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 아닌 다른 곳에 헌금하면 안 되나요?

조회 수 919 추천 수 44 2009.10.30 00: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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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 아닌 다른 곳에 헌금하면 안 되나요?


[질문]


저희 교회 목사님은 "권위""질서""리더에게 절대복종" 이런 것을 철저하게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의 집회를 가는 것도, 심지어 신앙서적 하나를 읽어도, 금식기도를 해도 뭐든지 리더와 상의 하에 해야 하고 안 그러면 어디가 다치던지 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개입하고 건드리신다는 거죠.

오늘 어떤 얘기 중에 교회 이외의 구제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그것도 리더와 상의 없이 했다간, 물론,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쓰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에 간섭하신다는군요. 저는 대답은 안하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무엇이 궁금하여 물어만 보아도 "거역"하는 거라고 하도 그러셔서 이젠 묻기도 겁이 납니다) 하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실 정도로 은밀히 하라고 하셨는데, 마음에 감동이 와서 다른 곳에 물질로 후원을 했다한들 그게 뭐 잘못한 것일까,,,하구요..

물론, 본교회에 십일조와 주일 헌금 같은 기본적인 것은 하고 있지만요, 교회의 재정이라는 것이 그렇잖습니까,,항상 부족한 것,,,그런 상태에서 교회에 내지 않고 다른 곳에 헌금이나 후원을 했다고 하시고, 그걸 옳지 않은 거라 하시니,,좀 그렇네요.. 사실, 많은 교회가  자기네 교회에 물질을 많이 바치길 원하고 또 재정적으로도 계속 그렇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따지면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후원 외엔 목사님들이 허락을 안 하신다면 개인적인 후원은 하나도 못하는 건 아닌가요?

[답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자주 접하면서도 해답을 갖지 못하는 사항을 질문해 주셨습니다.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두 가지 사항을 확실히 해두고자 합니다.

우선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반드시 확신하고 따라야 할 절대적 진리 혹은 계명이 있는 반면에 신자의 임의에 맡겨져 있어서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문제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쉬운 예로 십자가 복음의 진리는 확신해야 하며 안식일 즉 주일 성수의 계명은 위급한 사항이 생기지 않는 한에는 필히 준행해야 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신자가 그 신앙 고백과 헌신의 예식으로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든 이마에 물 뿌림만 하는 세례를 취하든 상관없습니다.  

또 그런 임의적 계명의 경우에는 성경에 명료한 기술(記述)이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성경이 그것과 또 관련된 분야에 대해서 일관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원리에 따라 임의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제기하신 문제가 바로 성경에 명시적 기술이 없으면서 신자의 임의적 판단에 맡겨진 사항입니다. 따라서 제가 드리는 답변은 오직 질문자님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성경적 원론에 관한 것일 뿐으로 정작 정답은 본인이 내리서야 합니다. 또 어떤 답을 내리시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금의 성경적 원리

신구약 성경 곳곳에 헌금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일일이 다 살펴 볼 수 없기에 대략적으로 개괄하면 주로 구약성경은 헌금을 하는 목적에 대해, 신약성경은 헌금하는 자세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헌금(당시는 성전세를 빼고는 헌물로 드렸음)의 목적은 크게 보아 속죄, 화목, 서원, 구제, 레위지파인 제사장의 생계비 목적으로 했습니다. 헌물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있지만 성전제사 제도가 없어진 오늘 날에는 해당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에 구현되어 있는 성경적 원리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되신 하나님에게 바치는 헌물이므로 당연히 거룩하게 구별된 제물의 종류를 거룩하게 구별된 절차에 따라 드리되 그 이전에 믿음과 마음자세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신약성경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뿐 아니라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고백하며 삶과 인생이 물질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증표로 드려야 합니다. 당연히 자발적으로 기쁘게 드리되 분수에 넘치지는 않지만 제일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드린 것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보상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거나, 자신의 의를 자랑하거나, 단지 종교적 의무감으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극한 가난 가운데도 예루살렘 교회의 기근을 돕기 위하여 풍성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회의 예가 헌금의 좋은 본이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8:6-8) 바울은 이어서 극한 가난 가운데도 풍성하게 헌금한 사정을 잘 알기에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고 디도에게 권했다고 밝혔습니다. 결단코 헌금 운용을 원래 목적대로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헌금이란 구체적으로 명령할 문제가 아니라 단지 너희 사랑이 진실 됨을 증명키 위해서 각자 임의로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8:9-15)

