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5:20,21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있는가?(3)

조회 수 544 추천 수 15 2009.10.26 00: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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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 충성하고 있는가?(3)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기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25:20,21)


인간은 얼마나 게으른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저 하는 일 없이 놀고먹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데도 하지 않는, 아니 해보지도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그것을 전부 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핑계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사랑도 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서, 한 가지 일을 돌보는 것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무엇인가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작은 일 하나부터 일단 시작하고 보아야 합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밀물로 떠밀려온 불가사리가 햇볕에 말라가자 한 노인이 하나씩 집어서 바다로 던져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 청년이 “여기에 수백 마리가 넘는 불가사리가 있는데 당신이 그런다고 무슨 큰 차이가 있겠소?”라고 빈정거렸습니다. 노인이 “바로 이것에게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법이네”라고 대답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노인으로선 수백 마리를 다 살려주는 큰일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나는 그 한 마리에겐 생명이 오고가는 너무나 아니 제일 큰일이 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닮아 남을 돕고 싶은 애끓는 심정을 갖고 있어도 모두를 다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보다는 한 명을 도와주는 것이 낫습니다.

다 도와줄 수 없으니, 끝까지 책임질 수 없으니 차라리 안 도와주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형편만 생각한 것에 불과합니다. 상대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도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해 종일을 굶어야 했던 노숙자에게 단돈 천원은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따뜻한 호빵에 우유 한 잔이라도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만은 세상의 어떤 최고급 호텔의 뷔페 식사보다 더 맛있고 풍성한 식탁이 될 수 있습니다.  

현세대의 가장 큰 문제를 사랑이 실종된 무관심이라고들 말합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Life Style이 삼시 세끼만 채워도 행복했던 시절과는 달라졌습니다. 사람마다 반드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들이 먹고 마시고 자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너무나 다양해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두 개 도와주어 보아야 실제로 별다른 도움이 안 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모든 사람이 내가 사랑을 다 할 수 없으니 아예 아무에게도 사랑을 베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혀 서로 돌보지 않는 무관심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무언(無言)중에 모두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며 살기로 약정을 맺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도 냉철해진 개인들이 따로따로 모인 곳입니다. 아예 공동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바로 지금의 세상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반면에 모든 사람이 나는 다 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사랑만이라도 베풀겠다고 하는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작은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여지는 아름답고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진정한 공동체가 됩니다.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이뤄내어야 할 사회가 아닙니까?

이처럼 한 공동체가 극과 극의 반대가 될 만큼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구성원들의  품성이나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게으름과 게으르지 않는 것의 아주 단순한 차이뿐입니다. 그것도 자기 주위에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사랑 하나라도 실천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쉬운 예로 제가 이민 와서 처음 10년간을 살았던 곳이 몰몬교도들의 천국으로 거의 백인들만 모여 사는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였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이단이지만 그들에게는 항상 “Thank you"와 "Excuse Me"가 완전히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고서 말입니다. 이국땅에서 이단들에 둘려 싸여 살았지만 불편하거나 기분 나쁘다는 심정을 거의 못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곳 LA에서의 사정은 판이합니다. 백인들은 조금 덜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주쳐도 얼굴이 잔뜩 궂어진 채 "하이”도 잘 하지 않습니다. 괜히 불안하고 저까지 상이 궂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아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 한 이후로 그 품성이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거듭난 신자라도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모두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회복은 안 되었지만 조금은 회복되었습니다. 완전하게 사랑은 못해도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조금은 할 수 있는 사랑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게으르지 않는 것이자 충성된 것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신자에게 다 순교 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게으르지 말라고만 하십니다.    

하나님이 신자로 거듭날 때에 그 사랑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 자체에 확대재생산 되는 능력이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베풀기 시작하면 그 감화력과 영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일로 변합니다. 그래서 신자더러 아주 작은 사랑부터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인간에게 완전한 사랑을 회복시켜 주면 또 다시 교만의 극치에 올라 하나님을 외면할 것을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는 사랑은 하나님 당신의 고유의 품성이지 인간 본연의 품성이 아닙니다. 인간은 단지 그분이 베푸시는 사랑의 영역 안에서 그분이 이끄는 대로 그분의 사랑을 갖고 그분이 지정한 일과 사람에 전해주는 배달꾼의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도 배달꾼 노릇이 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부립니다. 배달꾼으로는 마음에 안 차고 자기가 직접 큰일을 해보고 싶은 뿌리 깊은 원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재능을 아무리 다섯 달란트만큼 많이 갖고 있어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나눠준 것입니다. 그분의 뜻과 방법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일단 사용만 하면 그분이 알아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게으르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게으름과 성실함의 차이도 개인의 품성과 능력의 차이에서 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열매를 맺고 자기가 따 먹을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릴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공로와 명예와 이득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일을 게을리 할 바보는 없습니다. 반면에 전혀 그렇지 않는데도 열심을 내는 바보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아주 작은 일부터 자기가 이미 받은 재능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는 일을 일단 시작부터 해야 합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오직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공로나 명예나 보상이 따라 오지 않아도 해야 됩니다.

물론 그 일과 그 사람을 신자 자신이 끝까지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만 믿고 주님의 사랑으로 하는 일에는 주님의 권능과 감화력이 반드시 따라 옵니다. 당장 눈에는 안 보이지만 엄청나게 큰일이 배후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혹시 게으름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충성하고 있습니까? 또 다시 얼마나 종교적인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지를 가지고 제발 판단하지 마십시오. 신자의 게으름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맡길 믿음이 모자라니까 선뜻 맡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걱정과 염려가 앞서며 또 혼자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아 지금 당장 반드시 해야 할 아주 작은 일도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니까 힘든 것뿐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보다는 단 한 명이라도 도와주는 것이 낫다고 확신하는 것이 충성의 시작입니다. 자기 재능으로는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라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부터 시작하면 아주 크게 충성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끝까지 책임져 주고 모든 사람을 돌보실 이는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왜 아직도 게으름에 빠져 있습니까?

10/2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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