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하나님

조회 수 33 추천 수 0 2018.06.07 08:32:53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하나님 

출애굽기 강해 (5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7-10)

 

내가 하는 대로 두라.

 

하나님이 출애굽 당일에 이스라엘더러 애굽의 은금패물을 취하게 하신 데는 심오한 뜻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언약궤를 금으로 제작하라는 것이다. 그 소중한 금으로 이스라엘은 황소 우상을 만들어 음란하게 섬기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고 하나님은 격분하여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고 선언했다.

 

오죽하면 모세더러 내 마음대로 할 테니 절대 말리지 말라고까지 했다.(10절) 모세가 틀림없이 용서해달라는 중보 기도를 할 줄(11-13절) 아셨던 것이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줄 것이라고 미리 못 박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분명히 그 정도가 과했다. 그럼에도 어찌 보면 하루 저녁 일탈로 봐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모세가 40일이 지나도록 기별이 없어서 그랬다. 그런 사정들을 감안해 크게 한 번 야단치고 용서해주어도 되지 않는가? 신약의 예수님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흔히들 가나안 정복 때에 하나님이 어린이까지 진멸하라고 명령했기에 기독교 외부에서 당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이방 족속을 다 죽일 수 있는가? 기독교의 신은 너무 냉혹 잔인하다고 비난한다. 그에 대해 많은 신자들이 제대로 변증도 못할 뿐 아니라 많이 당혹해 한다.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자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망한다고 즉, 너희 비난은 아예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이스라엘도 4절과 본문 9절에서 우상을 만들어 놓고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말했다. 애굽의 우상 신이 애굽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스스로 분쟁하여 망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의 부하 즉, 귀신이라고 악의를 갖고 매도했다. 지금 이스라엘도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우상 즉, 사탄의 부하 수준으로 비하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성령을 훼방하는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정죄했다.

 

지금 신구약의 하나님이 동일한 죄에 대해 동일한 심판을 내렸다. 만약에 본문의 여호와가 잔인한 하나님이라면 예수님도 잔인한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 반대로 예수님이 자비하시다면 여호와도 자비하신 분이어야 한다.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이 결코 다를 수 없는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하나 있다. 인간이 죄악을 저지르는 양상이 시대와 인종을 불문하고 항상 똑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방식도 항상 똑같을 수밖에 없다.

 

진멸할 대상이 누구인가?

 

정작 본문의 사건에서 놓쳐선 안 될 사항은 따로 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진멸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진멸을 당할 대상이 누구인가? 바로 당신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이다.

 

말로만 엄포를 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께서 진멸한 대상은 이방족속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다. 본문에 이어지는 14절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어서 여호와가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화를 백성에게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28절에는 삼천 명 가량이 칼로 도륙을 당하는 심판을 받았다고 한다.

 

전체 2백만 중에 아주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다음번에 설교로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우상 숭배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진멸되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공평정대하다. 하나님이 뜻을 바꾼 것은 언약 백성으로 계속 남아있게 해준 것이지, 죄에 대한 심판을 취소한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직접 손을 들어서 치신 족속은 이스라엘이다, 대표적인 예를 둘만 들어보자. 민수기 16장에 고라당이 모세의 지도력에 반발하자 땅을 갈라서 산 채로 매장시켰다. 동조했던 제사장 250명을 성막에서 나온 여호와의 불이 그 자리에서 태워 죽였다. 다음날 백성들이 모세에게 너무 심한 벌을 내렸다고 원망하자 염병으로 147,000 명을 죽였다. 민수기 25장에는 거짓 선지자 발람의 유혹에 넘어가 바알브올 우상에 숭배한 자들 24,000 명이 염병으로 심판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 냉혹 잔인했다. 누구에게? 이스라엘이 대상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기에 공평하게 그대로 심판 받은 것이다. 이방 족속 중에 당신께서 직접 손을 들어서 친 것은 애굽뿐이다. 그것도 열 번을 참아주시고 그 전에 계속 경고한 후에 그랬다.