처음에 헌금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생겨서 드리고 또 그 헌금이 쓰이는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에 예수님의 은혜가 넘쳐야 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부담을 주거나 더 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평균하게 할 목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 전체의 덕을 세우고 헌금을 통해 성도들에게 영적 유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헌금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아야 합니다. 헌금 액수만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나 마음 자세 또 헌금을 거두고 사용하는 방식 등에서 성경적 원리가 합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되 일반 상식이나 예의를 반(反)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받은 식양대로 성막과 그 기구들을 제작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 준 모본이 바로 그랬습니다.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 오는 고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 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36:2-7) 성경은 백성들이 마음에 원하여 아침마다 너무 많이 가져와 모세가 더 이상 갖고 오지 말라고 중지했음에도 하고자 하는 일에 넉넉했다고 증언하지 않습니까?

이미 질문자님께서도 잘 아시는 내용을 다시 살펴보는 이유는 헌금을 무조건 많이 해야 좋다고, 그래서 특별한 목적도 없이 교회 안에 돈을 쌓아두는 것은 성경적으로 권하는 사항이 아님을 확인코자 한 뜻입니다. 물론 분명한 목적이 있고 또 그대로 정확하게 운용이 된다면 부족하지 않게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헌금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액수나 드리는 방식이 아니라 믿음과 기쁨과 감사가 동반된 자발적 헌금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바울이 말한 대로 명령이 아니므로 신자의 임의적 판단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구제 원칙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2-4)

예수님께서 구제할 때의 신자가 지켜야 할 원리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초점이 남이 알지 못하게 은밀하게 하라는 것에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사실은 완전하지 않는 해석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 하는 바리새인들의 구제와는 달라야 한다는 뜻이므로 남들 모르게 하라는 일차적 의미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 의미로 그칠 것 같으면 예수님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합니다. 오른손이나 왼손은 모두 본인에게 달린 것입니다. 자기도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남을 도와 줄 때에 단순히 봉투에 자기 이름을 적느냐 적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칫 나는 익명으로 헌금했지만 하나님은 은밀히 보고 계시리라 기대하거나,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의롭기 때문에 한다면 그것 또한 진정한 의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전자는 아주 교묘한 기복신앙이며 후자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일 수 있습니다.

비록 비유적인 표현이긴 해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른다는 것은 하루 중에 오른손과 왼손이 각각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지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구제가 완전히 몸에 밴 습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남을 도와주고선 구태여 보상을 바라지 않거나 은밀히 하라고 했으니까 익명으로 도와주고는 일부러 그 일을 잊어버리려 하는 차원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어떤 동기가 되었든, 비록 선한 목적이긴 해도, 도와 준 일을 자꾸 상기하게 되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라도 연약하고 죄 많은 심령인지라 쓴 뿌리 내지 욕심이 자기도 모르게 생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도와준 일이 전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구제가 일상의 삶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쌀이 떨어지면 집에 있는 것 조금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갖다 주고, 친구가 생활비가 없어 쩔쩔매면 지갑을 그냥 털어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들 전부가 결코 자기의 것이 아니며 죽을 때는 빈손으로 본향으로 돌아가기에 물질에 구애 받지 않는 자라야, 즉 헌금 할 때의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과 같이, 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이 은밀히 갚는다고 했습니다. 자기조차 구제한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지만, 아니 아예 처음부터 기억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만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짜 동기를 그 심령까지 꿰뚫어 아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익명, 내지 무기명으로 헌금한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는 구제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제와 헌금은 다른 것입니다. 구제의 목적으로 헌금을 할 수 있지만 헌금이 다 구제 목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표현을 달리하면 구제는 주로 개인적으로 은밀히, 상기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일상적인 생활로, 행해져야 하지만 헌금은 주로 공식적으로 교회라는 조직체에 드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구제와 헌금을 하는 방식에도 그런 차이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구태여 이런 구분을 하는 이유는 질문하신 의도를 더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가난한 목회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면 수시로 지갑을 털어 현금으로 그냥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과장해 비유하자면 길가다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과 성격이 같습니다. 이는 구제로 구태여 담임 목사나 교회가 관여할 문제가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대면해서 드리기 때문에 따로 은밀하게 이름을 감추고 할 필요도 없고 또 어떤 방식으로 하든 성경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문제로 삼는 것은 일반구호단체에 성금을 보내거나 섬기는 교회가 아닌 다른 기독교 기관이나 개인에게 구제 혹은 여타 목적으로 헌금을 보낼 때입니다. 문제가 되는 까닭은 주로 송금을 하거나 수표를 발행해 우송을 해야 하므로 그 성격이 일상적 구제가 아니라 공식적인 헌금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헌금이 되면 섬기는 교회에 일차적으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와 상충될 소지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출석 교회와 헌금

