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Prison ( 옥중서신) of Bonhoeffer

조회 수 1114 추천 수 72 2005.07.17 16:58:58
에버하드 베트게 에게

     1944년 7월 21일




     친애하는 에버하드

     오늘은 단지 그대에게 짧은 인사말만 전하고 싶네. 나는 그대가 여기에 와서 우리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를 기대하네. 그리고 인생에 나타나는 어떤 징조에 항상 기뻐하기를 원하네. 신학적인 토론은 잠시 멈추고 말일세. 사실, 이러한 신학적인 토론은 항상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네. 그러나 나는 그런 문제들로 더 이상 염려하지 않고, 단지 믿음의 삶을 사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싶을 때도 있다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일상의 독서를 즐기지; 지난 책들과 오늘의 책들을 읽으면서 말이야; 때로는 폴 게르하츠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듣기도 한다네.

     작년  어간 무렵 동안, 나는 기독교의 “심도 깊은 세속주의”라는 것을 보다 더 깊이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네. 기독교인이란 그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인간이셨던 것처럼 단순히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일세 - 그와 반대의 경우로는 세례 요한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 나는 단순히 쾌락이나 분주함, 안락함, 음탕함과 같은 얄팍하고 평범한 "세속주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과 부활에 대한 훈련과 지속적인 이해를 통해 나타나는 “심도 깊은 세속주의”를 말하는 것일세. 나는 아마도 루터가 이런 종류의 “세속적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네.

     지난 13년 전 한 젊은 프랑스인 목사와 미국에서 가졌던 대화를 기억하네. 우리는 앞으로 각자의 인생에서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 서로 질문했었네. 그는 성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네. (아마도 그는 지금 거의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네). 그 당시 나는 그에게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그러나 그에게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네. 나는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말일세. 오랜 기간 동안에도, 나는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을 깨닫지 못하네. 나는 거룩한 삶이나 혹은 이와 비슷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결론으로, 내가 <제자도의 댓가>라는 책을 썼다는 생각을 해 보네. 오늘날 나는 비록 내가 여전히 내가 쓴 내용을 믿고 있긴 하지만, 그 책의 위험성 또한 알고 있긴 하네.

     나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을 완전하게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발견했고 또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발견해 가고 있는 중일세. 사람들은 자신을 어떤 뭔가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완전히 포기해야 하네; 그것이 성자이든 또는 회심한 죄인이든 혹은 성직자이든(소위 제사장 타입의), 의로운 사람이든 의롭지 않은 사람이든, 혹은 건강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야. 이러한 "세속주의"는 한마디로 인생의 의무, 곤란한 문제들, 성공과 실패, 경험과 난처한 일들 속에서 솔직하고 숨김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고통이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고통을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와 함께 지켜보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나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하네; 그것이 회심이고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이 인간이면서 동시에 크리스챤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일세. 우리가 이런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고통을 공유한다면, 어떻게 성공이 우리를 자만하게 만들고 실패가 우리를 절망하게 하겠는가?

     비록 간단하게 썼지만, 나는 자네가 내 이야기의 의미를 잘 알아들으리라고 생각하네. 나는 내가 이것을 배웠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또한 내가 걸어온 인생의 여정을 통해서 그렇게 살 아 올수 있었음을 깨닫네. 그래서 나는 지금 과거와 현재를 즐거워하며 그것들에 만족하고 있다네.

     너무 개인적인 편지를 받고 아마 자네가 놀랄지도 모르겠구만.; 그러나 만약 내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기 원했다면, 그걸 누구에게 할 수 있겠나. 물론 혹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마리아에게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나도 무척 그러기를 바라네. 그러나 나는 사실 아직도 그걸 기대 못하네.

     자비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바라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가 우리를 그분 자신에게로 인도하시기를 바라네.

      자네 소식을 들어서 기쁘고 또한 자네가 너무 덥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기쁘네. 내게로부터 전해질 꽤 많은 편지들이 내가 가는 길 도중에 틀림없이 있을 것일세. 우리는 1936년에 그 길을 꽤 많이 가지 않았었나?

      안녕. 잘 있게. 그리고 우리가 다시 곧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주게. 나는 항상 신실함과 감사함으로 자네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 있네.




                                                                                      그대의 친구 디트리히




가져온 곳: [오경준 목사와 성서의 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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