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쁜 한국, 너무 느린 미국

조회 수 312 추천 수 1 2023.04.23 05:51:58

너무 바쁜 한국, 너무 느린 미국

 

 

너무 여유가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어도 정말 오랜만의 3주에 걸친 한국 방문을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가장 좋은 계절인데다 전 국토가 공원화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가끔 불어닥치는 황사와 미세 먼지가 옥의 티였지만 따뜻한 고향의 품이라고 여겨져서인지 마냥 평안했습니다. 

 

저희가 십여 년 살았던 유타주는 미국 최후의 원시지역(the last wildness)이라고 불리고 인근 미국 서부의 자연경관의 규모는 매우 장엄하고 형세는 아주 신비합니다. 그에 비하면 고국의 경치는 아기자기하고 부드러운 모양새였습니다. 각기 장단점이 있으며 미국 자연이 아버지를 연상시킨다면 한국은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방문한 옥빛 바닷길의 한려수도에 점점이 박아놓은 보석 같은 섬들은 미국에선 전혀 볼 수 없으며 전 세계에 뽐내도 될만한 한국만의 장관이었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는 7년 만에 방문했는데도 천지개벽이 일어났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눈이 팽팽 돌아갔습니다.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은 사통팔달하는 도로망은 계속해서 건설 중이라 GPS를 수시로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미아가 될 판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터지며 거의 모든 업무가 스마트 폰으로 이뤄지는 아이티 천국인지라 저 같은 컴맹은 미국이라는 미개국(?)에서 온 촌뜨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떠나기 전부터 반드시 섭렵하려고 집사람과 함께 리스트까지 작성했던 한국 음식은 기대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빠듯한 일정이라 진짜 맛집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그 첫째 원인일 것입니다. 어쨌든 제가 이전 한국에서 친구들 사이에 식도락가로 불릴 만큼 이름난 노포(老鋪)만 찾아다녔던 시절에 비하면 대체로 깊고도 은근한 맛깔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나마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나물과 음식은, 예컨대 도다리쑥국, 분명 일품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최고라는 것은 진리였습니다. 

 

당연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적조했던 지인들을 만나 안부를 나눌 수 있었던 일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특별히 홈페이지의 회원 중에 개인 면담을 원하는 청년들을 만나 주님 안에서 서로 위로 권면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담임했던 교회의 교인이 저처럼 목회자가 되어서 개척한 교회의 주일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출발 전부터 계획된 일정이었습니다. 교회가 연약할까 염려했으나 개척 일 년 만에 교인이 약 이백 명이나 될 정도로 부흥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젊은 교인들이 주축이라 신선하고 활기차며 화기애애한 모습에 저희가 오히려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사에는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함께 있는 법입니다. 조국의 모습이 따뜻하긴 해도 못내 아쉬운 점도 다소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맥락에서 부정적이고 불안정해 보이는 정치, 사회, 경제 상황에 관해선 각기 관점이 다르니까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잔소리로 여겨지겠지만 다들 알고 있는 사항 두 가지만 굳이 들자면; 

 

먼저 지방자치제로 경쟁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어디에 가나 비슷한 모습이라 조금 단조로웠고 작위적인 외형이 형식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급속히 개발하려니 인간미가 실종되어서 전통적 아름다움과 고유의 특색을 발견하기 힘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음식점, 카페, 모텔이 자리 잡고 있었고 특별히 관광지와 도로변에 설치된 조형물들이 너무 많아 주변 경관의 자연미를 가릴 정도라 원래 의도와 달리 예술적으로 여겨지지 않고 제 눈에는,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거슬리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이들이 너무 바쁘게 살고 있어서 조금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록 국민성부터 조급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더 심해진 것 같았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여유가 대폭 줄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쳐도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한국 속담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남들보다 더 형통 출세하려는, 최소한 뒤지지는 않겠다는 한 가지 목표에만 모두가 매달리지 않는지 염려될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그저께 엘에이 공항에 내리니 입국 심사원부터 나무늘보처럼 느려터졌습니다. 저희가 32년 전에 처음 미국 이민 첫발을 내디뎠을 때와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민 초기에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느림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는 짧아도 지금껏 계속 오래 살고 있기에 아무래도 제 몸에 익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은 모든 면에서 모든 사람이 너무 바쁘나 미국은 모든 면에서 모든 사람이 너무 느리다는 점이 이번 여행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정작 이번 여행의 더 중요한 결론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하나님의 선하신 간섭이 필요 없는 인생이 하나도 없다는 진실을 또다시 대면한 것입니다. 현실적 풍요와 궁핍과는 물론, 성격의 조급함과 느긋함도, 믿음의 성숙과 미숙과도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불쌍하고 연약한 인생임을 절감했습니다. 진짜 결론은 그래서 너무 부족하고 미력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특별히 저에게 맡겨주신 이 사역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헌신 충성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한 것입니다. 

 

(4/30/2023 아침 3주 만에 다시 앉은 제 책상 앞에서)

 

P. S. 너무 일정이 빠듯해 홈피의 회원님들을 많이 만나 뵙지 못한 일이 못내 아쉬웠으나, 회원님들께서 출발 전에 제가 게시판에 공지한 대로 기도해주신 덕택에 모든 일정에 하나님이 세밀하게 인도 간섭하시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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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토가 공원화된 생생한 증거입니다. 저희가 너무나  편안하게 며칠 묵었던 처제 집 바로 앞의 동네 공원에서 기념으로 한 컷.... 

 

KakaoTalk_20230422_051429718_07.jpg

 

 

백합릴리

2023.05.01 09:52:17
*.126.131.196

릴리 입니다. 한국이라니 보기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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