상기의 기초적인 원리를 갖고서 질문하신 주제에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신자는 무엇보다도 현재 섬기는 교회에 일차적으로 십일조와 주일헌금을 성실하게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서 다른 곳에 먼저 드리는 것은 성경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로 구원해 줄 때에 반드시 공동체로 함께 모여 당신의 사역을 감당하라는 목적이었습니다. 혼자서 독단적으로 신앙생활이나 구제를 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하는 자체로 바리새인처럼 자기 이름부터 드러내는 셈이 되어버립니다. 본질문도 질문자께서 섬기는 교회에 충성되게 드린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주신 것이지 않습니까?

그럼 다음으로 살펴 볼 것은 교회나 담임 목사 쪽의 사정입니다. 우선 교회는 헌금을 반드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용해야 합니다. 목회자나 당회원 개인의 임의와 편리에 따른 독단적인 사용은 절대 배제되어야 하며, 엄격한 예결산 관리에 의해 집행하되, 교인들 모두에게 최소한 일 년에 한 차례 예결산 보고를 공식절차를 통해 공지해야 합니다. 자금 운용은 절대로 개인이 아닌 조직체 명의로 하되 그 세부 집행 절차가 법규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개척하는 미자립 교회는 현실적 사정상 어쩔 수 없다고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두 명 이상 모여서 교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반 법인체처럼 교회의 정관과 시행세칙부터, 최소한의 자금 관리 원칙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돈 관리만큼은 분명해야 하는데 성도의 땀과 눈물이 배인 헌금은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예결산이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반드시 자금 운용 목표와 용도가 미리부터 분명하게 확정되어 있어야 하며 자금의 규모도 그것에 넘치거나 모자라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헌금 원칙은 없습니다. 교회 내부에 과도하게 쌓아둘 필요나, 여유 자금으로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지 물질을 동원해 행사나 사업을 행하는 곳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헌금이 많이 들어와 예산보다 여유가 많이 생기게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이런 경우도 사전에 대비해 자금 운용 원칙을 전교인들의 합의하에 공적으로 세워두어야 합니다.  교회건물 신축 혹은 증축, 선교 구제, 교육이든 교인들이 미리 합의해 정관에 명시한 목적대로 그 여유 자금이 투명하고도 공정하게 운용된다면 문제 될 것 하나 없지 않겠습니까? 설립 초기부터 헌금의 반은 무조건 지역사회를 위해서 쓴다고 원칙을 정한 어떤 미국교회가 크게 부흥 된 예도 있습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가, 대형교회는 교구나 심방 담당 사역자가 역할을 나눠질 수 있지만, 신자의 헌금을 개별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있습니다. 우선 현재 그 신자의 현실적 영적 형편을 가름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믿음이 좋고 적게 하면 나쁘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평소에 잘 하던 헌금이 갑자기 뚝 떨어지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생겼거나 영적인 후퇴가 온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 현실로는 오히려 더 풍성해졌는데도 그렇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세상 재미에 빠져 있다는 표시입니다.

