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지막 유언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4:1)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힌 바울사도가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더라도 근신하며 때를 얻든 못 얻든 진리의 말씀을 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6절)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유언을 하는 것 같은 절박한 충정에서 나온 권면이었습니다.
비록 디모데 개인에게 주었지만 사역자와 교회와 교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권면입니다. 또 생전의 그의 모든 가르침이 다 중요하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자 지금껏 가르친 전부를 한 문장으로 집약한 셈입니다. 한 마디로 신자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도인의 직무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런 권면을 하기 직전에 든 전제입니다. 유언을 하는 것 같은 심정이 반영되어 “엄하게 명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럼 신자는 모든 일을 폐하고 죽기 살기로 전도만 해야 합니까? 바울도 “예수님의 나타나실 것”을 조건으로 달았지 않습니까? 전도는 물론 신자가 평생을 두고 행할 소명입니다. 범사가 전도를 위해 바쳐져야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진리만 전하라는 권면에 앞서 본문을 전제로 세워야만 했던 바울의 진의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본문이 죽음을 앞두었으니 더 세게 혹은 절대 잊지 않도록 다시 강조하겠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들이 있으니 엄히 명할 수밖에 없고 또 반드시 엄히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말한다고 합니다. 두 분을 그냥 증인으로 세웠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분들 앞에서 말한다면 절대적으로 그분들이 동의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바울 개인이 아닌 바로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특별히 산 자나 죽은 자를 심판하실 권한이 있는 분이라는 전제에서 말한다고 합니다. 영생과 영벌이 오직 예수님으로만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리는 그분이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때까지도 그분만이 이 우주와 인간들을, 특별히 구원 사역을 감당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당연히 마지막 때까지 그분의 은혜와 권능 가운데서 벗어날 리는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본문은 죽음을 앞둔 절박한 바울의 개인적 심정을 드러낸 표현이 아니라 디모데더러 너의 신분과 특권을 확실히 깨닫고 있느냐고 묻는 셈입니다. 또 그런 확신의 바탕에서 전도자의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모든 신자에게 그렇게 촉구한 것입니다. 바로 바울 본인이 지금껏 그런 확신으로 살아왔기에 엄히 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서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분이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 가운데 들어와 있기에 그분의 거룩하고 완전한 다스림이 자기에게 미치지 않았던 순간과 장소는 전혀 없었고 또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진리를 전하면서 (상대로부터 자신의) 때를 얻든 못 얻든 괘념할 이유라곤 아예 없습니다.
바울이 그러지 않았듯 신자라면 다 알고 있는 기독교 원리를 단순히 절박한 심정으로 강조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절대적 사실이자 영원한 진리입니다. 신자가 현재 누릴 수 있는 은혜와 권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살고(전도하고가 아니라) 있습니까?
8/9/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