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는?(고린도전서의 몇가지 의문2&3)

조회 수 10961 추천 수 102 2006.11.07 20:21:13
[질문2]

고전 7장 14절부터 16절 말씀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다고 하고 있는데, 물론 여기서 설명하는 거룩함은 표면적 거룩, 표면적 '구별됨'을 의미하겠지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은 성경 전체의 내용과 위배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은 하지 않고.. 아마도 남편이 아내의 신앙생활의 영향을 받아 거룩하게 되다가 구원받게 될 수도 있다, 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문제는 14절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입니다.
즉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는 아내(혹은 남편)로 인해 믿지 않는 남편(혹은 아내)과 자녀가 깨끗하게 된다, 인 것 같은데..

혹시 유아세례의 근거가 이 구절인가요? 솔직히 저는 유아세례가 성경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카톨릭의 전승을 따른 하나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데.. 부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녀에게 세례를 준다 하는 것. 부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을 축복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세례는 축복과 또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제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가 어디 있나요?

[답변2]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7:14-16)

불신자와의 결혼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본문은 궁금해 하시는 유아세례의 근거 구절이 아닐 뿐 아니라  성경은 유아세례를 전혀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한 마디로 결혼한 이후에 한 쪽 배우자만 믿게 된 경우에 불신자 쪽에서 헤어지자고 하기 전에는 이혼하지 말라는 것과 그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유아의 세례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선 성경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합니다.(고후6:14-7:1) 나아가 어떤 결혼이든 이왕에 한 결혼은 이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배우자 간음의 연고라면 이혼을 허락하지만 그래도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본문 같이 결혼 후에 한 배우자만 믿고 다른 배우자가 불신자 상태로 남아있어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겨도 신자 쪽에선 절대 먼저 이혼을 요구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 배우자 간의 지속적인 화평(15절)을 이루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갈라서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로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즉 믿는 배우자로 인해 1)상대 배우자를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 2) 상대 배우자 사이에 난 자녀를 깨끗케 할 가능성, 3)상대 배우자를 구원할 가능성을 들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써만 얻어집니다. 물론 신자가 불신자를 구원으로 이끌도록 복음을 전하고 영적인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는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원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표현했지 확정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선 14절의 ‘거룩’하게 된다는 단어와 15절의 ‘깨끗케’ 한다는 단어도 16절의 ‘구원’이란 단어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16절에 가서야 구원, 그것도 가능성으로만 이야기하고 있기에 14, 15절은 당연히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벌써 이것만으로 유아세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요컨대 본문이 말하는 바는 신자의 경건함이 불신자의 불경건함에 영향을 끼쳐 그들도 경건함을 가지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다는 뜻입니다. 또 그러다 보면 불신자 배우자의 마음이 열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구원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경 표현이 언뜻 신자로 인해 자동적으로 불신자 배우자와 자녀까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어감을 줍니다. 바울 당시 유대 사회에선 축복과 징계의 연대성이 아주 강조되었습니다. 공동체 내의 한 명의 죄로 전체가 벌을 받거나 그 반대로 한 명의 의로 전체가 복을 받는다는 사상입니다. 간단한 예로 당시 유대교 랍비들은 이미 임신한 이방여인이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 세례를 받으면 배 속의 아이에게도 그 개종의 효과가 미친다고 해석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고에 익숙해진 유대인들의 표현방식을 빌린 것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다시 말하건대 신자의 거룩함이 불신자 배우자와 그 자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다른 서신서들에 나타난 원리에 비추어 보면 한 인간의 거룩이 다른 인간에게 자동으로 전이되거나, 혹은 인간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는 결코 해석될 수 없습니다. 자녀가 깨끗케 되는 것도 믿는 부모로 인해 경건한 분위기에서 자라 자신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뿐입니다.

반면에 성경은 모든 자는 자기의 죄나 의로만 심판과 구원이 결정된다고 가르칩니다. “아비가 신 포드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2,4) “내가 내 신으로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2:28,32)

또 세례(침례)를 믿는 자, 즉 구원을 얻은 자에게만 베풀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3,4)

분명히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합이 먼저이지 세례가 먼저이지 않습니다. 구원을 얻은 자가 구원 이후에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진정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자신의 거듭남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확인하고 이제는 그분의 자녀답게 그분 뜻대로 살겠다는 다짐일 뿐입니다. 세례 자체로 구원이 이뤄질 수는 절대 없습니다.

