종 관계가 형성됩니다. 부부는 배우자가 없으면 완전한 한 몸이 안 되기에 각각 반쪽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의도는 남녀동등입니다. 어느 한 쪽의 우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남성을 대표로 세운 것 또한 분명합니다. 동등한 자들의 연합체에선 전부를 대신해서 하나님과 교통할 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첫 인류의 대표, 예수님이 둘째 인류의 대표가 된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구속될 모든 열방의 대표로 선택되었고, 교회에선 목사가 가정에선 아버지가 대표가 됩니다. 모든 기독교 공동체에는 군림하는 왕이나 대장이 있어선 안 되며 전체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만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남자로 가문의 대표로 삼기는 했지만 도무지 아들이 없을 때는 딸로도 상속받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땅을 분배할 때에 므나셋 지파의 슬로브핫 집안에 아들이 없어서 딸들이 대신 상속 받았습니다.(민27:1-11) 그리고 지파 간에 최초로 분배된 땅이 계속 그대로 유지토록 하기 위해서, 상속 받은 딸들은 다른 지파에 시집가면 안 되고 같은 지파에서만 결혼하게 했습니다.(민36:5-10)  

땅을 비롯한 모든 기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자 영원히 그분에게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땅을 사고팔거나, 채무관계가 있거나, 종으로 팔려도 희년이 되면 땅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채무는 없어지며, 종은 자유자로 복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맥락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이삭 혹은 이스마엘 이전에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 딸이 있었는지에 관해선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또 율법의 상기 예외 규정이 생기기 훨씬 전이었고 사회 관습상 여성의 상속은 생각도 못하던 때라 설령 딸이 있었다 해도 상속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딸마저 없었기에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가지려 시도한 것은 아닌지, 또 그래서 그런 아브람의 인간적 정서를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유추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 일관된 뜻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긴 해도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 부부가 자녀를 전혀 생산할 수 없는 때에 기적적으로 외아들 이삭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서 그가 인내하며 그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지 보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완전하신 하나님에겐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하는 그의 믿음을 최종적으로 더 온전하게 시험하는 방책이 따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 또한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신 예입니다. 인간의 허물과 죄는 오직 당신만이 씻으실 수 있을 뿐입니다.

또 그 최종적 시험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더욱 명료하게 예표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허물과 죄가 많은 여성들을 네 명이나 성경의 기록으로 올리게 해서 처음부터 여자를 전혀 차별하지 않았음을 드러내신 것도 모든 성경을 예수님의 구속사로 해석해야 한다는 예였듯이 말입니다.  

5/2/2012

의인

2012.05.05 07:51:28
*.143.155.166

가벼운 생각? 다른생각?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행함으로 나온 아들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면 우리는 이스마엘을 낳게 될 것이다.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 들이 많은일들???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비정상적인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절대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 기억하라. 우리는 죄를 다룰 수 없다.
오직 주님의 속죄만이 죄를 다룰 수 있다.우리는 죄에 대하여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이 죄를 다루도록 맡겨야 한다.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은 이스마엘과 관련된 것이다. 곧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자연적인 것은 거절되어야 한다. 자연적인 것이 옳거나 그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순종에 의하여 영적인 것으로 변화된지 않는 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 생활에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이스마엘사건은 불순종으로부터 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지를 의지하는 데서 야기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이 그에게 주어지는 즉시 그는 순종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명령이 없었을 때 그는 자신의 지혜와 꾀를 의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는 잘못 가게 되었다. 바른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옳지 않는 것을 행할 수 없다. 결국 옳지 않는 행동은 반드시 잘못된 결과를 낳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우리의 꾀를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옳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하여 거짓 말을 한다면 이는 모든 상황의 배후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모든 것을 판단하라.

그러면 아무리 자신의 눈에 옳아 보여도 결코 그릇된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운영자

2012.05.05 13:25:13
*.104.229.109

의인님
가벼운 생각도 다른 생각도 아닙니다.
질문자나, 의인님이나, 저나 같은 맥락의 의견을 가진 것입니다.
이 댓글 또한 제 글을 적절히 보완해주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질문자께서 하갈을 첩으로 둔 것이 능동적으로 순종하려 한 것은 아닌지 물어왔는데
뒤집으면 바로 인간적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가 시행하려 했다는 뜻이 되며,
제 답변에서 아브람이 네 몸에서 날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지레 짐작하여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였다는 설명도 역시 인간적 방안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질문이 인간적 방안을 순종의 일종으로 여기면 구태여 죄가 아니지 않느냐에 초점이 맞춰졌기에
저는 오히려 그것이 바로 불순종이며
또 앞뒤 문맥과 성경 전체의 뜻으로 따져 볼 때에 아주 심각한 죄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은혜로운 코맨트 감사합니다. ^^

모루두개

2024.04.04 14:53:17
*.230.44.2

'당시의 관습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제도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별개라는 것' 묵상할 때 주의해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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