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더 큰 상급을 얻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조회 수 3615 추천 수 70 2009.02.21 02:58:41
천국에서 더 큰 상급을 얻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질문]


사도바울은 하늘의 영광, 부활, 상급, 면류관을 향하여 쉬지 않고 달려가고 쫒아가셨는데 그렇다면 천국에서 더 큰 영광(상급)을 얻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아프리카 오지에서 전 인생(시간)을 하나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데 힘쓴 선교사와 직장에서 사람들을 전도하고 예수님사랑을 전하는데 힘쓴 사람과 비교를 해본다면 물론 둘 다 자기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겠지만 인간적으로 계산을 해서 만약 선교사가 더 많은 시간동안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을 전했다면 천국에서는 훨씬 큰 상급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천국을 믿고 그 영원한 영광이 이 땅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임을 아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변]

이 주제에 대해선 본 사이트에서 이미 한 번 다룬 적이 있기에 조금 다른 시각에서 간단히 답변 드리고자 합니다. (# 13 “천국에도 상급의 차별이 있는가?”라는 글을 참조 바랍니다.)

많은 신자들이 천국 상급은 전도 실적에 랭킹을 매겨 차등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 이왕이면 전임 사역자가 되어서 항상 복음을 직접 전파한 쪽에 상급이 더 많으리라고 예측하고, 심지어 그렇게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둘 다 아닙니다.

간단하게 이렇게 따져 봅시다. 빌리 그래함은 평생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전도 집회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소개했습니다. 오래 전 한국 여의도 광장에선 백만 인파가 모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현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캐리는 인도로 가서 십이 년 동안 겨우 한 명 전도했습니다. 과연 누구에게 더 큰 상급을 주어야 합니까?

또 전임사역자가 상급을 더 많이 받는다면 모든 신자가 선교사 내지 목사가 되어야만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나 여유가 없다 해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일이 분명하다면 어찌 현실에 안주하여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말하자면 예수님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기에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자는 당연히 다시 선교사로 나서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다 전해지는 순간에는 어떤 결과가 됩니까? 이 세상에는 오직 선교사 내지 목사뿐입니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복음으로 전부를 변화시킬 수 없다 해도,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역으로 말해 예수님이 논리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실 리가 없으므로, 모든 신자더러 전임 사역자가 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12:28-30)

바울 사도도 교회 안에 직분이 여럿으로 나뉜다고, 아니 나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조직체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성도 모두가 비가시적인 교회의 직분자입니다. 사도는 이 말씀에 이어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면서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서도 사랑을 강력히 권했습니다. 신자가 맡아서 하는 일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던 주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맡은 일

상급은 어떤 경우에 받는 것입니까? 맡은 업무를 차질 없이 잘 수행하여 목적한 결과를 충분히 달성했을 때입니다. 그럼 신자가 천국가기 전 이 땅에서 맡은 일이 무엇인지 규명하면 이 질문의 해답은 나오는 것입니다. 또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 분명하다면 그 일에 충성하여 좋은 결과를 이뤄내면 상급은 응당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7-19)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신자 모두는 불신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았습니다. 때를 얻어나 못 얻어나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롬14:8)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고후2:15,16)를 풍겨야 합니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은 마땅히 신자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고전4:1) 수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4:2) 뿐입니다. 모든 신자가 맡은 직분이 무엇이든 평생을 두고 성실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따라서 천국에서의 상급은 얼마나 이 일에 충성했는지 여부로 달라집니다. 오직 하나님과 본인만이 알고 있고 또 회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방식은 여럿입니다. 물론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말로 풀어서 전하여 상대를 구원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듣지 못하면 복음을 알 수 없고, 또 복음을 알지 못하면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하면 자칫 기독교 교리에 관한 종교 교육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신자더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습니다. 또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서 이웃들에게 거룩한 열매가 맺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신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품성이 성결해지고 삶도 그에 따라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변화된 삶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일에만 전념하면 자칫 도덕군자로서 본을 보인 것에 그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어떤 형식으로든 함께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도와 실제 행하는 모습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살아 생명력이 있는 모습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을 행하는 것만으로 신자가 완전히 충성한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대중을 향해 선포하신 첫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일차적인 뜻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죄에서 회개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 이 땅에 진심으로 회개한 자들로 이뤄지는 천국이 실현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자를 통해서 이 세상을 향한 거룩한 통치를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십자가 구원에서 쉽게 간과하는 측면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구원 받았으니 이제 신자답게 거룩하게 살면서 불신자를 복음으로 초대해야 한다는 면은 너무나 잘 알고 최대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부터 천국이 형성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책임을 맡았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실천을 등한히 합니다. 심지어  이 땅의 천국을 단순히 조직체 교회라고 이해하거나, 그렇게 배워서 오직 교회 활동에만 충성하려 듭니다.