 

고대 전쟁에선 패전국을 무참하게 약탈하는 것은 관습일 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선 일종의 정의(正義)로 간주되었다. 지난주에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종교교육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치르는 방식도 그랬다. 출애굽 후에도 천부장 백부장 같은 가장 기초적인 행정 체계도 갖추지 못한 노예 집단이니 애굽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가나안 전쟁 때에는 이스라엘이 진멸하지 못한 종족들이 많이 남아서 이스라엘에게 계속 골칫거리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것까지 다 감안하시고 율법에서 그들을 사랑으로 다루라고 지시하셨다. 이방 족속을 진멸하는 것 자체가 그분의 뜻이 아니었다.

 

진멸하겠다는 뜻은?

 

하나님은 당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방 족속을 진멸하는 분이 아니다. 당신의 백성은 사백 년이나 타국의 종살이로 고생을 시켜가며 가나안 족속이 회개하도록 기다려주셨다. 이스라엘에게 극도의 잔혹한 죄악을 범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구원을 베풀려 하자 요나가 하나님께 반발했다.

 

구약성경 내내 이방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지배국인 이방이 피지배국인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형통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을 따르는 의인은 고통만 겪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인이 도리어 형통하는지 하나님께 따졌겠는가? 그것도 대적이 쳐들어오는 것이 심히 두렵다는 하소연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가나안 전쟁에서 어린이까지 진멸한 것은 한두 번 말씀드린 대로 성적으로 타락의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최근 그 지역에서 성병으로 인한 불구 불치병을 지닌 어린이 유골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미국은 알다시피 아동 포르노를 제작하면 아주 중한 벌에 처하고 인터넷으로 아동 포르노를 다운 받는 자도 큰 벌을 받는다. 종교적 계명을 떠나서 인간적 상식으로도 있을 수 없는 천벌을 받을 짓이라는 뜻이다.

가나안에선 부모의 추악한 행위를 자녀들이 자연히 본받는 차원을 넘어서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가 만연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는 절대 오류가 없다. 사적인 감정도 눈곱만큼도 개입되지 않는다. 오히려 본문에서처럼 당신의 백성들을 감정적으로 대하신다.

 

구약성경의 진멸하겠다는 표현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원어의 뜻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신명기 2:16의 우리말 개역 성경에는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진멸된 후에는”라는 표현이 나온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거역한 일 세대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 광야에서 40년 간 방황하다가 모두 죽었다는 뜻이다.

 

이 때 그들은 고라당이나 발람 사건 때처럼 하나님께 직접 잔인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다. 주리지도 않고 발도 불러터지지 않은 채 자기 수명대로 살다 자연사 했는데 진멸했다고 표현했다. 오늘 본문의 진멸과는 동사가 다르지만 그 뜻은 똑같다. 끝까지 소진되는 것, 완전하게 종결짓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다 없어지는 것은 맞지만 잔인성과 폭력성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성 충족성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전도 방식

 

분명히 주지해야 할 사항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멸 대상은 이방 족속은 당연히 아니고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도 아니다. 그분에게 인종적 종교적으로 사람을 차별할 뜻은 추호도 없다. 오직 죄악만이 그분의 진멸 대상이다.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아이들까지 진멸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그 땅의 더러운 죄악에 절대로 오염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백성들이 반드시 거룩해져서 그 땅에 거룩한 당신의 나라를 세우라라는 열망의 표현이다. 그만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당신의 백성들께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분의 관심은 모든 열방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진다. 애굽, 니느웨, 가나안이 그분의 사랑 밖에 있었던 적이 한 시도 없다. 애굽을 사랑하셨다. 그러니까 열 번이나 기다려준 것이다.

 

대신에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모든 나라에게 일시에 무조건 다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다. 먼저 가장 숫자가 적은 민족인 이스라엘을 택해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실제로 온전히 체험케 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주위에 나눠주고 주변 종족들도 그 큰 사랑 앞에 엎드리게 하는 방식으로 열방을 사랑하신다.

 

가장 적은 나라이니까 정말로 하나님께 매어달릴 수밖에 없다. 또 그분의 사랑을 실제로 체험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고 알아야 주위에 전할 수 있다. 그래서 구약 시대 내내 하나님은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셨다. 출애굽 같은 표적으로 당신을 완전히 드러내어 보고 만지게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서 사람들의 정성만 받는 분이 결코 아니다.

 

열방을 그런 방식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스스로 완악해져 하나님의 긍휼을 끝까지 거부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애굽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그 땅의 노예로 살게 하고 또 열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어떡하든 애굽더러 당신의 사랑을 깨달으라고 말이다.

