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0:22-26) 하나님을 최고로 모독하는 죄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출20:22-26)

 

가장 강조한 계명

 

하나님은 십계명만은 이스라엘로 정결례를 치르게 하고 모두 집합시켜서 당신의 육성으로 직접 가르치셨습니다.(출20:1) 모든 인간 특별히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권능과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방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강조한 계명은 당신을 믿고 따르라는 첫 계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간단히 한 절(3절)로 끝내고 우상숭배를 금지한 둘째 계명을 4~6절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넷째 계명은 8-11절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사실상 하나님만 섬기라는 첫째 계명의 연장입니다. 우상숭배 금지는 십계명을 백성들에게 직접 다 가르치신 후에 모세를 따로 불러서 본문 23절에서 한 번 더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첫 계명보다 두 번이나 더 힘주어 강조하신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우선 당시 상황을 보면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께서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직접 가르치고 있어서 모든 이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당신의 엄청난 권능을 온몸으로 넘치도록 체험했습니다. 첫 계명은 굳이 따로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소름 끼치도록 피부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첫 계명은 그런 체험이 없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따라야 할 인생에서 첫째가는 진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에 세상의 주권자가 따로 있다는 근본적인 피조물 인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종교가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들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느님 혹은 천지신명이 있다면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으로선 당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너무나 자명한 진리이고 또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자는 잘 믿고 따를 것이므로 간단히 언급한 것입니다. 

 

첫 계명의 내용은 간단하나 모든 인간의 살고 죽음을 가르므로 그 영적 의미는 최고 중요합니다. 인간의 기원은 창조 아니면 진화 둘 즉, 하나님과 물질뿐으로 다른 기원은 없습니다. 외계인 도래설은 만에 하나 사실이라고 쳐도 그 외계인이 출발한 행성으로 돌아가면 그들의 기원 또한 창조와 진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최근의 유신 진화론이 많이 거론되지만, 그 과학적 근거는 둘째 치고 인간의 하나님을 닮게 지어진 형상이 아담의 원죄로 타락했다는 가장 절대적이고 첫째가는 교리를 부인하므로 비성경적입니다. 어쨌든 그 주장의 궁극적 인간의 기원도 하나님입니다. 

 

십계명은 인간관계 여섯 계명 중에 부모 효도를 가장 먼저 강조하는데 세상 사람들도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첫째 덕목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도 결국 자기를 낳아준 조상이 있으며 그렇게 소급하여 선조들에게 적용하면 최초의 뿌리는 하나님에게 도달합니다. 

 

이 땅에서 짐승과 달리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기원이 하나님과 물질 둘 중 어느 것인지는 확실히 해두어야만 합니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어디로 갈지 정해 최선을 다해봐야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업적은 공중에 뜬 누각으로 오직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물질이 스스로 우연히 온갖 재주를 부린 꼴입니다.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불신자의 인생은, 원죄로 타락한 사악한 본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니까 끝까지 허망하고 갈급할 뿐입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은 결국 하나님과 물질 둘 중 하나를 숭배할 수밖에 없고 그 둘의 통치 원리에 따라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선언 하나로 자세한 추가 설명 없이 시작합니다. 그 사실을 온전히 믿는 자라면 그분만 온전히 사랑하고 전적으로 순종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런 정체성을 정확히 확인했으므로 굳이 자세히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선 정작 강조해야 할 일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둘째로 우상숭배만 하지 않아도 당신을 온전히 따르며 사랑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첫 계명부터 “당신만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으므로, 사실상 이 또한 우상숭배 금지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가르치면서 신자가 절대 범해선 안 되는 죄가 우상숭배라는 말씀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의미

 

십계명에 대한 직접 교육 마친 후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22절)라고 하셨는데 마찬가지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산이 흔들리고 온 땅에 펴져 나가는 우레 같은 소리를 듣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뿐 빽빽한 구름 사이에 가려진 하나님의 실체는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너희가 당신의 실체를 볼 수도 없었으므로 아무도 당신의 형상을 추측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당신의 의지대로 다스리는 그분은 세상 어떤 것과도 닮지 않습니다. 피조물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자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첨단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기껏 달까지밖에 못 가본 인간으로선 이 광대한 우주의 주인을 도무지 그려낼 수 없습니다. 

