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 야곱은 하란에 40년 체류했다?

조회 수 1669 추천 수 85 2007.03.24 00:30:47
▣ 문제 제기

  ▲ 일반적으로, 야곱은 하란에 거주하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체류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귀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 그러나 해롤드 캠핑 목사와 같은 일부 학자는 야곱의 하란체류 40년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20년설과 40년설을 아주 간략히 비교해 본 바가 있기는 하지만 미흡했었습니다.

  ▲ 그후 양 이론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설로 여기는 20년설의 설득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반대로 40년설이 더 논리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학설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연구해 본 바도 없고 또 제게는 그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단지 한 사람의 평신도로서 상식 수준에서의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본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현재까지의 견해로는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 볼 가치가 충분한 신학적 과제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 하지만 이런 어려운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맡겨 놓기로 하고, 오늘은 제가 왜 40년설이 논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일종의 의문 형태로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지난번 살펴본 별도 묵상 ‘유다의 자손 이야기’와 ‘야곱의 하란 체류 40년설’을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20년설의 전제조건은 건드리지 말자.

  ▲ 창29장에는 라반과 야곱 간의 결혼조약 체결과 이행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간의 봉사(머슴살이) 계약에 동의합니다.

  ▲ 20-21절은 7년을 봉사한 후에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은 하란생활 8년차부터 실제적인 결혼생활에 접어들게 되었고, 따라서 약 9년차부터(결혼 1년 이후) 아들들을 낳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20년설의 전제조건으로서, 성경에 기록된 문자적 의미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논의를 계속하자는 말입니다. 만약 이를 재검토한다면 전혀 새로운 쟁점이 촉발되기 때문입니다.

  ▲ 조금 부연하여 말씀드리면, 뒤에서 제가 제기하게 되는 논점은, 20년설의 아들들 출산기간은 약 7-8년이고, 르우벤은 합환채의 용도와 약효를 제대로 알고 자기 모친에게 드렸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논점만 해결하려 한다면, 야곱이 하란에 도착한 후 곧바로 결혼했다고 해석하면 의문 자체는 비교적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만약 이렇게 된다면, 성경에 기록된 문자 자체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즉, 성경 기사(21절=“내 기한이 찼으니”)가 오류라는 뜻이 됩니다.

  ▲ 따라서 이 의문에서는 일단 성경의 문자적 의미 그대로, “야곱은 하란체류 8년차에 결혼했다.”는 견해를 수용하여 계속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20년설은 11명의 아들을 낳기에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 이미 여러번 살펴본 내용이라 아주 간략히 요약만 하겠습니다.

  ▲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피신한 후, 7년이 경과된 해에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에 의해 큰 딸 레아와 먼저 결혼하고 7일간의 피로연이 끝나자 다시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합니다.

  ▲ 그리고는 4명의 아내(레아, 라헬, 실바, 빌하)로부터 11명의 아들들을 낳습니다. 이 득남 기간은 약 7-8년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1번째 아들인 요셉은 가나안으로 되돌아오기 약 5-6년 전에 태어났을 것입니다(창30:25절 이후 참조).

  ▲ 아무튼 성경 기사에 의하면, 이 기간 중 레아는 4명의 아들들을 낳고 일시 단산되었다가 후일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낳았습니다. 이 기간이 7-8년에 해당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리한 기간입니다. 즉, 7명의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입니다.

  ▲ 소결론은 이것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아들들을 낳았을 7-8년은, 4명의 아내로부터의 출산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는 있으나, 레아의 경우 7명의 자녀를 낳기에는 충분치 못한 기간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산술적으로 무리할 뿐 아니라, 중간의 단산기간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불가능한 설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 어린 아이가 합환채를?

  ▲ 20년설의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구절이 창30: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인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20년설의 결정적 난점을 내포한 구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 창30장을 큰 흐름으로 읽어 보십시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캐어오자, 아들을 낳지 못한 동생 라헬은 남편동침권을 빌미로 언니 레아를 설득하여 그 합환채를 삽니다.

    ○ 합환채란 히브리어로 ‘두다이’(duday)라고하며 향이 독특한 마취제용 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합환채는 사람 모양의 식물로서(어떤 학자는 남성 성기 모양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여인이 먹으면 임신할 수 있다고 믿던 일종의 임신촉진 약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동생 라헬은, 언니 레아를 가까스로 설득하여 합환채를 사서 먹고 임신하려고 애썼으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술 더 뜨셔서, 단산된 레아의 태를 다시 여시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주십니다.

