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9 - 아담은 동성애자(?)였다.

조회 수 669 추천 수 14 2009.08.18 22:07:00
아담은 동성애자(?)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들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아담이 독처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간혹 기독교를 반박하는 측에서 심지어 일부 자유주의 신학에서 하나님이 남자만으로 단성생식(單性生殖)을 이어가게 했거나, 아담이 양성을 다 가진 존재였거나, 심지어 아담을 동물과 짝을 이루어 후손을 이어가게 하려 했다가 계획을 바꾼 양 말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우선적인 근거는 18절에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을....지으시고”라는 본문이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그 돕는 배필이 최초에는 동물이었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다시 이브를 창조했으니까 원래의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미리 예단(豫斷)된 선입관을 갖고 있거나 스스로 가정한 학설을 주장하려는 생각이 앞서면 성경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합리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만 따로 떼어서 강조합니다. 즉 그들은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각종 들짐승을 지으시고”라는 세 구절에만, 그것도 문자적 의미로만 집착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맞으려면 무엇보다도 아담에 대한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기록도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주장에 의하면 아담은 틀림없이 단성생식, 양성보유, 수간(獸姦)생식 셋 중의 하나로 만들어졌는데 어느 날 여자가 나타났다고 갑자기 그 본성을 스스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들이 어떻게 주장합니까? 동성애 성향은 타고난 것이므로 죄가 아니며 비난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동성애도 스스로 변경할 수 없다면 그보다 더한 이 세 천성(天性)은 더더욱 스스로 수정이 안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담을 먼저 바꾸어 놓지 않은 상태로 이브만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직무유기를 한 셈입니다. 나아가 이 땅에 아주 이상한 성향의 남녀의 조합을 만들어 놓은 꼴입니다. 상기의 세 가지 성적인 특성을 지닌 남자와 또 반드시 남자와만 결혼관계를 맺어야 할 여성을 말입니다. 아니면 심지어 여자마저 위의 세 특성을 가진 자로 만들었든지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가설 내지 선입관을 주장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을 전체 문맥이 아닌 일부 구절의 문자적 의미만 고집스럽게 주장합니다. 그들이 기독교 보수주의자더러 성경을 문자 그대로만 믿는 골통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더 문자적 해석에만 집착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주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성경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만 해석합니다.    

세 가지 가설 중에 그나마 합리적인 경우는 최초의 남자는 여전히 양성보유자이고 최초의 여자는 순수 여성 혹은 양성보유라고 보는 경우입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초기의 남자는 여자든 남자든 골라가며 결혼 내지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여자는 남자에게만 혹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 중에 내키는 대로 결혼할 수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다른 말로 인류는 애당초 프리섹스 그것도 한 개인(남녀 불문)이 남성과 여성을 마음대로 오가며 그러는 사회로, 심지어 결혼도 그렇게 하는 사회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자유주의 신학은 가르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그런 사실을 전혀 입증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 정상적인 남녀의 결혼관계로 출발하고 이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순전히 힘에 의해 여자를 탈취하거나 여럿을 두었던 적(창4:19-24)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생리적 구조가 남녀의 성(性)을 넘나들 수 있도록 되었던 적도 또 그렇게 살았던 적도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도 성적 죄악이 절정에 이르렀던 것이지 인간의 생리구조 자체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자유주의자와 인본주의자들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선입관과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 아니거나 없다는 가설을 옹호하기 위해 그와 연결되어 해석이 가능할 만한 구절만 골라서 인용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배경에 자기들이 동성애를 즐기고 있거나, 최소한 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하나님조차 제한을 두어선 안 된다는 확고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은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름이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특성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것입니다. 한 존재를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입니다. 또 한 존재의 특성이 분명히 구별되어 드러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존재하게 된(창조되어진) 목적과 기능에 합당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여 이 땅에 두신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당신 대신에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당신의 뜻에 맞게 거룩하게 다스리는 것입니다.(1:26-28) 아담이 이름을 바로 붙였다는 것은 각 피조물을 각각의 창조 목적에 합당하게 다스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동물을 아담의 돕는 배필로 만들어 주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이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아담에게 이끌어 왔다는 기록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당신의 뜻을 잘 수행하는지 보려고 한 것일 뿐입니다. 성경은 그 뒷부분에 분명히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그 이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생명 전부 즉 식물에도 이름을 붙였다는 뜻입니다. 그들 주장이 맞으려면 식물도 아담의 돕는 배필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이 식물을 생식의 상대로 취할 수는 아예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아담더러 돕는 배필을 동물에서 하나 고르라고 데려다 주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입니다. 이 또한 인간이 동물을 보호하여야 하고 심지어 신성시하여야 한다는 자기들 주장에 억지로 갖다 꿰맞춘 궤변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동물 보호 사상은 성경의 문화명령(1:28)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개인적 국가적 탐욕에 빠져 그대로 못한 것이었지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완전하고 거룩했습니다.  

