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순서에 대해

조회 수 4789 추천 수 21 2011.05.26 05: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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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순서에 대해


[질문]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면서 무심코 지나간 것이 예배순서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 주보순서에 따르면 송영 / 기원 / 찬송 / 교독문 / 대표기도 / 찬송 / 성경봉독 / 찬양 / 설교말씀 / 찬송 / 봉헌기도 / 찬송(주기도문) / 축도를 끝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성경에서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순서를 어찌 정하고 있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예배순서에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이 만약 없다면 그 예배는 옳은 예배인지, 예배에서 정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예배순서가 성경에 정해진 대로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교단 측에서 법으로 정해진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은 예배의 순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또 예배에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옳은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둘의 포함 여부가 예배의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꼭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더 불합리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예배 순서들도 교단 측에서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교단의 전통과 신앙노선에 따라 모범적 순서는 권장하기에 소속교회들은 큰 틀에서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초교파 독립교회는 담임목사가 교회와 의논하여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예배 절차들을 무작정 임의로 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제정한 순서들이 있었고 교회사적으로 많은 수정과 발전을 거치며. 현대에 이른 것입니다. 현재는 수많은 교파와 개별교회들로 분화되었기에 그 절차는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비록 특정한 예배 순서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떤 순서로 예배 드려야 한다는 성경적 원리는 분명 있습니다. 개혁자들도 이전부터 내려오던 로마 교회의 예배 순서를 참조하되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원리에 맞추도록 수정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원리라고 해도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명시적 구체적 규정이 아닙니다. 대신에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고유 성격에 따라 예배 절차가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본질부터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예배 절차를 정한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알 것은 주일날 교회에서 드려지는 공적 예배 즉, 각종 의식이 순서에 따라 시행되어지는 그 자체가 예배의 본질이 아닙니다. 예배는 한 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그분께만 모든 가치와 의미를 돌리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worth(가치) + ship(관계를 나타내는 접미어)이 합쳐서 worship이 된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예를 갖추어 절한다는 예배(禮拜)보다 존경함으로 절한다는 경배(敬拜)가 더 적합한 용어입니다. 그러나 둘 다 절을 한다는 의미 때문에 자연히 형식적 측면에 관심이 모이게 됩니다. 예배의 의미만은 간단하고도 정확한 영어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분께만 가치를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 외에 예배드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나 사물이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인간의 경배 대상이 될 수는 절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 대신에 다른 대상을 경배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십계명이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숭배나, 유교의 조상제사나, 온갖 잡신들을 모시는 행위(점쟁이, 새벽마다 천지신명께 비는 것 같은) 등이 당사자들로선 상당한 신심(信心 혹은 神意識)을 갖고 아무리 엄숙하고 경건한 절차에 따라 행해져도 결코 예배가 아닙니다. 인간끼리는 사랑과 섬김과 존경은 할 수 있어도 경배는 할 수 없습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인간은 오직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 한분께만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 순서나 형식보다 예배드리는 대상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배를 따져볼 때에 거의 모든 신자들이 모르고 있는 너무나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생긴 후에 예배를 제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배가 먼저 있고 기독교는 나중에 생긴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예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거나, 교회에서 가르치니까 당연히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론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 한분만 경배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한분인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여러 신들께 예배드리면 안 되는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물론 오늘날의 신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서 압니다만, 최초로 예배드리고 그런 사실을 성경에 기록한 자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 예배를 드렸고 또 그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까?

그 답은 물론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그 계시를 인간이 온전히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은 바로 그분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 만난 자가 그 만남에 대해 취하는 반응입니다.

