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 낀 목사

조회 수 166 추천 수 11 2013.02.19 20:30:44
역마살이 낀 목사


목사가 할 말이 절대 아니지만 역마살이 끼였는지 저희는 이사를 참 자주 했습니다. 한국에 살 때부터 헤아리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랍니다. 이제 23년째 접어드는 미국 생활 중에 부동산 투기군도 아닌데 집을 사고파는 것만 벌써 네 번이나 했습니다. 중간에 세 번 아파트에서 살았던 것까지 치면 미국서만 이사가 이번으로 6번째이니 이삿짐센터를 차려도 될 정도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집에서 가장 길게 약 12년 살았던 것으로 위로를 삼습니다. 처음 살 때부터 뒷마당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기에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부동산을 거래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거기다 불경기로 매매가 저조해 팔려고 내어놓은 지 근 반면 만에 이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그 동안 다른 힘든 일도 겹쳐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습니다. 집을 팔아야 할 형편이 된 것은 분명한데 새로 이사 갈 장소와 집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저희 나름대로 온갖 궁리를 하며 이곳저곳의 여러 집들을 알아봤지만 이 조건이 맞으면 저 조건에 걸리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해 놓으심은 우리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혀 계획치도 않은 곳에 자그마하고도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어떤 동네를 다니는 중에 마침 오픈하우스를 하고 있어서 한번 들러나 보자는 심경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다른 집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아 LA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너무나 아름다운 전망에다 하루 종일 햇살이 비취는 아주 밝은 아파트였습니다. (제가 남자에겐 드문 골연화증인지라 햇볕을 많이 쬐어야만 합니다.)

비교적 넓은 집에 살다가 방 두개짜리 아파트로 이사 오면 아무래도 서글픈 기분이 들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이전 집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외출하면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전망이 좋습니다. 거실에 앉으면 기분이 저절로 아늑해집니다. 거기다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저희들의 여러 사정에, 금전적 문제뿐만 아니라, 가장 적합했습니다. 집사람과 저로선 주님의 세밀하심과 완벽하심에 새삼스레, 너무나도 당연한데도, 놀래며 감사했습니다. 왜 그리 오래 동안 집이 팔리지 않나 원망마저 했었는데 오히려 꼭 그렇게 지체되었어야만 했던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발견하고는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고도 못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니라.”(잠16:9)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아는 말씀이자 목사로서 자주 가르쳤는데도 막상 본인에겐 적용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일단 자기 생각으로 경영한 후에 기도했으면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텐데도 아등바등 애쓰다가 일이 다 마무리되고 난 후에라야 하나님의 선하심을 겨우 깨달으니 말입니다.

서두에 역마살이 낀 목사라고 반기독교적인 표현을 했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목사라면 오히려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로 평생을 복음 전하느라 땅 끝까지 다녔지 않습니까? 그 위대한 사도에 비견할 수는 없어도 말씀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언제 어디서든 응해야 하고, 또 교인들을 심방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돌아다녀야 합니다. 최소한 조국과 미국과 열방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은 물론, 곳곳에 계신 지인들을 위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 전의 저는 현실적 형통을 위해 오직 제 계획만으로 이사 다녔습니다. 예수 믿은 후에도 여전히 피치 못할 개인적 형편으로 이사했지만, 궁극적으로 범사가 그분의 주관 아래 있음을 압니다. 이사할 때마다 주님의 고유한 뜻과 은혜를 깨달을 수 있었으며 제 사역에 나름 반영했었습니다. 이번에도 말씀드린 대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하나님의 진정한 역마살(?)을 실천하려고 소망해봅니다. 제 현실적 사정과는 관계없이 그분의 사역을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열심히 준행하는, 그러면서도 거처를 옮기는 이사가 아닌 저 자신을 바쳐 성실히 순종하는 역마살을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더 이상 이사 다니지 않는 형편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개업한 이삿짐센터는 6학년(?)이 지나서인지 힘에 많이 부쳤습니다. 일례로 미국에선 쓰레기를 종류별로 꼭 갖다 버려야 할 곳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것 처리하는 데만 엄청 힘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금 주신 장막이 저와 집사람 둘이 살기에 너무 적합하고 주위 동네 분위기도 아주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새로 주신 장막이 저의 마지막 사역의 거점이 되기를 소원한다는 뜻입니다. 이 또한 저의 생각하는 바에 지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는 아주 다를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2/7/2013

(첨언)

이사하기 하루 전부터(1/30) 어제까지(2/6) 약 일주일간 인터넷과 차단된 상태로 있어 보니, 저희 홈피만 아니라 일상적인 일조차 진행되기 힘들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그 와중에 이사하고 정리하느라 몸은 고달팠지만, 신경 쓸 데가 없어서 마음은 모처럼 느긋하게 휴가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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