 

물질계에 제한받는 인간은 이 땅의 기존 물건밖에 알지 못합니다. 큰 동물이나 엄청난 자연에 빗대어도 그것들부터 하나님이 만든 먼지 같은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무엇이 되었던 기존 물체로는 하나님의 속성과 권능을 눈곱만치도 담아내지 못합니다. 인간이 상상해서 어떤 형상을 만들어도 아주 기괴한 모습이 되고 추상화 그리듯이 고안하면 사람들이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창조 이래 우상숭배는 계속 있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과학적 영적으로 아주 어리석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은 당연히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고대에도 돌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것들을 곧 신(神)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들 삶을 자기들 의지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자연적인 재앙이 덮치니까 인간 외에 세상을 움직이는 아주 큰 힘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니까 이 땅에서 인간보다 훨씬 큰 물체로 그 힘을 상징 대체하려 한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심지어 질병이 쥐나 벌레가 병균을 옮겨서 생긴다는 사실도 발견하고 가나안 족속은 독종과 쥐의 형상을 만들었고 애굽은 파리와 이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럼에도 그 형상 자체를 두렵게 여겨서 섬긴다기보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무지 감당이 안 되고 예상치도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할 힘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거기다 삶의 여러 측면에서 지역적 시기적 부분적으로 고난이 발생하니까 해당 분야별로 주관하는 신들이 따로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상 만물 전부를 통합해서 장기적으로 절대적이고 완전한 의지로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몰랐거나, 우선적인 관심을 쏟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현실적 삶에서 고통만 당장 없애려고 우상을 동원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깎아 만든 신상이 장엄하고 신비롭게 보여도 인간들이 그 앞에서 종교적 유희를 하면서 자기도취에 빠진 것입니다. 둘째 계명에서 하나님의 첫마디도 그래서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출20:4a) 자기만 높이려는 원죄의 사슬에서 풀려나오지 못한 가증한 죄라는 뜻입니다. 

 

제사장 나라 소명

 

하나님이 우상숭배 금지를 가장 강조한 아주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에서 불러낼 때 주신 약속을 그의 후손 이스라엘더러 이어받게 해서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초점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거나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그분의 종이 되었기에 넘치는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복이나 저주를 받는 자는 다른 모든 족속입니다. 그 기준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느냐 저주하느냐인데 사실은 그가 증명하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느냐 아니냐가 기준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에서 불러내어 역사상 최초의 해외 선교사로 가나안으로 파송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수여하기 전에 이스라엘과도 그와 똑같은 언약을 맺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5,6) 이스라엘도 나중에 모세를 통해 기본적인 율법을 전해 들은 후에 제사장 나라로 충성하겠다고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출24:1-11)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똑같이 그의 후손을 이제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지경에 선교사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모든 족속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서”(롬1:23)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유일하신 창조주 보이지 않는 참 하나님을 증명해야 하는 이스라엘로선 절대로 어떤 모습으로도 우상을 만들어선 안 됩니다. 우상을 섬기는 순간 다른 족속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므로 제사장 나라 지위도 날아갑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심판받은 이유도 윤리적 죄악이 아니라 우상숭배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우상숭배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애굽에서부터 현장 실습 교육을 주욱 시행해 왔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우상을 힘 한번 못 쓰게 무참히 패배시켜서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임을 당신의 백성에게 똑똑히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는 전쟁에서 이기는 나라의 신이 더 강력하다고 믿었으므로 애굽 사람과 가나안 족속들에게까지도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만 왕의 왕임을 똑똑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기생 라합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이 여호와에 대해 전해 듣고 벌벌 떨고 있었지 않습니까?(수2:9,10)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절대 우상숭배를 해선 안 되었음에도 오히려 주변 족속의 가장 가증한 죄악에 적극 동참했습니다. 하나님의 체면을 완전히 땅에 떨어트림으로써 그분을 최고로 모욕했습니다. 당연히 제사장 나라 지위는 상실되고 약속의 땅에서도 쫓겨나와 자기들이 섬겼던 우상 족속의 노예살이로 다시 돌아가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님 쪽에선 시내 산 언약을 최대한 지키려고 무려 천년이나 참아주신 후에 심판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방식