불신자는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지만 신자는 휴가철이든, 신나는 운동경기가 있든 교회로 모입니다. 신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 같습니까? 이 또한 아닙니다. 신자란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믿음이 없어 예배를 안 드린다기보다는 하나님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신자는 하나님을 실제로 인격적으로 만났으니까 교회에서 강요하거나, 신자로서의 의무이기 이전에 자발적으로 기꺼이 예배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실체와 직접 마주치게 되면 한 가지 반응 밖에 나타내지 못할 것입니다. 당장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것 말입니다. 그분의 엄청난 위엄과 거룩함에 압도되어서 오로지 당신의 긍휼만 바라지 않겠습니까? 구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고 믿은 것이 빈 말이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거룩하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직접 만날 때 연약하고 불완전한 피조물로서의 인간에게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바로 기독교보다 예배가 먼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기독교가(교단들이) 정한 순서보다는 하나님을 만난 자의 반응이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의 순서이자. 성경적 예배 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입히신 가죽 옷.  

최초로 하나님을 만난 아담의 첫 반응은 완전한 안식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한 후에 심히 좋게 여기셨고 그 다음 날을 안식일로 제정했습니다. 최초 인간이 그분과 대면하면서 맞은 지구상의 첫날은 바로 그분 품안에서의 안식 그 자체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해 심히 좋게 지어진 여건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선악과 금령에 순종함으로써 그분과의 교제와 동행을 풍성하게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오시는 각 생물을 일컫는 이름을 지음으로써 낙원의 청지기 역할도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돕는 배필인 이브와 맺어주자 진정으로 감사와 찬양을 그분께 돌려드렸고, 아내와도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아름답게 사랑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예배의 본질인데 그분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만족, 안식, 행복, 기쁨, 자유, 평강 등을 오직 그분 안에서만 찾는 것입니다. 마땅히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그분께만 세세토록 올려 드리게 됩니다. 모든 가치를 그분께만 찾고 또 그분께만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가 그 화목했던 관계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보이는 반응도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을 만나기가 두려워 피해서 숨어 다니기 바빴고, 부부 사이도 서로 감추고 속이며 상대만 탓하는 부끄러운 관계로 돌변했습니다. 당연히 죄의 당사자인 부부와 사단은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그 벌은 동시에 인간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기 바빴어도 하나님은 그런 상태의 인간을 두고 볼 수는 도무지 없었습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게 지어서 이 땅을 당신 대신에 다스리게 할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되어 사단에게 계속 농간 당하게 버려두어선 창조의 의미가 없어지고 당신의 영광도 가리는 것입니다.

사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사단은 언젠가 여자의 후손이 와서 그 머리를 상하게 하도록 했습니다.(창3:15) 또 아담과 이브는 당신께서 짐승을 잡아 가죽 옷을 입힘으로써 그 죄를 사해주었습니다.(창3:21) 원죄 이후의 인간들과 당신의 교제는 오직 피 흘림의 제사를 통해서만 회복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인간을 죽일 수는 없기에 사단의 머리를 밟을 여자의 후손이 오기까지는 동물에게 죄를 전가하여 대신 죽이는 제도를 .제정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그 복잡한 제사의 종류와 순서는 죄에 찌든 인간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야만 하나님을 만나고 화목케 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예표합니다.

때가 차서 당신의 독생자가 골고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해 매년 드리던 동물 제사 제도는 종식되었고 예배의 원리도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의로운 권세를 믿는 자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 전적으로 부패했던 옛 사람이 십자가 권세로 죽어 없어진 대신에 주님의 부활 생명을 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난 자라면 말입니다.

그럼 예수님 이후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이 신자에게 바라는 예배의 방식이 어떠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죄를 씻고 하나님과 화해부터 해야만 합니다. 또 날마다 그분의 십자가를 지며 그분 가시는 길을 따라 가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복음으로 넉넉히 승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로마서는 11장까지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12장부터 복음을 삶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시킬지를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고 합니다. 또 그것이 영적 예배인데 현실의 삶에서 불신자들과는 다르게 살라고 합니다. 복음 안에 들어온(하나님을 만난) 자가 복음대로 살라는 것(그분께 보일 수밖에 없는 반응)입니다.

