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 가운데 영화 벤허의 감동을 잊으신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사두마차 경기의 긴박감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고, 급기야 월계관이 얹혀지는 순간의 흥분은 가누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잊지 못할 명장면들이었지요.
이에 앞서, 집정관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한 공로로, 로마 황제(가이사)를 알현하는 장면도 멋집니다. 이때 아리우스와 벤허가 탔던 것도 호화로운 마차였습니다. 승리자가 타기에 안성마춤인 그런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이 영화의 압권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거의 끝날 무렵에 나오는 한 마디 대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내 손의 칼을 거두어 가는 걸 느꼈소!” 다시 보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집중하여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 씨의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고령의 각료들 군기까지 잡았다는 뒷말이 나돌 정도로 대단한 권세를 휘둘렀었지요. 대통령이나 왕의 안위를 책임지는 경호요원(근위병)의 권한이 막강해야 함은 필연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호해야 할 대상 인물들은 실로 대단한 귀인(VIP:Very Important Person)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위의 2가지 예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벤허는 사두마차를 탈 만한 인물이었고, 대통령이나 왕은 응당 근위병의 경호를 받아야 하는 귀인들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에서 사두마차 타고 근위병의 호위 받아야 할 분들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주님과 사도들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성공자들이며 상응하는 대접받기에 마땅한 분들입니다.
근데, 성경은 전혀 다르게 기록할 뿐입니다. 주님은 고작 어린 나귀 한 마리 얻어(정말 얻어) 타셨을 뿐입니다. 나귀새끼가 가지(‘전부’라는 뜻의 고향 사투리입니다)일 뿐, 더 이상의 대접은 없었습니다. 12 제자들에게는 국물도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경상도만 한 유대 땅에서 사역하셨던 주님이야 그러려니 하더라도, 온 아시아와 유럽을 휘젓고 다녔던 사도 바울은 황당합니다. 그가 여행한 거리가 얼마입니까! 그 멀고 험한 길을 사두마차는 아니라도 하다못해 말이라도 타고 다녔어야 했을 텐데, 성경에는 ‘바울이 말(馬) 타고 다녔다.’는 말(言)이 전혀 없습니다.
근위병 문제에 있어서도 주님에게는 단 1명의 경호원도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열두해 혈루증 여인에게까지 밀렸겠습니까! 실라나 디모데도 사도 바울의 경호원이 아니라 동역자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른 21세기 오늘날, 설교의 달인이라는 K 목사는 사두마차(3억짜리 스포츠카) 타는 것을 자랑하고, 방언의 귀재라는 J 목사는 근위병 호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풍문이 파다합니다. 호의호식한다는 소문만으로도 떨떠름한데, 사두마차 타고 근위병 거느리며 떵떵거린다는 데는 암담할 뿐입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현상이기에 씁쓸하고, 세월 참 묘하게 변한 것 같아 착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