 

하나님은 본문 후반에서 당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간단히 가르쳤습니다.(24-26절) 당시 이방 족속의 우상 예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므로 이 또한 우상숭배 금지의 뜻입니다. 먼저 흙으로 쌓은 단 위에 동물 제물을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으로 단을 쌓는 것은 온 땅과 그 안에 생존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소유임을 증명합니다. 장엄한 형상과 엄숙한 절차 없이도 서 있는 자리 바로 그곳에서 당신께 진심을 바치며 경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24절)고 약속한 것입니다. 

 

번제를 드리는 것은 죽어 마땅한 자기 죄를 짐승 제물로 대속하여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절차입니다. 그 제사를 지냄으로써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주로 번제와 함께 드리는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감사하는 뜻도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화목을 도모하는 예배입니다. 

 

율법사가 모세 율법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 둘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의 헌법 격인 십계명도 그 두 가지 뜻뿐이며, 또 그것이 이스라엘의 제사 절차에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 충성하는 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정으로 다듬고 쪼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고 했는데 당신께 나올 때 인공적인 노력, 공적, 자격, 선행 등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지위 신분 재물 권력 등으로 하나님의 특혜나 편애를 받으려는 시도 기대 예상을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속내를 몰라서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진심을 스스로 당당하게 밝혀 보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층계로 제단에 오를 때는 하체가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명했습니다. 하체라는 히브리어 ‘에르와’는 벌거벗음이나 나체라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을 말합니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백성들의 죄를 중보 속죄하는 제사장의 담당인데, 그들이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대제사장이 입을 속옷과 겉옷에 대해서 자세히 규정해 주었습니다. 백성을 대표하고 대신하는 중보자는 흠이 없어야 하는데 인간은 아무도 그렇지 못하므로 정결한 의복으로 감추게 한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완전무결한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인류의 중보자 역할을 완성할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가나안은 물론 고대 세계의 모든 나라의 제사는 형식과 절차에만 치중했습니다. 그들의 우상 신들은 실존하지 않으니까 아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대결에서 보듯이 나라에 삼 년의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가장 필요할 때 아예 침묵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통해 자기들의 정서적 안정이라도 취하려고 가시적인 형상과 절차를 최대한 장엄하고 화려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지금 하나님은 당신을 섬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절차보다 제사에 담긴 당신의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제사를 비롯한 율법을 간단하게만 살펴봐도 인간이라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그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계시입니다. 대표적으로 주님이 십자가에 운명하자 대제사장이 대속죄일 일 년에 한 차례만 백성의 죄를 대속하러 들어가는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당신의 몸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면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이 의지해야 할 능력이요 위로라는 사실을 확증해 준 것입니다. 

 

최고 강력한 우상

 

인간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다시 강조하지만, 만물을 만들고 만사를 통치하는 하나님이 계셔도 눈에 보이지 않 데다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과 안전을 주지 않고, 나아가 그것을 이루는 방안과 지식과 정보도 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상 신들이 장소 시대 민족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까닭도 그때 그곳에서의 삶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자신과 가족이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큰 고통 없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겠다는 것 단 하나뿐입니다. 