따라서 유아 세례의 경우도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들의 경건함으로 영적인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헌신을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 앞에서 다짐하는 의미라면 괜찮지만 세례 자체로 유아가 구원 받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또 그렇게 헌신하는 예식의 형식이 꼭 세례여야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세례는 본인의 중생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갓난아이에게 그런 중생이 있을 수 없기에 오히려 세례(성경이 말하는 형식은 실제로는 침례임)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천주교의 유아세례

그럼에도 천주교에서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는 직접 개인에게 전해지지 않고 반드시 교회의 성사(聖事)를 통해 간접적으로 온다는 뿌리 깊고도 양보할 수없는 교회 권위주의적 사상에 철저하게 의존합니다. 바꿔 말해 그런 성사는 단순히 영적인 메시지를 선언하는 표징이거나 헌신을 다짐하는 예식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그래서 카토릭 교회는 갓난 유아는 세례의 성사를 받음으로 그리스도 죽음의 은총으로 들어간다고 고집합니다.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교 행할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다.”(카토릭 교회 교리서)

유아세례로 아이들이 사단의 권세에서 구출되며, 원죄에서 자유롭게 되며,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오점이 없게 되며, 거듭나게 되며, 성스러운 생활의 은사가 받게 되며, 영생을 갖게 되며, 성령의 전이 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교회에 입문하게 되며, 카토릭 교회의 신앙 안에서 양육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한 마디로 유아세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유아의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직 교회가 주는 세례뿐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유아들은 지옥에 갈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모든 죄 중에 원죄는 가장 작은 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작은 죄인 까닭은 자발적인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원죄를 단순히 부모에게 유전 받은 죄에 불과해 교회의 성스러운 물로써 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유아들은 특별히 빨리 죽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지체 없이 세례부터 주라고 가르칩니다. 세례 받지 않고는 누구라도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혹시라도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들의 사후 운명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과 연옥과는 달리 그런 유아 영혼만 일시적으로 가있는 림보(고성소 古聖所 Limbo)가 따로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림보는 말 그대로 경계선에 있다는 의미로 이제는 공식적인 교리로는 취급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부인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영혼은 하나님의 자비에 의탁한다고만 할 뿐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오직 한 개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자발적으로 기꺼이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그럼에도 천주교는 유아세례의 근거로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들고 있습니다. (막16:16 / 눅18:16,17 / 요3:5 / 행2:38 / 사도행전 10,16,18 장의 세례 사례들 / 행22:16 / 롬6:3,4 / 골2:11,12 / 딛3:5 / 벧전3:21) 그러나 이 모든 구절에 유아에게 세례를 준 내용은 없습니다. 또 자세히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믿음이 먼저이며 또 성령의 거듭남과 함께 믿은 표시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성경이 세례를 받으라고 말한다는 것만 강조한 셈입니다.  

세례가 구원의 최초이자 유일한 통로라면 왜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까?(요4:2) 십자가상의 강도(눅23:43)는 세례와 상관없이 구원 받았습니다. 또 고넬료와 그와 함께 있던 일행은 성령을 먼저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10:44-48)

바울 사도는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그것도 순전히 있는 그대로의 복음만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복음이 결여된 교회의 어떤 전통과 관습도 구원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전파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럼 그 복음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였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2-4) 복음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당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게”(롬1:17)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쪽에서 당신의 독생자를 죄인 대신에 죽이시고 부활시키는 길과 인간 쪽에선 그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 외에 구원을 이룰 방도는 결코 없습니다.


[질문3]

세 번째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C.S.루이스는 자신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파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례와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각기 다른 이름-성만찬, 미사, 주의 만찬-으로 부르는 신비한 행위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의 감리교도 친구들은 제가 믿음을 좀 더 강조하고 다른 두 가지는 덜 강조하기를(상대적으로)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실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세 가지를 다 말할 것이며, 현재 저의 목적에는 이것들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봐도 세례, 믿음, 성만찬이 구원을 받는 방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세례와 성만찬은 단순한 '행위'일 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구원의 근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믿음 없이 세례를 물론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 성만찬도 받을 수 있지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믿음이 없지만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아니다' 라면, 구원의 요소에서 성만찬과 세례는 빠져야 하지 않습니까?

