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4:20,21 예배 갱신의 첩경(1)

조회 수 488 추천 수 59 2011.10.28 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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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갱신(更新)의 첩경(1)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0,21)


작금 기독교가 이런 저런 비리와 몰상식한 행위들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이전과 같은 폭발적 부흥은 전혀 기대할 수 없고 도리어 점차 쇠퇴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부흥의 방도가 다각도로 강구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예배를 갱신하자는 움직임이 두드러집니다. 아무래도 주일 예배가 살아나야 불신자의 전도는 물론 기존 교인의 영적 각성도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분명히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시행 방안은 조금 방향이 어긋난 것 같습니다. 예배를 어떻게든 뜨겁게만 하려고 합니다. 감정적 반응을 최대한 크게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다 동원합니다. 그 감정적 반응이 순수한 뜻에서의 감격이든, 부정적 의미에서 단순히 흥분이든 구태여 구분하려 들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감정적 반응이란 외부적 자극에 대해 자연발생적으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감 중에 예배 중에는 자극할 수 없는 후각, 미각, 촉각을 제외한 시각과 청각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은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고급 오디오 비디오 기재를 사용해 감동적인 음악과 영상을 제공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드라마나 무용도 적극 활용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체가 혹은 전부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 세대의 기호에 적합하게 대응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감화보다 감정적 자극에 의존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전해지는 메시지가 우선이지 전하는 방법에 치중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정적 자극을 통해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면 자연히 감성적 반응도 따라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이미 예배를 개혁할 수 있는 원리를 몇 가지 가르쳤는데 본문은 그 첫째입니다. 한 젊은 여인이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었고 지금도 다른 남자와 살고 있으면서도 인생의 고뇌와 갈증을 도무지 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만나러 짐짓 사마리아 한 성의 우물 가로 가셔서 세상이 주는 물은 갈증을 도무지 재울 수 없지만 영원한 생수이신 당신께 나오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고 구원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초대에 그녀가 응하였기에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겠다는 뜻인지, 단순히 주님이 유대인이라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을 풀려는 것인지는 불명(不明)합니다.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질문의 초점은 꼭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하는지, 사마리안 산에서 드리면 안 되는지 예배드리는 장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조금 야릇합니다. 질문에 맞추어 답변을 진행시키는 듯하다가 엉뚱한 답으로 마칩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라고 했으면 당연히 제 삼의 장소를 지적해주어야 합니다. 대신에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예배의 시기로 답해주었습니다. 완전히 동문서답한 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말씀을 살피면 단순히 예배 장소에 대비해 예배 시간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른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예배는 전혀 무가치하고 그 때가 되기 전까지는 예배드릴 필요가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예배가 혁신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는 어떤 사건이 미래의 어느 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그 사건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 또한 예배의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식의 예배와 사마리아 식의 예배 둘 중 어느 것이 옳으냐는 것입니다. 성전과 산이라는 특정 장소로 한정되면 그 자체로 이미 각각이 취하는 제의 형식까지를 함의(含意)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질문의 진의를 알고는 예배는 그런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적이고 훨씬 중요하다고 답한 것입니다.

예배를 갱신할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예배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말씀은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 또한 당연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정확하게 알아서 회상 기념하는 자세로 드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제사만 해도 선조의 얼굴도 모르는 후손은 그저 형식 맞추기에 급급하지 않습니까? 예배의 내용과 예배자의 자세는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주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은 무엇입니까? 물론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의 멍에 아래 신음하던 인간에게 빛으로 오신 주님이 완전한 소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모든 형벌을 제거하고 그 은혜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을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평생을 감사, 찬양, 경배해도 모자랄 은혜입니다.

예배란 그래서 구원 받은 죄인으로서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배 갱신의 키는 십자가 죽음의 구원과 부활의 승리가 온전히 증거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모든 예배 순서에 복음이 녹아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바탕을 둔 설교와 십자가 은혜에 감사와 헌신으로 반응하는 찬양, 기도, 드림의 순서들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과 사단의 세력을 향해 십자가 군병으로서의 출청식도 겸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십자가가 빠진 예배의 어떤 혁신도 아무 의미 없는 형식적 수정일 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처럼 미성숙한 영적 상태를 노정하는 꼴 밖에 안 됩니다. 아무리 안락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최신 음향, 영상 기자재가 받혀주는 신나고 우렁찬 찬양을 해도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이 빠지면 한갓 종교적 콘서트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고양되는 효과는 상당하겠지만 잠시 그 때뿐입니다.

예배 때마다 십자가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에 대한 설교, 찬양, 기도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지금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우선 성부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하나님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를 대신해 죽음의 형벌에 내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직접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된 자들의 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벌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뿐 아니라, 거룩한 당신의 성품에 참예시키며 하늘에서 이룬 뜻을 땅에서 이루도록 지금도 그분의 쓰임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바탕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심"(엡1:3)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찬송할 때에 비로소 예배가 갱신될 것입니다.

9/1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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