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경건한 신자는?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고후5:12)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면 사도로서의 자격을 좀 장황하게 변명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로선 초대 교회 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한 과오가 너무 크기에 자연히 자격지심이 들었을 것이며 교인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오랫동안 거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을 향해 자천할 생각이 없다는 말도 역설적으로 따져 그런 조심스런 마음이 내포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는 회심한 이후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갈2:20)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요컨대 사람들 눈치는 전혀 보지 않고 오직 예수만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복음전파자로만 알려져 있다면, 사실은 그분께 받은 소명이라 따로 알려질 것도 없지만 그 소명을 실현함으로써만 자신이 그분의 은혜 안에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교인들이 그 사실을 인정만 해주면 바로 그것이 사도로서 실제적 권위요 자격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교인들에게 그렇게 인정받고 있지 않다면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며, 그 반대로 제대로 전하고만 있다면 자연히 그렇게 인정해줄 테니까 따로 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구태여 사도라고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교인들이 먼저 자기를 그렇게 인정해주면 제대로 소명을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사도 자격을 거론한 까닭은 당연히 자기변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말을 듣는 교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본문은 그 목적을 교인들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기회를 주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어 복을 받고 비교적 선하게 살게 된 것을 자랑하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자랑에 두 가지 단서를 붙였습니다.
우선 자기들로 인한 자랑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랑하는 근거와 대상과 내용 등이 전부 사도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자랑하라고 합니다. 같이 누가 외모로 잘났는지 경쟁하여 이기라는 뜻이 아니라 외모로 자랑하지 말고 그 반대되는 것 즉 내면으로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겸손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는 불신자처럼 세상에서 통하는 외모가 아니라 사도처럼 하나님께 알려진 정체성과 직분으로 사람들 앞에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교인들더러 정체성과 직분과 실제 사는 모습에서 사도들과 똑 같아지라는 것입니다. 사도와 평신도의 구분은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바울은 지금 교인들이 닮아야 할 표본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자천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 가장 경건한 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장로, 전도사, 목사로 그 직분이 높아져야 합니까? 항상 말씀과 기도에 전무해야 합니까? 둘 다 아닙니다. 하나님과 불신자들이 볼 땐 둘 다 단지 예수를 믿고 전파하는 신자일 뿐입니다. 우선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불신자들이 먼저 신자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그 불신자에게도 주의 두려우심을 가르치고 전하여 하나님과 신자들 앞에 자신과 동일한 직분으로 알려지도록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한 마디로 바울처럼 자기를 닮으라고, 특별히 목사는 당당하게 자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11/12/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