혹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믿음이 있어도 세례를 받지 못하였거나 성만찬을 하지 못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말을 한다면 이 또한 행위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그럼 결국 구원의 요소는 '믿음'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구원의 요소에 왜 세례, 믿음, 성만찬이 나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3]

앞의 답변에서 대충 설명되었기에 간단하게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구원은 한 죄인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데 믿음 외에 다른 어떤 인간적 행위나 종교적 관습이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결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당신께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루이스의 그 책은 저도 갖고 있습니다만 아주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 지금 다시 전체를 읽고 앞뒤 전체 문맥을 살펴보지 않는 한에는 확실하게 답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죄인에게 전파되는 것과 이미 구원 받은 신자에게 전파되는 것은 다름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선 죄인을 구원하는 새 생명은 반드시 믿음으로만 얻어집니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아직 믿음이 없는 자가 세례나 성찬식에 직접 참여(원칙적으로는 참여해선 안 되지만) 하거나 옆에서 구경할 때에 성령이 역사하여 구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성령의 간섭하여 믿음이 생긴 것 때문이지 성례 자체의 효력이 아닙니다. 성례는 단지 그런 믿음이 생기는 통로일 뿐입니다. 루이스가 전체 문맥에서 이런 의미로 설명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천주교 식으로 세례나 성찬 자체의 능력을 인정하여 믿음이 없이도 그것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했다면 잘못입니다.

두 번째는 이미 구원 받은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믿음 뿐 아니라 세례나 성찬식을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 말씀, 찬양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새 생명이 전해질 수 있는데 루이스가 믿음, 세례, 성찬으로 한정한 것은 조금 모순이 됩니다.

그러나 틀린 것은 아니고 단지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는 “사실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세 가지를 다 말할 것이며, 현재 저의 목적에는 이것들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그가 다른 수단도 새 생명을 얻는  방식에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뜻이 됩니다. 즉 예수님의 은혜를 말씀과 기도와 찬양 등을 통해서도 신자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이 한 번만 더 주의해서 전체 문맥을 음미하며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지만 세례나 성찬을 통해서도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믿음이 없이도 그런 절차만 통과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또는 이미 구원을 얻은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수단을 말하는 것인지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음으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중에선 아마 아래 두 문답의 기술(記述)을 보고는 조금 혼란스러웠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행위 구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88.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이 무엇인가?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은 그의 규례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이것이 모두 그 택하신 자에게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한다.

*** 본 문답에서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이란 하나님이 한 죄인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동원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성경 공부하다가, 기도하다가, 또는 성례에 참여하다가 성령의 간섭하심이 임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본질적으로 믿음으로만 얻지만 그 믿음을 얻게 되는 통로는 여럿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91. 성례가 어떻게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는가?

󰄆 성례가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는 것은 성례 자체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베푸는 자의 덕으로 됨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축복함으로 되며 또 믿음으로 성례를 받은 자 속에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 본 문답에서도 성례 자체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성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역사하심이 나타날 수 있고 또 그래서 구원에까지 이르게 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지만 성례도 그 믿음을 얻게 되는 통로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요리문답의 다른 부분에서 구원에 관해 설명한 원리를 정확히 인식한 후 그 바탕 위에 관련 문답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의 원리에 관한 중요 문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29. 우리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에 참여하게 하시는가?

󰄆 우리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은 그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구속을 효력 있게 적용하심을 인함이다.

󰃅30.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셨는가?

󰄆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또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다.

󰃅31. 효력 있는 부르심은 무엇인가?

󰄆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신이 하시는 일이니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능히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33. 의롭다 하심이 무엇인가?

󰄆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정하신 것인데 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유하시고 그 앞에서 우리를 옳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니 이는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심인데 우리는 오직 믿음만으로 받는 것이다.

󰃅85. 우리가 우리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받을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 우리가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마땅히 받을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생명에 이르는 회개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속의 유익을 전하는 여러 가지 나타내는 방법을 힘써 사용하라는 것이다.

󰃅8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무엇인가?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복음 중에 우리에게 주신대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그에게만 의지하는 것이다.

󰃅87.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인가?

