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논의에 덧붙여서(1)

조회 수 1831 추천 수 63 2009.03.27 04:50:29
"거꾸로 읽는 성경" 사이트의 가장 최근 글 #173 “교회에 입회비는 필요 없다.”는 글에 대해서 “사랑 그리고 편지”님께서 동의할 수 없다는 장문의 댓글을 자유게시판에 올려 주셨습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저의 변론의 서문 부분입니다. (이 변론에서 그 댓글을 따로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변론이 어떤 관점에서 쓰였는지 알고 싶으면 자유게시판의 “이것은 아닙니다. 목사님!!!”이라는 글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 댓글에서 여러 관점에서 십일조는 폐기 되었다고 주장하셔서 저 또한 제기하신 주장과 의문에 대해 가능한 성의껏 변증을 하려다 보니 글이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현재 초안은 다 잡았고 수정 작업 중에 있습니다. 또 글이 길어서 어차피 단 번에 보기 힘드실 것 같아 우선 서론을 올리고자 합니다. 또 첨부한 차례를 참조하시면 차후의 변증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변증에선 성경문답 사이트 #34 "신약시대에도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에서 이미 다룬 부분과 목회자의 사례비란 측면은 생략하거나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십일조에 관해 더 포괄적인 이해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글과 함께 그 #34 번 글도 잃어보시면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문제가 된 “교회에 입회비는 필요 없다”에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신 분들께 감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수고스럽지만 아래 변증과 #34 문답 글을 다 읽은 바탕에서 그 글을 바탕에 깔린 대의에 유념하셔서 다시 읽거나 이해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 혹시라도 그 설교에서 오해를 불러일으켰거나 과격하게 표현한 부분이 있었다면 본의가 아님을 너그러이 양해 바랍니다.      

“십일조 논의에 덧붙여서”의 차례

(1)
- 십일조 논의에 덧붙여서
- 논의의 주제와 범위

(2)
-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은?
- 율법은 다 폐지되지 않았다.
- 율법에서 무엇이 폐지되었는가?
- 율법을 완성한 예수님
- 여전히 유효한 십계명
- 옛 언약과 새 언약

(3)
- 예수님도 조직체 교회를 세웠다.
- 예수님은 십일조를 확실하게 명령했다.
- 기독교 개혁의 본질
-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자.




십일조의 논의에 덧붙여서

십일조에 관해 찬반 논쟁을 들어보면 양쪽 다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부분적으로는 분명 쌍방의 주장에 옳은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십일조가 무엇인지 그 성격을 규명하기보다는 존속시켜야 하느냐 폐지해야 하는지에만 토론의 초점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그에 따른 바람직하지 못한 여파들이 생깁니다. 존속해야 한다는 쪽은 기복주의 신앙을 고무하기 위해 십일조를 악용해 먹는 양 간주됩니다. 폐지해야 한다는 쪽의 논리적 흐름에 따르면 십일조를 비롯해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자는 자칫 십자가의 은혜조차 잘 모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반면에 찬성하는 쪽의 논리적 흐름에 따르면 십일조 폐지론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착각하여 하나님께는 돌려드릴 생각도 않는 배은망덕한 신자로 몰리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만큼 양쪽 다 그 주장의 정당성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충분히 밭쳐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어느 쪽 의견을 따라야 할지 당혹하게 됩니다. 둘 다 일리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그냥 단순히 어느 쪽을 택해도 된다고 여기고 치워버립니다. 자신의 분명한 의견이 정립되어 있지 못합니다. 십일조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안 해도 아무 상관없다는 식의 둘로만 나뉩니다.

이는 쌍방 간에 토론의 주제와 다뤄야 할 범위부터 확실하게 규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엉뚱한 주제를 가지고 엉뚱한 데서 싸우는 꼴입니다. 자연히 토론이 논리적 순서에 따라 차근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만약 상대에 옳은 주장이 있다면 수용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합니다. 오로지 십일조가 옳은지 그른지 흑백 편 가름 하는 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십일조에 관한 보충 의견을 개진하기 전에 이 논의의 주제와 범위부터  확실하게 규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한 쪽으로 경도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최대한 제거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객관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논의의 주제와 범위

이 논의에서 근본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근본 사항이란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십일조나 헌금은 이미 믿은 자를 대상으로 권면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형태가 되었든 공동체로 모이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를 믿어 구원 얻은 자가 신앙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해서, 비록 그 본질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감사해서 돌려드리는 것이지만, 내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십일조는 구원을 얻느냐 못 얻느냐, 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나아가 믿음이 좋은가 나쁜가에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성숙시키는 한 방편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도덕적, 심지어 성경적으로 옳고 그른지에 직접 연관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계명과 무엇을 하라는 두 종류의 계명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그것은 분명 죄입니다. 그러나 하라는 것을 등한히 하고 있다고 해서 잘못일 수는 있어도 당장 죄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믿음의 실재(實在) 여부나 그 수준을 점검하는 기준으로 비약시킬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면 성경적으로 큰 죄입니다. 반면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당장 죄가 되지 않듯이, 십일조 규례의 성격도 그러합니다.

물론 이웃 사랑은 신자라면 모두가 응당해야 하는 일인 반면에 십일조는 그런 범주에 들지 않으니까 완전히 합당한 비유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성격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과 같이 믿음이 자란 자가 할 수 있거나, 또 믿음을 자라게 하는 한 가지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만 비교한 것입니다. 요컨대 십일조 자체를 구원과 믿음에 바로 연결시키는 논의는 그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십일조 논의의 범위를 이렇게 따지는 것부터 괜한 수고를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공동체로 모여야 하고 또 그 모인 공동체에 어쨌든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쌍방이 동의하면 모든 논의는 사실상 종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발적으로, 그것도 많이 내는 것이 당연히 좋은 것 아닙니까?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성도가 공동체로 꼭 모여야 하는지, 그 공동체에 반드시 돈이 필요한지, 일반 헌금으로 충당하면 되지 십일조까지 권장할 필요가 있는지 등에 달렸습니다.  

물론 신약성경에 “십일조를 하라”고 문자적으로 딱 부러지게 서술된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명시적 서술이 없다고 해서 예수님 이후에 그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신약성경에 십일조를 하지 말라는 명시적 서술이 없기에 존속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도 논리적 타당성의 무게가 동일하게 실리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많은 목회자들이 십일조를 기복신앙의 전가보도처럼 휘두르는 잘못을 범하고 있고,  그렇게 모인 돈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십일조 자체나, 십일조를 장려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잘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그 말씀을 폐기처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럴수록 오히려 더 강조해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작금 교계에서 아무리 십일조의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더라도, 십일조만 따로 떼어서 성경말씀에 비추어 논의해 보아야 합니다. 또 성경말씀에만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에 판단의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십일조는 이미 폐기되었다는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결정적 결함이 있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십일조는 구원과 믿음에 연결시키지 말고 따로 따져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구원과 상관없다는 그 사실을 도리어 폐기 주장의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일종의 순환논리의 덫에 걸린 셈입니다.      

이처럼 토론의 시발점과 범위가 잘못되어 있다는 논리적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논의의 초점이 예수님의 사역으로 십일조는 폐기 되었다는 주장에 집중되어 있기에 그 부분부터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1)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 2) 정말로 구약의 율법을 다 폐기시켰는지 여부, 3) 반드시 교회로 함께 모여 사역하라고 명했는지가 그것입니다. 또 십일조에 대해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당연히 함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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