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2:1-5의 해석이 어렵습니다.

조회 수 124 추천 수 0 2020.09.04 16:47:29

고후2:1-5의 해석이 어렵습니다.

 

[질문]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후2:1-5)

 

문장 자체가 여러 번역본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특히 2절이 어렵습니다.

 

[답변]

 

상기 말씀은 중요한 영적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해명하면서(1:23,24) 그들의 상심과 오해를 덜어보려는 개인적인 인사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간절한 감정을 순전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번역이 그러하듯이 원문의 표현방식을 최대한 살리려다보니까 우리말의 통상적인 어법과 달라졌고 독자로선 어색하고 어렵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저작 배경

 

따라서 상기 구절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잘 살펴야 합니다. 첫째는 바울이 이 서신을 쓰게 된 배경과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그래야만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구절 별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우리말로 번역할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의미상의 미묘한 차이나 부족을 분별하기 위해서 성경번역방식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고린도 교인들과의 오해를 해소하여 관계를 정상화하고, 예루살렘교회의 구제를 위한 모금에 동참할 것을 권면하려는 목적으로 저작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에 방문하고 편지를 주고받은 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려면 너무 길어지기에 상기 본문을 쓰게 된 배경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발생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훈계하는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으나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가 나타나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났습니다.(고후2:5-11, 7:8-13)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이 잠시 방문했으나 오히려 큰 상처만 입고 돌아옵니다. 다시는 근심 중에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한(1절) 이유는 그 방문에서 바울과 교회가 피차 근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방문을 마친 후에 즉, 고린도 전서와 후서의 중간에 강력한 경고의 편지(고후10;9-11, 13:1-2 참조)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으나 이 편지는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준엄한 편지를 디도 편에 보내고 나중에 디도를 다시 만났더니 적대자들의 반란이 진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고후7:6-16)

 

그래서 이전의 없어진 준엄한 편지와 근심의 방문과는 달리 교인들의 근심을 덜고 위로하려는 목적으로 이 고린도후서를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4절) 기록하여서 디도 편으로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바울로선 지난 근심의 방문과 편지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거짓 교사를 경계할 것도 다시 깨우쳐주고 그들이 자기를 공격했던 사도직분에 대해 변호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실제 문장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먼저 문단의 구분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은 다행스럽게 이미 작은 동그라미로 구분해 놓았는데 5-8절은 1-4절의 문단과는 다른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문단을 구분하고 각 문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부터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첫 문단인 1-4절까지에선 바울이 ‘너희’라고 지칭한 자들은 전부, 바울이 근심하게 한 자든 바울을 기쁘게 하는 자든, 고린도교회의 일반교인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문단의 내용은 이번 편지를 쓰는 의도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제발 알아달라는 호소입니다.

 

반면에 5절의 “근심하게 한 자”는 1-4절의 교인들과는 달리 교회 안의 ‘거짓교사’를 지칭합니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시작해서 이어지는 6-8절의 내용을 보면 바울을 대적한 거짓교사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은 그런 거짓 교사는 너희가 이미 물리쳤으니 그것으로 족하고 이제는 그를 용서하고 사랑해주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너희의 근심을 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2절

 

문제는 질문하신 대로 2절의 해석입니다.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누차 말씀드린 대로 우리말은 관사와 대명사 등으로 정확히 구분되지 않아서 누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애매한데다 원문에 충실하려는 번역 때문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럴 때는 영어번역본을 보는 것이 이해하기 편합니다.

 

“For if I make you sorry, who is he then that maketh me glad, but the same which is made sorry by me?”(KJV) 이미 1-4절까지는 전부 교인들을 대상으로 말한다는 것을 영어로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자는 나로 인해 근심하는 자와 같다(the same)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인이 바울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마찬가지로 바울이 그들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그만큼 친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는 뜻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간절하게 표현하려고 가정법과 반어법이라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만약 이번에 눈물로 쓰는 이 편지마저 너희를 근심케 한다면(가정법) 나를 기쁘게 해줄 너희들에게 내가 근심을 또 만들게 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임을 미리 양해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절대로 근심케 할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한(반어법) 것입니다.

 

이 2절의 예에서 보듯이 원어의 문법, 문학적 기법, 뉴앙스, 관용적 의미 등을 다른 언어로 바꾸어야 하는 번역은 어차피 100%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가능한 원문의 뜻에 부합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번역을 할 때에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뉘며 각 번역본마다 특색이 다릅니다.

 

첫째는 원어의 뜻에 집중하여 단어 대 단어, 문구 대 문구로 직접 번역하는 방식, 둘째는 원문의 문학적 구조보다는 그 뜻만 알기 쉽게 번역하는 방식, 셋째는 이 둘의 절충 방식으로 가능한 원어의 표현을 살리되 뜻도 조금 더 쉽게 번역하는 방식입니다. 상기의 영어 KJV는 첫째 방식인데도 같은 셈 계통 언어라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들이라면 그 뜻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셈 어를 우랄알타이어인 한국말로 번역할 때에는 상기 세 방식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원어의 표현법대로 번역하다 보면 그 의미나 뉴앙스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합니다. 결국 한국 신자는 상기 2절 같이 애매한 번역을 접할 때마다 수고스럽지만 한글번역본들끼리 혹은 영어번역본과 비교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번역상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한국어 번역을 열거해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개역개정).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내가 근심하게 한 바로 그 사람 외에 나를 즐겁게 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킹제임스흠정역) - 첫째 방식(원어의 표현법까지 반영하여 번역했으나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움)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공동번역) - 둘째 방식(의미의 전달에만 치중하여서 바울이 간절하게 호소하려는 원래의 뉴앙스는 줄었음)

 

“내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더라도,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은, 내가 마음 아프게 하는 그 사람 밖에 누가 있겠습니까?”(표준새번역) - 셋째 방식(원어의 표현법도 따르면서 뜻을 조금 쉽게 설명함)

 

말하자면 원문은 공동번역본의 의미를 개역개정과 킹제임스흠정역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다시 읽어보면 바울이 무슨 뜻으로 누구에게 말했는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8/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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