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1:30,31 사사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의미는?

조회 수 3717 추천 수 39 2010.09.23 02:08:52
운영자 *.108.173.248
사사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의미는?


[질문]


여차하여 사사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 신학자 마다 견해가 다른데 운영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도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11:30,31)

[답변]

죄송스럽게도 질문이 조금 구체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견해가 다양한 중에 저의 의견을 물어왔으니 역으로 견해가 다른 부분을 따져 답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이미 많은 의견들을 보셨을 테니까 제 의견을 되도록 간단히 진술토록 하겠습니다.

학자마다 견해가 다른 부분은 특별히 둘일 것입니다. “과연 딸을 산 제물로 불에 태워서 바쳤을까?”와 또 “하나님이 이 제물을 열납하셨을까? 또는 이런 사건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입니다.  

완전한 번제물로 바쳐졌다.

혹자는 딸을 단순히 평생 시집가지 않는 처녀로 지내게 혹은 성전 봉사자로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이나 당시 정황상 분명히 번제물로 태워 바쳤던 것 같습니다. 우선 상식적으로만 판단해도 독신으로 살았다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드러나는 특별한 상벌의 의미와 후대 독자에게 주는 교훈적 내용이 내포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이 이 사건을 구태여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입다는 딸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자기 옷을 찢는 것은 극단적인 비탄의 표식입니다. 단순히 처녀로 지내게 될 것을 두고 이렇게 슬퍼할 리는 없습니다. 또 맹세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한다고 그 준행을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기생(이방 여인일 가능성이 높음)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지경 바깥에서 아람 사람들과 함께 돕 지역에서 살았습니다.(11:1-3)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이방 풍속에 상당히 익숙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사람을 바치는 것은 신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온전한 맹세의 표시나 절실한 응답을 소원할 때에 이뤄집니다. 딸로 평생 처녀로 보내는 정도로는 서약과 간구의 의미로는 훨씬 약합니다. 거기다 입다로선 누가 처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맹세했기에 구태여 평생 처녀로 바친다는 의미까지는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39절)에서 “죽으니라”가 작은 글자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일부 사본에만 등장한다는 뜻입니다. 고대에도 이미 비슷한 설왕설래가 있어서 확실히 번제물로 바쳐졌다고 다시 확인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죽지 않고 평생 처녀로 지냈는데 후대 사람들에게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이나 애곡하는 풍습이(40절) 생겼을 리도 만무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의아심이 드는 부분일수록 더욱 그 기록된 바를 넘어서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올바른 이성으로 행간과 문맥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합리적으로 파악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입다의 서약대로 이뤄주신 이유

후대 독자가 이 사건을 이해하기 조금 곤혹스러워지는 까닭은 입다의 서약대로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입다는 훌륭한 사사로서 좋은 일을 행한 것이고 하나님도 그 딸을 번제물로 열납하셨다고 해석해야 되지 않는가라고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사 입다에 관한 성경 기록을 앞뒤로 죽 살펴보면 암몬과의 갈등과 입다의 출생 성장 배경과 사사로 세움 받는 과정과 사사가 된 후의 암몬과의 정치적 교섭과 이 서약 사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그 전투 과정이나 승리에 관해선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고 치웁니다. 결국 성경이 드러내고자 하는 뜻은 서약하였더니 승리케 해주셨다는 즉, 신자의 헌신과 하나님의 응답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입다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열성 때문에 승리케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악한 것을 용납하거나 타협하지 않습니다. 신구약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그분은 완전하고도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삭의 번제 사건에서 보듯이 사람을 번제물로 받지 않습니다. 단지 그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인간 제물은 영단번의 구속 제물이 되신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으로 족합니다. 요컨대 (자신이 죽었으면 죽었지 아니 실제로) 당신께서 죽으면서까지 당신 백성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입다는 종교적 열성으로 인간 제물을 바치는 정도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자를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흔히들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영접하는 자는 당연히 그 집의 종입니다. 무남독녀가 나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입다는 종의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이번은 경우가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아버지가 전쟁에 출전했다, 그것도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데 어찌 무남독녀가 제일 먼저 영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섭리 아닙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 공정하고 엄격합니다. 자기 집 종의 목숨은, 아무리 전투에 적극 헌신하고 그 승리의 은혜를 갈급해 한다는 의미라고 해도, 파리처럼 여긴 잘못을 딸이 죽을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철두철미 깨닫게 하셨지 않습니까? 두 딸을 음행의 제물로 내어주려 했던 롯이 결국은 그 딸들과 근친상간하는 벌을 받았고, 아비에게 형인 척 속여서 장자권을 차지한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는 라헬인줄 속는 벌을 받았지 않습니까? 부하의 아내와 간음한 다윗은 자기 아내들이 백주에, 그것도 자기 자식과 동침하는 벌을 받았지 않습니까?  