천국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통치하는 장소, 사건, 사람, 공동체 등 모두가 천국입니다. 다른 말로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이 땅에 실현하려고 의도했던 바로 그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입은 인간들로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이브가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하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열심히 낙원을 가꾸었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슨 뜻입니까? 바로 원죄에서 사함을 얻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배반 거역하여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가 다시 회복되어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받은 직책도 바로 불신자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그 화목이 완성되는 것은 신자가 속한 어떤 공동체라도, 단 두 사람의 부부나 친구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죄가 들어오기 전의 에덴동산처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 목적이 이 땅에 기독교라는 종교왕국만, 혹은 착한 사람들로 이뤄진 도덕왕국만, 아니면 그 둘을 합한 왕국을 짓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주인이 되어 거룩하게 통치하는 온전한 의미의 천국을 실현시키려는 것입니다. 신자들을 통해 인류 역사를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이끌어 가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부터 하나님께 구별 받은 자답게 성결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또 삶을 통해 세상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썩지 않게끔 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아가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 받는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변하듯 신자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방식

원죄 이전의 창조 당시로 돌아가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명백히 죄이거나 반기독교적인 일이 아닌 다음에는, 그 일을 통해 천국을 자기 주위에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교수, 예술가, 사업가, 의사, 군인, 경찰, 세탁소나 식당 같은 자영업자 등등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신자다워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그 분야에서 기술, 정직, 신용, 업적 등을 쌓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출세하여 큰일을 담당하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통치를 받는 자답게 모든 면에서 거룩하게, 세상과 구별된 방식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불신자들도 기술, 정직, 신용, 업적을 최고로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선 자신의 형통과 유익을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돈과 자신의 의가 우선적입니다. 신자는 달라야 합니다. 남의 유익과 또 그런 결과를 통해 복음으로 초대하는 것이 우선 목적입니다. 자신의 수고와 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불신자도 때로는 이타적인 목적으로 행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자기 능력에만 의존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계획과 뜻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특별히 죄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신자는 이와는 정반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에만 의지하여서 그분의 거룩한 통치가 자기 가정과 직장에서부터 (교회만이 아니라)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기에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진정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위에 오히려 자기 가진 것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요컨대 신자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신자로 현재의 여건에 처하게 하셨고, 하는 일도 그분이 맡기셨으며, 나아가 범사를 그분이 실제로 주관하시지 않습니까?

예컨대 세탁소에서 열두 시간 일하나 선교사로 아프리카 밀림에서 열두 시간 전도하나 하나님의 일을 수행한 시간과 노력은 동일합니다. 단 신자가 위에서 설명한 대로 맡은바 직책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고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선교사와 동일한 상급을 받습니다.

신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독교왕국이나 도덕왕국 중의 하나만 혹은 그 둘을 합친 것만 세우려 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그려진 십자가 기치를 세상의 누구라도 볼 수 있게끔 높이 올린 온전한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야 합니다. 기독교왕국과 도덕왕국은 하나님 왕국의 일부 측면이자 복음을 증거 하는 직간접의 수단입니다.

