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이 아비 노아의 하체를 보았다는 의미는?

조회 수 4938 추천 수 29 2012.06.03 15:19:33
함이 아비 노아의 하체를 보았다는 의미는?


[질문]


창세기 9장 20-27절 말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함이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았고 이를 알게 된 노아가 함을 저주하는 장면입니다. 함이 단순히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는 것만으로 노아가 그러한 저주를 하게 되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 그 부분이 궁금하던 차에 기독교 윤리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그 부분을 말씀 하시며 함이 동성애적 강간을 행함으로 인해 노아가 그렇게 저주하였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어떠한 주장이 더 성경적이고 근거 있는 주장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먼저 동성애적 강간을 행함으로 노아가 저주했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질문자님도 의아해 했듯이 단지 아비의 하체를 본 것만으로 형제의 종이 되는 엄청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전제가 내포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아주 공평해야 한다는 선입관을 앞세운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려면 가장 먼저 성경에 대해 해석자가 갖고 있는 편견, 선입관, 지식, 철학, 개념, 사상 등은 물론 일반적 가치관과 윤리관 같이 자신의 사고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기준도 전부 내려놓고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일이 상당히 어렵긴 하지만 성경 본문이 말하는 바부터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입니다.

해석 전에 버려야 할 것 중에는 심지어 기독교 교리도 포함됩니다. 예의 윤리학 교수의 경우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자 아주 공평한 분이라는 진리에 맞추려다 보니 본문이 말하는 바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교리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부터 먼저 제대로 해석한 후에 그것을 교리에 비추어 점검해야지, 역으로 특정 교리에 끼워 맞추려 해석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보다와 알다.

본문에서 “보다”라는 히브리 단어 ‘라아'(raah)에는 동성애적 강간의 의미는 없습니다. 또 성경에 그렇게 사용된 용례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약 1300회 정도 나타나는데 그야말로 육안으로 직접 보는 것과 그에 관련된 의미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보다, 관찰하다, 감지하다, (눈에) 익숙해지고 또 그렇게 해서 알게 되다, 이해하게 되다, 발견하다, 탐구하다, 검사하다, 보고 고르다” 등등이 그 적용된 뜻입니다. 참고로 직접적으로 보는 명백한 의미보다는 그와 연관된 의미로 사용된 예 몇 개만 들어보겠습니다.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욥3:6)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의 문맥상의 뜻은 낙태한 아이를 반복 설명하기에, “살지 못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도 빛을 보지 못한 것은 살지 못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4:8)에서도 실제로 본 것은 아닙니다. 지성적으로 판단한 것을 본다는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나답이 저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말하기를”(삼하13:5a)에서 “보러” 오거든의 의미는 “문병 내지 방문하러” 오거든입니다.

요컨대 1300 군데나 되는 성경 용례에 따르면 “보다”는 단어를 성적접촉과 연결시켜서 해석할 여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관계는 우리말로는 “범하다”, 영어로는 “uncover"(벗기다)로 번역된 “가라”(gawlaw)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옷을 벗긴다는 완곡한 표현을 성적교섭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너는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6) (None of you shall approach to any that is near of kin to him, to uncover [their] nakedness: I [am] the LORD.) 레위기 18장의 부정한 성행위를 전부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만약 함이 동성애적 강간행위를 했다면 오히려 그의 하체를 범했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 노아는 술에 취해 이미 옷을 벗은 상태이긴 합니다. 또 그래서 “가라”(벗기다)가 적합하지 않았다면 다른 단어를 사용했어야 합니다. 레18:22의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에서 ‘교합’에 ’눕다‘(lie with)라는 뜻의 ’솨카브‘(shaw-kab)를 사용했듯이 말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실제 체험적 지식으로 아는 것을 뜻하는 "야다"(yada)를 사용했어야 합니다. ’야다‘에는 성적 교섭을 통해 속속들이 안다는 뜻도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창4:1a)에서 “동침하매”(영어 번역에는 knew)가 바로 '야다'라는 단어입니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 ‘야다’(알다)가 ‘본다’는 의미와 평행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18:21) ‘보고’와 ‘알려’는 것은 사실상 같은 의미입니다.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욥28:7) 여기서도 ‘알지’와 ‘보지’는 같은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보고’와 ‘보지’의 히브리어는 여전히 ‘라아’이지 ‘야다’는 아닙니다.  

다시 간단히 정리해 봅시다. ‘라아’와 ‘야다’, 둘 다 ‘안다’는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라아’는 육안으로 보고 아는 것과 관련된 의미로만, 또 ‘야다’는 실제 여러 인간관계 체험을 통해서 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야다’의 체험에는 성적관계도 포함되지만, ‘라아’에는 육안으로 보는 것을 제외한 체험의 의미는 없습니다.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는 단어가 ‘라아’인데도, ‘안다’는 의미를 공유한다는 한 가지 근거로 ‘야다’ 고유의 의미인 성행위를 끌어다 붙이는 것은 무리입니다.  

함이 저주 받은 이유는?

