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창26:1-6)

 

신앙 업적이 없는 이삭

 

창세기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최초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되었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역사를 시작하셨다고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 사역을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간을 택하여서 당신에 대해 계시해 주고 그의 후손으로 당신을 섬기는 나라를 세우는 방식으로 실현해 나가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후반 12~50장은 그 나라를 세우는 최초의 주역들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손자 야곱, 증손자 요셉, 네 족장들의 믿음의 여정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이삭의 생애에 관해선 비교적 짧게 설명했고 그 내용도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던 측면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우상의 땅 갈대아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는 갈 바 모르면서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로는 생명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으나 믿음으로 순종했고 그 후로도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를 믿는 자답게 의연하고도 거룩하게 처신해서 자기와 여호와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생리적으로는 눈곱만큼의 가능성도 없었는데도 믿음으로 순종하여 외아들 이삭을 백 세에 얻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다운 성품을 지녔으며 충분한 공적을 쌓았습니다. 

 

야곱도 비록 아비 이삭에게 거짓말하여서 장자권을 차지했으나 형 에서로 인해 자기 가문의 여호와 신앙이 무너져 내릴 것을 막았습니다.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될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요셉도 청년 때는 자신의 교만 때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서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사십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자기 가문은 물론 애굽 백성 전체를 기근에서 구해주었습니다. 

 

반면에 이삭은 다른 세 족장과 비교해 내세울 만한 큰 업적이 없어 보입니다. 그의 생애에 드러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답을 알아보기 전에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절대적 원리 하나부터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그 의미와 가치의 우열(愚劣)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것도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그 경중(輕重)을 절대 평가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분의 일은 모두 다 크고 중요한 일이지 단 하나도 작고 사소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맡을 가장 합당한 자를 정해서 가장 합당한 시기와 방식으로 당신께서 주도해서 이끄십니다. 정확하게는 당신의 백성이 처한 시대적인 환경과 개인적인 여건에서 그에게 이미 주어 놓은 재능에 가장 합당한 일을 정해서 맡기고서, 그 일을 수행할 소망과 열정과 지혜와 능력까지 심어주십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당신의 완벽한 계획과 뜻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일을 감당하도록 당신의 완벽한 섭리로 주관해 주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이 하나하나 고유하고 유일하기에 서로 비교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영적인 교만입니다. 이삭의 일생도 하나님의 그런 원리대로 진행되었기에 그만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다른 족장들과 달랐던 점들을 찾아내면 그에 대해 품었던 의심과 궁금증이 해소될 것입니다. 

 

이삭의 다른 점

 

문제는 이삭의 생애가 아버지와 거의 같았지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이 말하듯이 큰 기근을 겪었고(1절과 창12:10), 아내를 누이라고 말해서 곤욕을 치렀고(7절과 창12:13, 20:2), 그런데도 그로 인해 오히려 번영을 누렸고(13~14절, 창 12:16), 땅을 두고서 주변 사람과 갈등을 일으켰고(20~21절 창13:7), 브엘세바에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26~33절, 창21:22-34) 등등, 아버지와 판박이 같은 일들을 거쳤기에 언뜻 이삭만의 특별한 점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6절)라는 마지막 말씀이 똑같이 큰 기근을 맞았어도 그가 아브라함과는 다르게 반응했다고 말해줍니다. 물론 그도 어쩔 수 없이 당장 기근을 피해 그랄 땅 아비멜렉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사라의 일로 인해 하나님이 아비멜렉 집안의 닫혔던 태를 열어주어서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자기 땅 아무 곳이든 마음에 드는 대로 거주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습니다.(창20장) 이삭은 그 약속을 믿고 아무래도 기근이 덜했거나, 그랄 왕인지라 양식이 풍부하리라 여기고 피난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삭더러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그 땅에 거류하라고 계시했습니다. 그러면 너와 함께해서 복을 주고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줄 것이라고 아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이삭이 기근이 덜하리라 기대했었으나 그 땅도 너무 힘들어서 애굽으로 넘어갈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지 않아도 너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고 이삭도 순순히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평생을 두고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순종했지만, 기근이 처음 닥쳤을 때 그가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이삭이 태어나기 전이지만 기근에서 아내와 종들을 구하려고 곡식이 많은 애굽으로 넘어간 것은 가장이자 남편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라는 언급이 없습니다. 

