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이 어떻게 살아 역사하는가?

조회 수 779 추천 수 38 2010.09.23 0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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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이 어떻게 살아 역사하는가?


[질문]


오늘 주일 설교에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은 늘 현재형으로 듣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과거형인지라(역사이기도 하니까)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미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쓰여진 당시에는 지금이 미래겠지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예언 성격의 말씀뿐 아니라 이미 성취된 말씀도 현대인에게도 그대로 성취된다고 하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병자를 낫게 하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더니 병이 나았다든가, 성전 건축을 목표로 하는 교회에서 학개 선지자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성전건축을 했다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정말로 말씀과 더불어 그런 기도를 했기에 이루어진 것인지, 말씀이 가지는 어떤 고유의 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기도하지 말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라고 자주 권면하지 않습니까? 저 자신부터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질문이 조금 애매하고 두서가 없습니다.  

[답변]

질문자님이 염려하신대로 질문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조금은 추상적이긴 합니다. 제가 대신 정리해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첫째, “과거에 기록되었고 이미 역사에서 성취된 부분도 많은데 어떻게 성경 말씀이 현대 신자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하는지?”와, 둘째, “성경 말씀 자체에 권능이 있어서 과연 그대로 붙들고 기도하면 응답이 되는지?”로 말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지, 그 본질을 정확하게 앎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모든 세대의 모든 믿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객관적 교리로 납득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말씀의 권능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 확신만 있다면 상기의 의문도 거의 자동으로 해결되는 셈입니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1;19,20)

자연의 웅장함과 오묘함을 보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인 줄 알게 됩니다. 또 인간 속에 있는 양심의 흔적으로 죄를 지으면 두렵고 부끄러워지기에 절대자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생깁니다.  

성경은 인간이 그렇게 깨닫게 되는 까닭은 하나님 쪽에서 먼저 보여주어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적존재인 하나님을 인간이 볼 수 없기에 반드시 그분이 먼저 보여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보여줄 수 없습니다. 우주 전체를 만드신 광대하신 분일뿐 아니라, 절대적 선이시기에 죄에 찌든 인간이 직접 대면하면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연과 양심에서 얻게 되는 그분에 대한 지식은 단지 창조주 하나님이 실존하고 만물을 운행하고 계시다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지, 그분께 인간은 어떤 존재로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그 관계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분이 앞으로 인간을 어떻게 이끄실 것인지, 등등은 아무래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당신의 뜻과 계획에 대해서도 반드시 당신께서 인간더러 알게 해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차매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어서 바로 그 문제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진노 아래 있던 죄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온전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앞으로 당신께서 인류를 이끌고 가실 원리와 방향도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온전히 드러내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이 역사적 사건으로만 그쳤다면 하나님의 뜻은 당대 사람에게만, 그것도 어렴풋이 드러났다가 곧 잊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후대의 인간들은 그분의 인류에 대한 계획은 물론 그 사건의 구체적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드시 기록된 말씀으로 당신의 인류에 대한 뜻과 계획을 가르쳐주셔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밝혀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구약성경에선 천지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당신과 원수 된 인간을 구원할 계획들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선 구세주가 실제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경위와 그 사건이 갖는 의미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제 죄인에 대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으며 또 앞으로 인류가 맞을 마지막 날에 관한 계시가 드러난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證據)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요일1:1-3)  

요한 사도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어떻게 정리했습니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진 내용을 그렇게 할 수 없는 후대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귀었던 것같이 성경 독자들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합니다. 독자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진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롬1:3)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은 물론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 나셨고 성령의 영으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본인도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요5:39)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신구약 성경의 주제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즉,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딤후3:15) 해줍니다. 성경은 모든 세대의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기본자세

성경 독자가 과거에 끝난 사건을 왜 현대 시제로 읽어야만 합니까?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성경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이미 그 해답은 나온 셈입니다. 구원이란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에게 절실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독자들이 요한 사도의 표현대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진바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성경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했었고 독자 또한 성령의 조명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재하여 내주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성경을 읽기 전에 간절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들은 대로 순종하겠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듣고 순종코자 하는 소망과 준비를 갖추고 성경을 계속 묵상하며 읽어나가면 그 어렵던 말씀들이 서서히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마음을 닫은 자에게는 여전히 닫혀 있고 순전하게 그 마음을 열려는 자에게만 열리는 신비한 책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

마음을 연다는 것이 단순히 성경을 더 많이 깊이 알고자하는 열심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주는 책이라고 앞에서 강조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은 당연히 예수님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마음을 열 때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그 독자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독자는 무엇보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죄에서 구원 받으려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또 구원 후에도 세상에서 상처 받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마다 그분의 위로와 보호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전의 그릇된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그분을 닮아가며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분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순종하며 천국을 향한 소망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런 소원을 갖고 성경을 읽고 또 그 깨달은 뜻대로 따르면 정말로 예수님의 놀라운 권능이 실제로 삶에서 온전히 작동하여 놀랍고도 풍성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성경을 읽는 것이 영원한 현재형으로 읽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뜻입니다. 자신의 현재의 삶에서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현재형으로 읽혀질 수 있는가?

