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수지맞은 구경꾼(출14:1-14)

조회 수 1507 추천 수 112 2007.04.27 23:37:21
※ 오래 전, 고등부와 구역 예배시 나누었던 내용입니다.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기에 쉬운 부분을 쉽게 설명하려 했으나, 제 자신의 능력에 벅찬 일이었습니다. 이해하시고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 들어가기

   ◉ 오늘 본문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한 직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을 놓아 보낸 것을 후회한 바로가 추격전을 결심하고 군대를 출병시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압박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급박한 위기의 순간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판단조차 서지 않습니다.

   ◉ 이스라엘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해집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상황 이해

  ◉ 애굽의 군사력

    ○ 당시 애굽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입니다. 오늘로 이야기하면 미국과 같은 수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구체적 위력은 이렇습니다.

    ○ 7절을 보니 특별 병거 6백승이라 되어 있습니다. 최신 탱크 600대라는 말씀입니다. 육이오 동란 당시 북한의 탱크 때문에 어떠한 고초를 겪었는지는 우리가 잘 아는 일입니다. 사실 상대가 안되었었지요. 전쟁이 일어난지 불과 3개월 여 만에 대구전선까지 밀렸습니다. 맨 손에 수류탄 하나 들고 적의 탱크에 돌진한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눈물 흘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바로 이것입니다. 최신예 병거를 앞세운 애굽 군대의 진격을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마음은 물처럼 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뿐인가요? 9절을 보니 병거 뒤에 기병이 따르고, 또 그 뒤를 보병이 따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기병과 보병은 오합지졸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와 같은 전문적인 특전병사들입니다. 일당백의 능력을 지닌 군인들입니다. 실전 경험도 많고 훈련 수준도 높은 최정예 군사들입니다. 이런 군사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의 현실

    ○ 이에 반하여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이제 막 도망 나온 사람들입니다. 후에 인원을 세어보니 20세 이상 장정만 약 60만에 이른다 했습니다. 여자들과 어린애들과 노인들까지 합하면 약 200만 내지 300만 명에 이르는 숫자입니다.

    ○ 숫자적으로 60만이니 한번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지요. 이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애굽의 전쟁 상대가 아닙니다. 싸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싸움 상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 전쟁은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사정을 봐 줄 수 없는 극한 상황입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무조건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 죽이시오’하고 목 빼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고도의 기술을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훈련을 받은 바도 없고 경험도 없습니다. 완전 오합지졸이지요. 이런 가정을 한번 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미 공군 사격 훈련장이 있는 ‘매향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성을 합니다. 물론 평화상황이기에 그럴 리야 없지만, 만약 전시라 가정하여, 미군과 전투를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투기와 탱크와 특전부대가 동원된 미군과, 낫과 곡괭이를 들고 나온 농민들의 싸움을 말입니다. 물어보는 사람이 좀 이상한 사람입니다. 전쟁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농성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은 전투의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 애굽의 최정예 군사에 대항할 힘이 전혀, 정말로 조금도 없습니다. 결코 싸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 혹, 이스라엘이 용감하게 애굽 군대와 싸울 마음을 가졌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전투용 칼과 창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집에서 쓰는 식칼 정도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애굽의 병거와 기병과 보병을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 또, 전쟁은 단순히 직접 전투요원의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전쟁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9년간의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이겼습니다. 참 신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소련과는 싸워서 이긴 탈레반군도 미국에는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고 말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의 전쟁을 보면, 미국이 승리한 요인 중에는 후방을 완전히 차단하여 탈레반군의 보급지원을 막은 것이 큰 위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은 먹어야 싸울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무기뿐 아니라 식량도 충분치 않습니다. 아무리 정신력이 우수해도 먹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 여하튼 이스라엘은 애굽의 전쟁 상대는 아닙니다. 11절에서 12절을 보세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판단이 정확합니다. 이미 전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일단 싸움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전략  

   ◉ 위에서 살펴본 정황을 하나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책은 영 딴판입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입니다. 아니, 우리의 육탄 십용사처럼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하여도 될동말동인데, 가만히 있으라니 이건 통 말이 되지 않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는데, 60만이나 되는 장정들은 어디에 쓰시려고 그냥 구경만 하라고 하시는 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문제의 핵심은, 이 전투는 이스라엘의 임무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 자신의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셔야만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모세의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절). ‘행하신다’는 말씀은 ‘싸우신다’는 뜻입니다. 주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전투의 주체는 하나님과 애굽 군대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손 놓고 입 벌리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으면 되는 그런 구경꾼 말입니다. 자, ‘이스라엘은 구경꾼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 오늘 본문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홍해에서 애굽 군대가 모조리 수장되는 사건입니다. 그 최정예 군사들이 모두 죽지요. 이것이 이 전투의 결과입니다. 15장에서는 이에 대한 감격시가 이어지고 있고요.

▣ 또 다른 홍해 전투

   ◉ 우리가 살펴본 홍해 전투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세력이 충돌하였지만, 엉뚱한 간섭자에 의하여 전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야기이지요.

   ◉ 이런 이야기가 신약에서도 또 나옵니다. 바로 갈보리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주 간략하게만 요약해 보겠습니다.

   ◉ 로마의 능력은 출애굽 당시의 애굽 군사력과 같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입니다. 대항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로마의 군사력입니다. 세계 최강 로마군인들이 갑옷과 창과 칼과 방패로 무장을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고 있습니다.