 

현실의 안락한 삶을 소망하는 것이 절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소망을 인간이 스스로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또 이뤄보겠다고 전력을 매진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세상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 순종 헌신 의지하겠다는 믿음과 소망이 없거나, 그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첫 계명대로 하나님만 따르자니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싫으니까, 하나님을 대체하는 존재를 스스로 만든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제치고 그분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스스로 최고로 높아지려는 원죄에 묶여 있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추악한 증상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타락 이후의 인류 역사는 한마디로 온갖 종류의 우상을 숭배한 기록일 뿐입니다. 그중에서 지금도 또 앞으로도 가장 강력하고 끈질긴 하나님의 최고 대적은 바로 돈입니다. 돈만 많으면 얼마든지 평화롭고 풍요롭게 만족하며 살 것 같고 실제로 그런 큰 효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아프면 최고의 의사에게 찾아가면 되고, 먹고 마시고 입을 것도 최고급으로 갖춰서 남들 앞에 한껏 뽐내며 사는 재미가 최고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빠진 결정적 계기도 돈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부요하고 강력하니까 그들이 섬기는 신이 그들을 도와준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 제사의 화려한 절차에 눈이 쏠리고, 또 음주 가무와 성적으로 음란한 잔치가 이어지는 데에 혹한 탓도 아주 큽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여기에서 풍요 사치 안락 만족 쾌락을 추구하려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쫓아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율법대로 거룩하게 살라고만 요구하는 여호와는 가난하고 노쇠하고 고리타분한 도덕 선생쯤으로만 여긴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회개하고 율법대로 거룩하게 살라는 여호와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미워서 계속 죽여 버렸습니다. 

 

실제로 우상숭배가 가장 설쳤던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조가 현실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웠습니다. 그와 동시에 엘리야가 여호와의 종이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고 괴로워할 정도로 영적으로는 가장 피폐했습니다. 결국은 남북 왕국 둘 다 우상숭배로 심판을 받아 망했으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지금도 다윗 왕국 때처럼 현실적으로 번영시켜서 모든 나라 위에 자기들을 높여줄 메시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당신의 역사도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감사하게도 아니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신자의 바로 곁에서 이뤄지고 한 시도 당신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창조의 최종 목적이 인간이었고 그래서 영원토록 인간과 사랑으로 교제하길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마저도 여호와 선지자가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고 착각했어도 하나님은 따로 칠천 명을 숨겨 놓았지 않았습니까?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과 핍박이 너무 심해서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려 한 것입니다. 손과 발이 달리지 않은 네모 나무 상자에 불과한 언약궤 혼자서, 이스라엘과 가나안 모두가 잠든 사이에 가나안의 다곤 신상이 넘어져 팔과 목이 떨어져 나가도록 묵사발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삼상5:4) 

 

애굽의 열 재앙도 마지막 장자가 죽은 심판 빼고는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전혀 임하지 않게 은밀히 행했습니다. 안 보이는 데서 그렇게 행했다면 더더욱 그분의 권능과 은총을 더욱 확신하고 굳건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도, 이스라엘은 거꾸로 당장 내 눈앞에 형통과 번영을 가져다 놓으라고 떼만 썼습니다. 홍해의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고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물과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다시 애굽의 우상을 섬기려고 돌아가겠다고 불평 원망하는 자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을 믿음 없다고 탓해선 안 됩니다. 그들도 원죄 하의 죄인이긴 마찬가지였고 우리가 같은 처지였더라도 똑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죄 많은 그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 택해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되 그에 합하도록 훈련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결국은 그 소명을 실현하지 못할 줄도 아셨습니다.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으로 당신만 믿고 따르라고 했지만,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살살 건드리는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빠질 줄도 미리 아셨듯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미리 막아주지 않았던 이유는 인간을 짐승이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절대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태초부터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편안한 것을 좋아하기에 세상 물질, 특별히 돈에 목매달다가 처절한 실패를 겪어야만 십자가에 실현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죽음을 모르면 영생도 모릅니다. 하나님으로선 너무나 안타깝지만, 최초 인간부터 이 땅의 현실의 형통이 아무리 풍부해도 영원한 영적인 죽임을 당하면 훨씬 더 비참하고 쓰라리다고 절감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현대 신자의 우상

