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조회 수 774 추천 수 13 2009.11.10 1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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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한 젊은이가 애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오를 것이며 아무리 넓은 대양이라도 헤엄쳐 건널 것이며 숨 막히게 뜨거운 사막이라도 기꺼이 횡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 말미에 이런 추신이 붙어 있었다. "추신: 만일 이번 토요일에 비가 안 온다면 당신 계신 곳으로 방문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약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다면 과연 어떻게 쓸지 궁금하다. 하나님에게 사랑의 편지를 모든 신자가 매일 쓰고 있다. 교회 주일 학교나 여름 수련회에서 한 번씩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재 다짐하고 고백하는 순서에만 쓰는 것이 아니다. 신자의 기도와 찬양은 모두 하나님에게 쓰는 편지다.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계5:8)인데 이를 천국 보좌에 계신 어린 양이 성부 하나님에게 배달한다. 평범한 종이와 봉투에 쓰여진 편지가 아니다. 금 대접에 담아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다. 마치 왕이나 대통령이 금박 문장이 박힌 편지지와 봉투만 사용하는 것 같이 금 대접으로 배달된다. 그만큼 하나님은 성도의 고백과 간구를 귀중하게 취급하신다.

그런데 편지를 받아 본 하나님이 거기에 적힌 내용이 이렇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사랑하는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제가 높은 산이든, 넓은 대양이든, 뜨거운 사막이든 어디든 가겠습니다. 추신: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산이 가파르지 않아야 하고, 대양에 폭풍우가 불지 않아야 하고, 사막이 시원하면 그 때가서 가기로 하지요."  산이 높지 않으면 산이 아니다. 폭풍우가 불지 않는 대양은 없으며 뜨겁지 않으면 사막이 아니다.

수련회에서 쓰는 편지에는 추신이 붙을 리가 없다. 다들 은혜 받고 충만해서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순교도 각오하고 선교사로 가겠다거나 삶에서 주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겠다고 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의 청년이라도 평생에 몇 번쯤은 비를 뚫고 연인을 만나러 갈 것이다.

문제는 평상시에 하나님께 쓰는 편지다. 모든 신자들의 기도나 찬양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놓고는 끝에 가서는 꼭 한 가지 조건을 단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하지 않는 사람도 그 마음속을 깊이 들어가 보면 반드시 무엇인가 한계를 정해 놓고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일만 해결 해 주시면, 이것만 성취되도록 해 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기도, 감사, 찬양하는 데 있어서 신자 쪽에서 양보해 줄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을 그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이 위반해선 안 되는 선이다. 만약 그 선을 하나님이 넘으면 자기는 신자의 위치를 포기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누가 손해인가?

대부분의 신자의 신앙의 실체는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조건부 항복을 하고 있다. 항복이란 문자적 의미 자체가 무조건 항복이다. 조건부 항복이란 정전 내지 휴전을 위한 협상이지 참 항복이 아니다. 지금 신자의 기도와 찬양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항복은 하지도 않고 기껏  조건부 항복을 하면서 신자 쪽에서 더 큰소리치는 꼴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믿는다든지 사랑한다든지 말 할 때는 그 사람 당신을 믿는 것이지 그 사람이 나에게 해 준 어떤 좋은 일이나 보상 때문에 믿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사랑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이지 일이나 물건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을 믿고 사랑할 때 까지는 그럴만한 사건이나 어떤 계기가 개입되어야만 한다. 그것도 한두 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되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믿거나 사랑하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던지 어떤 일을 저지르든지 믿고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다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신 것 이상으로 사랑의 정표로 더 주실 것이 없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완전하고도 충분하게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다 드러내셨다. 어떤 이가 상대를 위해서 대신 죽는 것 만큼 사랑과 신뢰의 기초가 되는 것은 없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죽은 것이 하나의 역사적 객관적 사실로 그치지 않는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셔서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그 십자가의 구원의 진리가 영원하고도 현존하는 진리로 알게 해 주셨다. 십자가의 사랑을 하나님 당신이 직접 보증서셨다. 나아가 우리의 지난 모든 세월 동안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간구한 것을 응답하심으로 우리가 그 분을 신뢰하고 사랑할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셨다. 더 이상 따로 사랑을 확인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요구할 자격도 우리에게 없다.

