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봉선화 인생(빌2:13,14)

조회 수 2260 추천 수 167 2007.05.04 16: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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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빌2:13,14)



이민자들의 스트레스

지난 한 주간 버지니아텍에서 일어난 조승희군 사건으로 우리 모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민 와서 사는 우리에게는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아 더 착잡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조군이나 그 부모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부터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포들은 책으로 쓰고도 남을 만큼의 기구한 사연들을 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내면에는  초조, 염려, 슬픔, 상처, 분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익을 대로 익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사정없이 터지는 봉선화 같습니다.  
  
저를 비롯한 누구라도 손에 총이 쥐어지면 길거리에 나가 미국 사람뿐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아내나 남편을 쏴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부부야 돌아누우면 남이라고 하지만 제 몸에서 난 자식마저 그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누구 때문에 미국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데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마약까지 손을 대니까 시쳇말로 하루에도 서너 번씩 꼭지가 돕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기도하고 말씀보아 스트레스를 없앱니까? “성경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또 다시 마누라와 자식에게 할 말 못할 말 다 쏟아 붇고 손찌검까지 했습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제 마음에 평강을 주셔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해결되었습니까? 잠시 그 때뿐이고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또 다시 분노가 폭발하지 않습니까?

이미 분노가 치밀어 오를 대로 올랐거나 겉으로 폭발한 뒤에 하는 기도는 반성이나 회개일 뿐이지 해결책은 아닙니다. 속이 곪아 터지면 진통제를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아내어 환부를 수술하여 도려내어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느끼는 스트레스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영어입니까? 아닙니다. 미국에 와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쌓은 학력, 경력, 재능, 장기와 전혀 무관한 일을 하거나 한국이었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험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영어만 능통하다면 하고 싶은 일을 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인 데라는 불만에서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

사람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하지 않고는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 본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계획해서 실컷 하면 됩니다. 또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자 하나님의 뜻입니다.

목사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습니까? 제가 임의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본문의 일차적인 뜻은 구원을 받은 신자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 즉 교회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섬겨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적용하면 하나님이 소원을 심어주었다면 그 소원대로 한다면 하나님의 원하는 바대로 하는 것이 됩니다. 중국 선교사로 가면 하나님의 일이고 입에 풀 칠 하기 위해서 허드레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라고 성경은 그 어디에도 말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온 후에 “하나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습니까?”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중국 선교사로 가라든지 데리야끼 수시 집(일본식당)을 하라는 응답을 받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응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이미 우리 각자의 마음에 소원을 심어주었기에 더 이상 대답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그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항상 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단 본문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해야 합니다. 또 너무 거룩하고 신령한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인지만 점검해 보면 됩니다. 최소한 하나님이 싫어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선다면 성도가 하는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컨대 저도 슈퍼로토에 걸려서 팔자를 한 번 고쳐보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는 말씀대로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더 실감나는 이유를 말씀드리면 걸릴 확률이 거의 제로나 다름없어 치사하게 단 돈 5불도 아깝기 때문에 사지 않습니다.

대신에 영어에 자신이 없고 손재주가 꼼꼼하니까 세탁소를 차려서 뼈 빠지게 일해 빨리 집을 사서 아파트 신세를 면해야지라고 소원하면 하나님의 일이자 아주 기뻐하십니다. 교회 봉사하고 단기 선교를 따라가고 세탁소에 오는 손님을 전도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세탁소업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자 더 중요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울 때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이방 땅의 나그네가 되게 했습니다. 그 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버리라고 명했던 바로 그것을 다시 준다고 했습니다. 본토를 버렸는데 약속의 땅을 주고, 또 친척을 떠나 왔는데 후손을 뭇별처럼 많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는 주지 않았고 줄 수도 없었는데 바로 아비 집입니다. 아비가 죽었으니 당연히 줄 수 없었지만 그 보다는 아브라함더러 네가 아비 집을 다시 세우라는 뜻입니다. 이국에서 나그네로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이 약속은 동일합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져 썩어져가던 옛사람을 다시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다 버리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미국에서 우리 모든 것을 걸고 오직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거룩한 새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에게 종횡으로 행하고 그의 눈에 보이는 땅을 다 주신다고 하신 약속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응하게 됩니다. 종횡으로 행하든 다 주신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며 먹고 살든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단 그 일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차선을 구하라

