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34:33-35) 혈색(血色)보다는 화색(和色)

조회 수 681 추천 수 30 2012.07.17 17: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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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색(血色)보다는 화색(和色)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출16:33-35)


모세가 40일 금식한 후에 하나님께 다시 계명을 받고서 산에서 내려올 때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백성이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므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할 정도로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난 것입니다.(30절) 또 그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를 만나고 나오기만 하면 그랬습니다. 평생을 두고도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우리로선 참으로 놀랍고도 너무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을 가렸다고 합니다. 모세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면 얼굴을 쳐다봐야 합니다. 반면에 말을 마치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구태여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습니다. 상식적 판단과 반대였습니다. 혹시 얼굴은 볼 필요 없이 말만 듣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로 눈과 얼굴 표정을 보아야 완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습니까?

그 답은 본문 안에 아주 명료하고도 알기 쉽게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수건을 가렸다고 합니다. 또 여호와께 말씀하러 회막으로 다시 들어갈 때까지 즉,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만 가렸습니다. 백성들이 모세 개인과 그 광채에만 주목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보다 모세를 우러러보는 경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그분을 직접 대신할 수는 없어도 아주 큰 능력을 부여받은 신령한 자로 여기고 개인숭배로 발전할 우려를 막은 것입니다. 또 얼굴에서 눈이 부시도록 광채가 나는 신기한 현상에만 관심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을 경배해야지 그분이 드러내는 능력만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대신에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해 경청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난 까닭을 혹시라도 40일 금식했기 때문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금식은 1회로 그쳤고 그 후에도 회막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얼굴에 빛이 났지 않습니까? 사십일 금식한 것도 그분의 계시를 받기 위한 것이었지 단순히 기도 혹은 금식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대면해 계시를 받는 순간 그분의 광채도 함께 받았던 것입니다. 그럼 그 빛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봐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수건으로 가린 것은 그 말씀의 권능이 모세를 붙잡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1-5)

요한 사도가 복음서 서두에 소개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신 말씀은 바로 성육신한 예수님입니다. 그 말씀을 사람들의 생명이요 빛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을 보는 이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참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세 때와 마찬가지로 빛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에 자기를 숭배할까봐, 또 하나님 그분보다 그 초자연적 능력과 신비에만 신경을 쓰게 될까봐 수건으로 얼굴의 광채를 가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오자 유대인들은 그분의 신기한 이적에만 갈채를 보냈습니다. 로마를 무찌를 인간적 영웅으로 세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당신의 얼굴에 수건을 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비천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당신의 외모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이 땅에 오시어 죽어야만 했던 그 뜻에만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빛은 말씀과 함께일 때만 광채로써 온전한 의미와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탄의 멍에에 묶인 죄인을 해방시켜서 구원해주는 권세와 은혜의 말씀이 동반되면 그 광채는 천하를 뒤덮고도 남습니다. 역으로 말해 하나님의 그 구속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또 그에 합당한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초자연적 체험을 했어도 하나님의 빛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큰 능력으로 이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신 예수님, 나아가 그 빛을 온전히 이해 적용하게끔 만드는 수건의 역할을 하는 십자가가 배제된 어떤 능력도 참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처음 예수 믿어 은혜에 충만해 있을 때는 얼굴에 빛이 나는 분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건강이 갑자기 좋아져서 혈색(血色)이 좋아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40일을 금식했는데 몸에서 안 좋은 찌꺼기가 다 빠져나갔는지는 몰라도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고는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모세에게나, 처음 예수 믿은 신자에게 나타나는 빛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교통함으로써 마음과 영혼에 평강을 얻은 징표인 화색(和色)입니다.

모세는 40일간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게 되어서 오직 하나님과만 교통하며 보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을 묵상하고 그분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빛이신 그분의 말씀이 그의 온몸에 영의 양식이 되어서 가득 채워지자 얼굴을 통해서도 자연히 비추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방해가 되는 모든 탐욕, 죄악, 상처 등을 그분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었기에 정말로 그 안에 말씀만 가득 찬 것입니다. 특별히 두 번째 십계명의 돌 판을 받은 지금은 백성들의 죄에 대한 중보의 기도에 많이 집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이 화목하게 된 징표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화색을 백성들에게까지 비춰주신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어떠합니까? 자신의 추하고 헛된 지난 삶 전부를 십자가 앞에서 청산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세상 열락을 따라 살았던 죄악도 철저히 회개합니다. 성령의 씻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가 너무 좋다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앞으로는 오직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고 헌신하며 실제로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부터 실천합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과 화해되고 그분의 자녀가 됨으로써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며 매사가 감사합니다. 그 기쁨과 감사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바로 혈색이 아닌 화색입니다.    

신자는 물론, 모든 인간이 싸워야 할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어두운 세력과의 전투입니다.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만 인간이 참 인간다워지며 그 삶도 온전하게 바뀐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혈색만 밝게 하려 들지만 그래선 참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름진 음식에 화려한 옷에 고급 차를 타고 근사한 저택에 살면 분명 혈색은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 얼굴에 화색이 도는 지는 별개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혈색을 높여주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과 화목 되어서 얼굴의 화색이 좋아지기만 바랍니다. 그것도 주위 사람들이 눈이 부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흔히들 기도와 찬양을 열심히 한 후에 얼굴에 빛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은 증거되지 않고 단순히 뜨겁고 열성적인 종교행사로 그쳐선 자기만족에 빠지는 혈색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과 기쁨에 가득 찬 화색은 돌지 못합니다. 화색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그분의 계시를 깨닫고 또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열망과 실천이 병행될 때만이 나타납니다. 당신은 혈색과 화색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아지고 싶습니까?

7/1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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