   ◉ 이에 반하여 예수님의 진영을 살펴보세요. 누가 있습니까? 3년 간 모든 힘을 다하여 길러놓은 제자들이 있습니까?

    ○ 어떤 학자들이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현장에 적어도 두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명은 혹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까하는 기대로 기웃거리던 기회주의자 요한이었고, 또 한 명은 어정쩡한 베드로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제자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로마군인들과 싸워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릴 능력이 이들에게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고 또 숫자도 상대가 안됩니다.

    ○ 무기는 있었나요? 허긴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용한 단검 한 자루 정도는 있었겠네요(사실은 이 단검마저 이미 버린 상태이니 무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상대가 됩니까? 소용이 있습니까? 역시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 허긴, 또 다른 사람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바로 여인들입니다. 대여섯 명의 여인들, 그러나 이들도 홍해에서의 여인들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없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존재들이었지요. 여인들이 그저 울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 여하튼 이 사건의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이지요. 예수님께서 지신 것입니다.

   ◉ 성경이 만약 여기에서 끝났다면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 신앙의 전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하고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 전쟁의 주체에 대한 이해

   ◉ 홍해 전투든 갈보리 전투든,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과 대적이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삼상17:47). 이들 전쟁에 인간이 참여할 부분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홍해에서도 이스라엘이 참여해 보았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고, 갈보리에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전혀 참여할 여지마저 없었습니다.

   ◉ 그러면 홍해나 갈보리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했습니까? 이것이 바로 제목입니다. “구경꾼!” 그렇습니다. 순수한 구경꾼이었고 정말로 구경꾼이었습니다.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좀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기도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철저히 객관적인 구경꾼, 입 벌리고 바라보기만 하는 순수한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 홍해와 갈보리 사건을 상고하면서,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즉,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이것 말고는 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게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 마무리

   ◉ 이것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습니다. 시장 통에서 약장수 구경을 해도, 무언가 국물이 있는데,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을 구경한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말이 안됩니다. 정말 국물도 없는가하고 눈을 부릅뜨고 살며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살펴볼 때에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 잘 알다시피, 홍해에서 하나님과 애굽의 싸움을 구경만 한 이스라엘 백성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생명이지요. 그들은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조금 고생은 하였지만, 만나도 먹고 메추라기도 먹으며 가나안까지 들어갔습니다.

   ◉ 갈보리 언덕의 구경꾼들은 무엇을 얻었나요? 역시 생명입니다. 그들도 그 이후로 조금 고생은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친구로서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 자, 순전히 구경만 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이라고요? 생명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그저 구경만 했는데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 선물은 약장수 구경 후에 얻는 국물 정도가 아닙니다. 이 선물은, 국물이 아니라 건더기로서, 진짜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시장 통의 구경꾼은 국물을 얻지만, 하나님의 구경꾼은 진짜를 얻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을 성경은 ‘성도’라는 어마어마한 말로써 전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싸움을 구경만 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비길 수 없는 진짜를 주셨습니다. 수지맞은 것입니다. 이게 성경의 전부이지요. 자, 이제 우리의 진짜 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수지맞은 구경꾼”인 것입니다. 수지맞은 구경꾼!!!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섬으로써 늘 수지맞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

mskong

2007.04.28 15:08:55
*.153.235.184

주님의 길을 주님의 자원으로 주님께서 친히 가시는 길을
저희는 목도하며 따라갑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 [환우나눔] 의사도 포기한 병든 몸을 이끌고 정순태 2007-08-11 1309
40 [의문] 「거룩한 의문」 시리즈를 마치면서 [2] 정순태 2007-08-04 1257
39 [묵상] 이방신의 축복이 더 풍성하다? [5] 정순태 2007-07-27 1293
38 [환우나눔]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순태 2007-07-14 1174
37 [환우나눔] 걱정도 팔자네! 정순태 2007-06-23 1173
36 [묵상] 기드온은 정말 큰 용사였는가? [3] 정순태 2007-06-16 2248
35 [환우나눔] 소문은 소문일 뿐, 그냥 섬김이 전부이다. 정순태 2007-06-09 1195
34 [단상] 예수님은 흥하고 목사는 망해야한다! [4] 정순태 2007-06-02 1424
33 [환우나눔] K 형제님을 통한 반면 교훈 몇 가지 [2] 정순태 2007-05-27 1308
32 [단상] 중신아비로 만족할 수는 없는가? 정순태 2007-05-19 1290
31 [묵상] 충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만나의 은혜 [2] 정순태 2007-05-13 1783
30 [묵상] 천국체험 주장들 -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4] 정순태 2007-05-05 4787
» [묵상] 수지맞은 구경꾼(출14:1-14) [1] 정순태 2007-04-27 1507
28 [묵상] 아이 손의 사탕을 빼앗으시는 하나님(?) [2] 정순태 2007-04-21 1637
27 [단상] 정제되지 못한 간증의 위험 [4] 정순태 2007-04-14 1545
26 [환우나눔] 마음만은 언제나 정순태 2007-04-01 1296
25 [환우나눔] 아주 작은 소자들의 지극히 작은 나눔 이야기 정순태 2007-04-01 1500
24 [의문] 야곱은 하란에 40년 체류했다? 정순태 2007-03-24 1669
23 [의문] 단 지파의 기이한 특공대? [2] 정순태 2007-03-17 1641
22 [묵상] 맛 잃은 소금 [4] 정순태 2007-03-10 5482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