그러나 문제는 이국에서 살다보니 언어, 문화, 관습, 제도가 다르고 또 알게 모르게 옭아매는 차별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못하는 것이 정확한 현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차선책으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열심을 다해 노력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일 자체에 보람, 의미, 가치,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요컨대 이민 와서 하는 일에 소망을 가져야 하고 인생에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여러분의 십중팔구는 “자식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을 이민 인생의 목적으로 들 것입니다. 이것은 틀린, 아주 틀린 것입니다. 희생이라는 말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으니 억지로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안 쌓일 방도가 없으며 그 일 자체에서 소망을 결코 찾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일한다면 감사와 기쁨으로 기꺼이 해도 모자랄 판에 억지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제가 이전에 Utah 주에서 유학생 목회를 할 때에 교수가 되려고 박사 공부를 하다가 IMF를 맞아 학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된 분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LA로 와서 페인트 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접고 하고 싶은 일과 정반대의 험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회사의 이름을 제가 “Paint-it-joy”(구태여 번역하자면 “기쁨을 칠하는 회사”)라고 붙여 주면서 한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새 집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주인이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하면서 일을 하고 또 돈을 벌기보다는 사람에게 기쁨을 나눠주는 회사가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에서 보람과 기쁨을 찾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니겠습니까? 좀 죄송한 표현으로 그런 자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른 것 아닙니까? LA로 올 때에 단 돈 300불을 들고 남의 집 차고에 짐을 맡겨 놓고 단칸방을 세 얻어 Helper부터 시작하더니 한 4년 만에 Irvine에 집을 살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그러면 하나님이 무조건 돈 벼락을 주시는가 보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하나만 보태면 그러는 가운데 얻은 둘째 딸이 소아당뇨로 평생을 핸디캡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쁨과 감사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신용과 정직을 칠하라.

이민 오면 이것저것 다 알아보다 마지막에 자기 기분에는 전혀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세탁소나 페인트업을 하게 됩니다. 그럼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손발을 묶어서 그 자리까지 인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다리미질이나 페인트칠 하면서 온갖 한숨, 눈물, 불평을 쏟아 부으면 하나님 앞에 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 새벽제단에 나와서 그 기업이 잘되게 축복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한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다른 입으로 주님을 욕하는데 그 기도를 하나님이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벌을 안 받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신자라면 폐인트 칠이나 다리미질을 불평과 함께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고객을 만나더라도 신용과 정직과 기술과 친절과 아름다움을 그 옷과 벽에 발라야 합니다. 콧노래 불러가며, 꼭 찬송가가 아니라 봉선화 연정 같은 유행가라도 좋으니, 기쁘게 일해야 합니다. 손님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실제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럼 손님이 “아니 그런 힘든 일을 하면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에 당장 대놓고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히 종교적 의무감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대신에 “지금 당신의 옷을 보라, 당신의 집을 보라.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하느냐? 이것만 봐도 기분 좋지 않으냐?”라고 하셔야, 이 또한 억지로가 아니라 실제로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또 다시 손님이 “아니 그것은 내가 할 말인데 왜 당신이 하느냐? 당신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다. 여느 세상 사람과는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른 것 같다.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 물을 것입니다. 신자란 완악한 이 세대의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종교적 행사를 하는 것 이전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방식으로 사는 자라는 평가부터 들어야 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비로소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순간마다 체험하고 있기에 항상 기뻐합니다. 이 일도 하나님이 주신 일이기에 비록 힘들지만 감사함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죄에 빠진 내 대신 죽으신 것을 확신합니다. 그 예수님이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당신을 위해서도 대신 죽으셨습니다.”라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간혹 밖에서는 이렇게 잘 하다가도 집에 와선 백팔십도로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컨대 당장 마누라나 남편을 총으로 쏴죽이고 싶지만 자식을 사랑하니까 억지로 참고 산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일입니다. 서로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간단하게 자식 앞에서 부부 싸움만 하지 않아도 자식이 마약하거나 총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 억지로 참고 사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식을 길거리로 내몰아 내는 짓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부모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다섯 번째에 있습니다. 그 말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들고 내려온 두 돌 판 중에 첫째 돌판 즉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쪽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 하라는 것입니다. 자식더러 부모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토록 만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식은 반드시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며 또 부모는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원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가정 예배를 보고 성경 말씀을 보게 해선 안 됩니다. 그보다는 먼저 부모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가치관이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선과 거룩과 의로 인도하는 체험을 부모부터 현실의 삶에서 생생하게 해야 하고 그래서 그런 은혜를 자식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부모부터 자기 일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성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의 하는 일과 그 인생이 자식 눈에도 존경스럽게 비춰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첫 걸음은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부부가 사랑하지 않는데 밖에 나가서 일이 잘될 리는 절대 없습니다. 가뜩이나 맞벌이해야 하는 이민 생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부부가 사랑하면 자식은 자연히 교회에 따라 나오고 아무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도하고 말씀을 보게 됩니다.

