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첫 걸음 (신17:14-17)
새벽기도 설교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17:14-17)
실패한 계획을 수정하는 하나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당신을 왕으로 모시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신정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왕정국가를 수립하도록 허용했다. 그렇다고 사울처럼 전쟁을 잘 치르는 왕이 백성들의 풍요한 삶을 보장해주는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계획이 뒤늦게 수정되었다고 이해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먼 미래에까지 다 아신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들로 자유의지를 맘껏 활용하도록 놓아둔 채로 당신이 달성코자 하는 목표를 당신만의 절대적 주권으로 완벽하게 섭리하여 반드시 이루신다.
인간의 부모도 자식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그 일정에 따라 양육한다. 자식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때로는 자식의 요구나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처음 말한 약속을 바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스터플랜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소원했던 목적을 이룬다. 하물며 하나님은 더더욱 그러시지 않겠는가?
이스라엘이나 오늘날의 신자들은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나 세상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하나님이 세상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주님 재림의 때에까지 그 일은 유보되어 있다. 그 때까지 대부분의 하나님 역사도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식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민족 같이 왕정국가를 수립케 한 것이 당신의 처음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런 해석은 그분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한 탓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분은 과거 현재 미래 전부를 아울러서 당신의 뜻대로 완벽하게 인간 역사를 주도하신다.
바꿔 말해 왕정국가로의 변경까지도 첫 계획에 이미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는 것이다. 율법에 왕정 제도를 채택할 때의 이스라엘 왕이 될 자격에 대한 규정(15-19절)을 이미 포함시켜 놓은 것이 그 증거다.
이스라엘 왕의 조건
이스라엘 왕의 자격 조건으로 둘을 들었다. 하나님이 택한 자로 형제 중의 한 사람이어야 한다.(15절) 먼저 하나님이 택한 왕이라야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신정국가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어갈 수 있다. 또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면 인간들의 자의로 선출한 것이다. 타국인이 왕이 될 수 없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이스라엘의 왕은 출애굽 구원의 체험은 물론 아브라함과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승 발전시켜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분명 하나님이 택한 모습을 취하긴 했다. 그러나 백성이 요구하는 대로 전쟁을 잘 치르는 자를 택해주었을 뿐이다. 실제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엉뚱하게 다윗을 추적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결국에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며 전사했다. 그렇게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에서 왕을 택하라고 직접 가문과 이름을 지정해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했다. 사무엘 생각에는 장남 차남 등이 왕이 되기에 적당하다고 여겼으나 하나님께 승인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막내아들이자 양치는 소년 다윗을 지명했다. 그런데 사울이 아직 왕위에 있을 때였다. 무슨 뜻인가?
사울은 백성의 세속적 욕심으로 요구한 조건에 맞는 왕이었을 뿐이다. 그를 왕을 세우기 전에 사무엘을 통해 왕정국가가 되면 백성들이 겪을 여러 고통을 하나님이 경고하셨다. 말하자면 사울은 백성들로 바로 그런 고통을 실제로 체험케 하도록 세운 왕이었다. 자기들의 요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만들 목적이었다.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백성들이 택한 셈이었다.
반면에 다윗은 나중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그곳에 성전을 세우고 이스라엘 국가 체계 전반을 완비하도록 하나님이 택한 왕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던 것이다. 사울은 백성들의 마음에만 합했지 하나님의 마음에는 애초부터 없었던 왕이었다.
왕이 수행할 업무는?
하나님은 왕의 자격을 규정한 후에 왕의 업무 수행에 관한 계명을 주셨다.(16-19절) 하지 말라는 것이 네 가지이고 하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금지 사항의 첫째는 군대와 무기인 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한다. 세상 수단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만 구하고 의지하라는 뜻이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을 침공 정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야 했다. 제사장 나라로서 이방에 당신을 증명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첫째 목표일뿐이다. 바꿔 말해 가나안 땅 정복은 이런 측면에서 즉,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필연이었다.
둘째로 병마를 구하러 백성들을 애굽으로 보내지 말라고 한다.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백성을 전쟁이나 노역 같은 일에 강제로 동원해서 고통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또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16절)고 했듯이 애굽의 우상숭배에 오염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향락과 죄악으로 타락한 그들의 생활상을 닮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로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한다. 가정을 온전히 다스리라는 뜻이다. 왕비나 후궁이 많으면 왕자들이 많아서 나중에 왕권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두면 이방 우상 종교의 유입을 방지할 수 없다. 왕궁에서부터 영적 오염이 발생하면 국민들에게도 그대로 전염될 것이다.