 

십계명은 물론 율법 전체를 한마디로 줄이면 이스라엘더러 제발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뜻이다. 또 그래야 자기들이 맡은 제사장 나라의 소명을 잘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태여 그들이 목숨 걸고 선교할 필요는 없다. 다른 신들은 없다. 여호와 안에만 있으면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부어주시고 다른 민족들이 그 모습을 보면 자연히 여호와를 알게 된다.

 

아주 간단한 이치다. 모든 종족더러 우상 숭배를 하지 말게 하려면 이스라엘부터 우상 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도 방식이다. 또 이스라엘이 여호와 안에만 있기에 전도는 하나님이 하는 셈이다. 그래서 아무리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라도 우상숭배를 하면 철저히 진멸할 수밖에 없다.

 

가장 자비로운 여호와

 

기독교 외부에서 어린이까지 죽이는 잔인한 여호와라고 비방함에 신자들이 기죽거나 당혹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은 그 정반대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구약성경을 읽는 모든 이가 신자까지도 여호와가 무섭다는 반응을 보인다. 구약은 누구에 대한 기록인가? 이스라엘이다. 그럼 이스라엘을 더 무섭게 다루시는 여호와이지 않는가?

 

이 간단한 원리를 누가 모르는가? 불신자들이야 성경을 잘 모르고 주워들은 몇 가지 풍월만으로 여호와를 잔인하다고 비난한다. 성경을 읽는 자들은 신자다. 신자들이 그 원리를 모르고 있다.

 

신자들이 구약의 여호와를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에게 엄격히 대하는 여호와를 성경 안에서 발견했다. 그 이유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소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이고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다. 또 오늘의 본문처럼 하나님이 참다 참다 못해 벌을 내리심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도 평소에 불신자들 앞에 복의 근원으로 서있지 못한다. 때로 이스라엘처럼 세상으로 돌아가는 죄를 짓는다. 이러다 하나님께 큰 벌을 받지는 않을까 불안감이 슬슬 스며든다. 또 그래서 가능한 벌을 적게 받았으면 싶은 마음까지 든다. 큰 벌을 받을 죄는 짓지 않았다면 혹시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신자에겐 채찍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는 당근을 주어야 한다고 반발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가 연약하고 현실의 고난도 많아서 그런 심정이 드는 것은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에게 그런 불안감이 들거나 아니면 요나처럼 따지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우리 신앙에 완전히 거꾸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한다.(살전5:22)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했고(히12:4), 만약 그 일에 실패하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데 그래야 친 백성이고 징계가 없다면 사생자 남의 집 자식이라고 했다.(히12:8)

 

구태여 성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속담에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는가? 배불리 먹게 하면 나태해져 공부를 게을리 하게 되고 그러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세상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 그러지 않는다. 잠언이 말하는 바대로 자식을 초달하며 사랑의 매로 키우라는 뜻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방이 아닌 이스라엘을 진멸하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고통과 벌인가? 아니면 축복이자 은혜인가? 초등학생이라도 그 정답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작금 공부는 하기 싫으니 떡만 달라고 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게으름에 빠지고 성화와 소명을 실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아가 자기가 받을 떡을 자기가 가능한 크게 정해서 뜨겁게 기도해서 얻어내는 것을 두고 믿음이 좋다고 가르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지난 주 말씀대로 하면 자기 마음대로 따라줄 신을 자기가 만든 셈이다. 오늘 본문으로 치면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진멸해달라고 머리를 밀어 넣는 꼴이다. 죄송하지만 그러니까 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두고 무섭다는 인식 밖에 못한다. 구약성경에서 자비한 하나님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 어떤 신들보다 최고로 자비하다는 것을 설명한 종교 경전이 바로 구약성경이다.

 

죄책감이 더 늘어나는가?