신자 개인으로 봐선 그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임하여야 합니다.  복음을 직접 전하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알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오히려 관심과 호기심이 발동하여 복음의 말씀을 먼저 청해서 듣고 싶어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아직 성숙되지 않았더라도 때와 기회가 닿기만 하면 복음을 말로 전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복음을 말로 전하는 것은 학생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예 학생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적이 오르고 대학 입시에 합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부터 성결하게 되고,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속 직업이든 성직이든 자기 하는 일을 통해 세상에다 하나님 왕국을 설립하는 것이 진짜 학생답게 공부를 잘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살펴봅시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나 두 달란트를 남긴 자나 받은 상급은 동일합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25:21,23) 상식적으로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는 큰일에 충성했다는 칭찬과 더불어 더 많은 상급을 받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가 받은 은사와 재능대로 충성했느냐 여부일 뿐입니다.

달란트가 다섯과 둘은 그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수치로 표시한 것뿐이지 하나님이 어떤 이는 더 편애하여 재능과 은사를 더 많이 주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래도 많이 받은 쪽이 열매도 많이 맺게 되어서 천국에서의 상급도 그 편애한 대로 많이 받게 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편애가 천국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신자라도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 있는 양 대우하셔서 은혜와 권능을 베푸십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해 신자가 천국에서 받을 상급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에서 그분께 받은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자신의 직업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태하지 않고 얼마나 성실하게 드러냈느냐 여부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전임사역자와 평신도 간에 그 맡은 일 때문에 상급의 차이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전임 사역자가 충성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더 많을 것이므로 상급도 많아지겠거니 쉽게 오해해선 안 됩니다. 사역자의 경우는 자신의 종교적 실력과 영성을 자랑하고픈 욕심이 앞서며, 자연히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여 하루 빨리 실적을 쌓으려는 야망이 작용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마디로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속 직업을 통해서. 꼭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온전한 겸손과 참 사랑으로 이웃을 섬겨서 기쁨과 유익을 주면 그만큼 하나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  

신자가 정작 받아야 할 상급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천국의 상급을 자꾸만 전도 실적과 연관시켜선 안 됩니다. 물론 전도를 등한히 하라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이미 비유한대로 학생은 당연히 공부해야 하듯이 신자라면 마땅히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곰곰이 따져 보십시오. 작금 기독교의, 특별히 개신교의 부흥이 주춤하게 된 까닭이 전도를 등한히 해서겠습니까? 신자가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해서겠습니까? 아무래도 후자가 아닙니까? 실제 전도는 개신교만큼 열심히 하는 종교도 없지 않습니까? 욕을 먹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전도하는 만큼이라도 바르게 살지 못하니까 오히려 역효과를 빚고 있지 않습니까? 마침 이번 주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개신교가 반성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또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천국 상급과 연관해 정말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측면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예수님이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가장 강조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참는 자는 천국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가올 핍박에 대비해서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핍박이 너무 심해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믿음을 타협, 수정, 포기만 하지 않아도 천국 상급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대환난이 닥치고 적그리스도 나타나면 아예 복음을 말로서도 전하지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북한이나 이슬람 지역에선 그러합니다. 주일 예배는 꿈도 꾸지 못하고 성경도 없이 쪽지에 적힌 말씀을 숨어서 혼자 보고 기도하는 북한의 지하 교인과 세계적인 초대형 교회에서 온갖 감언이설(?)로 자기 교회로만 인도하는 남한의 전도 왕 신자와 천국에서 누가 더 상급이 크겠습니까?

나아가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심지어 기독교 교세가 주도적으로 왕성한 나라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할 과제는 종종 발생합니다. 우선 인생의 목표와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르게 사는데 따르는 박해입니다. 좁고 협착한 길을 가기 위해서 온갖 수고와 희생과 손해를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려야 합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비방, 조소, 멸시, 교제를 멀리하는 일에도 넉넉히 이겨내어야 합니다. 평생을 두고 머리 둘 곳이 없어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독한 행군을 해야 합니다.

