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 날을 기억해야만 하는가?

조회 수 389 추천 수 1 2021.04.10 10:06:12

구원 받은 날을 기억해야만 하는가?

 

[질문]

 

어떤 분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은혜 받은 성경 구절이 있어야 하며 그 깨달은 날짜와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들었습니다. 그 성경적 근거는 골1:6과 벧전1:23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런 의견이 성경적으로 옳은지요?

 

[답변]

 

이단의 성경해석에 속지 말라.

 

성경의 모든 원전은 장절의 구분 없이 죽 이어져서 저작되었습니다. 성경 해석의 첫째 원칙은 그래서 본문의 뜻을 반드시 그 앞뒤 문맥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책을 읽던 전체 스토리 안에서 각 문장을 해석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도덕과 종교적 지식은 물론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기독교적 지식, 교리, 신학과 자신의 체험 등을 일절 개입시키지 말고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본문을 접근해야만 합니다. 매번 완전히 처음 접하는 말씀이라고 여기고 저자가 과연 어떤 의도를 갖고 무슨 내용을 드러내고 싶은지 객관적 합리적으로 잘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래도 자신의 개인적 생각이나 선지식(先知識)에 이끌려 묵상 해석하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옹호해줄만한 단서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에 맞춰서 해석해버립니다. 비록 독자의 생각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해도 어쨌든 본문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뜻과는 초점이 맞지 않게 됩니다.

 

본문과 문맥이 무시되니까 그 필연적인 결과로 한두 단어나 구절의 뜻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럼 또 아무래도 엉뚱한 뜻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성경해석상 오류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성경이 실제로 자신에게 말하려는 바에는 귀를 막고 성경더러 자기가 듣고 싶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말만 하라고 요청하는 셈입니다.

 

정통교리와 어긋나게 가르치는 이단들이 성경을 대하는 전형적인 자세입니다. 아무래도 자기들 주장을 변증해야 하니까 그 주장과 딱 부러지게 일치하는 단어나 문구를 찾아내서 그럴싸하게 보충 설명해줍니다. 성경해석법에 무지한 일반성도들로선 성경이 직접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용해주니까 아주 올바른 해석 같이 여겨져서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앞뒤 문맥에서의 뜻을 분석해서 가르치는 정통교단은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흐르는 영적 원리에 치중하게 됩니다. 각각의 단어나 문구들이 합쳐져서 문장을 이루고 문장들이 모여서 문맥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해석법 중에 어느 쪽이 옳은지는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서 두 해석법을 비교해봅시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이 구절이 독자에게 가르치려는 영적 진리는 예수님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과 일대일 인격적 관계에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 아직도 밝기 전”이라는 문구에만 매달리면 예수님은 새벽 해 뜨기 전에 기도했으니 우리도 반드시 새벽 해뜨기 전에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본문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도 어쨌든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인용한데다 그 해석한 내용이 틀린 말씀은 아니니까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 가장 잘 가르친다고까지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객관적 사실을 쉽고도 간단하게 진술되어 있으니 판별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영적인 진리를 추상적인 단어나 여러 수사법을 동원해서 여러 문장으로 연결해서 설명하면 신자들은 지레 아주 어렵다고 간주해버립니다. 스스로 여러 번 읽고 깊이 묵상하여서 그 뜻을 따져볼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모습에서 배워야 할 영적 진리는 세상의 것들로 방해 받지 않는 장소와 시간에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먼저 깨우쳐 준 후에 그렇게 하려면 이왕이면 새벽 해뜨기 전이 가장 좋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무 하자가 없습니다. 영적인 진리를 실제로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벽 해뜨기 전에만 기도해야 한다는 것만 혹은 우선적으로 가르치면 정작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모든 이단들이 이처럼 단순히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차원을 절대적인 영적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이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알려주어도 성경문구 단어를 내밀면서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고 거꾸로 반박합니다. 상기에 인용한 구절들의 뜻이 앞뒤 문맥 안에서 과연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자세히 살펴봅시다.

 

깨달은 때부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3-6)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는 문구만 인용해서 신자라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이 구절이 포함된 문장(6절) 차체의 뜻부터 무시해버렸습니다.

 

바울이 6절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강조하려는 뜻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너희가 듣고 잘 깨달았기에 교회의 안과 밖에서 열매가 맺히고 자란다고 칭찬해주려는 뜻입니다. 복음을 듣고 깨달은 날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는 그 문장에서부터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들어서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복음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고 들은 소문의 내용은 교인들의 믿음이 굳건해지고 성도에 대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그럴 수 있는 근거는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인데 그 소망은 너희가 전에 들은 복음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요컨대 앞뒤 문맥의 주제는 복음으로 인해 영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성화이지 구원이 아닙니다.

 

바울이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표현한 이유도 복음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곧바로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여 신자로 열매 맺게끔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 강조하려는 것이지 신자더러 은혜를 깨달은 날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원론은 성경이 계시하려는 핵심 내용입니다. 기독교신앙의 본질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구원을 신앙성숙을 가르치는 본문에서 그것도 단어 한 둘을 가지고 마치 절대적 진리인양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큰 잘못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짓입니다. 단순히 “깨달은 날”이라는 문구만 끄집어내어서 자기들 주장에 억지로 갖다 붙인 것입니다.

 

본문과 문맥이 말하는 주제대로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를 신앙 성숙에 적용하여서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깨달으면 그 날자와 어떤 일로 어떤 은혜를 받아서 내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다고 하나님과 나만 아는 내용의 신앙일기를 작성해보라는 것은 아주 좋은 적용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의 구원 여정은 특정한 날의 특정시간에 그것도 특정 성경구절 하나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완악했던 견고한 진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성경말씀의 은혜도 앞뒤 문맥을 다 살피고 성경의 여러 책을 배워나가야 정확하고도 깊이 깨달아집니다.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으니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3-25)

 

반드시 은혜를 받은 말씀이 있어야만 구원 받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언뜻 상기 벧전1:23이 앞의 골1:6보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분명히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도 본문이 너무 명확하니까 자기들이 어디에서 틀렸는지 전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상기 벧전 1:23 말씀에서 오히려 그 오류를 더 쉽게 밝혀낼 수 있습니다. 본문 안에 이어서 “그 말씀이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라고(25절) 부연해서 설명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복음이므로 “복음으로 거듭난 것”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럼 복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관해선 칭의 구원의 여정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로마서 서두에 정의(定意)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1:2-6)

 

한마디로 복음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독생자 하나님이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셔서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믿은 자에게 구원을 주시니 예수님이 바로 복음(福音 Good News)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1;23의 앞부분에서도 바로 그런 뜻을 분명히 밝혀 놓았는데 로마서의 복음의 정의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18-21)

 

같은 맥락에서 요한복음은 맨 처음부터 아예 말씀이 예수님이라고 선언하고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즉,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 영접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야 가능하다고 말합니다.(요1:12-15)

 

구원은 성경말씀 한두 구절의 의미를 스스로 깨달아서 은혜 받았다고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그것도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만 이뤄집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서 구원 얻는 방식을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성령의 역사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날 때에 성경을 읽고 있어야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연히 구원 받은 은혜를 입어도 정확하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자신의 구원 여정을 당연히 구원 받은 날짜나 말씀을 포함해서 구체적으로 모른다고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구원은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의 특정한 구절에 은혜 받아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성경 말씀에 은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로마서 전체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구원 얻은 후에 세밀하게 성경공부를 해야만 그 진리가 깨달아지고 은혜를 받습니다.

 

(4/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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