 

하나님의 진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것은 아주 심각한 말이다. 우리 모두가 어쩜 더 기가 죽을 수 있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이겨본 적이 당장 저부터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교회의 주일 예배 대표 기도에는 꼭 지난주에 하나님을 멀리했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고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한다. 일 년 52 주에 한 주라도 빠지는 적이 없고 또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아멘 한다. 그럼 우리 모두가 진멸되어야 할 대상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진멸이라는 용어를 본문의 사건에서 최초로 사용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배워왔듯이 그 전에도 이스라엘은 여러 번 하나님을 거역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끌고 간 상황과 여건이 너무 괴로워서 불평하고 원망한 것이다. 직접 우상 숭배를 한 것은 본문 사건이 최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죄를 딱 한 번이라도 짓자말자 바로 진멸하겠다고 한다. 구약 시대의 심판의 첫째 원인도 전부 우상 숭배 때문이었다.

 

무슨 뜻인가? 역으로 말해 우상 숭배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진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약과 구약의 하나님은 신자로 죄책감을 키워서 기를 죽이시려는 분이 결코 아니다. 본문 사건에서도 엄밀히 말해 하루 저녁 우상 숭배했다는 것 자체가 진멸의 원인은 아니다. 출애굽에서 당신께서 어떻게 구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면 절대로 금송아지 앞에서 춤을 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러분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만 머무르면서 하나님을 전혀 쳐다보지도 못한 채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건너뜀으로써 구원 받았다.

 

제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상 신들과 무엇이 다른지 깨닫게 해주려는 뜻이었다. 애굽과 함께 우상숭배에 동참했기에 이스라엘도 애굽과 똑 같이 죽어 마땅했다. 그러나 단지 그들이 너무 작은 민족이라 불쌍하여 선택하여 언약을 맺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목숨을 살려주었다.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이 지금껏 우상숭배 했던 죄마저 용서해주었다. 앞으로는 다른 모든 죄는 용서해주어도 우상 숭배 죄만은 제발 짓지 말라는 뜻이다. 오직 양의 피의 공로에 따라 하나님의 무조건 용서해주는 사랑 안에 들어왔으니 그 품을 절대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신은 아예 없으니 섬길 생각도 말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신앙의 본질

 

예수를 믿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 지금 당장 하나님이 내 생명을 앗아가도, 본문 식으로 말해 그분께 진멸을 당해도, 나에겐 변명과 핑계 거리가 단 하나도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일 년 52주 내내 죄 사함을 구해야 할 만큼 죄가 일상화 되어서인가? 아니다. 우선 욥처럼 내 생명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고 그것을 앗아갈 이도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 앞에 우리 연약한 피조물로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거기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우상 숭배의 죄에 빠져 있을 때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나를 거듭나게 해서 그분의 사랑 앞에 그분께서 나를 완전히 항복시켰다.

 

그 처음 믿은 이후로는 계속해서 주님의 사랑이 내 인생을 꽉 붙들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서 눈을 뜰 것을 확신하고 있고 그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다. 당연히 이 땅에서의 어떤 큰 고난 중에도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

 

예수 십자가가 왜 좋은 소식이 되는가? 내가 생각해도 부끄럽고 뻔뻔스럽게도 지난주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매주 반복해서 간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교회에 출석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런 기도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기뻐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확신하고 또 오직 그분의 피로만 구원 받았기에 그 피의 공로에 힘입어 기도한다는 것이다.

 

예수 믿은 후의 신자의 일생은 예수님의 사랑의 품 안에 붙들려 있다. 그 분과 나 사이에는 그분의 사랑 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즉, 그분 앞에 이스라엘처럼 우상을 세울 수는 절대로 없다. 비록 세상의 유혹에 잠시 넘어가긴 해도 그 중심에 예수를 모시고 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불신자 시절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예수님의 새 생명이 그 안에 있기에 그런 생각조차 아예 할 수가 없는 신분이 되었다.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어서 하나님의 징계를 수시로 받고 있지만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언젠가는 반드시 주님을 닮아가게 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에 동참시켜 주신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셔서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승리하는 일도 가능케 해준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와 권능을 갖는다. 실제로 내 속에 예수님이 와계신다. 그분의 권능과 사랑이 우리가 모든 것 내려놓고 오직 그분만 따른다면 우리에게 그랬듯이 당신의 사랑으로 내 주변 사람도 완전히 뒤집어서 새 생명을 심어주고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신다. 최소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기에 세상의 어떤 것, 특별히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또 그것이 여호와가 이방 족속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면 반드시 진멸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한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그분의 사랑과 권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바꿔 말해 여호와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다.

 

5/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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