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직전 영접기도로 구원받는지요?

조회 수 2505 추천 수 2 2019.04.09 14:31:55

임종직전 영접기도로 구원받는지요?

 

[질문]

 

곧 임종을 앞두고 있는 사람, 특히 부모님에 대해 복음을 전하고 영접기도를 받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 동의의 반응이 보이면 자녀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나마 안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아버님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적이 있습니다. 예정론과 관련해서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답변]

 

많은 신자들이 실행하고 있고 또 궁금해 하는 문제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따라 1) 예정론과 전도의 관계와 2) 임종직전 영접기도에 의한 구원 여부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눠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정과 전도

 

우선 예정론과 전도의 관계는 간단합니다. 간혹 하나님이 택하여서 구원을 주기로 예정이 되어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므로 구태여 따로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에 대해선 이미 이 사이트에 대해서 한 번 다뤘습니다. (#14 - “예정에 의한 구원이라면 구태여 우리가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정에서 가장 먼저 주지할 사항은 어느 누구도 누가 택함 받았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전도를 해야 합니다. 상기의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우리 아이가 예정되어 있으면 어차피 구원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텐데 아무리 부모라도 인간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 그냥 두어야지.”라고 방치하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정으로 구원을 주관하심에도 신자가 꼭 전도해야 할 이유를 성경은 명백히 밝혀 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을 생각은 아예 없고 정반대로 신자들을 열심히 핍박했던 지극한 안티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과 초자연적인 대면으로 구원 받았는데, 바꿔 말해 예정으로 택함 받았음에도 전도를 가장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전도의 미련한 것”이 전도라는 방식이 아니라 전해지는 내용을 지칭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23절을 보면 그 뜻이 더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까 이방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치부한다고 말합니다.

 

합리적 인본주의 사상에 젖은 그들로선 하나님이 인간으로 와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했으며 그 대속죽음의 은혜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은 완전히 망상적인 가설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신의 기준에 맞게끔 선해지거나 스스로 신의 지혜를 터득하여 구원 얻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믿었습니다. 로마에 사형당한 한 죄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준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불신자들의 반응과 동일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불신자들에게 예수 십자가가 미련하게 여겨질지라도 신자들이 전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복음을 바로 전해서 기뻐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전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본문 안에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성령의 지혜로 예수 십자가를 통해 그분을 알게 된 신자들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것이 전도이고 그런 방식으로 불신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2-14)

 

다시 정리하자면 전도라는 형식이나 전해지는 내용 자체가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설명 드린 대로 십자가 복음을 접한 불신자들이 그것을 미련하다고 여깁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만이 구원의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들어야만 생기고 전하는 자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고 설파한 것입니다.(롬10:14,15)

 

예수님도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지켜서 행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마28:20) 예정되었다고 전도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 받을 길을 신자가 앞에서 가로막는 짓입니다. 전도해야만 구원 받는, 전도한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전도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하는, 더 깊은 이유를 다음 주제에서도 설명하겠습니다.

 

죽기 직전 구원 받은 십자가상의 행악자

 

가까운 부모 자녀 친구 친지가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다가 죽을 지경이 되면 신자로선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죽으면 기다리는 것은 심판입니다.(히9:27) 중간 회색지대도 없고, 회심할 제 2의 기회도 없으며, 마지막 날까지 심판을 유보시켜 주는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사영리 식으로 전도하고 그대로 수용하면 구원 받은 것으로 여기고 안심합니다. 당연히 남아 있는 가족이 자기 위로를 얻으려 전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전해서 하나님께 그 영혼을 위탁시키려는 간절한 열망입니다.  십자가의 미련한 내용을 알게 해주려고 끝까지 또 마지막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너무 짧아서 제대로 복음을 다 전하지 못합니다. 그 잠간의 전도와 환자의 단순한 영접기도가 너무 형식적인 것 같기도 해서 구원이 과연 이뤄질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나아가 사영리 전도가 갖는 신학적 교리적 결함이 있습니다. 상대가 그대로 수용한다고 해서 당연히 구원이 이뤄진다는 법도 없습니다. (사영리 전도는 간단히 정리해서 아래에 별첨했음)