 

거기다 바로 앞 구절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옮겨 다니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9절)고 증언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기근이 오기도 전인데 애굽 땅 근처로 옮겨갔던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 족속이 그를 잘 수용해 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옮겨 다니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은연중에 떠나온 갈대아의 화려하고 풍족했던 도시 생활이 그리웠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하고 갈대아 이상의 최강국 애굽으로 가볼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 가나안에 아직은 온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 것은 사실처럼 보입니다.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기는 했지만, 이삭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가 없었는데도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분명한 지시가 한 번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를 때,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다시 다짐하셨고 그도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2:6~7) 그렇다면 남방으로 옮겨갈 이유가 없었으며 이삭처럼 기근 같은 어려움이 생겨도 그 땅에 계속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그는 이삭과 달리 스스로 애굽으로 넘어갔으며 결국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잠시 빼앗기는 곤욕을 치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의로운 간섭으로 전화위복이 되어 큰 재물을 얻고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 엄청난 실패의 경험을 겪은 후로는 비로소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제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악마 같은 아버지

 

이삭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랄 땅으로 피신했어도 사정이 만만하지 않아서 애굽에 관한 미련이 잠시 생겼을 것입니다. 그가 기도했는지 성경은 침묵하지만, 하나님이 애굽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명확히 지시했고 그 말씀에 온전히 따랐습니다. 이삭의 생애가 언뜻 평탄해 보이는 이유도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려깊게 행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번 기근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주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기도와 그의 충실한 종 엘리에셀의 수고로 얻게 된 아내 리브가와 순탄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쌍둥이 아들을 낳고는 큰 탈 없이 잘 지내다 지금 기근이 닥쳐서 그랄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했고 최고로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우리는 쉽게 간과해버립니다. 소년 시절에 엄청나게 큰 사건을 겪은 후로 일종의 영적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잊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모리아 산에 번제로 태울 나뭇단 위에 그를 묶어 올려놓고서 칼을 들고 죽이려 했던 일입니다. (창22장) 

 

이 사건에서 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에만 초점을 맞추지, 이삭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당시의 이삭의 처지가 되어서 그 순간을 머리에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하나뿐인 친아들을, 그것도 백 살에야 얻었는데 칼로 찔러 죽이려 하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직 어린 이삭에겐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어떤 공포보다 더 무서운 최고의 공포였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려고 삼 일간 함께 걸어가는 동안, 평소와 다른 아주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아무 말이 없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삭은 까닭 모르게 불안했을 것입니다. 거기다 아버지가 불과 칼은 들었으나 번제로 바칠 가축은 한 마리도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등에 지고 가던 이삭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창22:7) 아버지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어린 양을 친히 준비할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8절) 

 

이삭으로선 부모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았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어쩐지 목소리도 힘없게 들려서 아버지도 확신하지 못한다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급기야 아버지가 땔감 나무를 깔고서 자기를 묶어 그 위에 올렸습니다. 정작 칼로 죽인 후에 불에 태워서 바칠 제물이 바로 친아들인 자신이었습니다. 그때 칼을 든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결연했기에 그 순간만은 이삭의 눈에 죄송하게도 악마로 비추어졌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엄숙하고도 제사 절차에 맞게 일을 진행했습니다. 어린 이삭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는 이삭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아버지의 정신이 바로 돌아오도록 해서 이 흉악한 짓을 당장 그만두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실은 그렇게 자세히 기도할 정신조차 없어서 “하나님 제발 나를 살려 달라”고 계속 외쳤을 것입니다. 

 

이삭의 굳건한 믿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는 몰라도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불현듯 하늘에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주위를 살펴보니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캄캄한 흑암으로 싸여있던 이삭의 심령에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는 계시였으나, 이삭에겐 제발 살려만 달라고 외쳤던 자기만 아는 그 절규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제물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할 것이라고 말해 놓고도 실제로 이삭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실상 아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여도 하나님이 되살려 주거나 다른 아들을 대신 주시리라고는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되었는데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이삭을 제물로 받을 생각은 없었고 아브라함의 인생 말년에 그의 믿음이 온전히 성숙해졌는지 시험해 볼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테스트에 통과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칼을 들었을 때 정작 아들보다 더 괴로웠을 아브라함에게도 너무나 큰 위로와 평안이 임하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도 더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의 모든 사정과 속마음을 아셨고 이삭이 속으로 내뱉은 한마디 절규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외아들을 죽이는 인생 최대의 비극이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최고의 찬양 잔치로 바뀌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고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삭은 아버지로부터 당신의 인생에 섭리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역사와 은혜를 다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렸어도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난 이삭인지라 어쩌면 아브라함보다 더 굳건한 믿음이 단번에 생겼을 것입니다. 그동안 건성으로 들어왔던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주신 약속도 반드시 그분이 이루시리라는 확신도 생겼을 것입니다. 