입다에게 승리를 주신 이유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암몬을 벌주려는 뜻일 뿐입니다. 그 동안 입다가 암몬과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백방 노력했지만 암몬이 거역한 데 대한 벌이었습니다. 입다가 성공적으로 자기 직분을 성실히 수행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섣불리 서약한 것만은 분명 잘못입니다. 삼손과 사울이 하나님께 죄를 많이 범했어도 블레셋에게 계속 승리케 했던 이유와 동일합니다. 개인적 신앙 인격에선 하자가 너무 많았어도 사사와 왕으로서 의무는 충실했던 자들이었지 않습니까?

비천한 출신인 입다가 하나님의 종으로 크게 쓰임 받았다는 것이 이 사건이 주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선조들 일부가 그러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정작 더 주목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이 그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의 종들이 열심히 잘하여서 복을 받았다는 기록보다 오히려 많은 허물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독단적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훨씬 많이 나옵니다. 비천한 종이 쓰임 받고, 인간의 잘못에도 구원해주시는 것 모두가 예수님의 복음을 예시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또 아무리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표시라고 해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너희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4-37)

세상만사는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주관하십니다. 우주의 어떤 것도 그분의 통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맹세란 장래 일을 자기 뜻대로 이끌겠다는 뜻이므로 그분의 통치를 인간이 대신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는 거룩한 목적이라도 장래 일을 인간이 앞서 주도하겠다는, 자발적 적극적으로 그분의 통치에 참여 헌신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맹세라면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다가 서약한 경우는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내가 그 감사의 보답으로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칠 테니 그 보상으로 달라는 것보다는 그 질이 조금 낫지만 원칙적으로는 같은 성격입니다. 또 그런 서약의 결과가 어떻게 벌어질지 인간이 주도는커녕 전혀 알지도 못한다는 뜻에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맹세였던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신실한 주의 종이라도 그 신앙적 열정이 앞서다 보면 자칫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맹세를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입증하는 아주 적합한 실제적인 선례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입다의 서약대로 하나님이 승리케 해주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살펴본 대로 그 서약이 옳아서 승리케 해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입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사랑하시고 그를 대적하는 악을 심판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이 또한 바로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성경 해석의 마스터키로 등장하면 견해가 분분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런 원리를 잘 알고 있음에도 때로는 그 적용이 쉽지 않는 이유는 입다 같이 불신자 시절의 사고방식이 완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신자가 열심을 바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에 따른 보상을 주신다는 믿음, 기대, 예상입니다. 그럼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입다로 승리케 했으니 그가 한 서약도 옳은 것이며 또 하나님도 딸을 번제물로 열납하신 것 아니냐는 이상한 해석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한 선입니다. 그분에게서 악한 것은 절대 도출될 수, 아니 공존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계시의 절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인간의 잘못에도 택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무한하고도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너무나 크고 오묘한 그분의 섭리와 권능의 관점에서만 성경을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9/15/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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