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 전부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으로 정말 거듭 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담임 목사도 짐작은 할 수 있을지언정 딱 부러지게 알 수 없습니다. 간혹 담임 목사도 거듭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가라지와 알곡의 구분은 추수 때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일까요? 신자들끼리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현실적 기준은 없을까요? 남들은 몰라도 최소한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는 근거라도 신자 자신이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신자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많습니다. 어떤 절대자(The Ultimate Being)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절대자를 믿는 수준에서 정말 예수를 믿는 참 신자가 되기까지는 신학적으로 따져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일일이 따질 여유가 없으니 중요한 단계만 대충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세상만사를 주관하심을 믿기에 신자가 그분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들이 제외되고 크게 세 가지가 남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신구교와 그 이단들까지 포함)로 절대자 유일신을 믿는 종교입니다.
마침 이 세 종교는 구약성경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기독교만이 믿습니다. 기독교가 이들 두 종교와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한 사람의 선지자로 밖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진정한 하나님으로 믿고 따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이 정말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100%의 죄인) 둘째, 그 죄에서 구원 받을 방법은 인간 쪽에선 도무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0%의 구원가능성) 셋째, 그래서 하나님 당신께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셔서 내 죄를 사해 주시고 대신에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100%의 은혜)
그래서 예수 이전과 이후의 인생은 극과 극의 정 반대에 위치합니다. 죄와 흑암과 사망에서 의와 빛과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사단의 왕국에서 노예 노릇하다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그 신분과 특권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천주교나 기독교 이단들의 교리에도 이 세 가지 진리를 문자적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그 내용을 달리하거나 이 셋으로는 부족하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인위적으로 첨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정말로 믿는 것이 아니며 당연히 그런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개신교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 모두가 이 셋을 다 잘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누가 봐도 그 전부가 거듭난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는 그 진리를 교리적으로 머리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자신의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체험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옛 자아가 완전히 죽고 주 안에서 새로운 자아가 형성되는 사건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 세 진리를 믿는지 안 믿는지 만으로는 참 신자의 구분이 힘들고 또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죄를 안 짓는 거룩한 성자로 바뀌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단 한명도 구원 받을 자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면, 그것도 그럴 자격이라고는 단 한치도 없던 자가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해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그 후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온전히 바치지 않겠습니까?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 C. S. Lewis는 “단지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있다. 결국에는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과 오히려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네 뜻대로 하라고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중에도 하나님을 이용해서 결국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은 예수를 정말로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위급한 일이나 소원을 두고 기도하는 것을 두고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자는 당연히 하나님께 무엇이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정말로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실제 체험으로 깨달았기에 그 사랑 안에 완전히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 확신하기에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의 전부를 열어드리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왔으므로 나와 연관된 모든 것이 하나님 뜻대로 이루소서라고 맡기는 것이 예수를 정말로 믿는 것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나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하나 생겼습니다. 자신의 전 일생을 그분의 뜻에 온전히 맡길 준비가 되어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나아가 자신의 문제로 무엇이든 기도는 하되 하나님이 원하시면 결국에는 그것마저 포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자신이 있습니까? 이 기준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자기에게 적용하여 자기가 답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뜻대로 하지 않는 자는 그 결과가 단순히 그렇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 쪽에서 네 뜻대로 하라는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루이스가 한 말이 아닙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되 빛으로 오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18-21)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 믿지 아니하는 것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네 마음대로 하라고 버려두니까 자동으로 심판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럼 이 구원의 원리와 신자가 기도하는 태도를 연결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계획과 뜻만을 끝까지 고집하며 기도하는 자는 결국에는 하나님이 네 맘대로 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안 될 것은 둘째 치고 신자의 고집대로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아니하므로 그것으로 이미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예수를 정말로 믿는 것이 확실합니까? 그런데도 혹시 자신의 뜻과 계획만 끝까지 고집하여 그 일을 기도만 하면 이루어질 줄 믿고 있지는 않는가요?
10/30/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