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1:15-17) 참 복음 안에 들어온 증거는?

조회 수 989 추천 수 35 2008.04.23 19: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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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복음 안에 들어온 증거는?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1:15-17)



바울은 참 복음과 유대주의자들의 다른 복음의 결정적인 차이는 사람의 뜻으로 되었느냐 아니냐에 달렸다면서 자신의 신앙 체험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조상의 유전을 더 중시하는 유대교에 있을 때는 순전히 자기 판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이단으로 핍박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실토합니다.

우선 출발부터 다릅니다. 자기 이성과 지성으로 판단하여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자기를 택정하여 은혜로 불렀다고 합니다. 엄마의 태에서부터 그랬으니 바울 쪽에서 그 택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선행, 공적, 자격, 조건,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당신을 대적할 것을 미리 알고도 택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택정에는 잉태되기 전부터 마련된 하나님의 바울을 향한 고유의 계획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유대교에서 연갑자보다 조상의 유전을 위해 더 열심을 낸 것과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한 것도 그 계획을 이루는데 아무 장애가 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바울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의 결심과 헌신을 기뻐 받으셔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다고 설명하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 자기 같은 대적마저 살려 주시는 십자가 복음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아니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당시 그는 세상 학문과 인간이 만든 종교에선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과 공의에 비추면 정말 하잘 것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그런 것을 중히 여기는 이방인들에게 다른 복음과 참 복음의 차이를 가장 잘 증명해 줄 적격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된 후 자기보다 앞서 사도된 자들을 만나지 않고 다메섹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비록 사도이긴 하지만 인간인 그들의 승인과 보증을 구태여 아쉬워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처음 예수를 만났던 그 장소로 돌아가 복음의 뜻을 되새길 뿐만 아니라 핍박하려 했던 자들을 만나 하나님 나라를 더 확장하고 그곳의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초대하려 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외에 덧붙이는 것은 다른 복음이기에 오직 하나님 앞에 떨리는 자세로 서서 예수님 은혜만을 증거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신자가 자신이 참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지 점검하는 구체적 기준이 생겼습니다. 우선 실제로 자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그것도 태에서부터 입었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또 예수를 알기 전에 비록 그분을 대적하며 온갖 죄를 지었던 것조차 하나님이 다 아시고도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향한 그분만의 계획이 잉태 전부터 세워져 있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출생에서 구원 아니 죽음까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유대교에 있을 때의 체험은 전부 ‘내’라는 일인칭 주어로 사용해 설명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그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었고 자기는 그분의 목적어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나를 향한 목적을 갖고 부르신 것이 참 복음입니다. 내가 내 목적을 갖고 그분을 찾아간 것이라면 다른 복음입니다. 출발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목표지가 다릅니다. 그럼 궁극적으로 도착하는 종착지도 달라집니다. 다른 복음은 사단에게 참 복음은 하나님에게 도착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당연한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느 복음에 속합니까? 아니 그보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현하고 있습니까? 혹시라도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셨고 예수의 은혜로만 믿게 된 것을 확신하면서도 그분의 내 인생을 향한 뜻은 모르겠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화목케 하는 직분을 받았기에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덕을 선전해야만 합니다. 그 뜻을 내 삶에 접목 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은 모를 수 있고 심지어 이런 저런 이유로 전혀 실천도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까지 모른다면 아직도 참 복음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논하니 너무 거창한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좀 더 실감나는 신앙의 현실적 점검 기준이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증거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대신에 인생을 살아가는 근본 자세가 사람의 눈치를 보는지 아닌지만 따져 보면 됩니다. 내 가 추구하여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사람에게서 난 복음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며 사람들에게 좋게 할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에게서 난 복음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며 그분에게 좋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위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빛과 소금으로 서있되 내 자신부터 한 알의 밀알로 썩어 없어져야 하지 않습니까? 비록 얼마나 많이 썩어가고 있는지는 신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말입니다.

4/24/2008

김유상

2008.04.24 19:37:39
*.170.40.25

항상 그렇듯이 올바른 지적입니다. 진리를 알게 되면, 나 중심의 세계관이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예전엔 하나님을 자신의 소원성취 위한 도구로 필요로 하고 이용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하나님의 소원성취 위한 도구로 써 주시기만을 기도하게 됩니다. 참 복음을 아는 자는 바울처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며 (롬 8:16), 베드로와 요한처럼 옥고의 위협 앞에서도 사람들 말 듣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 듣기를 마땅히 여기는 (행 4:1-21) 수준으로까지 자라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저를 포함한 많은 신자들이 아직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삶이 살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고 고뇌하고 탄식의 기도 드리는 겨우 그 정도의 수준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참 복음 안에 있지 않아서이기보다, 글쎄요, 우리가 아직 세상에 대해 철저히 죽지 않았고 옛 사람을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런지요? 하지만 그런 저희들을 하나님께선 반드시 당신께서 원하시는 수준으로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에 소망을 두고 오늘도 다시 한 번 저를 죽이고 옛 사람을 벗는 작업에 도전을 해 봅니다.

운영자

2008.04.24 20:07:57
*.104.226.179

신자가 (그 실천 여부는 둘째 치고) 자기 인생이 지향해야 할 목표까지 모른다면 참 복음 안에 들어와 있지 않는 증거라고 했는데....
제 의도와는 달리 너무 강한 어조로 읽힐 소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유상님의 댓글을 보고난 후에 조금 첨부하고 고쳤습니다. ^^

김유상

2008.04.25 18:06:17
*.170.40.25

목사님의 의도는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 참 한심하다 싶기에, 저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행여 목사님의 의도를 오해하여 심한 좌절감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 억지로 그 수준에 이르려다 자기 의 쪽으로 빠지진 않을까 우려되는 마음에 그런 댓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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