자유 국가에서의 핍박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작금 기독교계 내에서조차 예수님의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부인하는 사조가 대세를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진화론마저 인정하고 동성애자를 목회자로 안수합니다. 낙태, 생체복제, 안락사, 전쟁, 테러, 결혼, 가정, 직장 등의 윤리에 절대적 기준이 상실되어 갑니다. 기독교가 절대적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세상의 인간들이 고안해 낸 종교 사상이나 도덕 철학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오류성을 기독교인들 스스로 나서서 주장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말하자면 골고다 십자가의 예수님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절대적 구속 원리와 그 뜻을 밝혀놓은 그분의 절대적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수호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인류 구원의 복음을 제대로 지키기만 해도 상급을 받을 판국입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편지가 바야흐로 현대 교회 앞으로 배달된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질문

“천국을 믿고 그 영원한 영광이 이 땅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임을 아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해 주셨지만, 질문자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질문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됩니다. 말하자면 천국 영광이 이 땅의 어떤 것보다 더 좋고 크다는 것을 제대로 안다면 이 땅에서 안락한 삶에 머무를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만약 머무른다면 단순히 교리로 듣고 배워서 아는 것이지 십자가 복음 안에 제대로 들어온 신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기야말로 죽어 마땅한 천하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하여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를 받은 체험을 한 자는 사나 죽으나 자기를 대신해 죽은 그분을 위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 전도에 나서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 같은 사도들은 초대 교회를 세우기 위해 특별히 선교사로 부름 받은 종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평신도더러 바울 같이 살아야만 한다고 요구도 하지 않으며 또 그래야만 상급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남은 일생을 바치겠다는, 당장 여유와 시간이 부족해 실천은 더디더라도, 각오와 태세는 갖추게 됩니다. 아니 이전과 같이 세상에서의 형통과 안일만 목표로 하는 삶을 청산하겠다는 결단은 하게 됩니다. 그 존재가 죄악에서 의로, 삶이 흑암에서 빛으로, 인생이 사단의 종에 묶여 있다가 주님과 동행하는 자로 바뀝니다.

그럼에도 질문하신 것처럼 교회 안에 그런 교인들이 많은 까닭은 순전히 교회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전도할 때부터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고 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자기 교회로만 끌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믿게 된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가 믿어줬으니 믿은 보상만 내어 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자기 옛사람이 완전히 죽었다 새사람으로 거듭난 체험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이 단지 교리로 머리에만 머물러 있지 실제 신자에게 어떤 영적인 영향력도 끼치지 못합니다. 기독교가 참 생명의 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처럼 자기 정성을 바쳐서 복을 받고자 하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는 입학만 하면 당연히 졸업도 될 것으로 믿고  마음 놓고 놀고먹기로 작정한 학생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학생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학교가 더 문제입니다. 거듭난 신자가 천국 상급을 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고 그 구원이 취소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천국 구원을 준다고 하니까 그렇게 믿기로 한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완전히 항복하여 철두철미한 죄인임을 실토한 체험, 즉 성령으로 거듭남 없이도 구원을 준다고 바겐 세일한 가짜 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신자는 천국 상급에 구태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뿐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하던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며, 말로 복음을 전하고, 불신자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소속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실현해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공정하신 분입니다. 자신의 독선에 따라 편애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천국의 상급은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충성하는 자에게는 충성한 만큼 상급이 풍성하고도 공정하게 예비 될 것입니다. 신자는 오직 죄악의 유혹을 뿌리치고, 세상의 핍박을 이겨내며, 천국 통치를 실현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게으르지만 않으면 됩니다. 또 그럴 수 있는 길은 바로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 가는 것뿐입니다.

2/20/2009
  

한 가지 첨언 할 것이 있습니다. 영광(Glory)이라는 용어는 반드시 하나님께만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신자가 천국에 가더라도 영광 자체를 얻지는 못합니다. 영광은 하나님이 현현(顯現-직접 나타나심, Theophany) 하실 때에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광채가 함께 임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광을 어느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나눠주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소망하거나 바라볼 수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신자가 천국에 가면 구원이 완성되어 영화롭게(榮化 Glorification) 되기는 합니다. 천상의 영적 존재처럼 변하고 죄의 본성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서 더 이상 죄와는 아무 연관이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선 숨겨져 있거나 드물게 보던, 혹은 드러나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그분의 영광을 천국에선 항상 접할 수 있게 됩니다.

