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을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습 1:7,12)
스바냐서는 임박한 “여호와의 날”에 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때 심판 당할 자는 여호와께서는 복도 화도 내리지 않는다고 심중에 스스로 이르는 자, 즉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이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그런 자를 등불을 들고 찾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 중에 찾는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통과하여 성령으로 구원을 인치신 자를 징계는 하실지언정 그 구원을 취소하여 심판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도 스스로 심중에 이른다는 것은 그렇게 믿는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역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믿는 자는 벌써 신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 또한 이 말씀을 정말 두렵게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징계를 두려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찌끼같이 가라 앉을 때를 두려워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은 도리어 형통케 하고 나 같은(?) 의인은 아무리 기도하고 봉사해도 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습니까? 그런 불평이 길어지면 아예 일상의 삶과 교회 생활과는 따로 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 일생의 구체적인 여정과는 아무 상관 없고 오직 도덕적, 인격적으로 착해지고 죄만 안 지으면 신자의 임무를 다한 양 기도, 예배, 섬김의 생활에 활력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본문에서의 찌끼는 원어상 포도주의 가라 앉은 앙금입니다. 그 찌끼는 가만히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좋은 포도주를 나쁘게 만듭니다. 하나님에게 실망하여 불평과 의심에 가득 차서 탈진해 있는 자는 자신 뿐 아니라 주위의 성도들에게마저 영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내로 인해 남편이, 남편으로 인해 아내가, 부모로 인해 자녀가 모두 찌끼같이 가라 앉게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에 합하지 않을 때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착하게 살지 않거나 이웃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이차적인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때는 신자이면서도 찌끼같이 가라 앉아 있을 때입니다. 신자 본인의 유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찌끼같이 가라 앉아 있습니까? 단순히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보아 성령이 쉽게 충만해지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복도 내리고 화도 내리시는 분인지 심중에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그분이 진정으로 현재 내 모든 삶을 주관하고 있는지, 비록 내 삶이 화 중에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 가진 모든 것을 그분에게 내어 드리고 있는지, 심지어 지금 찌끼같이 가라 앉은 내 심령마저 그것을 소생케 할 힘이 내 노력이 아니라 그분의 긍휼뿐임을 믿고 내어드리고 있는지...
12/15/2005
찌끼같이 내려 앉아서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스란히 아뢰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하지 않는 신자를 찾아 다니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때문에 지금 찌끼같이 내려 앉은 이 심령을 그 분의 긍휼하심 앞에 조용히 내려 놓습니다. 소생시켜 주십사고 조용히 내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