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3,4 온전한 믿음의 기도

조회 수 536 추천 수 13 2009.09.08 23:22:39
온전한 믿음의 기도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3,4)


기근을 피하고자 궁여지책으로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은 아내를 팔아먹는 너무나 치사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그 결말은 아내에게 아무 피해가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육축과 은금이 더 풍부해져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 있든, 나아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복을 주시는 것입니까?

아브람은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려 직접 택하신 당시로선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실패하면 하나님도 실패하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이 실패할 자를 택할 리가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 그의 일생을 주관하셔서 당신의 방식과 일정대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신자의 삶과 인생의 모든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눈에 안 보이는 영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현실적 영역에선 신자의 선택과 반응에 따라 사태의 진전이 결정되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신자의 선택과 반응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계획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신자의 선택과 반응여하에 따라 그분의 비가시적 간섭이 가시적 영역에 미치는 파장이 달라질 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가시적 차원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믿기에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도 육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물, 권력, 실력, 가문, 건강, 외모 등을 착실히 갈고 닦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로선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생각 아니 상상으로도 도무지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수단인 기도와 말씀에 전혀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간섭이 자기들 삶과 인생에 흘러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이 신자에게도 적용됩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단지 하나님이 택하여 당신의 사랑 가운데 품고 있기 때문에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신자에게만 아브람 같은 복이 임합니다. 치사하게 마누라를 팔아먹는 죄를 범해도 벌을 받기는커녕 더 큰 축복이 임하는 그런 복 말입니다.

그럼 믿음의 기도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에 관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응답을 잘 받을 수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응답이 잘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소원하는 것은 응답된 결과뿐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기도한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란 한 마디로 응답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응답에 신경을 쓰면 제사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 받으려 드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응답될 수 있다고 확신하거나 미리 응답될 것을 믿고 감사하는 식으로 드리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고  또 미리 그에 대해 감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신자라면 반드시 그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신자라고 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가 되었든 자기 기도한대로 응답받는 쪽에 우선적인 혹은 더 중요한 관심이 쏠려 있다면 믿음의 기도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기도하려면 언제 어디서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가 소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기도해도 됩니다. 아니 소원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근사하게 하려거나 응답을 빨리 잘 받으려는 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드리는 각각의 개별적 기도(행위)보다는 자신부터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맞추려 구태여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또 기도하기 전부터 그것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을 만큼 신령한 신자도 없습니다. 그분의 뜻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이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과 사건을 비롯해 되어져 가는 여건을 통해서 또 말씀과 묵상을 통해서 성령이 당신의 뜻을 계시해 줍니다.

기도란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이 자기의 삶과 인생에 더 많이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을 비워드리는 싸움입니다. 자아를 부수고 또 부수어 낮아짐으로써 그분의 권능과 은총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활짝 열어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신이 간구한대로 응답되도록 노력하는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뜻대로 기도는 하되 그 뜻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나가는 작업입니다. 언제든 뜻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오히려 자신의 뜻은 무엇이든지 들고 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결국 믿음의 기도란 특정한 방식의 기도라기보다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드리는 모든 기도를 뜻합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심지어 생명의 위험이 발생해도 하나님의 품 안에만 거하기를 소원하면서 자신에게 당신 뜻대로 간섭해달라는 항복 선언이 기도입니다. 아브람의 경우 기근이 오기 전에 아이와 벧엘 사이에서 단을 쌓고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갈 바 모르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가겠다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아브람은 당시로선 온전한 믿음의 기도를 드렸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방 신을 믿는 자들도 기도했지만 그들은 응답에만, 그것도 자기 뜻대로 이뤄지는 데만 신경 썼습니다. 반면에 그는 비록 세상에서 잘못 판단하고 때로 죄를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당신의 신령한 영향력이 자신의 삶과 인생을 좌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한 치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아무 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복을 받고 온 이유도 단지 그가 기도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처음 단을 쌓은 곳에 돌아와서도 틀림없이 동일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자신을 전부 비워드리면서 주님의 인도를 바라는 기도를 쉬지 말고 드리면, 즉 항상 자기 인생의 키를 주님께 맡기면, 비록 자신이 잘못 판단하고 심지어 죄를 지어도 반드시 하나님이 되돌리시고 때로는 더 큰 은혜로 함께 해주십니다. 기도를 잘하려 하기보다는 먼저 항상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자신을 온전히 비워드리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말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신자라면 무엇이든 자기 소원하는 바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뜻과 계획을 구태여 버릴 필요 없습니다. 간구한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거나 확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그분의 간섭이 흘러들어오길 간절히 소원하여 오히려 자기 뜻과 계획은 언제든 수정 포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당신은 응답 잘 받는 기도와  온전한 믿음의 기도 둘 중에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다른 말로 각각의 개별적 기도에 집중합니까? 그보다는 항상 기도하는 자가 먼저 되어 있습니까?

12/2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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