 

지금껏 구약 이스라엘을 탓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 주는 본보기로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구약시대가 인간 쪽에서 보면 우상숭배의 역사이지만, 하나님 쪽에서 보면 예수 십자가의 완전한 구원을 향해서 인도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만 높였던 원죄를 절대 스스로 씻어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온전히 보여 주고 또 실제로 십자가에서 그 원죄의 죗값을 갚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인간 최후의 대적인 죽음을 정복하는 본을 보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이 땅의 삶이 절대로 전부가 아니고 부활 영생이 더 귀중하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실제로 목격하게 해야 합니다. 그마저 온전히 믿지 못하므로 진리의 영인 성령을 보내어서 당신께서 구원해 주기로 기뻐하는 자들로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켜서 영원을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만 섬기며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신인류를 만드신 것입니다. 창조 때 당신께서 바라셨던 참인간의 형상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아브라함과 모세의 언약은, 그래서 구원의 방편은 당연히 아니며, 예수님의 십자가 언약의 예표로 주어진 것입니다. 바꿔 말해 비로소 예수 믿는 신자는 모든 불신자 앞에 복의 근원이자 제사장 나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물론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 임무에 성공했고, 십자가 복음이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 진리임을 자기 몸으로 특별히 주님처럼 핍박받고 죽음으로써 증명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며 얼마든지 그럴 수 있도록 성경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선언한 후에 인간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재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재물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는 첫 계명,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첫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자연히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섬기게 되는데 곧바로 재물의 노예로 묶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진짜 주인으로 모시는 자만이 재물에 구애받지 않으며 거꾸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자유롭게 자기 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한 자는 재물이 자기를 통치한 결과가 너무나 헛되다고 절감하고 대신에 하나님께 순종 헌신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관원이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명했으나 재산이 많아서 걱정하고 돌아갔습니다. 재산을 다 팔아서 구제해야만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재산과 주님 둘 중 마음의 중심이, 마음의 보물이 쏠리는 것 하나만 택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관원은 하나님 따르느니 자기 돈으로 편하게 떵떵거리며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구원을 얻는 일보다 재산 지키는 일이 더 중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관원의 그런 영적 상태를 훤히 아시고 성경 전체에서 오직 그에게만 그런 요구를 한 것입니다.(눅18:18-23) 반면에 베드로 같은 제자들은 재산을 그대로 둔 채 생업만 잠시 중단하고 주님을 따지 않았습니까? 

 

사람마다 현실 삶에서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들 있는데, 예컨대 건강, 미모, 학력, 재산, 명예, 권력, 가정 등입니다.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도덕적 종교적 성장마저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평생 그분을 따라서 살아가는 일보다 더 중요시해선 안 됩니다. 혹시라도 나는 하나님만 온전히 따랐고 우상숭배를 해본 적이 없다고 섣불리 자부하지 마십시오. 힘든 일이 생겨야만 기도한다면 엄밀히 말해서 현재 삶의 형통과 안락만 도모하려는 목적이지 않습니까? 고난에서 구해달라고 기도는 해야 하지만 자기 바라는 대로 응답해달라고 고집하면 그 응답과 또 그렇게 뜨겁게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 자체가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뜻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오직 그분의 거룩한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사랑의 품 안에 있고 영원히 그럴 것을 확신하기에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신자 본인은 미처 몰라도 하나님 대신에 혹은 더 우선해서 섬기는 우상이 어떤 형태라도 분명히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존조차 하지 않는 우상에게 눈곱만큼도 영향받지 않음에도 우상에게 질투한다고 선언합니다.(출20:5). 당신께서 모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인격적으로 교제하려고 만든 인간이 당신 대신에 심지어 인간보다 못한 피조물을 사랑하고 있기에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로부터 약 1500년 후에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의 대속 제물로 받음으로써 인간에게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신약 신자의 우상숭배를 그분은 더더욱 가증하게 여길 것입니다.

 

(6/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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