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1:31-34) 바뀐 것이 없는 예레미야 새 언약

죄인 구원 담화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서로 연결된 네 언약

 

왜 예수님만이 죄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 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원시복음을 구체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사실은 구약역사 전체가 그 복음이 실현된 기록이고 하나님이 주신 다른 언약들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언약 넷을 알아봤습니다. 본문은 구약시대에서 마지막으로 예레미야에게 주신 언약인데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앞선 언약들을 간단하게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각의 언약이 그 다음 언약으로 발전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노아 언약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죄로 타락해도 홍수로 이 땅의 자연까지 심판하지는 않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창조 당시에 세우신 물질계의 운행 법칙에서 변경사항 하나 없이 사계절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여전히 풍요롭게 마련해주실 것이므로 인간이 범죄 함에 환경이나 하나님을 탓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므로 인간은 타락하기 마련이라 하나님도 그 죄를 반드시 처치하실 것이지만 그 방법이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듯이 당신께서 기뻐하는 자들을 따로 택하여서 구원으로 인도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 언약에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여서 열방 가운데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그 후손으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며 당신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노아 언약의 뜻대로 당신께서 은혜를 줄 백성으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하고 그들로 가나안 땅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특별히 의롭거나 사랑해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원시복음에서 예고한 대로 사탄의 후손과 원수가 될 여자의 후손으로 택했기에 이스라엘을 세상 앞에 당신을 증거 하는 자들로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셋째 모세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받아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면서 그 소명을 실천할 수 있는 규범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애굽과 광야에서 엄청난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기에 당신의 뜻대로 율법을 준행하겠다고 피의 맹세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고 해서 전 백성을 다 구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도 여호와를 진정으로 따르며 율법대로 사는 자와 그렇지 못할 자로 나뉠 것입니다. 여호와가 택한 충성된 자들이 아무리 소수라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아래 거룩하게 살 때에 그 인생에 기쁨과 은혜가 넘치도록 채워줄 것입니다. 그런 충만한 삶을 지켜보는 사탄의 후손들로 참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생기게 하려는 뜻입니다. 

 

넷째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율법대로 살겠다고 맹세한 모세 언약을 이제 직접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사방 대적을 파하고 나라가 평안해졌기에 한 곳에 성전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여호와를 아는 제사장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과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는 형식적으로 섬기고 이방우상을 함께 숭배한 죄로 나라가 영원하기는커녕 몇 백 년도 못가 심판을 받아 멸망당했습니다. 다윗의 언약은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특별히 유다 지파 다윗 가문에 오실 예수님이 세우실 구원공동체에 관한 약속이었습니다. 원시복음에서 말한 특정한 여자의 후손이 세울 나라와 그 왕권에 관한 예언이었습니다.    

 

새 언약이 필요한 이유

 

하나님은 노아에게 당신을 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당신을 따른 백성으로 택했고, 모세에게 그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쳤으며, 다윗에겐 그대로 따르면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언약대로 준행하지 않았기에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으로선 또 다른 언약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서가 연대순으로 기록되지 않아서 하나님이 이 약속을 주신 때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당하는 것은(27장) 물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귀환하게 되는 것까지(29:10-23) 예언한 후입니다. 그럼 현실적인 다윗 왕국과는 관계없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새 언약이라고 칭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제대로 준행하지 못한 앞선 네 언약들은 전부 옛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행할 바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실현했기에 노아를 제외한 나머지 언약들은 사실상 내용적으로 종료된 셈입니다. 예레미야 언약은 다윗 언약에서 암시한 대로 장차 특별한 여자의 후손이 영원한 왕권을 갖고 와서 열어주실  새로운 시대에 실현될 언약입니다. 그래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신 이유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택한 백성들이 피의 맹세를 하고도 그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언약을 맺는다고 합니다. 인간들의 탐욕으로 두 나라로 나눠졌고 둘 다 맹세를 어겼지만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은 열두 지파를 여전히 당신의 언약백성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는데도 언약을 깨트렸다고 합니다.(32절) 예레미야는 이미 2:2와 3;14에서 이스라엘은 신부로 당신을 남편이라고 칭했는데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결혼관계와 같다는 뜻입니다. 창조 경륜에 따르면 남편은 신부의 모든 것을 주도적 능동적으로 마련해주면서 보호 인도해줄 책임이 있는 자입니다. 또 결혼은 법적인 관계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신성한 약속이라 인간이 절대 파기할 수 없는데 인간 이스라엘이 깨트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지금 심판은 내리지 않고 다시 새로운 언약을 맺겠다고 당신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원시복음 자체부터 장래에 이뤄질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그 때가 될 때까지 죄로 타락한 인간은 계속 실패할 것이고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 때에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알고도 선악과 금령을 주셨듯이 이스라엘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도 피의 맹세를 시킨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으로선 도무지 불가능한데도 다윗 후손의 왕권을 영원토록 견고히 세워주겠다고 했습니다. 