나아가 외부로 보내는 헌금에 대해서도 가능한 담임 목사나 영적 지도자가 알기를 원하는 것은 꼭 그것을 금지하자는 뜻이 아니라 혹시라도 이단 종파나 개인에게 헌금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정기적으로 외부에 헌금하는 경우는 헌금 자체, 즉 돈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염려하기보다는 외부 사역에 신경을 쓰다보면 본교회 사역과 봉사에 아무래도 등한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목사가 성도 개인의 헌금 상태를 알아야 할 필요성은 분명 있지만 극히 조심해야 할 측면도 있습니다. 아무리 통이 크고 돈 관리에 청렴해도 목사도 인간인지라 본교회 대신 외부에 헌금하는 것을 알게 되면 섭섭한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또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다고 많이 헌금하는 신자에게 정이 더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개별적 헌금 상황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도 대화와 심방과 상담에 충실하여 현실적 영적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또 그런 면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목사의 성도 개인적 헌금 확인도 꼭 해야 한다거나 해선 안 된다고 말할 절대적 규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헌금은 절대적으로 성도 개인의 자의에 맡겨진 문제로 당연히 진정한 감사와 믿음이 함께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담임 목사나 교회 관리자층에서 영적 돌봄의 차원이 아니라 순전히 통제하려 들거나 또는 본교회의 헌금 증대만 목적으로 강요하기 위해서 보고 내지 상의하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나아가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그러나 헌금을 자기기 속한 공동체에 먼저 성실하게 해야 하고 또 그 지도자에게 자신의 모든 문제를 상의해야 하는 것은 옳으며 신자가 따라야 할 원칙입니다. 단 외부 헌금을 상의하는 문제는 본교회와 담임목사의 재정관리가 절대로 투명공정하며 또한 헌금에 대한 열린 마음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본교회 재정이 불투명하거나 공정치 못하거나, 사실 그 정도라면 이미 그 교회에 계속 출석해애 하는지부터 문제가 되겠지만, 목사가 전혀 열린 마음이 아니라면 구태여 상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지적한 바대로 돈에 연관되어 상당히 예민한 문제이므로, 최선의 방안은 외부에 대한 개인적 헌금도 가능한 본교회에 그 용도를 지정해서 한 연후에 본교회 명의로 지정된 자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본교회와 상의하고 지도도 받으면서, 원래 원하던 곳에 소정한 액수 그대로 전해지면서, 또 누가 헌금했는지 모르게 은밀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것입니다. 단 신자 개인, 교회 지도층 특별히 재정 담당자와 담임 목사가 이 방식을 수용 가능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잡음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그냥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문제에 관해 한국 교회와 교인들이 참조할만한 미국 남침례교단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개별교회는 교육, 구제, 선교, 심지어 목회자의 은퇴 대비까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교단에 자발적으로 협력기금을 냅니다. 금액에 최저나 최대한도가 없습니다. 교회가 내고 싶은 만큼 냅니다. 대개는 최하 10% 이상을 내는데 반 이상 내는 곳도 많습니다. 교단은 전국적으로 그 돈을 모아 선교사 훈련 파송, 교육자료 개발, 외부 구제, 나아가 미자립 개척교회 지원, 교회건축비 대출, 목회자 연금이나 의료보험 펀드로 활용합니다.

물론 모든 재정 관리가 투명하고 공정하기에 개별 교회가 자기들 헌금이 타 용도로 오용 내지 남용될 소지는 아예 없다고 전적으로 신뢰하여 마음 놓고 50% 이상도 쾌척합니다. 그 결과 즉, 교단이 다 알아서 대신 해줄 것이기 때문에, 중소형 규모의 개별 교회에선 자체적으로 선교사 파송, 외부 구제 등에 경비나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기 교인들의 영적인 지도와 지역 사회 전도에만 힘을 쏟으면 됩니다. 당연히 개별적으로 외부에 헌금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해서 따로 의논할 필요도 사실상 없습니다.

자금 미국 교회들이 초교파 대형화 되는 추세이기에 교단과 개별 교회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이상적인 재정관리 방식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한국인들이 공과 사의 구분을 잘 못하는 데다, 개별교회 재정도 투명 공정하게 관리하기 힘들기에 교단에 재정의 상당부분을 위임하는 이런 방식은 시기상조이자 아마도 영영 불가능한 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헌금과 교회를 치리하는 원리로는 본받을만한 귀감이 됩니다.

결론을 간단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나 목사님의 재정관리가 투명하고 전체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 사심(邪心, 私心)이, 자기교회의 절대적 우선주의를 포함해, 없다면 먼저 상의를 드리고 교회 명의로 외부로 헌금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만약 조금이라도 잡음이 날 소지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하셔도 됩니다. 단 헌금을 포함해 본교회에 일차적으로 충성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8/1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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