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도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믿음이 완성되어 주님이 받아주셨을 대는 그가 백세 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가 75세였으니 25년이 걸린 것이죠.
모세도 40년을 광야에서 썩힌 후 80세가 되어서야 부르심을 받아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복음을 들은지 3-4년 만에 주님이 받아주시는 믿음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얼까요..?
도무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유라는 것은 내 평생 과연 주어질 것인가 고민하던 차, 스데반의 비밀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단기간에 그렇게 될 수 있었을지 ... 혹시 이 부분에 비췹이 있으신 분들은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대인이니까... 구약의 지식이 있던 사람이었겠죠.
당연히 성령의 역사이겠지만, 스데반만 성령을 받은게 아닐텐데...
사도도 아닌 스데반이 먼저 주님 품에 갈 수 있었던 비밀은..?
제가 잘 이해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전제부터 잘못 놓으신 게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부르시고 사용하신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믿음의 완성'과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유'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신가요?
먼저..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들에는 그냥 제가 성경을 읽고 아는대로 얘길하는터라.. 기존 신학에서 사용하지 않는 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생소하더라도 성경을 통해 생겨난 생각이기에... 촌놈이 성경을 읽어서 그런가보다... 이렇게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완성: 이건 주로 제가 성경 속의 아브라함을 관찰했을 때 "아~ 내가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믿음을 완성해 가시는거구나" 하는 점을 발견하여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 그다지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젊은 날,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살 때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고 아들이 열세살쯤 되었을 때 아들을 바치라 하면 아브라함이 바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의 처음 믿음은 신기한 목소리라도 들려주어야 친족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믿음 정도였지만, 약속을 받았음에도 와이프를 팔아먹으려고 한다던지, 와이프의 여종에게서 후손을 보려고 한다든지 하는 불신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꼭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브라함이 드디어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독자를 바칠 수 있는 믿음으로 완성해 주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유: 잘 아시다시피 민수기 12:3에 하나님이 모세를 평가하시는 내용은 이 사람이 이 땅의 어떤 사람보다도 가장 온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공주의 아들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최고의 교육을 받고 권력도 갖고 있었지만, 어느날 사람을 죽이고 도망가는 신세가 될 정도로, 본 바탕은 온유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입니다. 하지만 40년간 광야에서 양이나 치면서 이집트 말도, 히브리 말도 다 잊어버리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죠... 그리고는 그 사람을 가장 온유하다고 하십니다.
즉, 믿음처럼, 온유란 것 또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다는 것이죠. 그런데, 모세도 40년이 걸렸고, 아브라함도 25년이 넘게 걸렸는데, 무슨 비결이 있길레 스데반은 그걸 삼사년만에 정복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절 만나주신 것이 벌써 16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온유란 것에 있어서는 믿지 않는 사람만도 못한 것을 느끼기에 이런 의문을 가져봅니다.
온유로 번역된 단어는 길들여진 야생마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제 멋대로 살다가 주인의 손에 붙들려 주인의 말만 따르게 된 야생마를 온유하다고 하는 것이죠. 말씀하신대로 믿음과 마찬가지로 오직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과 순종이 같은 말이듯, 온유도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은 온유와 순종과 사랑을 그 열매로 맺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온전한 믿음 가운데 그 열매를 맺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간절히 원해도 죄의 법에 매인 우리의 육신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라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열매 역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달립니다. 그러므로 온유와 순종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 애쓰는 것으로는 믿음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을 구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샬롬.
아멘~ ... 그래도 스데반처럼 좀 빨리 철들고 싶은데 ~ ㅎㅎ
1. 스데반도 예수님 공생애 이전부터 구약성경을 묵상하며 메시아를 고대해오던중,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사도들과 함께 성장해온 제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만일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초신자라고 볼수는 없겠지요? 사실 여부는 알수 없겠지만.....
2. 사실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인 비법(?)은 당시 초대교회를 충만히 채우시던 성령님의 권세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