너무 까다롭게 따지는 것으로 오해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말은 사상을 전하는 매개체 내지 통로입니다. 알고 있는 내용이 정확하면 사용하는 말도 정확해질 것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정확하게 알아 우리 믿음을 견고히 하자는 뜻일 뿐입니다. 질문자님도 사실은 영화롭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입니다만, 방문하신 독자님들의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잔소리처럼 덧붙였습니다. 너그러운 양해 바랍니다.

아가페

2009.02.21 09:43:58
*.216.87.236

좋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말이 안돼는 질문이긴 하지만
신자들의 삶에 믿음따로 행동따로의 모습이 너무 통탄스러워 그랬습니다.^^;;
정말 천국을 믿는다면 교회에서처럼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빛으로 살아가겠지요..

지적해주신 "영광" 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궁금한것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데살로니가후서 1장 12절말씀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영어 성경에서도 "we also receive glory through what he has done"
여기서 성도들이 영광을 얻는것은 다른 의미로 봐야하는 것인가요? ^^;;




운영자

2009.02.21 13:40:03
*.108.164.34

아가페님!
질문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질문의 앞뒤 서술이 논리적으로 서로 모순이 있다는 뜻이었지
질문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첫 표현에 오해가 있을 소지가 있어서 다시 조금 고쳐놓았습니다.

영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의도는 원칙적으로 영광이란 단어 사용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후 1:12도 천국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성도들이 영화롭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1: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를 한 번 더 부연 설명한 내용으로,
"주 예수의 이름이" 먼저 영광을 얻는데 반드시 "너희 가운데서" 얻는다고 반복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그 안에서" - 즉 주 예수 안과, 또 그분 안에서 성도들이 끝까지 견더낸 믿음 안과, 나아가 재림이라는 영광스런 사건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재림 시에 남아 있는 성도들은 자연히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김형주

2009.02.22 07:36:13
*.173.42.18

아멘!!!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내가 속한 직장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샬롬!!!



아가페

2009.02.22 12:59:13
*.216.87.227

아~~ 그렇군요!! 제가 어릴때부터 "영광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서(오해는마시구요!)^^;; "영광"이라는 단어에
유독 관심이 많습니다. ^^
그래서 저에겐 끝까지 포기하고싶지 않는 교만함이 있는것 같습니다.^^;;
제가 말했던 영광이란 단어는 빛이 발하는 것의 의미라기보다는
(honor) 의 뜻으로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늘 단어 하나하나 주의해서 사용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김형주님을 통해서 속한 직장과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형상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보라 내가 속히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 계 22장12절"

사라의 웃음

2013.02.05 22:31:25
*.109.85.156

학교에서 그저 놀기만 해도 졸업장을 준다며 공부하지 않아도 그냥 학교만 다니라고 가르치는 그런 학교와 같은 교회, 잘못 가르치기에 잘못 배워서 천국을 그냥 보험료 납부하 듯 헌금하고 맘 편히 세상 것 더 좆아 다닐 수 있는 것은 그렇게만 해도 졸업장 받듯 천국 갈 수 있다라는 믿음 아닌 신념을 배워온 탓인 것을요~~

아니면 도덕학교처럼 졸업장은 예비되었으니 세상에서 착한 일, 또 열심히 전도하는 일, 종교적인 일에만 열심을 내면 좀 멋진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라 가르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구원받아 이제 빛이라, 소금이라 말씀하신 그 말씀이 믿어지게 되기까지 또 말씀으로 지속 가르쳐 주시어 변화시켜 가시려는 아버지 맘을 정말 잘 가르쳐 주는 그런 교회가 점점 더 많아지길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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