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6,7)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나무라면서 바울은 세 번이나 자랑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우선 전도는 하나님 능력으로만 이뤄지기에 교회 안에 형통한 자가 많지 않은데 사람으로 자랑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1:29) 또 하나님이 성도에게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에 구태여 사람을 자랑해 파당이 형성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3:21) 이제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은 것인즉 받지 아니한 것처럼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랑이란 항상 남에게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자기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희귀한 소유나 거창한 업적을 자랑해도 자기에게 뭔가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 즉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신자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말하거나 설령 하나님께 받았다고 인정하면서 자랑해도 자기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자랑하면 반드시 그에게 동의, 선호, 추종하는 부류가 생기고 동시에 반대, 기피, 비방하는 쪽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편 가름이 형성될 수밖에 없으며 필연적으로 분쟁이 따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해야 할 신자에겐 사람을 자랑해서 파당을 형성하는 일은 절대 금기사항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자랑되어져야 할 상황에서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그분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신앙이란 평생을 두고 오직 감사와 경배와 영광만 돌릴 대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인생을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말씀을 주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앙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하나님에게서 출발해 하나님으로 끝나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 자기에게는 매우 작은 일이며 자기도 자기를 판단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4:3) 자랑이란 남에게 자기가 남들보다 옳고 낫다는 것을 판단 받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전혀 판단 받고 싶은 마음이 없고 또 설령 남이 자기를 칭송하든 비방하든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주님뿐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앙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시작해서 그분께로 마쳤습니다.
성도는 천사도 판단하므로 당연히 세상에 의해 판단 받는 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자여야 합니다.(6:3) 세상의 기준과 선호도에 따라 자기의 행동과 말이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내용에 영합하기 위해 믿음을 왜곡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과 사람을 판단(정죄하는 것과는 다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하고 거룩한 영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맞추어 자기를 바꾸는, 바로 이것이 세상 사람들 자랑의 숨겨진 진짜 의미임, 자가 불신자입니다. 신자는 그 반대로 하나님의 판단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신자라면 세상에 자기를 자랑하는 자가 불신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록한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기록한 말씀은 오직 하나님에 관한 것뿐입니다. 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탐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실제 삶에서 구현되어져야 할 것은 말씀 안에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규정하지 않는 것, 즉 세상이 판단하는 것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로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록한 말씀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은 또 신앙을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여 그분으로 마치라는 뜻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받지 않은 양, 혹은 자기는 받을 자격이 있는 양 자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지 않은 신앙의 가장 두드러진 표본입니다. 세상에 자기를 자랑하고픈 뿌리 깊은 열망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마저 왜곡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십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히 신자니까, 예수를 잘 믿으니까 귀여워서입니까? 물론 하나님 심경의 근저에는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비록 허물 많고 죄를 짓더라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체질이 진토임을 잘 아시니까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신자가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 항상 은혜만 주신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면 신자에게 끝까지 아무 변화가 없어도 무조건 은혜를 주신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은혜는 당신의 기쁘신 뜻 안에서 예정하신 자들에게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주십니다.
신자에게 구원 얻은 후에도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불신자와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신자는 세상에서 자기 능력으로 성취한 것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즉, 자기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기에 자기를 자랑할 이유가 한 치도 없습니다. 신자는 그래서 오히려 바로 그 사실을 증거 하도록 세워진 자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았다면 당연히 그 받은 은혜를 자랑할 이유도 없습니다. 대신에 그렇게 은혜를 베푸신 분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신자들은 이것저것 받은 것을 자랑하기 바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자주 거명해도 자기가 받은 사실만 자랑하고 주신 분을 자랑하지 못하면 바로 신앙이 자기에게서 출발했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주신 분’을 자랑(하나님 중심의 신앙)하지 않고 ‘받은 것’을 자랑(인간 중심의 신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단과 사망의 멍에에 눌려 있는 비참한 죄인을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온 자는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긴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기에 당연히 그 모든 것이 신자의 것으로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그것들을 쟁취하려 더 이상 자기의 얄팍한 능력으로 수고하고 짐질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인생의 목적 자체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않고 영원한 본향을 향해 거룩한 걸음을 걸어가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감에 소용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을 뿐 아니라 동행까지 해주십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면 자기를 내세울 이유나 필요가 아예 없습니다. 아무리 주위 사람과 환경이 그러라고 부추기고 강제할지라도 그것에 굴복할 이유나 필요도 일절 없습니다.
자랑이 먹힐 곳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이끌어지는 세상 안에서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끌어지는 그분의 나라 안에 들어와 사는 신자가 평생을 두고 할 말은 오직 그분을 향한 감사와 찬송뿐입니다.
7/31/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