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2:6-8) 목회에서 크게 성공하려면?

조회 수 1062 추천 수 39 2008.05.01 19: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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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에서 크게 성공하려면?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2:6-8)



거짓교사들의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비방에 반박하기 위해 바울은 예루살렘 초대공의회에서 만난 사도들도 자기 메시지에 “더하여 준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14년 만에 다시 만났음에도 자기가 전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이 그와 전혀 다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는 유대인을, 자신은 이방인을 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총회에서 결정했거나 각자가 판단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로의 역할을 분담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야 택한 그릇이라”(행9:15)는 소명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직접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율법에 부정한 동물도 잡아먹어도 된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서야 이방인 고넬료에게 전도했습니다.(행10장) 그가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아주 꺼려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그런 직접 계시 여부와 상관없이도 베드로와 바울은 자신들의 소명을 오직 하나님이 심어주셨고 또 모든 사역이 그분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인정했습니다. 말하자면 그간의 사역 경과를 서로 나누는 중에 이상하리만치 각자가 주로 이방인 혹은 유대인들만 만났고 또 그들에게 전할 적합한 말이 술술 나와 전도의 결실이 잘 맺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너무나 세밀하고도 신비한 하나님의 섭리를 상대에게서도 똑 같이 발견하고선 그분에 대한 두렵고 떨리는 경외감에 새삼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 날의 목회자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사역의 표본입니다. 직접 계시로 구체적 소명을 받고, 성령의 권능에 붙잡혀 각종 은사를 드러내며, 어떤 환난을 당해도 기적적으로 보호되고, 나아가 복음을 전하면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자기에게도 일어났으면 싶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복음의 완전 불모지로 사단의 조종 아래 온갖 우상숭배가 성했습니다. 때로는 외적으로 여실히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사도들을 일종의 영적 슈퍼스타로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는 상황이 다르니 그런 사역이 불가능하다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지금도 온갖 우상이 설치며 복음이 전혀 소개되지 않은 미개지역에서 선교할 때는 그런  불같은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지역에선 그럴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단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마수를 뻗칩니다. 우는 사자가 먹이를 가리는 법은 없습니다. 전세상이, 아니 바로 내 이웃이 선교지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성령의 권능 또한 무소부재하게 역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위세가 강할수록 성령의 권능도 더 크게 나타날 필요가 있으며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초대교회 같은 역사가 가능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소원하여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까? 그러나 사역자들이 아니 일반 신자라도 그렇게 소원하지 않고 또 기도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보다는 왜 불가능한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바꿔 말해 우리와 바울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야 합니다.  

그 해답은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함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유명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이 자기와 다른 복음이었다 해도 자기가 전하는 복음을 절대 가감, 수정,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죽더라도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온전한 복음만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 하신다”는 말도 단순히 형식 대신 내용의 진실성을 따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과 우리 사이에 복음을 전하고 싶은 진정성이나 열정에 실제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목회자가 처음부터 가짜 복음을 전하겠다고 작정하겠습니까? 이단 교주가 되겠다는 계획과 욕심이 없는 한에는 그러지 않습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에게는 사도들 같이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설령 하나님 쪽에서 초대교회 당시에 영적인 슈퍼스타를 세울 필요가 있었더라도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오직 복음만 전해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으로 초대하겠다는 일념뿐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하나님도 바울을 슈퍼스타로 세우려는 뜻은 없고 그를 통해 당신의 순전한 역사를 이룬 것뿐입니다. 바울의 소망과 하나님의 소망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에 큰 역사가 일어났고 자연히 사람들에게 그가 슈퍼스타처럼 보인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외적 조건으로 사도로 삼거나 사역을 시키지 않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내 거짓 교사들은 바울더러 예수님의 직접 제자도 아닌 주제에 왜 자기들의 주장을 다른 복음이라고 매도하느냐고 반발했습니다. 바울은 그에 대해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가 있고 그것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같은지 여부이지, 예수님의 직접 제자인지 아닌지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변증한 것입니다.  

오늘날 초대 교회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도들에게는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소원 내지 욕심이 전혀 없었던 반면에 우리에겐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역을 더 잘하고 싶은 소원뿐인데 어떻게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하느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같이 되고 싶다는 소원에는 이미 그들과 같은 영적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내포된 것입니다. 외모로 사람들 앞에서 평가 받고 싶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 사역이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싶은 열정조차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도들은 오직 하나님께 받은 십자가 복음만 전하려는 소원 하나뿐이었지만 우리는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칭찬 받고 싶은 것, 즉 소원이 두 개라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왜 불같은 역사가 일어납니까? 그야말로 오직 복음만 전해 상대의 영혼을 구하겠다는 일념뿐이지 않습니까? 또 완전 오지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사역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름이 높아져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요컨대 교회를 세워 크게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은 뒷전이라도 한참 뒤 아닙니까?

물론 우리도 내가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은 그리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행사에 열심을 내게 해야겠고 혹은 반드시 저 사람을 변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식의 자기 소원 내지 욕심이 개입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자기도 모르게 자기 힘으로 하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 외에 어떤 형태로든 불순물이 첨가되면 성령의 권능은 그만큼 줄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진리만 견지하고 있으면 자칫 교조주의로 빠집니다. 그 진리는 반드시 나의 외모는 어떻게 되든 상대의 영혼을 살리는 것으로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사단에 미혹된 영혼이 너무나 불쌍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만 전하고 또 그 사랑으로 섬기겠다는 소망과 열정과 실천으로 승화되어져야만 합니다.

사역을 부흥시키려고 혹은 하고 있으니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정말 순수하게 증거 되고 나눠지며 실천되면 그 사역은 반드시 부흥합니다. 외적으론 몰라도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또 그것이 참 부흥입니다. 초대교회의 사역이나 심지어 사도들을 본받으려하기보다는 그들이 전한 복음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유명 목사가 되고 싶은 욕심을 일절 죽이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욕심을 죽이지 못하면 그 즉시 십자가는 사라지고 복음도 걷잡을 수 없이 굽게 마련입니다.  

5/2/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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