어쨌든 본문에는 당시 상황을 명료히 알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약간 애매한 경우의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범위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무리한 가정과 상상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창9:20-24)

참고로 24절의 노아가 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에서, ‘행한’의 히브리 단어인 ‘아싸’(asah)는 구약에 2,625회나 나올 만큼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행하다” 혹은 “무엇을 만들다”의 뜻인데 성적교섭이라는 용례는 없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함이 장막 안으로 무심결에 들어갔다가 벌거벗은 아비의 하체를 우연히 볼 수는 있습니다. 그 자체는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술에 취해 옷을 벗은 노아가 잘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두 형제에게 고하매”, 즉 그 사실을 형제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도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해석의 결정적 힌트는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뒷걸음쳐 들어갔으며, 아비의 하체에 옷을 덮어 주었고, 나올 때까지 얼굴을 돌이켜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구절의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의 ‘보지’ 히브리어도 함의 경우와 같이 ‘라아’입니다. 형들이 본 행동과, 함이 본 행동은 똑 같이 그냥 육안으로 본 것입니다. 한 문단 안에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으면 뜻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행동이면 아무리 한 단어에 그 다른 의미가 있어도 독자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제삼의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요컨대 형들이 성적교섭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에 함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설령 아비가 술에 취해 벌거벗는 실수를 범했을지라도 형들은 아버지에게 마땅한 존경심과 예의를 갖추어서 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체를 절대로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본문에서의 하체는 생식기가 있는 부분이기에 하나님께 한 인간에게 부여하신 생명을 대변한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넘어섭니다. 특별히 아비와 아들의 관계에서 그 하체를 대해야 합니다. 노아 개인으로 봐서도 그러하지만, 아들에게는 더더욱 그 하체는 아비의 인격은 물론 존엄성과 영광의 상징입니다.    

형들의 처신과 비교해 보면 함이 저주 받은 이유에 대한 합당한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그는 아비에게 마땅히 보여야할 존경과 예의를 갖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연히 아비 장막에 들어갔다가, 엄격히 따지면 들어가도 되는지 확답을 받고 들어갔어야 하지만, 우연히 아비 하체를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 당장에 고개를 돌리고 뒷걸음치고 나와서 다시 옷을 들고 뒷걸음치고 들어가 옷을 덮어주고 조용히 나왔어야만 합니다. 형들에게 고해서도 안 됩니다. 우연히 아비의 허물을 봤으면 동네방네 외고 다닐 것이 아니라 혼자만 알고 덮어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함은 아비의 하체를 자세히 살피고는 또 조롱하는 투로 형들에게 고했을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아비의 흉을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형들도 나중에 노아에게 함의 잘못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술에서 깨자 남의 옷이 덮여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경위를 물었을 것이며, 형들은 함이 와서 일러주기에 우리가 덮어주었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 이뤄진 자세한 경과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함이 혼자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도 벌을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함의 동성애적 강간으로 인해 저주 받았다는 것은 문맥과 원어의 의미와 부적합한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무리한 추측입니다. 반면에 아비를 전혀 존경하지 않았던 경솔한 행위 때문에 저주 받았다는 것은 원어와 행간의 의미에도 부합하고 개연성이 높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3/2012

* 히브리 원어에 관한 사항은 "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Biblical Words"를 참조했습니다.

아가페

2012.06.04 15:20:50
*.213.84.108

감사합니다~ 목사님^.^

아가페

2012.06.06 09:01:07
*.213.84.108

질문에 나와있는 교수님이 쓰신 책 "기독교 윤리학 276p -이상원교수-" 에 나오는 부분이구요 참고서적은 Norman Geisler, Christian Ethics, "Homosexuality" (Grand Rapids: Baker, 1989) 268p

아가페

2012.06.06 09:03:49
*.213.84.108

아 그리고 한 학생이 이 해석에 관하여 모세오경 전공 교수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당시 하체를 보았다는 것이 통상적으로 성적행위를 의미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함이 동성애를 행하였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학자들마다도 반반으로 나뉜다고 하시며 본인은 동성애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저희 중고등부 학생중에서도 동성애로 상담을 해온 아이도 있고 해서 더욱 관심갖게 되고 더 명확히 알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듭니다.

운영자

2012.06.06 13:25:04
*.104.229.109

아가페님

그렇습니다. 분명히 학자 간에 의견이 둘로 나뉩니다.
꼭 한 쪽이 맞고 다른 쪽은 틀렸다가 아니라
말씀드린 대로 어느 쪽이 더 개연성이 높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레 18장에서 하체를 범하다는 단어가
설명드린 대로 옷을 완전히 벗긴다는 것입니다. (uncover the nakedness of ~)
결국 하체를 보았다는 뜻이 됩니다.(see the nakedness of ~)

그런데 노아는 이미 벌거벗은 상태에서 누워잤습니다.
그럼 동성애 교합의 경우대로 함께 누웠다(lie with ~)라고 표현해야
명확하게 성관계를 가진다는 설명이 됩니다.

물론 아비의 벌거벗은 하체를 보고선 조용히 덮어두어야 할 것을
형들에게 누설하고 조롱하며 흉을 본 것보다는,
동성애적 교섭을 했다면 훨씬 더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또 그런 너무나 큰 잘못을 범했기에 하나님이 심판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타탕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칫 해석자가 어떻게든 하나님을 더(?) 공평한 하나님으로 만들려는
어찌보면 인간이 그분의 편을 들어주려는 의도가 조금 앞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제 뜻은 확실하지 않는 부분에선 성경이 말하는 바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
올바른 주해 방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에는 어떤 하자도 없다는 것은 전제를 하고서 말입니다. 샬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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