 

비록 한동안은 아버지가 칼로 내리치려던 그 장면이 꿈에 나타나는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겠다는 확고한 믿음은 더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완전한 실패로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는 진리가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첫 믿음의 체험이 너무나 강력했기에 평생 흔들릴 수 없는 믿음으로 단번에 월반한 셈입니다. 하나님께 자기 전부를 바치면서 절규하여 죽음에서 되살아난 체험을 한 이삭에게 기근 정도는 아무 고난이 될 수 없었기에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그 땅에 거하라는 명령에 주저없이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 이삭에게 하나님은 심술궂게도 그 후로도 아버지와 똑같은 시련들을 허락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짧은 이유도 아브라함과 동일한 체험을 동일한 믿음으로 잘 대처했기에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도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행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며 그 시련들을 순탄하게 이겨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행히 아내에게 특별한 일이 생기기 전에 누이라고 속인 거짓말이 탄로났고, 아비멜렉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해명했더니 오히려 그의 보호를 받았습니다.(7-11절) 하나님이 그 땅에 남으면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강조하는 뜻으로 과장한 표현이긴 해도, 백 배의 엄청난 복을 부어주었습니다. 이삭이 너무 창성해지니 아비멜렉이 그 땅에서 떠나가라고 요구할 정도였습니다.(12-16절) 그렇게 옮긴 땅에서 판 우물로 그곳 주민과 다툼이 나자 이삭은 순순히 양보하고 브엘세바까지 옮겨갔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이삭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 먼저 찾아와서 너에게 여호와가 함께하는 줄 확인했으니까 아버지 때처럼 서로 화친하는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습니다.(17-33절) 말하자면 이삭이 가진 믿음의 고유한 특징은 모리아 산에서 생긴 첫 믿음을 평생을 두고 일관되게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희생과 기도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땅에 남으면 책임져 준다는 약속에서 놓쳐선 안 되는 흥미로운 언급이 하나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5절)고 말합니다. 그 명령은 이삭이 책임지고 순종해야 하는데도 아브라함이 순종하고 당신의 법도를 지켰기에 이삭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연좌제처럼 아버지가 구원받으면 아들도 구원받고, 아버지가 심판받으면 아들도 심판받는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서 그 은혜를 직접 누리는 수혜자는 사실상 아브라함보다는 그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그 언약 이행의 당사자로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이삭을 반드시 보호해 주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크게 실패한 경험 이후로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믿음이 성숙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백 세에 얻어서 자기 생명보다 더 아끼는 이삭을 주저없이 바쳐 마지막 믿음의 테스트도 통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그 온전한 순종을 보고서 이삭을 인도 보호해 주셨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당신의 테스트를 통과했는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에게 어려서부터 여호와 신앙을 교육하면서 자기 삶으로 본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도저히 가질 수 없었던 아들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받았으니 여느 부모와는 그 사정이 확연히 다릅니다. 거기다 힘센 베두인의 족장이 된 배다른 형 이스마엘이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이삭을 시기하여 살해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마지막 눈 감을 때까지 이삭의 일생이 하나님 언약 안에만 거하도록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성경 최초의 모태 신앙인 셈입니다. 믿는 집에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 부모의 도고 기도와 삶의 본이 그의 존재와 삶에 완전히 녹아들었습니다. 어떤 성경 인물도 겪지 못한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려는 엄청난 일을 통해서 오히려 믿음이 더 온전해졌습니다. 그런 믿음 위에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무엇보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보태져서 그의 평생은 큰 어려움 없이 평안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모태 신앙 신자들이 극적인 영적 체험이 없어서 자기 믿음이 뜨겁지 않고 미지근하다고 여깁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이 야단친 라오디게아 교인이 자기가 아닌지 의심 불안해합니다. 정말로 십자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면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극적인 체험이란 대체로 엄청나고도 오랜 고난에서 구원받는 일인데 굳이 그렇게 고생해서 더 뜨겁게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 그런 고난이 닥친다고 미리 알면 도망가기 바쁜 것이 인간입니다. 이삭처럼 부모가 먼저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 자식을 위해서 눈물 어린 기도를 해주었기에 그 삶이 평안해진 것입니다. 모태신앙인 자들은 자기 존재와 일생에 녹아들어 있는 부모의 믿음에 오히려 감사하며 자기도 자식에게 그런 순전한 믿음을 물려주어야만 합니다. 

