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시37:3,7)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신자도 올해는 성경 통독을 꼭 해야지, 새벽 기도에 빠지지 말아야지, 가정 예배를 보아야지, 등등 온갖 계획들을 세웁니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가지 않아서 흐지부지 되니 큰일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어버립니다.
새해 결심이란 365일 내내 실천하겠다는 뜻이므로 며칠만 빠트리면 이미 실패했다는 실망감이 먼저 앞서 버립니다. 그러나 365일 중에 165일을 실패하더라도 200일은 성공한 것입니다. 작심삼일이 되었다고 바로 포기하면 3일 성공하고 362일을 실패한 셈이 되지 않습니까? 중간에 건너뛰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일단은 자꾸 계속해야 합니다.
결국 새해 결심은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이 성공의 관건이 됩니다. 그런데 인내심을 흔히들 의지력과 비례한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맙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인내심이 늘어나는 더 중요한 요인은 따로 있습니다. 정말로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야 견딜 수 있는 법입니다. 운동선수가 지옥 같은 훈련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부와 명예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자가 새해 결심을 실천하는 데는 사실 인내심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불신자는 현실적 목표를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달성하려 하기 때문에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의 의지력뿐입니다. 그래서 한 우물을 줄기차게 파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다이어트나 금연 같은 목표도 의지력만 강하면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올해만은 하나님을 잘 섬겨보겠다는 신자의 영적인 결심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방해가 따릅니다. 자기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 주위 사람들의 핍박, 세상 쾌락의 유혹 등 수많은 장애물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납니다.
나아가 주님을 따르는 길은 좁고 협착하며 동행하는 사람이 적어서 외롭기까지 합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 자연히 인내할 수밖에 없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에는 절대 의지력이 능사가 아닙니다. 영적인 일은 어지간한 진보가 있어도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특별히 사단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신자가 하나님을 따르는 일을 중지하도록 만들려 듭니다. 신자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지쳐 쓰러지는 것만이 사단의 존재 목적입니다. 정말 어지간한 믿음과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새해 결심을 제대로 지켜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끝까지 실천 못하는 경우도 솔직히 많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전한 인내를 이루어 새해 결심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유명한 대학 농구 코치였던 존 우든은 “그들은 나를 코치라 부른다”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작전 계획에 있어서 인내가 결국은 승리하고 만다는 것이 언제나 나의 철학이다. 그 말은 작전 계획을 이행하는 인내를 말한다. 우리 팀에게 항상 우리의 작전대로 경기하라는 것만 강조한다. 우리가 우리의 시합을 하고 우리의 경기 방식을 지키면 결국에는 등수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항상 이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망쳐버리지 않도록 보장해 줄 것이다.”
자기 팀의 방식과 작전대로만 경기를 하겠다는 인내가 자신의 코치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거나 그래서 꼭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보다는 자기들 방식과 작전대로 게임을 하지 못하는 잘못만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팀의 등수보다는 모든 멤버가 정말 후회 없도록 게임을 하는 것에 훨씬 가치와 의미를 두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 결과도 그런대로 잘 나왔을 것입니다.
새해 결심도 자꾸 일의 결과에만 매달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일에 과실을 반드시 맺고 말겠다는 욕심이 앞서면 일의 내용에는 관심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의 내용은 마음에 안 들면서 결과만 소망하면 그 일을 이룰 열정과 힘이 생길 리가 만무합니다.
예컨대 성경 통독의 경우만 해도 그런 결심과 노력은 가상하지만 자칫 나도 성경통독을 한 번 했다는 과실과 자랑에 마음이 먼저 가 있어선 안 됩니다. 성경은 반드시 읽는 재미와 기쁨을 느껴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초신자로선 성경이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어 내용에 관심을 집중하기 힘듭니다. 그런 때도 현재 예정된 만큼의 장수를 읽었는지 신경 쓰기보다는 성경에 과연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한번이라도 꼭 알아보고야 말겠다는 소원이 앞서야만 합니다.
본 시편 기자는 신자가 인내심을 이룰 수 있는 비결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의지력만으로 성공한 자들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잠잠히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근거는 여호와가 성실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진정으로 맛보아 아는 신자라면 어떤 세상의 유혹과 사람들의 핍박과 사단의 시험이라도 잘 참아내며 결국에는 반드시 드러날 하나님의 의를 잠잠히 기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설날 아침에 한 영적인 결심들을 한해 내내 흔들림 없이 이룰 수 있으려면 물론 의지력을 키워야 하고, 그 맺혀질 열매를 소망해야 하며,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결심한 목표들을 수행하는 일들이 자신에게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요컨대 하는 일들이 진짜 재미있고 즐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것도 너무나 성실하게 선하시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우리의 성실함으로 결심을 이루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실함이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음을 성실하게 확인할 때 그분이 그 결심을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새해 아침에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오직 하나님의 성실함을 날마다 새롭게 맛보겠다는 소원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경통독, 새벽기도, 가정예배, 등등 모두가 하나님의 성실하신 선을 맛보는 일이지 않습니까? 또 그분의 성실하신 선을 맛보지 못하면 그 일을 하루라도 지탱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올해에는 오직 한 가지만 역으로 결심하기를 감히 권합니다. 기도하거나 말씀을 보거나 어떤 신앙행위를 하든 자꾸 내가 성실해지려는 결심을 깨트리는 결심을 말입니다. 반드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욕을 포기하고 대신에 그 일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진정으로 느껴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인 주님을 떠나서는 그 가지되는 신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나도 자기 의지를 동원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의 환난과 사람들의 핍박과 사단의 방해와 자신의 죄가 자꾸 자신을 지치게 만들더라도 그래서 다른 모든 결심과 목표들은 다 포기할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도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은 끝까지 망치지 말고 지켜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 안에 내가 성실하게 잠겨 있고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기로 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성실하심만을 날마다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하게 사모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갈급함이 없는 심령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지 않습니다. 그분은 상하고 애통한 심령 곁에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또 갈급함이 없는 심령에는 어떤 은혜가 심겨져도 전혀 은혜롭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요컨대 주님의 성실함을 제대로 맞보아 알 때에만 신자도 주님께 성실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결심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에서만은 그 목표를 꼭 성취하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실패를 부릅니다.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이 얼마나 성실하신 분인지 그 일을 통해 맛보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성실로 식물로 삼지 않고는 인내를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역으로 그분의 성실로만 식물을 삼는 신자는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1/2/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