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같은 상황에서 다른 명령을 내렸는가?

조회 수 431 추천 수 11 2013.01.04 21: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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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같은 상황에서 다른 명령을 내렸는가?


[질문]


“잘못 가르쳐진 성경” 사이트의 “#19 여호와를 믿지 않은 모세(?)”의 글을 보고 질문 드립니다. 모세더러 말로 명하여 물을 내라는 민수기 20:8과는 다르게 출17:5-6에선 반석을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명령을 주셨습니까?

[답변]

“엿장수 마음대로” 같은 하나님


동일한 상황 같은데도 각기 다른 명령을 주신 이유는 오직 하나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인간이 아니십니다. 그분만이 영원히 자존(自存)하십니다. 만물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영향도 전혀 받지 않습니다. 만사를 자의(自意)대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마치 엿장수가 1 분에 가위를 몇 번 짤각거리는지, 어떤 기준으로 엿을 얼마나 잘라주는 지는 오직 엿장수 마음대로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 엿장수는 얼굴이 예쁜 아이에게 더 많이 줄 수 있고, 기분이 나쁘면 평소보다 박하게 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경우는 분위기나 기분에 휩싸여 불공평하게 역사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거기다 당신의 자녀가 된 신자에게 가장 유익하며 거룩하게 만드는 길로만 역사하십니다.  

바꿔 말해 모든 경우에 공통적으로 통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없다는 뜻입니다.(질문자께서 인용하신 상기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며 은혜와 권능을 베푸시는 모습에서 단 하나라도 같은 경우는 없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물론 인간 자체가 각기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세상에 오직 그 한사람만 있는 것처럼 각 성도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자 각자를 개인적으로 세밀히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아심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며 또 그 전부를 망라합니다. 신자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왜 어떻게 했는지 그 발단, 진행, 결과를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께서 계획하여 주관하십니다. 모세에게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명령을 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만의 사랑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되도록 하면서 말입니다.

우선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에는 동일 인물에 의해 일어난 사건 내용이 너무 똑 같아 보이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중복된 기사라고 주장합니다. 아니면 두 기록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보고 둘 다 믿을 바 못된다고까지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사건을 듭니다.(창12:10-20 & 창20장)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나라, 지역, 상대한 왕, 진행과정, 결과 등이 다 다릅니다. 잘못을 범한 아브라함이 애굽의 바로나 그랄왕 아비멜렉으로부터 도리어 축복을 받은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도 그 아내와 여종의 태를 열어주는 구체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창20:13)고 변명했습니다. 예쁜 아내와 함께 유랑민으로 두루 다닐 때에 통상 행했던 자구책이라고 말한 것은 여러 번 동일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둘째 사건은 분명 첫째 사건과는 다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17:5-6에선 반석을 치라고 하신 반면에 민수기 20:8에선 단지 말로 명하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혀 별개의 두 사건입니다. 중복된 기사이거나 서로 달라 믿을 수 없는 사건으로 오해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또 언뜻 보기엔 동일한 상황 같아도 자세히 따지면 많이 다릅니다. 별개 사건이라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도 각기 다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주권이라는 근본 이유 말고도 추적해보아야 할 내용이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매정한(?) 하나님

출애굽에 기록된 사건은 하나님이 애굽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게 만드신 이적을 이스라엘이 목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신광야로 들어서자 바로 닥친 사건입니다. 반면에 민수기의 사건은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야에서 불순종한 죄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방황토록 하신 징계가 거의 끝나갈 즈음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입경할 것을 눈앞에 둔 시점입니다. 둘 사이에 40년의 편차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이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첫째 사건에선 짐작컨대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높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바위를 직접 쳐서 물이 나오면 그를 향한 백성들의 신뢰가 아무래도 더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또 바위를 칠 때에도 갈리진 틈새를 골라서 쳤을 것입니다. 모세가 40 년간 미디안 양치기를 하면서 광야의 전문가가 되었음을 확인시킬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광야를 통과할 때에 백성들로 모세의 말에 더 잘 순종토록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바위를 말로만 명하여 물을 내면 어떻게 됩니까? 백성들이 보기에는 모세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또 바위 어느 곳에서 물이 터질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때 모세가 하나님 뜻대로 말로만 바위에게 명했어도 바위 이 곳 저 곳에서 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것도 갈라진 틈새가 아니라 가장 단단하고 반듯한 곳에서 말입니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위를 지팡이로 힘껏 두 번이나 쳤습니다. 어떤 결과가 되었습니까?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온 공로가 몽땅 모세에게 돌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받을 영광을 모세가 가로챈 꼴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의 영광을 절대 남에게 빼앗기지도, 아니 잠시라도 빌려주지도 않습니다.

