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말3:13-15)
말라기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마지막(9번째)으로 불만을 토로한 내용입니다. 사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동일한 주제의 불만으로 “현실에서 악인이 창성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도대체 뭐냐?”라는 것입니다. 모든 세대 신자들의 영원한 불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에 가장 결정적으로 잘못을 범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생각 안에 가두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초월자이자 인간의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불만의 경우에 하나님 입장에서 본 결정적 잘못이 무엇이겠습니까? 감히 하나님에게 불만을 터뜨린 것이겠습니까? 그러면 여전히 하나님을 무조건 믿어라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에서 형통하는 자들을 교만한 악인으로 보았습니다. 역으로 따지면 자신들은 겸손한 의인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본 교만과 겸손, 악인과 의인의 기준이 인간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쁜 행동이나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악인이요, 예의 바르지 못하고 자신을 높이는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에는 모든 인간이 죄인입니다. 의인과 악인을 죄의 기준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자가 죄인이므로 당신 앞에 긍휼을 바라며 엎드리는 자가 겸손한 의인이 되며 하나님 앞에 자기는 감히 의인이라고 자랑하거나 당신을 전혀 찾지 않는 자가 교만한 악인이 됩니다. 성전에서 가슴을 치며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는 세리가 의인이요 감히 십일조와 구제에 열심이었다 큰소리 치는 바리새인이 교만한 악인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만을 터트린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기들을 의인이라 칭한 것이 잘못입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취할 태도와 자세는 오직 하나입니다. 무조건 복종 혹은 맹신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도저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기에 그분의 처분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통하려는 자들은 교만한 악인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할 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언제, 어떻게 다루든 그것 역시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속합니다. 신자는 오직 자신과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만 그분의 뜻대로 바로 세우면 됩니다. 그래서 신자의 교만과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생각, 말, 행동 무엇이라도 하나님과의 은혜 언약에서 벗어나고 또 그분에게서 긍휼 이상의 축복을 바란다면 교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서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3:16) 심판의 날에 하나님은 당신을 진정으로 경외하여 그분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별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분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교만한 자의 처리는 오직 그 분께 달려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모든 세대 신자들의 영원한 숙제는 사실은 숙제로서 성립조차 될 수 없는 숙제입니다. 따지고 보면 참 신자가 하나님에게 불만을 터뜨릴 수 없고 터뜨려서도 안 되는 질문입니다. 세상의 교만한 악인의 죄를 참소한 이유때문이 아니라, 감히 자신을 겸손한 의인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자랑한 신자 자신의 교만한 죄 때문입니다. 모든 세대의 신자가 하나님에게 영원토록 추구할 숙제는 오직 그분의 은혜와 긍휼뿐입니다.
12/30/2005
예수님 믿게 되었음이 오직 주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 덕분이었음에도 때때로 이를 잊고 고개를 쳐드는 이 교만을 용서해 주시고 이를 쳐서 순전한 믿음과 감사로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 이끌어 주옵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