신자와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면전(面前)에서 평생토록 그분 자녀답게 사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침 삼키는 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분이 나를 계속 주시, 보호, 인도하고 있음을 알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마음에 합하여 그분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일생의 삶 전체가 바로 거룩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의 순서

신자는 일주일 중 하루를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과만 온전히 교제하며 안식해야 합니다.  구약 제사가 십자가 죽음으로 대체됨으로써 그 날은 안식일(토요일)에서 주의 날(일요일)로 바뀌었습니다. 또 그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당신이 정하신 한 장소에서, 구약에선 성전 신약에선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대로 단순히 종교적 의무나 의식으로서 드려져선 안 됩니다. 예배의 핵심적 요소가 그분과의 만남과 신자의 반응, 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배 순서에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절차가 없다면 아무리 다른 순서가 엄숙하고 경건해도 올바른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신자들은 공동체로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또 공동체로서 십자가를 통해 그분께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그 만남과 반응도 각기 두 절차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만남은 만나기 위한 준비와 실제적인 만남으로,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반응과 그에 따른 인간에 대한 반응이 그것입니다. 모든 세부 순서마다 이런 의미가 있음을 신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고 예배 중에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회중이 그분과의 만남에 기꺼이 참여하여야 하고 예배 중은 물론 실제 삶에서도 그 만남에 대한 반응을 온전히 내보일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예배절차들을 상기의 네 의미에 따라 살펴보도록 합시다.   물론 다른 주제에 따라 순서를 다르게 나눌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소원하며 나아가면, 하나님이 응답하여 은혜를 내려 주시고, 그 응답에 대한 인간의 감사가 따라야 한다는 주제로 배열 될 수 있습니다. 또 아래 순서들이 다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 개별 교회의 사정에 적합한 절차를 정할 수 있으되 네 나눔의 의미와 원리가 숙지되고 그에 따라 진행되기만 하면 됩니다.  

1. 하나님과 만남

1-1 만나기 위한 준비;

개회기도

- 하나님이 더욱 충만하게 임재해 주시고, 예배를 받아 주시고, 신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합당하게 겸손하고 거룩한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함

개회찬송

-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송하고 경배함, 회중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깨닫고 그분께 경건하게 나아가겠다는 다짐임, (이 둘은 순서가 바뀌어도 되고 찬양 중에 기도할 수도 있음)

회중들의 회개기도(예배를 위한 기도)

- 지난 주간의 죄를 통회자백하며 예배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충만히 임하여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온전히 소생하고 그 교통이 더욱 풍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함,

- 최근에는 개회찬송이나 회중들의 회개기도 등이 없이 곧바로 여러 곡의 찬양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찬양 중에도 회중의 회개와 예배를 위한 기도로 이끌어야 함, 어쨌든 설교 전의 찬양은 주로 하나님만을 높이고 십자가 은혜를 감사하는 내용이어야 함,    

성시교독 혹은 사도신경 고백

-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믿음을 다시 점검하며 고백하는 절차, 그러나 사도신경을 믿음 없는 자들마저 형식적으로 주문처럼 외우는 것을 방지하고 또 구체적으로 따지면 일부 신학적인 문제점도 있기에 외우지 않는 교회(대표적으로 침례교)도 많음.,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다고 예배가 잘못되거나 이단으로 몰 수 없음,  

대표기도

- 모든 성도를 대표하여 예배에 은혜가 넘치도록 기도함, 교회에 긴급하고 중요한 사태가 있지 않다면 전적으로 예배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음,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성경대로 온전히 증거되고 그에 올바르게 반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함.

1-2 하나님과 만남;

성경봉독

- 설교 본문을 따로 혹은 설교 중에 낭독함, 어떤 주제로 설교가 진행될지 본문을 미리 숙지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묵상해야 함.  