󰄆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죄인이 자기 죄를 참으로 알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달아 자기 죄를 원통히 여기고 미워함으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든든하게 결심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새로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는 반드시 이미 믿은 사람에게 베풀라고 합니다. 단 입교한 자의 자녀에게 베푸는 세례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표시로 받는 세례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신앙 안에서 양육하겠다는 헌신의 예로 베푸는 것입니다.

󰃅95. 세례는 어떠한 사람에게 베푸는가?

󰄆 세례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베풀 것이요, 또 입교한 자의 자녀에게 베푸는 것이다.

***주의 성찬도 마찬가지로 믿은 자가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신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헌신하는 예식입니다.

󰃅96. 주의 성찬이 무엇인가?

󰄆 주의 성찬은 곧 성례이니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며 받는 것으로 그 죽으심을 나타냄이다.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의 정욕으로 참여함이 아니요, 믿음으로써 그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 자기의 신령하게 받은 양육과 은혜 중에서 장성함으로 그의 모든 효력을 받음이다.

󰃅97.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마땅히 주님의 몸을 분별할 줄 아는 것과 주님으로써 양식을 삼는 믿음과 회개와 사랑과 새로 순종함에 대하여 스스로 살필 것이니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면 두렵건대 먹고 마시는 것이 정죄함을 자청함이 될 것이다.

요컨대 웨스트민스트 소요리 문답을 자세히 그 전체를 읽어보시면 세례나 성찬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오해를 살만한 문답이나 성경 말씀이 따로 있으면 구체적으로 그 구절을 인용해서 다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11/7/2006

정순태

2006.11.08 00:28:47
*.95.73.2

아멘!!!

복음 = 예수님 = 유일한 진리!!!

여기에다 신학과 교리와 영성 등을 덧입힐 때에는 아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순수 복음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설교'라는 지혜의 말로 '복음'을 대체시키려는 시도는 철저히 막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란 복음 자체가 아니라, 다만 복음을 설명하는 하나의 보조 수단(기능)일 뿐임을 인식할 때,

우리의 왜곡된 신앙이 제 자리로 회복될 확률은 높아진다 하겠습니다................

"유일한 진리 = 복음 = 예수님"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갑니다!!! 샬롬!!!

김형주

2006.11.08 01:51:29
*.173.42.18

아멘!
유아세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잘 이해했습니다.
샬롬!

조인구

2006.11.08 02:45:07
*.74.48.114

이대웅

2006.11.08 08:47:27
*.57.15.6

역시 정성스럽고 은혜로운 답변 감사드립니다.

이 답글을 보고 다시 한번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의 그 부분을 읽어보았습니다.
앞뒤를 생각하며 한 챕터 전체를 읽어봤지만, 그 부분이 '구원'을 일컫는 것인지 '성화'를 일컫는 것인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네요. (오히려 '구원'을 일컫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디만)
이것이 한글 번역본을 읽기 때문에 나타나는 번역상의 애매한 문제인지, 실제 C.S.루이스가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사실 C.S.루이스가 무슨 뜻으로 말했느냐와는 상관없이 구원이라는 것이 오로지 믿음으로만 얻어진다는 진리는 불변하므로 저한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제가 찾아서 읽어보면서 질문한 것이 아니어서 요지를 놓친 것만 같습니다.

박신 목사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권기호

2006.11.15 13:57:23
*.233.184.25

처음 들어왔읍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요.

사라의 웃음

2012.12.03 22:08:17
*.109.85.156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시사, 우리 죄의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 눈을 여시고 보게 하시어 그 죄 때문에, 나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그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시는 은총, 곧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심을 세세히 배웁니다.

복음은 이렇게 선포되어져야하는 것이기에 설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이야기, 그 십자가 아래 자신의 비참한 죄를 깨닫도록 말씀을 지속 들어야하기에.... 십자가 설교는 지속 들어야하며, 또 들어야하며, 셜교는 이렇게 복음이 선포되어지는 것이여야함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곳의 말씀이 진정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도록,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도웁는 십자가 사랑 이야기의 말씀들이 이 곳에 있기에, 정말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선포하는 귀한 말씀이 있기에, 오늘도 이런 죄인을 사랑하시어 의롭다며 덮어주시는 예수님의 그 넉넉하신 포대기같이 덮어주심 아래 구원받은 죄인으로 오직 감사만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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