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여성비하와 노예제도(2)

조회 수 1059 추천 수 1 2019.10.22 15:01:47

구약성경의 여성비하와 노예제도(2) 

 

성경은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다.

 

앞 장에선 구약성경이 언뜻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님을 살펴봤습니다.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을 갖고 접근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인간의 죄악상을 드러내어 회개케 하려는 진술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법을 다시 간략히 정리해봅시다. 가장 먼저 본문이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 이차적인 진리, 단순히 부차적 설명인지, 혹시 이미 폐기된 구절은 아닌지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본문의 문자적 표면적 의미에 묶여선 안 되며, 앞뒤 문맥과 그 책의 주제에 비추어서 그 배경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나아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사상과도 연결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반드시 신약성경과 연관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진리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질문에서 대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 같은 창세기의 세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브와 하갈과 롯의 두 딸들에 대한 말씀들이 과연 그러한지 바른 해석법에 따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그 전에 성경해석에 대한 또 다른 원칙 한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본 사이트를 통해 수도 없이 강조했지만 성경을 읽을 때에 가장 금해야 할 사항은 한 구절씩 따로 떼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성경의 장과 절은 훨씬 후대에 단순히 편의를 위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장절이 없이 저작되었기에 그 의미도 반드시 앞뒤로 죽 연결해서 따져봐야만 합니다. 일반적인 책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를 계시한 성경이므로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성경은 책별로 한 저자가 고유의 목적과 의도를 갖고 특정 주제에 관해서 저작했기에 그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맥락에 따라서 이어집니다. 말하자면 단순히 도덕적 격언이나 종교적 계명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므로 한 구절씩 따로 봐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장님들이 코끼리의 일부분만 만져봐선 그 실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아집니다.

 

앞선 글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란 당신의 인류 구원에 대한 계획과 그것이 인류 역사에서 실현되어진 모습과 장차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에 관해서 계시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꿔 말해 성경은 다른 종교처럼 윤리적 계명대로 따르면 구원을 준다고 구원의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셨는데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면 그분이 구원을 선물로 준다고 하나님이 직접 선언 보장해놓은 책입니다.

 

요컨대 구원 얻기 위해서 신자가 행해야할 선과 하지 말아야할 악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해석의 일차적 과제가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통해 인격적인 대면이 일어나는 책입니다. 신자는 예수를 믿은 후에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 뜻을 각자 믿음과 형편에 따라서 각자의 현실 삶에 적용 실현하면 됩니다. 성경을 윤리적 가르침이라고 착각하니까 한절씩 따로 보는 습관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세 구절에서도 윤리적 측면에 시선이 먼저 가버리면 정작 하나님 그분이 독생자의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은혜와 권능을 놓치게 됩니다.

 

아담의 다스림을 받아야하는 이브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이 한 구절만 따로 떼어서 보면 성경이 남성우대 사상을 강조 내지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앞뒤 문맥에서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한 저자가 한 책에서 갑자기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다르거나 앞뒤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생뚱한 말을 할 리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꾐에 먼저 넘어간 자는 이브였고 그녀가 함께 한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창3:1-6) 그럼 하나님이 벌을 주어도 이브에게 먼저 더 강하게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먼저 아담을 불러서 경과를 따졌습니다.(창3:8-11)

 

그 이유는 아담을 가정의 대표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다 같이 한 장의 투표권을 가지고 회장만 번갈아가며 맡는 유엔(the United Nations)총회의 예에서 보듯이 부부가 연합하여 즉, 동등한 관계에서 가정을 가꾸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자격과 신분이라 해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뜻을 전달 실현할 가정의 대표자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더러 부모를 떠나서 가정을 이루는 책임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뿐 아니라, 가정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먼저 믿었거나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라면 당연히 어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든 교회든 모든 신앙공동체의 각 구성원들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지만 질서를 세워서 교제 동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해서 하나님이 이브에게 더 큰 벌을 주거나 남자를 더 높여준 것이 아니라 가정을 제정할 때의 뜻을 더욱 강조한 것입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고통도 새로 추가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크게 더한다”고 했으니 처음부터 있던 고통이 단지 더 늘어났을 뿐입니다. 이미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했을 때에, 그전에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을 때에 여자는 임신하여 아이를 양육할 일을 맡았습니다. 임신과 출산 전후로 여성은 활발하게 일을 못하니까 당연히 남성이 가정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 또한 타락 전에 이미 밝혀놓은 당신의 뜻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담도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창3:17-19) 같은 잘못을 범했는데 이브만 벌을 받았다면 여성이 차별받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창3:16은 최초 인간이 당신을 거역하고 타락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은 세 당사자인 사탄, 이브, 아담에게 순차적으로 벌을 내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남성우대는 남자와 여자 사이 인간관계의 문제이나 이 말씀은 이브와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에 여성 비하는 그 주제는 아닌 것입니다.