 

구원은 오직 성령의 간섭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하고 그 일은 한 죄인의 내면에 하나님의 선도적 주도적 제2의 창조가 이뤄져야 가능합니다. 그 죄인도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와 삶의 방식에서 이전과 정반대의 자발적 전환을 이루는 결단과 헌신이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39-43)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달린 사형수 중에 한 명이 임종 직전에 구원받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사영리로 전도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행악자는 신앙생활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성자 하나님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즉, 구원 받았음을 선포해주었습니다. 어떻게 그 구원이 가능했습니까?

 

한마디로 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구원하러 온 메시아임을 믿고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행위로 지은 죄 값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또 지금 십자가로 치루고 있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구원 받는데 부족하다는 뜻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기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라고 인정했습니다. 또 자기를 생각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저지른 범죄 행위들을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법정에서 사형으로 감당했습니다. 자기 존재 전부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물론 그가 십자가 구원 진리를 교리적 신학적으로 명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 사회의 인간적 수단으로는 아무리 선하고 경건하고 신령해도 인간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다른 말로 자신의 태생적 존재론적인 원죄는 어떤 방안으로도 씻을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에게 구원의 계명을 가르쳐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직접 당신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또 그래서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구원이 임할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요컨대 그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예수를 믿으면 구원 즉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그 영생은 바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상의 구원 받은 강도도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임종직전의 영접기도

 

임종직전의 환자는 아무래도 그동안 자신의 죽음 이후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도 겸허하게 되돌아볼 것입니다. 궁극적인 구원을 소망하게 됩니다. 아예 그렇지 않은 자도 많고 질병으로 그런 의식도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의식이 살아 있을 때부터 진정성과 간절함을 갖고 차분히 전도하면 아무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 환자 중에 진심으로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을 거역했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스스로 자기 죄를 도무지 씻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예수 십자가 죽음의 은혜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그분을 메시아로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주소서”라고 간구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임할 것입니다.

 

물론 누가 구원으로 예정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또 지금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가 진심으로 회심하는 지도 본인과 하나님만 알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이 전도를 통해서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불신자로 하나님을 알게 해주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영생이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독생자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영리를 전하고선 상대로 영접기도만 시키면 즉, “입술로 시인만 하면”(롬10:10) 구원 얻은 것으로 여기는데 이야말로 미련한 전도의 대표입니다. 당장 로마서 그 구절 에서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전제했습니다. 입술로 시인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마음으로 이미 믿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증거일 뿐입니다.

 

단순히 지옥 갈 것이 두려워서 진정어린 회심은 없이 전도자가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해선 구원 받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가족으로선 그렇게라도 전도해봐야 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정이 되어있다고 임종직전에 전도하지 않으면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즉, 믿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구원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단순한 차원으로만 여기면 구태여 전도에 열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죽고 나면 하나님이 알아서 둘 중 하나로 나눌 것이니까 말입니다. 구원의 본질은 예수님을 알고서 그분과 함께 교제 동행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예수가 누구인지 죽기 전에라도 알았으므로 그날 이후로는 낙원에 가서 주님과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는, 아무리 예정이 되어 있어도 이는 사실은 틀린 말로 그런 자는 예정이 안 된 것임, 죽어서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자는 때를 얻든 못 얻든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전도만 하지 구원하려 들어선 안 됩니다. 구원은 성령의 능력으로 택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럼에도 신자가 예수 십자가의 새 생명을 불신자와 함께 나눌 때에 구원이 이뤄집니다. 먹을 것을 발견한 거지가 어떻게 아직도 굶고 있는 동료 거지에게 그 먹을 것을 소개 안 해줄 수 있겠습니까? 또 처형을 완전히 사면 받은 사형수가 동료 사형수에게 그 사면 받는 길을 어떻게 안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4/9/2019

 

네 가지 영적 원리

 

제1원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제2원리: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제3원리: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은 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제4원리: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영리 영접기도문

 

“주 예수님!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원

2019.04.09 14:56:08
*.76.19.170

감사합니다.