부모가 세탁소나 페인트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선 제발 자식 앞에서 그 일이 힘들다고 투덜대지 마십시오. 나아가 “다 너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일류 대학에 가라”는 소리도 절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자식이 속으로 뭐라고 반발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언제 이민 오자고 했나? 내 인생 따로 부모 인생 따로 아니냐? 왜 아버지가 힘든 것을 나에게서 보상 받으려 하느냐?” 부모는 밖에서 스트레스 받은 것을 집에 들어와 자식에게라도 풀지만 자식은 집밖과 집안 양쪽에서 스트레스 받습니다. 만약 자식에게 총을 쥐어 주면 이 자리에 남아 있을 부모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자식이 마약하는 것은 부모를 총으로 쏴 죽이는 대신에 하는 일이니까 오히려 감사해야 할 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야 신나고 재미있어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고생하는 것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의미인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민 생활을 승리하기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부터 진정한 자기들 인생의 소망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하고 있는 일에서 기쁨과 감사를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든 일이 끝나야 기쁨과 안식이 찾아온다면 신자가 아닙니다. 믿음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그렇게 됩니다. 성경은 환난 중에 기뻐하라고 했지 환난이 끝난 후에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항상 기뻐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평생에 가장 무서웠던 날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아무리 믿음으로 현재 하는 일과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하려 해도 솔직히 너무 힘듭니다. 이방 땅에서 소수 민족으로 사는 것이 정말 어려워 스트레스는 날마다 쌓입니다. 밤중에 전화 벨 소리만 나도 이민국이나 국세청에서 전화 왔는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만 나도 가족 중에 교통사고가 났는지 불안합니다. 경제적으로 자리 잡고 가족 간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항상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있고 또 그것을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십니다. 험한 세파를 이겨나갈 어느 정도의 노하우나 인내심을 갖추었습니다. 거기에 믿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식들은 아직은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제 아이들 둘이 평생에 가장 무서웠던 날이 미국학교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는 말을 가끔 합니다. 그것도 부모가 걱정할까 이민 온 후 근 십년이나 지나서야 고백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들의 힘들었던 학교생활이 비로소 실감되어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기 이전에 자식이 부모를 걱정할 만큼 여러분 아이들의 마음은 순수합니다.

나아가 지금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영어라고 합니다. 큰 아이는 중학교 2학년,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이민 와서 영어에 능통한 데도 그런 말을 합니다. 고급한 단계로 올라 갈수록 백인들이 쓰는 고급한 영어 표현이 있는데 그런 표현에 숙달하지 않으면 상대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느끼는 인종 차별은 한정된 생활만 하는 어른들이 느끼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미국도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 잡기가  아주 힘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 자식들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면 부모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습니다. 거기다 엄마 아빠가 애꿎은 자식 상대로 봉선화를 쌍으로 터트립니다. 부모가 아이들이 꼭지가 완전히 돌아서 집을 뛰쳐나가도록 재촉합니다.

물론 그런 일을 겪는 우리의 심정도 참담합니다. 솔직히 아이들에게 분노를 터트릴 의도는 추호도 없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맞벌이 하느라 따뜻한 밥 한 끼도 해주지 못해 안 그래도 미안한 참이었는데 자식이 그런 부모의 심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욱하고 치밀어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는 부모 심정을 세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부모도 그들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체질이 진토 같고 내면의 탐심과 정욕과 자존심을 아직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돌아가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절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실제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아픔을 주님이 겪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민 가정에서 발생하는 부모 자식 간의 모든 갈등, 상처, 아픔마저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조승희 군의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갈가리 찢어지겠습니까? 총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자살해 죽고 싶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아픔뿐 아니라 또 그 일이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은 우리의 상처도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부모, 배우자, 자식, 형제, 친구 등 세상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슬픔, 수치, 상처, 분노를 오직 주님만이 치유해서 새롭게 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총을 쏴서 죽이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면 인생으로 그보다 더 큰 실패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 자식 간에 서로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과 상처만 쌓여 간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물 건너 간 것 아닙니까? 벤츠를 타고 골프를 친들 그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경건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열심히 봉사한들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우리 어른들은 언제든 조승희의 부모가, 또 우리 아이들도 어디서든 제 2의 조승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절대 낙망하지 마십시오. 실망도 하지 말고 의기소침해지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와 슬픔을 다 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고말지라는 절망감마저 주님은 바로 잡아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이가 지금 바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눈물을 보고 우리의 한숨을 듣고 계십니다. 우리로선 내 마음에 소원으로 심어주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아니 최소한 그분이 싫어하는 일만 하지 않고 오직 그분께 우리 모든 것을 의탁하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선과 거룩으로 반드시 인도해 주십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시든지 최소한 현재 하고 있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십시오. 단 부모로서 자식에게서 보상 받으려 하지 말고 자기들 인생에 고유의 소망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힘들 수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최소한 자식을 닦달하는 일만은 당장 그만 두십시오. 대신에 부부끼리 정말 사랑하며 때로는 여행도 가면서 두 분이 인생을 신나게 사십시오. 부모가 주님 안에서 자기들 인생에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자식은 자연히 공부 잘하고 믿음도 좋아집니다.