 

독특한 여호와 언약

 

새 언약은 그래서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앞선 언약들과는 달리 그들이 준행할 의무조항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대신에 ‘내가’라는 주어를 계속 사용하면서 당신이 세운 계획을 당신께서 주도적으로 실현시킬 것이라는 뜻을 밝혔고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지금껏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트렸던 잘못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계약은 쌍방이 동등한 신분과 위치에서 상호 지킬 의무사항과 그에 따른 징벌을 정합니다. 그러나 지금껏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은 그와 달리 고대의 종주권 계약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종주권 계약이란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한 후에 정복국의 왕이 주인이 되고 정복을 당한 나라의 왕은 종의 위치에서 맺는 계약입니다. 먼저 지배국의 강력한 권능을 밝힌 후에 피지배국이 지킬 의무만 나열하고 어겼을 때의 형벌도 피지배국에게만 적용됩니다. 짐승제물을 둘로 자르고 그 사이를 걸어가는 것은 피지배국 왕입니다. 피지배국이 그 계약을 철저히 지키면서 공물을 정확히 바치고 반역할 꿈을 꾸지 않으면 주종관계는 이어지나 만약 어기면 그 나라와 백성을 말살시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그 권능 신분 위치에서 세속의 지배자 피지배자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모든 언약에서 당신의 신분과 권능을 먼저 밝힌 후에 이스라엘이 지킬 의무사항을 규정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사항은 오직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품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만 종식되는데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거역하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다시 언약을 맺으면서 기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일방적 은혜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창성해지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자 아브라함이 그것이 이뤄질 징표를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더러 짐승을 취하여 둘로 쪼개어 펼쳐 놓으라고 한 후에 한 밤중에 타는 횃불로 그 쪼개진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했습니다.(창15:17) 횃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데 그 언약을 어기면 당신께서 그 죽은 짐승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사이를 지나갔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죽을 리가 없으니까 당신께서 그 언약을 절대로 어기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나중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모세 때도 애굽에서 노예로 있던 아브라함의 후손을 일방적 은혜로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피의 맹세를 한지 채40일도 지나지 않아서 애굽의 황소 신 우상을 만들어놓고 음란하게 섬기며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도 다시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었습니다. 다윗 언약 때도 가나안 땅을 당신께서 차지하게 해준 후에 백성들의 가운데 당신이 걸어 다니면서 그들의 집을 당신께서 지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신부 이스라엘이 남편인 당신을 거역 대적한 것을 넘어서 우상 신들과 간음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피의 맹세를 한대로 나라가 망하는 형벌은 내리지만 포로에서 귀환시켜줄 것까지 약속한 후에 하나님은 또 새 언약을 일방적으로 맺으시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로선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자 자비입니다.   

 

새 언약에서 바뀐 내용

 

무엇보다 새 언약에서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대하는 원리, 바꿔 말해 그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에선 이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33절) 그러니까 너희도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달라진 것은 그런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과 또 그에 대한 결과입니다. 

 

먼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33절)라고 합니다. 그들 마음에 두는 당신의 법은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당신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수여하신 율법입니다. 십계명은 돌 판에 기록되어서 지성소의 언약궤 안에 담겨있고 두루마리에 기록된 전체 율법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낭독했습니다. 

 

