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목숨만은 건져준다.

조회 수 469 추천 수 15 2009.09.21 21:59:06
의인의 목숨만은 건져준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4:12-14)


인류 역사는 절대로 정치가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으며 그분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진행되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까지 무시하며 노예처럼 부려서 독단적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개성이 마음껏 작동되도록 그대로 두되 태초부터 영원까지 관통하는 당신의 완전한 지혜로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당신의 뜻을 이뤄나갑니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어린 자녀가 다음에 어떻게 할 줄 아빠는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감안해 아이가 어떤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실질적으로는 아빠가 그 일을 한 것이지만 아이로선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한 일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조금 철이 들면 뭔가 아빠 의사대로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조금씩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나중에 부모 입장이 되면 자기 아이도 그렇게 키우게 됩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때로는 힘에 부대끼는 고된 일을 시킨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또 아빠가 모든 발생 가능한 위험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깨닫게 됩니다.  

세상만사를 인간이 주도한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바로 이런 어린 아이보다 못한 셈입니다. 어리석다 못해 스스로 불을 들고 화약고에 들어가는 꼴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아빠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기다리는 것은 위험뿐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의 삶은 아무리 세밀한 계획과 최고 실력으로 하더라도 결코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세상의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라도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는 절대 없습니다. 나아가 당신을 거역하여 불법하는 개인뿐 아니라 나라 전체에도 죄악이 관영하면 반드시 심판을 내리십니다. 말하자면 단체 기합인 셈입니다. 그런데 단체 기합의 경우는 항상 선의의 피해자도 포함되는 법인데 그럼 그 의인은 억울하고 하나님도 공평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본문은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두 번의 말씀에서도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라고 합니다. 그 일차적인 뜻은 모든 인간은 반드시 각기 개별적으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생명만 건진다고 했으므로 징벌의 어려움은 똑 같이 겪지만 목숨만은 부지케 해 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의인이 자기의 의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이유는 없지만 심판으로 내려진 재앙은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신자의 목숨만은 지켜주신다고 단순하게 이해해선 안 됩니다.  

이년 전에 있었던 미국 뉴올리언즈의 카타리나 태풍 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신학생이 다른 도시의 신학교로 전학하려고 태풍 며칠 전에 이사해 단 한 치의 손해도 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어떤 목사님은 그곳 교회로 부임하기 위해 며칠 전에 이사 들어가는 바람에 목숨만 빼고는 재산, 교회, 교인 등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럼 후자의 경우 의인이라 목숨만은 살려 준 것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태풍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뿐입니다.  

온전한 의인은 천하에 없습니다. 지은 죄를 따져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 받을만한 자는 과거, 현재, 미래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심판을 작정하고 한탄했을 때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은 하나님은 절대로 선하시다는 것, 그것도 완벽하게 그렇다는 것에서만 출발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내 자신에게 어떤 재앙이 미쳐도 그분에게는 단 한 치의 오류가 없을 뿐 아니라 그 불행 자체도 하나님의 관점에선 선한 것입니다.

카타리나 태풍 때의 정반대되는 두 예도 각자의 죄나 의를 떠나 하나님만의 온전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은 당사자들의 당장의 행불행과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궁극적인 유익이 되며 하나님의 의로움이 반드시 드러납니다. 따라서 신자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자기를 단체 기합에서 빼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은혜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해 달라는 것이어야 하며 또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나라가 불법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때에 신자도 함께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은 전혀 손상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경우가 역사상 단 한 번 있었습니다. 심판이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자연 재해의 모습이었는데도 의인은 목숨 뿐 아니라 그 재앙의 고통마저 겪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사는 곳을 구별하여 한 치의 피해조차 겪지 않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가축의 초태생까지 포함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일 때에도 죽음의 사자로 건너뛰게 했습니다. 애굽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 보시기엔 죽어 마땅한 죄인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오직 대속제물인 어린 양의 피를 의롭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라.”(출8:22) 당신께서 세상 중의 하나님인 줄, 즉 역사를 주관하는 이가 인간이 아님을 인간더러 알게 해주려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5) 단체 기합에서 건진 목숨을 이전처럼 범죄 함으로 허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고상하고 경건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서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역사의 주역이 정치가가 아니라 신자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높은 위치에 올라  세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이 불법하는 것을 막는 역할만 성실하게 수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신자가 속한 공동체를 단체 기합에서 면제해주고 대신 당신이 계획해 놓으신 선으로 당신께서 이끄십니다.  

불신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하나님께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심판이요 죽음입니다. 신자는 단체 기합을 받는 데서 목숨만 건진 자입니다. 그럼 남은 일생 동안에 그런 심판을 행하는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임을 증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다시 건진 목숨을 이전처럼 자기를 위해 살찌우고 화려하게 만들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짜 신자가 아니거나, 혹시라도 다음 단체 기합 때에는 목숨마저 구해주지 않을 것 아닙니까?

7/3/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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