 

타락 후에 수치와 공포에 휩싸여 동산 깊숙이 숨은 아담을 하나님이 찾아와서 처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 네가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 가서 숨었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의 품을 벗어나면 수치와 공포 나아가 죽음뿐임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그 내리신 벌도 두 가지 의미를 지님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첫째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창조 때에 이미 계획해 놓은 남녀가 각기 맡을 역할을 더 확장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역할을 타락 전에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기쁨과 감사로 즐겁게 행할 수 있었으나 타락 후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의 밖에 있기에 같은 일을 해도 많은 힘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의미는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이긴 하지만 사실은 인간들의 죄가 발전 확장됨에 따른 필연적 결과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땅에 죄로 타락한 인간끼리 서로 자기만 높이려 무한경쟁을 할 것이므로 온갖 수고 고난 분노 저주가 만연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남자들이 여성의 지위를 무시 천대할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완악함 때문에 모세 이혼증서법을 제정할 것입니다.

 

사라에게 학대 받는 노예 하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창16:9)

 

이 구절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앞뒤 문맥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갈은 여주인 사라에게 이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태가 닫힌 사라가 먼저 하갈더러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아들을 가지라고 부탁했습니다.(16:2,3) 하갈은 임신하자 이제 그 집안의 안주인은 자기 차지가 되었다고 믿고 아이도 낳기 전부터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합니다.(16:4) 자기 주인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으니 여호와의 뜻이 어디 있는지 잘 살피라고 추궁했습니다.(16:5) 하갈이 잉태하자 아브라함이 너무 귀하게 대우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라로선 남편에게 당신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내가 양보해 주었지 않느냐, 이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잘 판단해보라고 따진 것입니다. 사라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긴 아브라함이 당신이 제안했으니 당신의 뜻대로 하갈에게 행하라고 답했습니다. 사라는 하갈에게 잉태했다고 안주인의 자리는 절대 넘보지 말라는 뜻으로 자기가 당한 이상으로 가혹하게 앙갚음했을 것입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해 광야로 도망간 하갈이 광야 샘물 곁에 쉬고 있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을 건넸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16:8) 숨어있던 아담에게 던진 여호와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갈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사라의 수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사라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명령입니다.

 

사라에게 다시 학대 받으며 고생하라는 뜻도 당연히 아닙니다. 귀환 명령에는 엄청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갈은 비천한 여종으로 일생이 끝나지 않게 하고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 아랍 족속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출산과 양육경험으로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되는 주인 사라를 잘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낳을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풀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이 사건은 또 엄밀히 따지면 일부다처제와도 무관합니다. 남자인 아브라함이 첩을 두었어야 일부다처의 죄가 성립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본부인 사라가 권해서 하갈을 첩으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사라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기다리다 못해 자기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그 뜻을 이루려고 나름의 지혜를 동원한 것입니다. 이왕이면 자기 수하의 하갈을 통해 아이를 갖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섣불리 판단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하나님이 아들을 준다고 했으니 그렇게 즉, 집안에 첩을 두어도 된다고 용인해준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라나 아브라함이 인생의 노년이 되어서도 영적으로 참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구약 인물들의,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가 신구약성경을 통해 확고히 계시된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믿음의 수준이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물론, 창세기의 사건들은 율법을 받기 훨씬 전이긴 해도, 그분과 직접 맺은 언약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이성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으로선 당신 쪽에서 주도적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당신을 알게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적인 천재란 없기에 천천히 그 믿음이 자라도록 범사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간섭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이전까지는 당신의 온전한 뜻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을 기록한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노예제도도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의 본래 뜻과는 무관합니다. 인간사회에 이미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던 악한 관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구속이 완성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그 죄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 관련규정을 주셨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세움 받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들의 관습과는 전혀 다르게 종들을 긍휼로 대우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말입니다.