    ○ 합환채까지 먹었으나 아무 효과도 없이 언니의 추가 출산을 바라보며 속이 새까맣게 탓을 라헬의 상심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3년 넘도록 임신되지 않음으로써 합환채의 약효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만,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임신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인간적인 노력을 전부 무력화시키신 후, 뒤늦게 요셉을 선물로 주십니다(이 부분에서는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14절입니다.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맥추 때라 했으니 가을철입니다만, 유념해야 할 사항은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라는 표현입니다.

    ○ 14절 이후를 읽어보면, 이 시기는 11 아들 중, 잇사갈과 스불론과 딸 디나(이상은 레아 소생)와 요셉(라헬 소생)이 태어나기 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어머니가 다른 요셉은 별도로 치더라도, 잇사갈과 스불론과 디나는 한 어머니인 레아가 낳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추가 출산기간은 3년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 위에서 4명의 아내들이 11명의 아들들을 낳은 총 기간은 7-8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했었습니다.

    ○ 그렇다면 합환채를 캐었을 당시 르우벤의 나이가 대략적으로 계산됩니다. 【총 득남 기간인 7 내지 8년 - 잇사갈/스불론/디나 출산기간 3년 이상 = 4 내지 5년】이 르우벤의 나이입니다.

    ○ ‘너댓 살배기 사내아이가 들에 나가서 뿌리박힌 들풀을 캐내어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에게 드렸다.’는 설명의 설득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합환채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우연히 가져와서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설명은 얼마나 타당할까요? 이런 설명들은 왠지 궁색해 보입니다.

    ○ 차라리 14절은, 르우벤이 합환채의 용도와 효능을 정확히 아는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드릴 목적으로 캐어 왔다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즉, 르우벤은 당시 합환채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 이러한 추정이 맞는다면, 르우벤은 너댓 살을 훌쩍 넘어, 성에 대한 이해를 지닌 나이였어야 합니다. 아마도 르우벤은 성에 대한 관심이 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후일 서모 빌하와의 통간(창35:22)도 이러한 르우벤의 성향(性向)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40년설과는 무슨 상관?

  ▲ 창30:14절은 ‘합환채의 용도와 약효를 잘 알고 있던 르우벤이 그것을 캐어,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던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 물론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야곱이 밧단아람에 거주할 때로서, 아들 셋(베냐민까지 포함하면 4명)은 아직 태어나기 전일 것입니다.

  ▲ 만약 이 추정이 옳다면, 합환채 사건 당시의 르우벤으 나이는 너댓 살이 아닌, 보다 많은, 적어도 합환채의 용도와 약효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 이 경우, 20년설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40년설이어야 비로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 그렇습니다. 창30:14절 표현은 분명 20년설의 난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더 추론해 보고 싶으나, 역시 평신도의 한계를 넘기는 힘들다 하겠습니다. 현재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겨둘 도리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마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 [환우나눔] 의사도 포기한 병든 몸을 이끌고 정순태 2007-08-11 1309
40 [의문] 「거룩한 의문」 시리즈를 마치면서 [2] 정순태 2007-08-04 1257
39 [묵상] 이방신의 축복이 더 풍성하다? [5] 정순태 2007-07-27 1293
38 [환우나눔]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순태 2007-07-14 1174
37 [환우나눔] 걱정도 팔자네! 정순태 2007-06-23 1173
36 [묵상] 기드온은 정말 큰 용사였는가? [3] 정순태 2007-06-16 2248
35 [환우나눔] 소문은 소문일 뿐, 그냥 섬김이 전부이다. 정순태 2007-06-09 1195
34 [단상] 예수님은 흥하고 목사는 망해야한다! [4] 정순태 2007-06-02 1424
33 [환우나눔] K 형제님을 통한 반면 교훈 몇 가지 [2] 정순태 2007-05-27 1308
32 [단상] 중신아비로 만족할 수는 없는가? 정순태 2007-05-19 1290
31 [묵상] 충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만나의 은혜 [2] 정순태 2007-05-13 1783
30 [묵상] 천국체험 주장들 -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4] 정순태 2007-05-05 4787
29 [묵상] 수지맞은 구경꾼(출14:1-14) [1] 정순태 2007-04-27 1507
28 [묵상] 아이 손의 사탕을 빼앗으시는 하나님(?) [2] 정순태 2007-04-21 1637
27 [단상] 정제되지 못한 간증의 위험 [4] 정순태 2007-04-14 1545
26 [환우나눔] 마음만은 언제나 정순태 2007-04-01 1296
25 [환우나눔] 아주 작은 소자들의 지극히 작은 나눔 이야기 정순태 2007-04-01 1500
» [의문] 야곱은 하란에 40년 체류했다? 정순태 2007-03-24 1669
23 [의문] 단 지파의 기이한 특공대? [2] 정순태 2007-03-17 1641
22 [묵상] 맛 잃은 소금 [4] 정순태 2007-03-10 5482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