 

물론 부모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이삭이 평안한 삶을 보낼 수 있었던 첫째 요소는 어쨌든 자신의 굳건한 믿음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번제 제물로 바쳐지려 했던 체험이 그의 인생을 주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리아 산이 바로 신약의 골고다 언덕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이삭의 믿음이 단번에 형성되었던 모리아 산 사건은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구원에 대한 가장 생생한 예표였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이 태초부터 준비해 놓으신 인간의 죗값을 대신 갚을 제물이었습니다.(요1:1) 주님의 그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말하자면 이삭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 드라마에서 모리아 산이라는 무대에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또 그래서 반드시 예수님은 이삭의 후예로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으로 아브라함을 세운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님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완전히 성취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약속을 수행할 당사자라곤 지금 이삭 혼자뿐인데 그가 다치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도 무산됩니다. 어폐가 있지만 이삭이 아무리 큰 잘못을 범했어도 하나님은 그를 반드시 평안하게 보호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 땅을 주신다는 아브라함과 맺은 여호와 언약이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해 실현됩니다. 이삭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든 간에 그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되는 아들들의 아버지인 야곱이 쌍둥이 형 에서를 대신해 장자권을 차지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이삭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고유의 큰일에 충실히 헌신했습니다. 

 

이삭처럼 살려면?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따라서 각기 달라지지만, 이삭처럼 순전한 믿음으로 비교적 평안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만 온전히 믿고 범사에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온갖 문제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이삭처럼 평생에 걸친 부모의 간절한 기도도 절실합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런 부모가 있을 수 없고 또 다들 연약한 체질인지라 반드시 교회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도와야 합니다. 

 

어쨌든 결국은 이삭처럼 본인의 굳건한 믿음이 우선입니다. 본문은 그 믿음의 진짜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는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3절)는 말씀에 순종하여서 그 약속대로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껏 순종했다고 설명드린 것을 되풀이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류’하라고 명했고, 그는 실제로 ‘거류’했던 것입니다.

 

거류(去留)의 히브리어 ‘구르’는 “다른 목적으로 숙박하다” 또는 “손님으로 머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우거(寓居)라고도 번역하고, 영어로는 ‘sojourn’으로 번역합니다. 그 땅에 살긴 살되 소유권이 없어서 주인이 아니라 단지 객으로 머물되 반드시 다른 목적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공수표였다는 뜻이 아니라, 장차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세워지기 전까지는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그런 뜻을 알았기에 다툼이 생길 때마다 우물을 양보하고 또 양보한 것입니다. 다시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이 소유권도 없는 이삭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 쪽의 직무 유기입니다. 

 

그런데 장차 야곱의 열두 아들에 의해 가나안에 세워질 당신의 나라도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결국은 실패합니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혼합 종교로 타락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평안했던 이삭의 삶과 달리 주변 국가와 끊임없는 분쟁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습니다. 이 땅은 죄로 찌든지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을 받은 신자가 세울 세상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사랑의 공동체에 의해서만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도 자기를 높이려는 죄의 본성이 평생토록 조금씩 남아있기에 그 나라가 부분적으로 성취되다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더더욱 그때까지 이 땅의 소유권은 없으며 영주할 권리만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주변을 거룩하게 다스릴 통치권은 세상 권력자가 아니라 신자가 가졌습니다. 이 땅이 전부라고, 특별히 자기의 것이라고 믿고서 돈을 주인으로 삼아서 물질적 풍요만 추구하는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는 자입니다. 이 땅은 단지 잠시 머무는 곳이며 신자의 영원한 본향은 하늘이며 시민권은 하늘의 생명책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가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은 해도 만약 그 목적이 이 땅에서의 형통과 안락이라면 이삭 같은 복을 절대 받지 못합니다. 자신은 천국을 걸어가는 길손일 뿐이라고 확신하는 신자만이 이 땅에 다른 미련이 없으므로 그분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땅의 것들을 소유하려고 들지 말고 잠시 거류만 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런 믿음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모태신앙이던 자기가 처음으로 믿던. 하나님 쪽에서 그 믿음이 완전히 한 단계 대폭 상승하여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그런 사건이나 계기를 만들어주십니다. 대체로 큰 고난의 모습이지만 그것을 통과한 후로는 범사에 순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종착지를 오직 천국으로 삼고서 이웃에게 최대한 양보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려는 소망과 능력이 생전 처음으로 생기게 됩니다. 

 

정말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기 주인을 돈에서 예수님으로 완전히 바꾸었다면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그런 후에도 여전히 연약하고 이 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때로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일관된 방향과 삶의 방식은 오직 천국 지향적이지 좌우로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을 거역하면 죽음이라고 절감했듯이, 신자가 그분께 순종하지 않으면 곧바로 그 삶이 고달파지고 영혼의 평안도 절대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신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신자더러 예수님이 걸어갔던 그 거룩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소유하려는 신자를 그대로 둘 리도 없고 그전에 그런 자에게 주인으로 임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이삭에게서 배워서 따라야 할 바라고 성경은 짧지만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10/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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