설교

- 회중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풀어서 받는 것임,  따라서 예배의 초점은 설교에 모이고 또 모든 예배 절차가 그날 설교한 주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함, 설교를 통해 청중에게(처음 나온 불신자나 기존의 신자 모두에게) 참된 복음의 은혜와 권세가 작동하여서 그 영혼이 깨끗케 되고 또 실제 삶에 반영되어져야 함, 도덕적 종교적 감화 훈육이 설교의 목표가 아님,

- 매번 예수님과 십자가의 죽음의 설교를 하라는 뜻은 아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구주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을 완성시킨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맥락과 진리에서 성경이 증거 되어지고 선포되어져야 한다는 것임, 요컨대 신자가 들려진 말씀 안에서 삼위 하나님을 만나고 더 깊이 알아가고 그에 따른 자발적 반응이 따를 수 있어야 함,  

-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이 꼭 설교를 통해서만 일어나고 그에 대한 반응도 설교 후에만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님, 사람에 따라 기도, 찬양, 봉헌, 신앙고백 어떤 순서에도 그분과의 만남과 반응이 단번에 혹은 교차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 그럼에도 말씀을 통해 더 깊고 풍성한 만남과 반응이 일어난다는 뜻임.

2.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반응

2.1. 하나님에 대한 반응

설교에 맞추 찬송 / 헌신 기도 / 특송:

- 설교 내용과 걸맞은 회중 찬송이나 특송으로 설교를 통해 은혜 받아 일어났던 영적 감동을 찬양과 기도를 통해 표현함, 새롭고도 더 깊이 알고 만나게 된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께 순종 헌신하기로 확인함, 또 그런 내용으로 설교자와 회중이 함께 기도할 수 있음,

헌금과 봉헌기도

-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난 자는 마땅히 모든 가치를 그분께만 돌려야 함, 아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야 함,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를 그분께 내어드려야 함, 헌금은 지난 한 주간 먹고 살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나 하나님께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는 차원으로 그치지 아니함,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것을 상징함, 돈이 자기 주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임, 같은 맥락에서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는 천국이 이 땅에 확장시키는 용도로만 헌금이 사용되어지기를 기도해야 함.

2.2. 인간에 대한 반응

교회소식

- 주로 교회 행사 안내로만 그치고 신자들도 대충 그렇게만 이해하는데 사실은 공동체를 섬기며 사랑하기 위한 시간임, 하나님을 만나 그분을 사랑하게 된 자는 당연히 이웃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반응으로 나타나게 됨, 광고 시간에 교인들 중에 일어난 경조사에 대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야 함, 또 오늘날 구역예배를 격려하고 초대교회에선 애찬(愛餐- 식사교제)도 예배 순서에 들어간 이유임,

주기도문

-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에 자기부터 동참하며 또 이웃의 죄를 용서하며 사랑하겠다는 소망으로 기도해야 함, 이 기도 또한 예배의 필수적 의식이 아님, 형식적으로 암기하는 방식이라면 생략하는 편이 오히려 나음, 주님 나라 확장에 전적으로 헌신 실천하겠다는 진심어린 간구가 되어야 함,

마치는 찬송과 축도

- 예배 중에 받은(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은혜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그분과 이웃과 세상에 대한 헌신의 결단을 새롭게 함, 마지막 축도도 예배드린 신자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정도를 넘어서,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진군하는 십자가 군병들을 격려 고무하는 기도여야 함.


결론적으로,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선 전통, 의식, 순서 등을 중시했던 형식적 예배는 중지되고 신령과 진정으로만 드리는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형식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근거한 하나님과의 실제적 만남과 그에 대한 온당한 반응으로 이끌 수 있는 형식은, 신자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상징과 예표의 역할로 그칠 수 있다 해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예배 중에 신자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시며, 신비하시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분이심을 새삼 혹은 더 깊게 깨닫게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엄청난 사랑이, 너무나 공평한 공의와 함께 설교를 통해 신자들 머리는 물론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분을 만난 감격으로 저절로 경배와 찬양이 터져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으로 만족하며 온전히 순종, 헌신하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따르면서 말입니다. 당연히 세상에서 아무리 낮아져도 하나님 한분으로 충족할 수 있는 삶과 인생으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말하자면 아담이 타락하기 전 낙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손잡고 살던 관계가 회복되거나, 최소한 그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영적 재무장을 이루는 것이 예배가 달성해야 할 목표입니다. 예배 의식 이전에 회중들이 신령하고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현실의 삶에서도 예수만 주로 모시고 복음에 따라 사는 모습이 세상과 죄악과 사단 앞에 분명히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12:7)

5/2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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