장차 그 법을 그들 속에 두겠다고 했으니 제사장이 아닌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됩니다. 또 각 자의 마음으로 알게 해준다고 했으니 두루마리 율법을 읽고 배우는 방식은 중지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각자가 율법 전부를 외울 수 있게 역사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 성인남성이라면 신명기 6:4-9의 토라에서 자식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한대로 이미 율법을 거의 암송하고 있었기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으로 알게 해준다는 것은 성령님이 각자의 마음에 역사하여 율법의 정신은 물론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 실천해주어야 할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여자의 후손이 와서 원시복음을 완성시킬 때에 하나님이 죄인을 다스리는 원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35절)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악행을 사하는 일을 먼저 행하신 후에 그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인데 당신의 백성들로 그 일과 그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죄를 사함 받으려면 개인적으로는 죄를 지을 때마다 각 개별 죄에 대한 속죄제를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미처 생각나지 않거나 매번 제물을 바칠 여유가 없는 백성이 많아서 제사만으로는 지은 죄를 결코 다 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차례 대 속죄일을 정해서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의 모든 죄들을 사함 받기 위해서 속죄양의 피를 지성소 안의 언약궤 위에 뿌려야만 했습니다.(레16장)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로 사함 받는 죄도 단지 그 한 해에만 적용됩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히10:3,4) 율법으로는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 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성령으로 한 죄인의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뒤집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꿔주겠다는 뜻입니다. 또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의 구원이 취소되는 법은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죄를 무시 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인류의 죄의 무게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무게로만 감당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갚았기에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래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새 언약의 중보가 되어서 부르심을 입은 자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한다”(히9:14,15)고 선언한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질 당신의 법은 십자가의 구원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므로 피로만 갚을 수 있다는 율법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에 기준에 들기는 커녕 아무리 경건한 방식으로도 죄를 씻을 수 없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만 구원해 주신다는 진리입니다.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을 대신하여 성령의 중생시키는 은혜로 죄인의 마음에 채워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아담에게 주신 원시복음이 날이 이르면 특정한 여자의 후손에 의해 골고다 십자가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인간에게 주시려고 당신의 손바닥 안에 감춰 둔 최고의 선물이 당신께서 손가락을 다 펼침으로써 모든 인간이 그 진리를 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러니까 다시는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 하리니라고 덧붙인 것입니다.(34절) 

 

개인별 구원

 

마음에 법을 둔다는 것에는 간과해선 안 될 아주 기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법을 두려면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간섭해야 합니다. 율법의 두루마리를 온 백성이 배워서 준행하는 차원과 다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그대로 살아있으되 그 실현은 신자 개인의 인생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야에서 거역한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심판받아 광야에서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구원 받았듯이 구약시대에도 영원한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택함 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역사에 실제로 개입하여 원시복음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이방 족속들에게 보여주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대한 예표와 형상으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옛 언약 모두 인간 쪽에서 지키지 못했기에 어떤 인간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고 죄의 삯은 사망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실제로 십자가 구원진리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며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셨고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고백했습니다.(시103;10-13) 자기를 율법규정대로 개별적 죄에 따라 일일이 심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만 받으시고 용서해주신 은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진토 같은 체질을 아셨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윗은 율법을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천하의 죄인이라는 영적 좌절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평생에 손에 피를 많이 묻혔고 아들에게 배역까지 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율법으로 사형을 당해야만 하는 간음과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이름을 창대케 하고 그 왕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해준다는 구원의 은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그분 앞에 온전히 설 수 없다는 진리를 다윗은 철두철미 깨달았던 것입니다.  

 

언약의 다른 당사자인 모세는 살인자요 아브라함은 아내를 두 번이나 간음죄를 범하게 만들 뻔했던 너무나 비겁한 거짓말쟁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지간해선 짓지 않고 율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음에도 그들과 인류 구속의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구약시대에도 실현되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은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시대 인물인 바울은 율법에서 죄라고 규정하는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탐욕 등을 평생토록 멀리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법 정결법 등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자기 입으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랑했을 정도였습니다.(빌3:6) 그런 그도 하나님이 원시복음을 주신 의미는 전혀 몰랐습니다. 율법으로 따지면 사형에 처해야 할 아담 아브라함 모세 다윗 모두를 자비로 살려주신 위에 언약의 주역으로 삼아 당신의 큰일을 맡기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체질이 진토 같고 연약하므로 하나님 앞에 아무도 의롭다고 자부할 수 없다는 그 간단한 진리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인간의 비참한 영적인 실상을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당신만의 무한한 긍휼로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을 대우하신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대신에 그는 택함 받은 백성만이, 그것도 율법을 제대로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고집했습니다. 율법준수는커녕 선한 일이라곤 평생에 하지도 못한 세리나 창녀 같은 자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기만 하면 구원 준다니까 예수 추종자들은 이단 중의 이단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스데반을 사형시키는데 주역을 맡았는데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 안에선 사형을 당해야 할 죄인중의 괴수였던 것입니다. 그랬던 바울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 만나서 당신과 당신을 믿는 자들을 죽도록 핍박했어도 거꾸로 당신의 종으로 세워주는 엄청난 은혜를 입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천하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새 언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태초부터 재앙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한 것입니다.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변화시켜서 진정으로 당신께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해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하는 일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창조 때부터 그랬는데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택함 받아 언약과 율법을 받았다는 자만심에 빠져서 스스로 유대교라는 종교적 장애를 만들어 사람을 차별한 것입니다. 바울은 종교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했고 종교로 다른 사람을 정죄 살인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언약을 주시기 직전에 성경이 어떻게 말합니까?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29,30절) 아비로 인해 구원이나 심판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율법과 할례를 소유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개인의 죄에 따라서 심판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인종, 신분, 문화, 교육, 재물, 종교 등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구원을 얻고 그러지 못한 자는 그분과 아무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명예살인

