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사도행전 10장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고린도 전서 14장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2장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ㅡ> 방언의 은사
오늘날 방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방언 기도를 한다고 하지
방언을 말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순절 방언의 은사는 방언을 말함
그리고 그 이후에 방언 은사도
방언을 말한다고 하는데
방언을 말함과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어떤 의미이며
오늘날 방언으로 말함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복잡하게 따질 것 없습니다. 당연히 둘 다 같은 의미입니다. 둘이 다른 의미라면 고린도전서 13-14장에서 방언의 종류가 둘이라고 설명했어야 합니다. 한 가지 현상을 두고 강조하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방언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방언하는 외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며,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방언의 내용이 통변을 해보니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외국어 방언을 할 때 그 지역의 사람은 그 내용을 다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행2:5-13) 틀림없이 복음을 선포하면서 전도하려는 권면에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성경도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은 기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을 처음으로 보니까 일상 용어가 아닌 방언으로 말한다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연극의 대사에서 대화, 독백, 방백 식으로 나뉘듯이 말입니다.)
오늘날 방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1) 이미 중지되었다, 2) 아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두 가지 의견으로 양분됩니다. 저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성경문답에서 방언에 관해 네 번이나 다뤘습니다. 검색해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