 

전도에 대해

말로 전하는 것보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도화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말과 삶의 일치를

소중히 하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만

이런 말을 들을 때 간혹 헷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이유로

인격적으로 고상한 것 같은데

복음에 대해 말을 의도적으로 아낍니다.

master

2019.04.09 15:17:25
*.115.255.228

구원님 그렇습니다.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도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믿는 신앙에 대해서 마음을 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무조건 대놓고 사영리식 복음을 전해선, 죽음 직전 같은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신자다운 삶은 전도대상자와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자연스레 마련하고 전해지는 복음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이해시키려는 사전조치입니다. 아무래도 복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말하자면 불신자더러 당신이 믿고 따르는 그 예수가 누구인지 나도 알고 싶고 또 나도 당신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당연히 복음을 정확하게 말로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이루었고 그로 인해 죄인에게 미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작금 신자들의 기복적 탐욕적 세속적 나아가 세상사람보다 더 영악한삶의 방식이 아예 그들의 귀와 마음 문을 닫게 만들뿐 아니라 예수님을 대적하는 데까지 치닫게 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거룩한 삶으로 전도가 자연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는 성립됩니다. 말하자면 전도를 게을리 해서 기독교가 쇠퇴한 것이 아니라 신자의 삶이 비뚤어져서 급속히 그렇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정말로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합니다. 샬롬!

옷자락

2019.04.10 08:13:15
*.170.222.121

그런 환자 중에 진심으로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을 거역했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스스로 자기 죄를 도무지 씻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예수 십자가 죽음의 은혜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그분을 메시아로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멘 !!!

 

 

사도행전 4장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정신력 강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정도로 최강의 정신력으로

 

평생 살아오셨던분께서  말기암 판정앞에도 두려움없는 태도를 보이시다

 

마지막 임종 한달전 엄청난 육체의 고통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성령의 은혜가 임한후에

 

 

마음이 너무아퍼 ! 마음이 너무아퍼 !

 

 

이 말씀을 시작으로 당신께서 평생 지었던 죄악들을 한달내내 실토하시고

 

자백한후에 너무나 평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특이한점은 은혜를 받기전에는 귀신이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은혜가 임한이후에는 귀신이 보인다는 말씀을 전혀안하셨습니다.

 

 

이분은 82세에 돌아가셨던 과거 해병대 출신이신 제 아버님 이시며

 

이땅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요한복음 14장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행복

2022.03.11 19:38:33
*.6.205.86

작성하신 칼럼 내용중에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임종직전의 영접기도

 

임종직전의 환자는 아무래도 그동안 자신의 죽음 이후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도 겸허하게 되돌아볼 것입니다. 궁극적인 구원을 소망하게 됩니다. 아예 그렇지 않은 자도 많고 질병으로 그런 의식도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의식이 살아 있을 때부터 진정성과 간절함을 갖고 차분히 전도하면 아무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 환자 중에 진심으로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을 거역했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스스로 자기 죄를 도무지 씻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예수 십자가 죽음의 은혜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그분을 메시아로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주소서”라고 간구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임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임종 직전의 환자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그중에서도 몇몇은 중생체험(회심)을 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걸로 이해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궁금한것은 단기간 안에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머리로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회개하며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란걸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고백하고 이러한 '생각과 진심을 담은 마음' 자체만으로도 성령님의 간섭으로 중생체험(회심)하여 거듭나는 상태로 하나님께서 알아봐주시고 구원을 받는게 가능건가요?