 

자기 두 딸도 창녀 취급하는 롯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창19:8)

 

성경기록 전부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듯이 이 구절은 롯이 소돔 백성을 향해 말한 것이지 하나님이 성경독자들에게 계시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천사들을 통해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후에 두 딸을 보호했고 다음날 그 악의 도성을 불로 심판했습니다. 본문은 사람들이 죄로 타락한 모습이 갈 데까지 갔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는 롯을 야단치거나 벌주지 않고 오히려 구해주었다고 해서 그의 여성 비하의 생각까지 인정해준 것은 아닙니다. 당시 윤리기준으로 그런대로 의인이라고 할 만한 롯조차도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관습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수용하고 실현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인간사회의 윤리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불완전하고 심지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고 두려워하는 의인은 단 한명도 없으며 어떤 도덕적 의인도 하나님 앞에 심판 받아 마땅하다는 진리를 성경은 롯을 통해 후대 독자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롯은 이런 완악한 말을 한 대가로 나중에 그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벌을 받습니다. 소돔에서 탈출하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에게 아내가 없어져서 더 이상 후손을 이어갈 수도 없는데다 산지로 피해서 두 딸이 혼인할 기회도 없어졌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불 심판을 본 그들로선 그 땅의 사악한 거민들과 쉽게 결혼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두 딸은 아비 롯에게 술을 먹이고 각각 아비와 관계를 맺습니다.(창19:30-38) 두 딸로선 사라가 하갈을 통해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를 얻으려 시도했듯이 현실적인 대안이었을지 몰라도 근친상간이라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녀들도 소돔에 만연했던 성적타락에 이미 많이 물 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비 롯도 자기가 뱉은 말이 씨가 되어서 자기에게 그대로 돌아오는 벌을 받았습니다. 롯과 두 딸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이 훗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두고두고 괴롭히는 모압과 암몬 족속의 선조입니다.

 

반면에 사라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백성은 물론 예수님의 선조가 됩니다. 살펴본 대로 인간사회 윤리로는, 특별히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사라가 의롭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그분의 약속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의 선물을 받았고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가 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성경은 윤리적 선악으로 판단해선 안 되며 오직 예수 십자가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또 다른 예입니다.

 

여성과 노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지금껏 구약성경의 여성비하와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히려 여성과 노예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성경의 대표적인 예들 몇 가지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생산이 불가능한 구십 세의 사라에게 은혜를 베풀어 열국은 물론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이자 메시아의 선조가 되게 했습니다.(창17:16) 믿음이 좋은 리브가로 어머니를 잃어 상심한 외아들 이삭을 위로케 했으며(창24:67), 야곱의 네 명의 아내들은 일부다처제의 희생양이었지만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낳게 했습니다.(창29:31-30:24)

 

미리암은 출애굽의 구원자 모세의 생명을 기적적으로 살렸고(출2:1-10), 역사상 최대의 찬양집회를 인도했으며(출15장), 선지자로서 그와 함께 동역했습니다.(민12:2) 결정적으로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 남성 상속자가 없을 때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여성에게도 동등한 상속권을 보장해주었습니다.(민36장) 드보라 선지자는 남자 사사인 바락이 그녀의 지휘가 없이는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 하며 그녀를 영적지도자로 섬겼습니다.(삿4:8)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족보(마1장)에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은 죄 많은 여인 다말, 가나안의 기생 라합, 모압의 이방 여인 룻, 다윗 왕과 간음한 우리야의 아내가 올라가 있습니다. 모두 구약시대의 여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인종, 직업, 남녀는 물론 윤리적 죄와 상관없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 많은 인간의 위치에까지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당신의 백성들조차 물건 취급하던 여성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구속사역에 큰 역할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혼증서처럼 율법에는 여성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규정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가장 먼저 간음은 남녀 모두 반드시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레20:10) 위생 때문이긴 해도 경도 중인 여인과는 관계를 갖지 말라고 했고(레20:18), 처녀와 관계를 맺게 되면 유부남이라도 반드시 아내로 삼으라고 했으며(출22:16 - 어쩔 수 없이 일부다처가 됨), 처녀성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아내 삼기를 거절할 수 없게 했으며(신22:14-19) 심지어 산모에게 육아 휴가까지 보장했습니다.(레12:4)

 