그럼에도 기도할 때마다 찬양할 때마다 좋은 일이 생겨야만 감사하고 그 외는  매번 추신이 달린 편지를 보내면 어떻게 되는가? 연인끼리 만날 때 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를 내 놓으라고 하는 꼴 밖에 더 되는가? 심지어 결혼하고 난 후에도 매일 아내가 남편더러 오늘 백화점에 불러내어 좋은 옷을 사주면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든지, 남편은 아내더러 오늘 저녁에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맛있게 끓여 놓아야 당신이 여전히 나의 아내인 것을 인정하겠다고 하면 말이 되는가? 대신에 서로 말을 안 해도 오늘 저녁에 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니까 어떤 맛있는 요리를 해 놓았을까 기대감으로 설레면서 집으로 오지 않는가? 무엇을 해 놓았을지 몰라도 그저 집에만 들어오는 것이 즐겁고 흥분된다. 아내도 남편이 자기 생일을 틀림없이 기억하고 어떤 선물과 식사로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인지 기다려지지 않는가?

신자란 신랑 되시는 주님과 신부로 영원한 결혼을 한 사이다. 평생 동안 매일 아침 마다 신랑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과연 제대로 된 아내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실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지 알지도 못하고 예상도 못한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지금까지 인도하신 그 은혜를 생각해 볼 때 이 어려운 일에도 틀림없이 우리 기대 이상의 선으로 인도하실 줄 확신하는 어떤 기대감, 설레임, 흥분이 있는가?

완전히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부부 관계란 어떤 일이나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사랑하고 믿는 것이다. 정표는 더 이상 따로 필요 없다. 건강하고 온전한 인격체끼리 서로 완전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한 인격과 다른 인격 외에 어떠한 것들도 개입될 필요와 여지가 없다. 어떤 일이 생겨야 사랑하고 감사하다면 거래 관계일 따름이다. 찬양이란 하나님 당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기도란 하나님 당신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다. 감사란 하나님 당신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해 주신 일만 칭찬하고, 감사하고, 그것만 목표로 기도하면 거래 관계에서 창고에 물건이 들어 왔고 통장에 입금 된 것을 확인해  수고했다라고 말하는 일상적 인사일 뿐이다. 상거래는 참된 인격적 관계가 없이 정확한 계산 하에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신자가 기도한 양 만큼 은혜가 넘쳐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거래다. 그래서 교회마다 특별 새벽기도에는 사람이 넘친다. 한 번 정확하게 계산하고 투자한 만큼 이익을 보자는 심보다.

우리의 기도, 감사, 찬양은 금 대접에 담겨 올라간다. 금박 편지지와 봉투에 담겨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뿌려져서 올라간다. 여러분 한 번 눈을 감고 그 광경을 상상 해보라. 하나님이 우리의 편지를 받아 보고 과연 만면에 미소를 띨 것인가? 믿은 지 10년이 넘도록 추신이 안 달린 편지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찡그리시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매일 쓰는 하나님께 드리는 연애편지를 정말 연애편지답게 한 번  제대로 써 보자. 표현이 서툴러도 된다. 철자법이 틀려도 된다. 글씨가 엉망이라도 된다. 단 한 가지 추신만 달지 않으면 된다. 조건부 항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항복을 해야 한다. 온전히 주님께 내어 맡기고 한 걸음 물러서서 보물 상자를 열기 전에 설레는 그런 마음으로 기다려 보라. 금박이 찍힌 천국의 향기가 가득한 금 대접 위에 담긴 하나님의 답장이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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