 

임종 직전의 무신론 환자는 중생체험을 겪고 회심을 하고 성령님의 간섭으로 옛 자아가 깨져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는 개념자체도 아예 전무할텐데요... 거듭나는 단계까지 남들은 몇년 혹은 몇십년 혹인 일평생이 걸리는 긴 기간을 초 스피드로 성령님의 간섭으로 중생체험(회심)의 단계까지 간다는게 잘 와닿지가 않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임종 직전의 무신론 환자를 직접 영접했다는걸로 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master

2022.03.12 02:04:29
*.115.238.222

"구원은 오직 성령의 간섭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하고 그 일은 한 죄인의 내면에 하나님의 선도적 주도적 제2의 창조가 이뤄져야 가능합니다. 그 죄인도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와 삶의 방식에서 이전과 정반대의 자발적 전환을 이루는 결단과 헌신이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 제 컬럼에서 구원에 관해서 전제한 내용입니다. 

 

상기에 인용하신 내용은 환자 쪽의 영적상태만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 심경의 변화 자체가 행복님도 말씀하신대로 성령이 간섭하여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야만 가능합니다. 사람에 따라 짧은 시간 안에 진정한 회심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단 하나님이 구원을 주기로 택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행복

2022.03.12 17:44:42
*.6.205.86

1, 크리스천이 진정한 구원을 받고 거듭나면 자신의 옛자아가 깨지면서 다시는 예전과 같이 살기 싫고, 이전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려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본인은 진정한 구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거듭났다고 인지하게 되나요?

 

 

 

 

2, 거듭난 상태의 기준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려는 삶이란 기준이 궁금합니다. 혹여나, 술중독자, 게임중독자, 포르노를 주기적으로 보는 청년들 등등 이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삶이 잘못해었다고 인지하고 그 좋아하던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지는 양을 줄일려고 노력하고, 게임 시간을 줄을려고 노력하고, 음란물 보는 횟수 줄일려고 노력하는 이 잘못된 현재의 삶을 청산할려는 모습이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구원을 받았고 거듭난 상태로 말할수 있나요?? 아니면 아직 거듭난 상태는 아니지만... 거듭난 상태로 갈려는 과정인가요? 

 

 

 

 

 

3, 저는 하나님을 알게되면서 제 삶중에 잘못되었다고 인지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가장 큰것은 음란물 시청으로 이걸 안볼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안보는건 아니여서 이 부분에 관해서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또한 기도 1분 하지 않던 제 자신이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는거 같아서 기도시간을 늘려 하나님과 좀더 많이 대화할려고 합니다. 하지만 5분 ~ 10분이면 제 할말은 다 끝나고 더이상 할말도 생각나지않고 그이상 기도하는게 너무 길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제 스스로 아직 정말 하나님으로 부터 진정한 구원을 받았나...? 아리송하고 음란물을 안볼려고 하는 제 자신의 삶이 거듭난건가...? 싶기도 한 이 애매한 상황 자체가 제 자신 스스로 구원은 확신을 받았는지 알수없고 아직 중생체험(회심)을 한거같지 않는데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의 상태 자체가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확신을 받지 못했고 또한 거듭난 삶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master

2022.03.13 14:38:03
*.115.238.222

행복님 많은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곤혹스러워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우선 간단히 댓글로 답을 드릴지 별도 칼럼을 작성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행복

2022.04.04 03:16:13
*.6.205.86

목사님 까먹으셨는지요... 몇주를 기달려도 답이 없네요..ㅜㅜ

master

2022.04.04 04:04:45
*.115.238.222

죄송합니다. 그러나 절대 까먹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에 개인적으로 쪽지도 한 번 보냈듯이 "구원의 확신" 문제에 관해서 종합적인 글을 쓰려다 자꾸 바쁜 일들이 겹쳐서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너무 기다리게 했으니까 상기 질문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master

