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4:23,24 믿음을 키우려 들지 말라.

조회 수 673 추천 수 18 2009.09.08 23:28:48
믿음을 키우려 들지 말라.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창14:23,24)


사해 북부 네 왕의 연합군이 소돔 동맹군과의 전쟁에 이겨 많은 재물을 약탈했고 롯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아브람이 가솔을 동원해 그들을 기습하여 조카 롯을 비롯해 약탈당한 수많은 재물과 포로를 탈환해 왔습니다. 그래서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포로만 돌려주고 재물은 다 가지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그 거절한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소돔 왕이 자기가 재물을 주어서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고 엉뚱한 말을 할까봐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감사해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생색낼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무례한 대답 아닙니까? 정 그런 점이 마음에 걸리면 정중히 거절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남에게 수고를 끼친 자라면 소요된 경비 외에도 호의의 선물을 해야 하고 또 수고한 자는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에 악의적인 숨은 동기가 없다면 얼마든지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죄악의 땅인 소돔 왕의 선물이라 거절했으리라 판단하는 것은 너무 도덕적 관점에 치우친 해석입니다. 그는 애굽에선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바로가 주는 선물을 염치없이(?) 다 받아 챙겼지 않습니까? 지금은 정말 자기 생명마저 걸고 의로운 일을 했으니 선물을 받아도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소유를 아주 정당하게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아무런 미련과 주저함 없이 외면했습니다.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확신하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 살렘 왕에게는 오히려 탈취한 재물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엄격히 따지면 그 재물의 소유권은 사해 동맹군에게 속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들에게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곧바로 살렘 왕에게 바쳤습니다.  

어쩌면 아브람이 소돔 왕으로부터 자기 수고의 몫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고 또 당시 관례로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자기 공적과 노력으로 이겼다고 보지 않고 전적인 하나님의 간섭이었으므로 자기 몫의 보상 전부를 하나님께 돌렸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에게 자기 몫의 전부를 이미 바쳤기에 만약 소돔 왕의 선물 제의를 받아들이면 그야말로 왕이 나중에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떠벌려도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지도자 특별히 목회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으로 흔히들 돈, 여자, 말 셋을 꼽습니다. 그렇다고  목회자는 무조건 돈과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을 도로 다 바칠 필요도 없습니다. 목회자도 하나님이 현실적 복을 주시면 얼마든지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비유컨대 아브람은 타 교회 집회의 강사로 수고한 목사가 사례비를 거절하거나 받자마자 바로 그 교회에 헌금한 셈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아서 그렇다고 판단해선 안 됩니다. 그럼 사례비를 받아간 목사는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일방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브람이 이 전쟁에 나섰던 근본 목적은 오직 하나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14절)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선 롯이 구출된 지금에 와선 따로 더 바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삼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했는데 보상을 받을, 그것도 자기와 전혀 무관한 소돔 왕의 선물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순수한 동기를 끝까지 유지하면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목회자는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평생의 소명이자 인생의 목적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 동기가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 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돈과 여자와 쓸 데 없는 말들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목회자가 그 셋으로 인해 스캔들에 휩쓸리는 근본 이유는 처음 주님을 따라 나섰을 때의 목적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집회 사례비를 사양하는 목사님도 복음만 증거하겠다는 뜻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개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혹시라도 자신의 능력과 자질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말하자면 자기가 일을 크게 이루었기에 보상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면 돈에 눈이 멀게 됩니다. 하나님 일의 보상은 오직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직접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라면 얼마든지 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 말고 다른 보상을 그것도 인간으로부터 기대한다면 열심히 증거했던 복음을 훼손시킬 뿐입니다.

목회자를 비롯해 모든 신자는 자신의 소명을 평생 동안 변함없이 일관되게 붙들어야 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맡겨 주신 직책이 얼마나 막중한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소명이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을 통해 구현되어지는 일에만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자 베드로가 나서서 그럴 수 없다고 말렸습니다. 스승의 죽음을 막겠다고 자청했으니 얼마나 의리 있고 선한 행동이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라고 야단쳤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성육신적 소명이자 목표였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그 처음 뜻을 잊거나 변경시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사단이라고 야단친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처음 예수를 믿어 구원 받았을 때의 그 순수했던 하나님에 대한 감사, 사랑, 경배, 헌신을 끝까지 그 상태로 유지해 가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믿음을 키우기 보다는 오히려 줄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다른 말로 자꾸만 믿음의 동기와 목적을 변질시키려드는 자신의 죄성과 욕심을 죽이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따르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재물의 시험과 유혹에 약하십니까? 주님을 잘 따르려는 믿음을 크게 키우려 하기보다는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주님을 따르는 동기가 과연 무엇인지부터 새로이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초지일관 그 목적과 동기를 붙드십시오. 그럼 재물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믿음의 싸움에서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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