넷째로 자기를 위해 은금을 쌓지 말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축재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무엘이 경고한 대로 백성에게 세금을 과하게 부과하거나 아무 명목이나 붙여서 수탈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부가 왕의 소유이자 하나님의 소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돈을 벌기 위해 외국과 쉽게 타협하여 이방 문물과 관습을 함부로 유입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왕이 행해야 할 것 하나는 율법 등사본을 항상 곁에 두고 그대로 준행하는 것이다.(18-19절) 왕이 따를 규정 치고는 너무 간단하다. 다섯 규정뿐이다. 나머지 일반적인 정치 행정 경제 사회생활에 관한 계명들은 율법에 규정되어 있고 왕은 그에 따라 통치하면 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관심은 왕이 율법대로 순종하는 본을 보이는 것이다. 그럼 백성들도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된다. 선지자, 제사장과 더불어 왕이 율법대로 통치하면 형식적으로 왕정국가일지라도 내용적으로는 신정국가가 된다는 뜻이다.
이 간단한 다섯 규정을 실은 하나로 줄일 수 있다. 율법에 순종하면 즉, 하라는 것 하나만 성실히 수행하면 나머지 하지 말라는 것 넷도 자연히 지키게 된다. 왕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만 자신과 나라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 중심으로 행하면 된다. 그분의 뜻에 절대로 벗어나지 않겠다는 통치철학을 세우는 것이 왕이 가장 우선적으로 행할 바다.
성공한 왕정이 있었는가?
그럼 이스라엘 왕들 중에 율법규정대로 행하여 성공적인 왕정을 수행한 왕이 있는가? 그래서 내용적으로라도 신정국가를 성공한 적이 있는가? 물론 있다. 딱 한 번이었다. 바로 다윗 왕이었다. 하나님이 택한 왕이었다. 하나님이 선택한 왕이 실패할 리 없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그 왕위를 영원토록 세워준다고 약속했다. 그 언약은 왕 중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예표였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언약을 주실 리 없다.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다윗도 당신의 뜻에 순종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 규정을 많이 위반했지 않는가? 우선 아내를 많이 두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사건을 겪었듯이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밧세바와 간음을 했고 그 사이에 난 아들이 솔로몬 왕이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 후궁을 많이 두어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게끔 하는 발단을 만들었다. 또 그가 죽은 후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대로 우상숭배에 빠지는 북왕국을 세웠다. 궁극적으로 다윗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어떻게 다윗만 성공한 왕정이라고, 그것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먼저 100% 완벽한 신정 국가는 이 땅에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오직 천국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원죄 타락 후에 태어나 죄의 본성에 젖어 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비록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의 왕정국가를 통해 신정국가의 연습과 훈련을 쌓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의 통치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로 천국을 미리 맛보고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게끔 당신께서 이끄신다.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왕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 하나가 있었다. 밧세바와 간음한 후로 철저하게 회개했다. 오직 하나님께만 범죄 했다고 통렬히 고백했다. 또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택하여 왕위에 세운 자를 인간이 죽일 수 없다면서 살려주었다.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하나님이 해결하리라 믿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모셨다. 항상 그분 뜻대로만 순종했다. 하나님의 통치철학이 실현되도록 자신을 그분의 도구로 완전히 내어드린 유일한 이스라엘 왕이었다.
오늘의 본문은 다윗 왕을 위한 규정만이 아니다. 바로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명하신 계명이다. 신자는 세상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야 한다. 본문의 다섯 규정이 일차적으로 목사 같은 전임사역자에게 해당되지만 일반 신자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 돈과 성적 유혹을 이기고 가정을 잘 다스리며 세상 악과 타협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곁에 두고 읽고 묵상하며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채워야 한다. 혹시 잘못을 범하면 곧바로 주님 앞에 엎드려서 다시 영적인 회복을 간구하여서 그분 뜻대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때에 비로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사람 앞에 설 수 있다.
두 부류의 신자가 있다. 삶의 지향하는 바가 다윗 같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힘만 빌려서 세상과 경쟁해서 이기려 드는 사울 같은 자다. 후자의 경우 하나님의 큰 울타리 안에선 그분의 택함을 받은 것 같으나 사실은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조종하려 드는 자다. 자기가 자신을 주장하는 자기 왕국의 왕이다. 자기 속에 자기를 얼마나 비워내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를 통해 더 많이 실현 확장된다.
6/2/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