 

얼마 전에 미국에서 아버지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온 중동출신의 무슬림이었는데 두 딸이 다른 종교를 믿는, 아마도 기독교이겠지만, 남자와 사귄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를 두고 명예살인이라고 말하는데 부모, 가문, 민족, 나라는 물론 자기들 사회의 전통 관습 문화 종교 등에 먹칠을 한 자는 죽여서라도 그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종교를 지키려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없애는 것입니다. 자기들 사회와 종교에선 최고의인이 될지 모르나 하나님 안에선 최고악인이 됩니다. 

 

무슬림을 비난하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죄를 저질렀고 그 후의 기독교에서도 그런 유사한 죄들을 많이 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세 시대에 부정한 여성들에게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겼고 조금이라도 당시의 기독교 교리와 어긋나면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으로 화형에 처했지 않습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핑계로 후진국들을 침략 수탈한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인간이 종교 아니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거꾸로 그분이 가장 증오하는 살인을 예사로 행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실체입니다. 윤리와 도덕은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 가장 고상하고 경건한 것들이며 그것에 능통해서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자들마저 이러하니, 아니 더욱 심한 실정이니 인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용서가 유일한 소망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에는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같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있습니다. 인간은 선하므로 무엇이든 행할 수 있고 스스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독교 안에도 이 새 언약을 거부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마음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알게 해주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스스로 먼저 깨닫고 자신의 의지로 믿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또 믿은 후에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자기들 교파의 교리가 성경을 아니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주변 환경이 열악하고 나쁜 사람들이 유혹하니까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자기 사회의 전통 관습 문화 윤리 종교 등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꾸면 죄를 지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맨 처음부터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단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유토피아에서 장발장처럼 죄로 이끌만한 여건이 전혀 아니고 나쁜 친구의 유혹도 없는 환경에서 죄를 지었다고 선언합니다. 그것도 친부모를 부인 거역 대적하는 가장 큰 죄를 말입니다. 

 

인간사회가 만든 윤리 종교가 완전히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반적 진리가 일부 반영되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일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 언약이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겠다는 것은 완전히 발가벗고서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일 뿐이며 정말로 체질이 진토 같은지 실감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또 그 일이 인간으로서 가장 먼저 시급히 해야 할 일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각자에게 합당한 계획을 갖고 지으시고 그 시대 그 장소에 그 모습으로 서게 하시고 모든 좋은 것으로 공급해주시길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더러 그런 나를 진정으로 기뻐하는지만 묻고 계십니다. 인간사회에선 부모가 계신데도 부모를 거역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하나님을 버리는 것만큼 큰 죄는 없는데도 거꾸로 하나님 쪽에서 절대로 인간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이 새 언약입니다. 

 

우리가 새 언약에 참여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도 간단합니다. 교회생활에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고 성경 지식에 능통한지 여부가 아닙니다. 앞에서 인용한 다윗 같은 고백을 하느냐 여부 하나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여전히 내 체질이 진토 같으니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라는 고백이 평생에 입에 붙었느냐 여부입니다. 신자는 십자가 외에는 인간 세상에서 인정받는 어떤 진리라도 자기 인생의 중심에 세워선 안 됩니다. 혹시라도 바울이 되기 전 사울처럼 자기 윤리나 자기 종교로 다른 이는 물론 자신을 판단하려 들면 더더욱 안 되며 그럼 곧바로 예수님의 사랑 밖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새 언약이 단순히 구원을 주는 방법이나 인간의 죄를 씻는 방안이 달라진 정도가 아닙니다.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하나님께 진심으로 엎드리며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리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길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완전히 보이게 하고 성령의 역사로 천하의 죄인더러 받아 누리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하는 즉, 하나님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인간을 향해 품으시는 첫째가는 뜻입니다. 

 

(9/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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