그런데 20절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부분이 나옵니다.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2:20) 한 절에 기록된지라 연결된 뜻으로, 즉 마치 아담이 모든 짐승을 다 살펴보았지만 자기 짝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니까 하나님이 할 수 없어서 다시 이브를 만들었다고 해석합니다.  

성경의 장절은 후대 사람이 편의에 따라 붙인 것으로 원전에는 없으며 간혹 본문처럼 잘못 구분된 곳도 있습니다. 장절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됩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는 구절은 사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브의 창조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동식물에 이름 붙인 것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 뜻에 따라 피조물들을 아름답게 다스리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지 아담의 짝짓기가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 그들 주장대로 정말 하나님이 아담을 동물과 짝짓도록 만들었다면 반드시 그의 마음에 드는 동물이 몇 종류는 있었어야 합니다.  

대신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그런데 이 말씀은 이 땅을 당신의 뜻대로 다스리라는 문화명령들(26,28절)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땅을 다스리는 역할을 감당할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해 계획했었습니다.  

말하자면 남자의 돕는 배필을 순수한 여자로 만드는 것이 창조의 오리지널 청사진 속에 있었던 것이지 따로 급조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 주장대로 여성이 긴급수정계획의 일환으로 동물의 대타로 지어졌다면 여성의 존엄성을 극도로 비하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부터 서로 돕는 배필로 예정되어 있었고 각기 구별되고 독립된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일 뿐입니다. 둘 사이에 우열, 주종, 상하 관계는 전혀 없습니다. 서로 역할과 특성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남녀는 연합의 관계로만 맺어질 따름이며 그것이 바로 결혼입니다.

영어 man이 인간과 남자라는 두 가지 뜻이 있듯이 아담도 인간 전체(mankind)를 지칭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성경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말한 것은. 인간은 원래 만들어질 때부터 혼자서는 제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서로 돕고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만 참 인간다워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을 남성으로 해석을 해도 이 땅을 아름답게 다스리는 일에 남자와 여자기 힘을 합치라는 뜻입니다. 결혼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는 것이 기본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수단입니다. 나아가 그 아름다운 가정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면 이 땅 전체도 자연적으로 거룩해집니다.

반면에 아담이 단성생식, 양성보유, 심지어 수간생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가정은 어떤 모습이 되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혼에 정상적인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의 결합이라는 순수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이혼에 어떤 도덕적 제약도 따르지 않습니다. 오직 남자의 기분과 욕망에 따라 무슨 짓을 해도 됩니다. 여성을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것이 남성우월 사상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독립된 창조라는 성경고유의 개념을 부인하면 남성이 포악한 독재자가 되어도 무관하게 됩니다.  

지금 성경을 어떻게 잘 해석하느냐는 방법상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참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강조하다보면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동기에서 출발했어도 이처럼 어이없는, 아니 오히려 죄악을 동조 내지 선동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자연보호나 여성평등 사상을 강조하려다 인간을 동물과 수간하는 존재로 또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열등한 존재로 스스로 비하시키고 말았지 않습니까?

모든 선하고 의로운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을 부인하면 필연적으로 악하고 추한 결과를 낳고 최소한 선하고 의로운 것이 굽었거나 부족하게 됩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고유의 특성을 가진 구별된 존재인지라 함께 보완하고 도우며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요컨대 남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면 자연히 악하고 모순되고 부족할 뿐입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 즉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똑 같은 결과를 나을 뿐입니다.

10/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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