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연약한 부위를 잘 아는 것이 신앙의 유익을 가져올 수 있는 것 같다. 자주 뒤뚱거리고 곧잘 넘어지는 이유들을 살펴보면 원망, 불평, 미움, 시기, 질투... 참 말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 모양의 문제들로 말미암은 넘어짐, 뒤뚱 거림 아니겠나 싶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그러기에 쉬이 일어서기 어려운 연약함은 이러한 이웃에 대한 감정적 어려움이 아닌 것 같다. 바로 자신의 모습속을 곰곰이 들여다 보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크게 넘어져 일어서기 힘든 일임을 자주 체험한다.
물위를 걸어보겠다고 담대히 말씀드린 베드로의 넘어짐을 한번 생각해 보게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걸을 때 물위를 사뿐히 걸을 수 있었다. 얼마나 신기했을까? 인간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그 일을 자신이 지금 행하고 있음에의 기쁨은 물위를 사뿐 사뿐 걷는 걸음만큼이나 기쁘고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 주변의 파도며 바람을 보며 겁에 질려 물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베드로가 파도며 바람을 보며 놀란 것 보다 더 큰 두려움은 바로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의 두려움이 아니였겠는가 싶다. 어떻게? 어떻게? 내가 이렇게 걸어? 나는 베드로인데??
자신 속에 파묻히면 달팽이가 될 수 밖엔 없다. 시선을 자꾸만 예수님께로 옮겨놓지 않으면 깊고 음습한 달팽이 집의 꼬불거리는 길만 보인다. 더 구석으로 더 구석으로... 물위를 걷되 사뿐히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예수님께로 시선이며 마음이며 온통의 생각까지도 다 집중되어있을 때의 벌어진 기적이다. 자신을 들어다 보고 또 들여다 보면 깊은 곳으로 꼬불 꼬불 걸어들어가되 자신의 한계며 자신의 단점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한 이웃들에게 끼친 피해까지도 산더미모양, 집채만한 파도마냥 우리를 삼키려 찾아든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 그 사뿐함의 걸음의 베드로처럼 나에게로 향한 시선을 벗고 오로지 예수님께로만 시선, 마음, 생각... 나의 어떠함까지 모두 모두 다 예수님 옷자락에게다가 옮겨드려야겠다. 그 옷에다가...
제가 언젠가 "물 위를 걸으라!"라는 제목으로 이 장면을 묵상한 기억이 납니다.
주님을 향해, 주님만 바라보며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도 대단했지만,
물에 빠진 이후 내미신 주님의 손을 잡고 다시 나와
주님과 함께, 주님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던 베드로가 제게는 더욱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손에 손잡고.. 그렇게 걷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