인용한 제 글에서 밝힌 대로 물론 모세에게는 여러 사정이 있었습니다. 누이 미리암이 바로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미리암은 그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자 여선지자로 동역자였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아주 크게 상심했습니다. 거기다 백성들의 불평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도 40 년 광야 생활 내내 말입니다. 모세가 바위를 두 번 친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백성들에게 화를 낸 것입니다. 지금 그의 나이는 백이십 세가량 되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심하게 경청하지 않고 지난번과 같은 명령일 것이라고 건성으로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을 빤히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얼굴을 대면하며 대화했고 거룩한 율법을 수여받았습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모세가 출애굽 소명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사역하면서 범한 잘못이라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를 벌한 것은 하나님이 정말로 엿장수 마음대로 같아 보입니다.  너무 매정한 하나님 같다는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뜻

이스라엘로 광야 40년간 연단을 시킨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불순종한 세대에게 벌을 주어 광야에서 다 죽게 하는 것 말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새로운 세대를 향한 그분의 뜻이 무엇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1-3)

한마디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지 보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광야 사십년의 시험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모든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로서 순종의 본을 보여야 함에도 그러했습니다. 모세의 개인적 사정을 이해는 해줄만 해도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말씀 바로 앞에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신8:1) 하나님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이 관영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선 더더욱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또 무엇입니까?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 광야의 극악한 환경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로 굶거나 갈하지 않게 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남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고 인도했습니다. 당신의 인도대로만 따르면 생존의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도 당신의 말씀을 순종만 하면 의복도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네 발도 부릍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민수기 사건은 광야 연단을 마치는 졸업시험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 아래 아무 탈 없이 광야 생활을 마쳤기에 그들의 믿음이 성숙되었는지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먼저 그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물이 없다고 단번에 불평만 쏟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갈증이 나서 죽을 지경인데 불평하지 않을 자는 없습니다.

모세는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하자 반석에서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작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졸업시험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순종하는지 보려는 것입니다. 민수기의 기사를 읽는 신자가 흔히 범하는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모세의 잘못을 반석을 두 번이나 쳤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서 화를 내면서 그런 불경스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잘못을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했느냐 여부에 두어야 합니다. 바꿔 말해 설령 그가 화가 난 그 상태로, 하나님을 향한 불평을 내심 크게 가졌더라도, 말로만 명했어도 물은 쏟아졌을 것입니다.    

모세 같은 지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떠하든, 따르는 이들이 어떤 불평을 하던 무조건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했어야 합니다. 아무리 비슷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각기 다르기에 항상 세심하게 그분의 말씀을 경청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매뉴얼에 따라서, 혹은 주문을 외우면 일어나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지도자는 절대로 인간적, 현실적, 기계적 타성에 젖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세 같은 선지자.

첫째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의 출애굽의 이적들을 본 직후로 민수기 사건보다 40년이나 젊었을 때였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명령을 세밀히 경청하고 또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하나님의 명령 자체가 누가 들어도 합리적이었습니다. 물을 내려면 반석을 쳐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십 년 광야의 연단 후에는 모세의 믿음은 백성들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어야 했습니다. 거기다 단순히 지도자로서 실수한 정도를 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가려버렸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했더니 모세도 그에 맞추어서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20:10)고 고함쳤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실감날 것입니다. 백성들은 순전히 모세의 힘으로 물을 낸 것처럼 착각할 것입니다. 인간 지도자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입니다.  모세가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뱉은 말일 수 있습니다. 화가 나서 자기가 지금 말하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전혀 몰랐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선 그를 더 이상 지도자로 세워 둘 순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벌이 모세에게 과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하나님은 물은 내어주었습니다. 지도자에겐 벌을 주고, 백성들은 살려주었습니다. 잘못의 출발과 근본원인은 백성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용서 받을 여지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억울하다고 느낄 만큼 모세에게만 벌을 내렸습니다. 그 후 백성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다시 편하게 먹고 마시며 살아갈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도자는 바로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죽더라도 따르는 이에게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  & 14-15)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지도자들이, 심지어 당신의 친구 같은 모세가 잘못을 범해도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것도 신자의 유익과 성결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영광을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모세가 분명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참 목자가 어떠해야 할지 비슷해 보이는 두 사건을 통해 후대의 성경독자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모세만 대표로 벌을 받고 죄 많은 백성은 살림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까지 예표해 놓았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반석에서 물을 내는 신기한 능력 때문에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큰 역사가 일어나기에 그러합니다. 나아가 인간의 잘못을 대속해주시는 은혜가 민수기 반석 사건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나기에 반석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모세 같은 선지자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신18:18) 실제로 모세는 금송아지 배역 사건 때에 자신은 멸망당하더라도 백성들은 살려달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출32:32) 비록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감정에 잘못 묶여서 큰 실수를 범했지만,. 모세는 분명 그리스도를 닮은 선한 목자였습니다.  

인간이 아니신 하나님은 두 사건에서 인간의 실패와 허물과 죄악과는 무관하게, 정확히는 그것을 초월하며 또 동시에 아우르며 당신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인간의 그것과 다릅니다. 그 가장 달랐던 길과 생각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고 그 의의 공로로 죄인을 구원시키는 골고다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광야 사십년 연단을 거쳐도 여전히 죄 짓기 바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우리 모두나, 또 종교적 타성에 젖어서 마치 자기 공로로 교회를 부흥시킨 것 같이 교만에 빠지는 영적 지도자도, 모든 소망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만 두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반석에서 물을 내는 두 사건에도 십자가 복음은 보석처럼 숨겨져 있듯이 말입니다.    

10/2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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