율법은 또 이스라엘더러 동족을 노예로 삼지 말라고 명했습니다.(레25:39) 빚을 져서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삼아도 노동으로 빚을 갚도록 했고 주인이 종을 엄하게 부리지 말아야 하며(레25:47-55) 안식년에는 빚은 물론 종의 신분에서 해방해주도록 했습니다.(출21:20) 만약 종이 그 가정에 남겠다고 하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출21:5,6) 그만큼 평소에 종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포로에서 자유하게 하는 십자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고아, 과부를 비롯한 여성, 이방인, 종들에게 유독 관심과 애정을 쏟았습니다. 당신의 백성들더러 그들을 우대하라고, 최소한 차별하지 말라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를 너희도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때를 회상해보면 다른 이를 함부로 종이나 물건 다루듯이 해선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15:15)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건져내어준 것은 오직 하나님이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의롭거나 예뻐서가 결코 아닙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다 죽일 때에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밖으로 나가지 않음으로써 그 피를 본 죽음의 사자가 심판에서 면제해주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도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으나 어린 양의 대속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오히려 타국의 노예로 고생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의 은혜를 잊어버린 애굽의 죄 때문에 사백년,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서 칠십년 동안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노예제도는 인간들이 탐욕을 채우려고 타국을 침략한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패전국민을 탈취물로 삼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완악함을 그대로 두되 당신의 백성을 그 관습으로 징계 심판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탄에게 포로 된 죄인들에게 영적인 자유부터 회복시켜야만 여성비하와 노예제도 같은 다른 모든 죄에서도 깨끗케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예수 십자가 외에 다른 방안은 없었습니다.

 

현대 교회의 실상은?

 

그런데 오늘날의 인간사회는 어떠합니까? 여성비하와 노예제도가 잘못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과연 온전히 실천하고 있습니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인종 심지어 도덕과 종교 등의 측면에서 현대판 노예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더 교묘하게 많아졌지 않습니까? 미투(Me Too) 운동은 선진국에서조차 여전히 진행형이며 온전히 그에서 자유롭게 될 날은 요원합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마지막 날에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이 두 악한 관습은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알게 모르게 그 죄악들이 기생충처럼 숨어서 번지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2:2-4) 이천 년 전의 야고보 사도의 이 경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신자와 교회가 지금 과연 있겠습니까?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는 태초부터 아예 존재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분에겐 인간사회에서 소외 멸시 박해 받는 자들을 향한 사랑만 충만했습니다. 그런 제도들은 인간의 죄에서 기원되고 발전 확장되며 인간의 이성과 도덕이 최고로 발달한 21세기 대명천지에도 번창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교묘하고 음흉하게 발전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만이 그런 죄를 깨끗케 하여서 인간을 살릴 수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주님은 세상에 통용되는 어떤 기준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이를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와 있는 신자더러 당신처럼 사람을 절대로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현대의 여성비하나 노예제도 등을 고쳐서 이 땅을 거룩하게 바꾸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사항은 성경을 절대로 문자적으로 한 구절씩 따로 떼어서 보지 마시고, 반드시 문맥과 책 전체에 비추어 이해하시고, 무엇보다 윤리적 계명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로 죄인의 생명을 살리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해석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10/22/2019


master

2019.10.22 15:07:08
*.115.255.228

조금 길지만 구약성경을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야 하는지라는 신자들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이왕이면 (1)과 (2) 둘 다 프린트아웃해서 천천히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샬롬!

알료샤

2019.10.22 22:28:50
*.36.140.185

목사님 여전히 안녕하시죠? 매번 느끼는 겁니다만 목사님의 성경 지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당~ 일전에도 여쭌적이 있었지만 목사님은 신학적으로 모르시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가 저와 우리 회원님들의 궁극적 질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상세하고 명쾌한 설명과 말씀 감사드립니다!

master

2019.10.23 01:11:35
*.115.255.228

알료사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죠? 과찬의 말씀입니다. 상기 글에서도 밝혔듯이 영적 천재는 없습니다. 저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 사역에 하루하루 충성할 따름입니다. 오늘 다시 읽으니 아래 문단에서 전혀 반대의 뜻인데도 못 보고 그대로 올렸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이처럼 실수가 잦아지네요. 줄친 부분이 다시 고친 내용입니다. 참조하십시오. ^0^ 

 

성경은 책별로 한 저자가 고유의 목적과 의도를 갖고 특정 주제에 관해서 저작했기에 그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맥락에 따라서 이어집니다. 말하자면 단순히 도덕적 격언이나 종교적 계명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므로 한 구절씩 따로 봐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장님들이 코끼리의 일부분만 만져봐선 그 실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아집니다. (고치기 전에는 "책이므로"였음)

구자용

2019.10.23 06:31:03
*.3.118.54

그렇게 읽고 바르게 이해했습니다. ㅎㅎ

에응

2019.10.23 05:57:04
*.241.73.176

목사님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생기는 질문이 애초에 기본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다 맞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저는 도덕적인 율법을 찾는데 집중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알았습니다. 가려진 안개가 탁 트인 기분입니다. 

늘상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하신 것 처럼 여러번 읽어봐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다. 무엇보다 소중한 지식을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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