부부끼리 사랑하기 힘듭니까? 그러면 따로따로 골방에 들어가십시오. 당장 별거하여 냉각기를 가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자 이불 덮어쓰고 하나님과 끝까지 씨름하십시오. 자신만의 모든 고뇌 번민 비탄한 심정들을 주님 앞에 완전히 털어 놓으십시오. 부부사이, 자식의 문제와 함께 어떤 불평, 불만, 분노라도 하나 남김없이 주님 앞에 터트립시오. 심지어 교회 목사나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마저 다 털어 놓으십시오. 심령에 남은 것 하나 없이 완전히 까뒤집어서 그곳에 주님의 보혈의 은혜가 베풀어지기를 갈망하십시오.

그리하여 각 자의 인생에 대한, 또 부부 관계에 대한, 그리고 자기 가정을 향한 주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확신이 들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것처럼 주님이 지금도 나를, 우리 부부를, 또 내 가정을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최소한도 내 아내도, 내 남편도 나와 같은 슬픔과 분노를 갖고 있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만이라도 기도하십시오.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거든 자식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부모와 한사람의 성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본문 말씀대로 원망과 시비 없이 모든 고통을 자신이 감당하며 끝까지 참으십시오. 주님께 기도해도 안 되면 이일 말고는 사실 다른 대책이 없지 않습니까? 특별히 남자들이 남자로서의 체면과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모든 것을 참으며 아무 불평하지 말고 가정을 꾸려 나가십시오.

아내들의 잔소리에 괘념하지 마십시오. 여자는 원래 하나님이 작은 일에 흥분하며 말을 많이 하는 존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여자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그렇게 만든 이유는 잘 나가는 말솜씨(?)로 당신께 세밀하게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도저히 그것마저도 안 되면 부부끼리는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자식이 없을 때만 그렇게 하십시오. 자식이 들어오면 일부러라도 끌어안고 뽀뽀 하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내가 너희 때문에 이 고생하며 희생한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대신에 그분은 땀이 핏방울로 변할 때까지 제자들과 이 땅의 인류를 위해 모든 죄악과 고통을 당신께서 감당하시며 하나님께만 기도드렸지 않습니까?

(4/22/2007 LA Rowland Heights 소재 아름다운 교회 주일 예배에서 설교함)  


정순태

2007.05.05 00:10:08
*.75.152.42

마음이 찐~해지는 말씀입니다.
고국에서 살더라도 인생은 고해일진데, 어려움과 아품이 왜 없겠습니까만,
이민생활의 애환을 보다 사실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주님의 위로하심과 이를 그대로 받아 누리시는 교포님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근데, 목사님~~~~~~
방언 통역 좀 부탁드립니다. ^*^
목사님 글에 "데리야끼 수시 집"이라는 방언이 나오던데, 뭔 뜻인가요????????
넘 궁금해서 여쭙지 않을 수 없네요............... 샬롬!

운영자

2007.05.05 00:50:26
*.104.230.149

천하가 알아 주는 정순태 집사님의 예리함 앞에는 또 다시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 교민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다보니 쉽게 알아듣게 일본말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방문자들에게 죄송합니다.
"생선 초밥과 일본 음식"이 미국 사람들 사이에 아주 인기라 백인 동네에 깨끗하게 왜식집을 차리면
경제적으로 비교적 쉽게 안정할 수 있다는 것을 교민들이 잘 알기에 일본말 그대로 실감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설교나 글을 올릴 때에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0^

김순희

2010.02.24 12:48:03
*.161.88.93

저도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얼마나 섬세하고 자상한지 마치 손 다리미로 옷의
구석 구석을 다림질 하는 기분이랍니다.

이 사이트를 몇일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던 고향을 찿아온 기분입니다.

날마다순종

2020.12.04 16:06:38
*.14.99.253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글이네요^^ 지금도 매일이 전쟁터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돌보시며 사랑하시어 선으로 이끄시는.. 표현이 그분께 맞지 않치만 쉬지도 않으시고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계실 주님을 생각하면 없던 힘이 절로 생기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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