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43,44 세상과 구별되어 있는가?

조회 수 641 추천 수 13 2009.10.25 21: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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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구별되어 있는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5:43,44)


신자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죄악과 흑암의 세력을 멀리해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5:22) 그러나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고전5:10) 그럼에도 간혹 신자들 중에는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사람을 만나면 마치 징그러운 송충이라도 본 양 치를 떨고 상종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자가 세상 사람과 분리되어야 하는 이유가 그들이 더럽고 추하며 우리는 고상하고 착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신자보다 훨씬 더 의롭고 선한 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의를 실현하는 목적과 내용이 신자와 다릅니다. 역으로 말하면 신자가 의를 지키고 선을 행할 때에는 세상 사람과 다른 목적과 내용으로 해야만 세상과 분리되는 것의 바른 의미라는 뜻이 됩니다. 단지 겉으로 악을 멀리하여 나쁜 짓만 하지 않았다고 신자로서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선을 실현하는 것은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 공동체의  존속과 유익만을 목표로 합니다. 한 마디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구태여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할 동기는 없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번영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의는 자기의 잘난 것을 증명하는 것에 그칩니다. 물론 그들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보면 진정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어 성심껏 도와줍니다. 그 동기가 불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항상 자기가 손해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혹은 상대가 나아지는 정도 즉 자신에게 보답하는 것에 비례해서 의를 베풀 뿐입니다. 말하자면 여유 있는 자가 자기의 남는 여유로 가난한 자의 부족분만 채워주는 것입니다.

물론 드물기는 하지만 자기 가진 것을 다 바쳐서, 심지어 생명마저 희생하여 남을 돕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엄밀히 따져 자기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그러지 못한 자를 돕는 것입니다. 요컨대 아무리 겉으로 정의롭고 선해 보여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베푸는 자가 가진 것과 인간적 의의 한도 내에서만 이뤄질 뿐입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동일해 신자들마저 인간적 의와 하나님의 의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신자의 경우는 다릅니다. 신자 개인의 자기 증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만이 선행을 포함하여 모든 행동의 동기와 목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는 힘과 여유와 심지어 마음의 소원조차도 하나님이 심어줍니다. 그래서 여유 있는 자가 여유 없는 자를 도우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오히려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는 죽고 남이 살아나는 모습으로 열매 맺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남을 도울 수 있는 형편과 처지가 아닌데도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남아도는 자를 위로하고 힘을 주며 종국에는 변화까지 시킵니다. 심지어 도덕적,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선 사기꾼 죄인으로 찍힌 자가 아주 인격이 고상하며 경건한 자에게 도전을 주고 은혜를 끼칩니다. 기도도 잘 못하고 성경 구절 하나 못 외우는 초신자가 교회를 수십 년 다닌 장로, 목사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를 깨우쳐 줍니다. 의의 출발에서부터 열매를 맺을 때까지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실 뿐 아니라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세상에서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동일하게 선하고 거룩해보여도 불신자와 신자는 그 근본 생각과 가치관 자체가 다릅니다. 삶과 인생의 목표가 다르며 그에 따라 오는 생활 방식마저도 정반대입니다. 그 둘은 융화, 조정, 타협될 성질이 아닙니다.  출발점이 서로 반대쪽에 위치해 다른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항상 충돌이 있을 뿐이지 동행과 화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참 신자라면 세상과 함께 하지 않으니 자연적으로 세상에서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구태여 구별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구별되어 있어야 신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원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자니까 최고급의 도덕적  선을 추구하고 행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불신자는 약 70점짜리 선을 행하지만 신자니까 백점 만점의 선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 다 겉으로는 거의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 본질과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가 전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선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심지어 원수를 응징하는 것은 정의입니다. 원수는 개인적 원한을 갚는 대상만 아니라 세상적 윤리관에 반하고 정의를 굽게 하며 악행을 일삼는 자도 포함되기에 당연히 제거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존속과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선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같은 자들을 처단하면 박수를 치며 좋아할 뿐 아니라 그 일을 한 자는 위인이자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도 사랑하라고 했으며 심지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했습니다. 기도란 항상 상대의 유익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더 잘되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또 당장에 그들은 무너지고 선이 회복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장 긴급하고도 큰 유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구원의 은혜 가운데 들게 되거나 그들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의가 드러나 모든 사람이 그 은혜와 권능을 맛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과 모세는 어디까지 기도했습니까? 원수가 하나님을 알아 천국을 가지 못하면 나도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출32:32/롬9:3) 자신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동족을 구원해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피를 나눈 동족이  그들에게 원수가 될 수는 없지만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거역하면서 사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살리고 자기를 대신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거룩한 성인군자라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충만하게 채워 그분의 은혜와 사랑만을 갈급히 사모하는 열정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과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이 세상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분과 반대 방향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은 아무리 자기들을 핍박하는 원수라도 오히려 가장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사단과 죄악을 빼고는 더 이상 원수는 없어졌습니다. 인간들 중에는 타도의 대상은 없고 오직 구원할 대상뿐이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를 심판할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습니다. 또 설령 기도했던 그 원수가 구원이 안 될지라도 반드시 그와 연관된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속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살되 그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니 참신자라면 자연히 구별되어집니다. 또 세상과 마찰이 생깁니다. 그런데도 그 마찰을 피해 까마귀 노는 골에 백로는 가지 않겠다고 교회 안으로만 모이는 것이 마치 세상과 분리된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이라고 착각하는 신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혼자 도를 닦아 스스로 도인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옷에만 더러운 자국을 남기지 않겠다는 비겁한 행위일 뿐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려면 세상과 더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자면 음행하는 자, 탐하는 자, 토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더 많이 교제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려면 그들을 만나고 그 사정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물론 신자 자신은 악의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또 그들과 가까이 함으로써 악이 옮겨질까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세상과 구별되는 모습을 반드시 세상 속에서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우리가 경건해 봐야 세상 사람이 교회 안으로 들어 올 리가 만무하므로 구별된 모습을 저들 앞에 보일 기회조차 없지 않습니까?  우리끼리 누가 더 경건한지 자랑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항상 그런 것들로 인해 분쟁이 생기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세상과 구별되어 있습니까? 교회 생활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기도와 말씀에 얼마나 능통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세상 사람과 그중에서도 특별히 원수와 핍박하는 자들과 가까이 교제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이 당신을 볼 때 당신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종교적 냄새도 하나 피우지 않았는데도 분명히 그들이 당신을 신자라고 인정하고 또 그래서 지금 현재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의 태도와 방향과 목적을 얼마나 닮고 싶어 하는 지를 묻는 것입니다.  

6/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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