2022.04.04 04:30:41
*.115.238.222

1. 이전까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는 모든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는 일이 회심이자 거듭남입니다. 자기 내면의 완전한 유턴은 본인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신이 구원받았고  거듭났다고 스스로는 인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변화의 과정이 주로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극적인 사건이나 계기를 통하는 것이 드물기에 그 확신이 딱 부러지는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또 수시로 이전의 본성이 살아나서 주님의 뜻에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기에 구원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특정시점에서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외양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진리를 깨달아 진정으로 주님께 자신의 전부를 바치면서 이전과 다른 인생을 살기로 결단 헌신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알고 있다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요컨대 구원의 확신은 행동으로 판단하지 말고 십자가 진리를 깨달아서 자신이 그 진리대로 살기로 결단했는지 여부로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구원이란 죄에서 구원받는 것인데 죄의 본질부터 아셔야 합니다. 말씀하신 그런 비도덕적 행동은 죄의 결과이지 죄 자체는 아닙니다. 죄는 자신만을 세상에서 최고로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려는 내면의 끈질긴 습성 경향 힘입니다. 바로 그래서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가치관이 인간(자기) 중심에서 완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으면 거듭난 것이고 또 그 사실을 본인만은 인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회심한 사람도 죄의 본성이 남아서 수시로 죄에 넘어갈 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가치관의 완전한 전도 없이 그런 죄들을 저지른 것은 아직 불신자이거나 구원으로 가는 점진적 과정 중에 일어난 것입니다. 반면에 완전한 회심을 한 구원 받은 신자가 그런 잘못을 범하면 일시적인 넘어짐입니다. 또 그런 신자는 성령이 간섭해주셔서 반드시 다시 회개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러는 자신부터 또 그런 죄악들이 너무나 싫어집니다. 이런 차이로 구분해야지 잘못된 행동으로 판단해선 안 됩니다. 이에 대해서 아래의 글을 다시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 포르노 시청은 2번과 같은 맥락에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또 청년기의 왕성한 정력 때문에 피치 못할 사정도 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오래 동안 길게 한다고 좋은 기도가 아니며 순전한 믿음과 간절함과 진심이 있느냐 여부로 따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소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자기 소명을 알고 있고 실제로 그 일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으면 자연히 기도할 제목들도 많아지게 됩니다. 어제 주일로(4/3) 기도시리즈를 14회까지 설교하고 있으므로 참조하십시오. 

 

예수 믿은 후에 짓는 죄와 구원의 관계

 

master

2022.04.04 04:45:48
*.115.238.222

꼭 첨언하고 싶은 사항은 굳이 구원의 확신 여부에 신경 쓰고 계속 따지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구구단 배워서 평생동안 언제든 사용가능하듯이 명확한 진리로 각인되어서 전혀 흔들림 없이 삶의 모든 차원에서 구원 받은 자답게 살 수 있는 것이 구원의 확신이 절대 아닙니다. 단순히 성경을 통해 예수님과 그 구원을 더 깊이 배우고 실제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정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면 됩니다. 따로 구원의 확신 문제에 대해 글을 쓰게 되면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학생이 학생증을 매번 꺼내서 확인해봐야 공부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훌륭한 성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 열정이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구원 여부를 자꾸 따지지 말고 성경의 진리의 말씀대로 살려는 소망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여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조금씩 실천해나가면 됩니다.  

행복

2022.04.04 05:34:44
*.6.205.86

답변 너무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됬습니다. 설명하신 내용이 간략하게 답변하신거고 추후 장문으로 칼럼에서 이어지는건가요?

master

2022.04.04 05:46:22
*.115.238.222

현재로선 그럴까 생각하는데 계속 해야 할 일들이 밀려 있어서 짬이 나야겠지요. ^0^

모루두개

2024.09.16 01:46:10
*.97.127.172

저는 예정론을 믿습니다.(엡1:4)

그런데 본인이 구원받았는지 깨닫는 시기도 예정되어 있을까요? 저는 전도가 그 시기를 하루라도 빨리 알려 주는 방편이라고 생각해서요.(기쁜 소식) 이것도 비성경적인 생각일까요?

master

2024.09.16 02:23:09
*.115.24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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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을 깨닫는 것 자체도 대체로 점진적 과정으로 이뤄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인할 수 없이 분명하게) 확신으로 발전되어 있음을 본인은 알게 됩니다. 

모루두개

2024.09.16 03:43:43
*.97.127.172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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