성경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세대에 대한 그분의 뜻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 성경을 대하는 자라면 언제 어디 어떤 경우에나 성경은 영원한 현재형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과거에 끝난 사건들이 현재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실제적인 이유는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우선 성경에는 이중성취적(Dynamic or Double Fulfillment)인 계시가 많습니다. 과거에 이미 실현된 사건에 관한 말씀이지만 먼 장래의 일까지 이중으로 예언한 것을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예언에 대해 이사야 당대에선 얼마 후에 나타난 선한 왕 히스기야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확실한 의미는 바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어 십자가 사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진리의 영인 성령 세례를 받고나니까 히스기야보다 예수님이 임마누엘의 이름에 합당한 자였음을 확신케 된 것입니다.

성경의 이와 같은 계시들 중에는 아직 성취 안 된 것도 많습니다. 따라서 그런 예언들이 언제 어떻게 성취될지 아무도 모르므로 독자로선 그에 대한 영적 준비를 충분히 갖추고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신구약의 계시가 성경이 기록된 당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모든 믿는 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또 아무리 과거에 완전히 끝난 역사적 기록이라고 해도 일단 성경에 기록된 사건 모두는 후대 사람들에게 도덕적 종교적 영적인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아무리 추한 죄악으로 심판 받은 부정적인 기록이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해지는 데에 시대적 구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는 성경을 바로 자신에게 하는 말씀으로 받아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나아가 그런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모든 성경 기록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인간을 대하는 절대적 진리가 드러납니다. 한 개별 사건에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그분의 임시방편적인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통치 원리는 영원토록 불변합니다. 변개, 수정, 가감, 취소 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쉬운 예로 성경에 공산주의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공산주의에 대한 뜻을 모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일관되게 드러난 그분의 뜻을 체계적으로 분석 적용하면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대적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공적인 이슈뿐 아니라 개인적인 인생사에 관한 원리도 충분히 도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그분의 절대적 주권에 따른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섭리와 또 죄인을 다루시는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통치 방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도 그 원리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달라질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독자가 그 원리를 깨달으면 당연히 현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별적 말씀을 표어처럼 외워서 문자적으로 적용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인생관부터 바꾸어야 하며 또 그분의 진리로 삶의 구체적인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범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 판단, 결정, 시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도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할 것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외우면서 기도한다고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말씀이 아니라 마술사가 외우는 주문과 같아집니다. 성경 스스로 “하나님 말씀이 살아서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바도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무엇보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만들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회개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실체를 스스로 분명하게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의 품성, 가르침, 사역, 특별히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깊이 알아갈수록 독자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나 연약하며 무능하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죄악으로 찌든 실체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 갈망하게 됩니다. 단순히 어려운 일을 붙들고 기도하여 응답 받는 일에 말씀의 생명력이 작동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라는 권면의 의미를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기록된 말씀을 따라 외우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조금 있다 설명하겠지만 그러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기도 마침말의 은혜와 권능부터 확신해야 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서 신자는 아무리 힘든 고난으로 절망에 빠졌든, 죄악에 져서 쓰러져있든 주님의 인도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갈라졌던 그 은혜를 믿는 자는 언제 어디서나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부합된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신자가 만인제사장으로 부름 받았기에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여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모든 이들이 자기들 신께 바치는 양만큼 비례해서 따라오리라 기대한 현실의 복만 간구했습니다. 주님이 오신 후에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부터 거룩하게 바뀌며 그분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일을 위해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기도로 간구하여서 그분과 함께 동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라는 절대 끊을 수 없는 혈연적 관계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맺어진, 바탕으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기록된 말씀을 문자적으로 붙들면 응답이 더 잘 되리라는 기대로 기도하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주문(呪文)에 불과합니다. 알리바바가 보석을 숨겨진 굴 앞에서 ‘세사미’라고 외치면 문이 열리는 것과 같은 성격이 됩니다.

신자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형식으로는 비슷한 것 같아도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어떤 개별적 말씀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 그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아주 좋은 일이며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단 기복적 기대나 그분과 거래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이 정말로 하나님을 온전하고도 겸비하게 신뢰하는 바탕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말씀 그대로 이뤄지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완전히 인정 확신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또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그만큼 지금 기도하는 문제가 자신에게 갈급하며 중요한 일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기도하는 내용과 그 말씀이 뜻하는 바가 정확히 일치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정말로 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실현되어서 자신과 자신이 기도하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우선적으로 소원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당연히 그 소원과 믿음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알고 기도할 만큼 온전한 성경지식을 가진 자는 드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의 기도에서 “갈급함과 진정성과 온전한 믿음”을 보기를 더 원하십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기도하는 뜻이 순수하다면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부터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그 순전한 마음을 너무나 기쁘게 받으시고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만의 방식으로 풍성한 은혜로 응답해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보는 신자에게도 가장 먼저 요구되는 태도는 바로 "갈급함과 진정성과 온전한 믿음"입니다. 순수하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은혜 받기를 소원하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살아있는 능력이 온전히 발동되어서 신자의 영혼에 충만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개인적 교제가 이뤄지며 세상이 알 수 없는 평강, 위로, 자유, 안식, 능력, 기쁨, 승리가 넘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자연히 성경말씀을 매일 묵상 암송하고 싶어지며 또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아 살게 됩니다. 기도도 어느 새 말씀을 붙들고 하게 됩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제목들이 말씀에 드러난 그분의 뜻에 부합되는지 기도 중이든 후에든 점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차츰 그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정말로 말씀 자체의 능력이 신자를 변화, 성숙시켜 하나님께 감사, 경배, 순종케 만드는 것입니다.

9/1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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